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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으으....정말 피곤하군.”
유태열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자, 한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듯 그의 매니저 마이클이 말했다.
“클럽까지 가는데 10분쯤 걸릴 텐데. 그때까지라도 눈을 좀 붙여.”
마이클의 그 말에 유태열의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한 시간 정도면 몰라도 고작 10분 자는 걸로는 지금 내 컨디션만 더 엉망으로 만들 뿐이야. 거기다 곧 몸 쓰는 일을 해야 하는 데, 상태가 안 좋으면 제대로 된 디제잉을 할 수도 없고....”
유태열의 말대로였다. 클럽에서 디제잉을 해야 하는 데 컨디션이 안 좋아서는 제대로 된 디제잉을 펼칠 수 없을 것이고, 그럼 그에 대해 여러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척 보기에 클럽에서 디제잉 하는 게 신나고 재미있어 보인다. 일단 클럽이라는 곳 자체가 화려하고 또 유흥을 만끽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그런 곳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귀가 더 예민하다. 디제이가 틀어주는 음악에 따라 그들의 몸짓이 달라지니까 말이다.
해서 디제이들 사이에서는 그들의 성공과 몰락을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곳이 클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유태열 같은 세계적인 명성의 디제이가 클럽 무대에서 실수하는 건, 그의 경쟁자들에게 있어서는 딱 씹기 좋은 핑계거리가 될 수 있었다.
유태열도 이제 예전의 그가 아니라는 둥, 그의 디제잉 감도 이제 다 됐다는 둥 말이다.
마이클은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 자체가 싫었다. 해서 유태열이 오늘 밤 클럽에서 제대로 된 디제잉을 해주기를 바랐고, 그 때문에 유태열에게 더 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커피 좀....”
“어. 여기....”
유태열 보다 좀 더 일찍 스튜디오를 나온 마이클. 그는 방송사 근처 커피전문점에서 유태열이 피곤할 때 마시던 진한 커피를, 늘 준비해 다니던 보온병에 챙겼다.
아니나 다를까? 피곤한 상태의 유태열이 커피를 원하자 마이클은 그 보온병을 그에게 건넸다.
유태열은 알아서 그 보온병의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휘황찬란하고 살짝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풍기는 서울의 밤거리를 잠시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 사이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저기지? 줄리아나?”
조수석의 마이클이 앞쪽의 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자, 뒷좌석의 유태열이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커다란 한글 간판 옆으로 작게 영어로 JULIANA라는 글이 보였지만 시력이 좋지 않은 마이클의 눈에는 그 글은 안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유태열이 간판을 확인하고 대답해 주었다.
“어어. 맞아.”
유태열의 말에 그를 태운 차는 곧장 주위 다른 간판보다 더 화려하면서도 뻔쩍거리는 클럽 줄리아나의 간판이 있는 건물로 접근해 갔다.
그때 귀에 인이어를 끼운 딱 봐도 클럽 웨이터로 보이는 자가 유태열이 탄 차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외쳤다.
“여기 주차 안 되니까 빼요.”
그러자 운전석의 차창이 내려지면서 운전기사가 그 웨이터에게 말했다.
“여기 출연자 차요.”
그 말에 웨이터가 바로 물어왔다.
“출연자 누구요?”
“DJ유태열!”
“아아. 이쪽으로....”
유태열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웨이터가 손짓을 하며, 유태열이 탄 차를 클럽 입구 쪽으로 직접 인도를 해주었다.
덕분에 유태열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클럽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그 웨이터가 직접 유태열을 클럽 출연자 대기실로 안내해 주었다.
“여깁니다.”
“고마워요.”
유태열은 웨이터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곧바로 출연자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밴드 멤버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는데 다들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래서 유태열도 굳이 먼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저들은 딱 봐도 퇴근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후 유태열은 저들 볼 일은 없었다.
저들이 미국으로 진출한다면 또 모를까.
유태열이 출연자 대기실의 비어 있는 자리에 앉고 몇 분 되지 않아 밴드 멤버들이 우르르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유태열이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아선지 몰라도 그들 또한 유태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퇴근을 하는 거 같았다. 그때 클럽 지배인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유태열씨?”
“네.”
“사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태열은 클럽 지배인이 반가워하며 내민 손을 일단 잡았다. 그리곤 물었다.
“박 사장님께서는?”
유태열이 첫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게 장PD 덕분이라면, 그가 디제이로 처음 돈을 벌게 해 준 사람이 바로 이곳 클럽 줄리아나의 박 사장이었다.
“아아. 사장님께서 급한 일이 생겨서 유태열씨 못 보러 오게 됐다며, 저보고 말씀 좀 잘 해 달 라셨습니다. 그리고 불편한 거 없게 잘 챙기고요. 하하하하.”
디제잉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할 때는 언제고, 이런 식으로 냉대라니.
그가 진짜 디제잉해서 푼돈 벌려고 여기 온 건 아니다. 다 박 사장 얼굴 보고 그와 옛 추억을 얘기하고 싶어서 온 거지. 한데 오늘 그를 만나 한 잔하며 회포를 풀자던 박 사장은 여기 없었다.
역시 사람은 끝까지 겪어 봐야 알 일이었다. 유태열은 장PD에 이어서 박 사장에 대한 고마웠던 마음을 이번 디제잉 이후 그의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리기로 했다.
* * *
줄리아나의 클럽 지배인 홍상수는 사장인 박도출의 고향 후배였다.
박도출이 운 좋게 장사로 돈을 모았고 그 돈이 또 돈을 벌면서 건물을 사게 되고 여러 가게를 운영해 나가면서, 그를 도와 줄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홍상수가 박도출의 부름을 받아 그 밑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어느 새 그와 20년을 함께해 오고 있었다.
말이 클럽 지배인이지 사실상 이곳 줄리아나의 사장은 홍상수였다. 그랬던 그가 오늘 여러모로 체면 깎이는 일을 겪고 있었다.
말은 고향후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홍상수가 잘 아는 동네 조폭들에게 그는 클럽 VIP룸, 즉 특실을 내주었다.
평일의 경우 특실을 원하는 VIP고객이 거의 없었다. 해서 전에 신세를 진적 있었던 아는 조폭 후배에게 특실과 술값 일체를 받지 않기로 하고 쓰게 했는데....
“C발....하필....”
오늘 밤에 클럽 퀸이 VIP고객을 데리고 올 건 또 뭐란 말인가?
“현철아. 미안하게 됐다.”
“아닙니다. 형님. 뭐 이럴 수도 있죠.”
그래도 아는 조폭이 그의 곤란한 처지를 이해해줘서 다행이었다. 대신 외부에서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특실에서 쫓겨난 그 조폭과 일행들이 클럽 무대에서 사고를 쳤고, 그 때문에 또 한 번 홍상수의 체면이 손상당했다. 이번에는 클럽 내부에서 그의 권위가 크게 훼손당하고 말았다. 그 많은 사람들, 특히 클럽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클럽 퀸에게 따귀를 그렇게 많이 맞았으니....
“C발년....”
클럽 지배인 실에서 얼음주머니로 퉁퉁 부어 있는 자신의 뺨을 문지르며 홍상수의 입에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클럽 퀸에 대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똑똑똑!
그때 지배인실 밖에 누가 노크를 했고 홍상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들어 와!”
마치 지금 지배인실 밖에서 노크한 사람이 누군지 안다는 듯 말이다. 그러자 지배인실 문을 열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 온 웨이터 복장의 젊은 남자가 히죽거리며 홍상수를 보고 말했다.
“형님. 내일이면 소문 파다하게 날 건데....이대로 가만있을 겁니까?”
“가만 안 있으면? 경기도지사 딸내미를 나보고 어쩌라고?”
“피딱지, 우리 형님 성질 다 죽었네. 하긴 상대가 유력 정치인이라면 뭐 별 수 없는 노릇이지만....”
홍상수도 서울에 상경해서 조직원으로 시작해서 한때 강남 바닥에서 ‘피딱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악명 꽤나 날렸던 조폭이었다.
뭐 그러다 간이 부었던지 조직의 돈에 손을 댔고, 죽을 뻔한 것을 지금의 박도출이 구해주었다.
그러니까 클럽 줄리아나의 박 사장은 홍상수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인 셈이었다. 그랬기에 홍상수도 여태 진심으로 박 사장을 모시고 있는 것이고.
“나 놀리러 온 거면 그만 나가라. 여기서 더 열 받으면, 네가 내 동생이라도 쳐 맞는 수가 있으니까.”
평소와 달리 살벌한 얼굴의 홍상수. 하지만 그의 동생인 홍영수는 쳐 맞더라도 나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더 홍상수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그년 좀 전에 무대 제일 앞쪽 테이블에 자리 잡았어.”
“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동생 홍영수를 쳐다보는 홍상수. 그런 그에게 동생 홍영수가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흐. 한마디로 같이 온 VIP에게 특실에서 쫓겨 난 거지. 어때? 이만하면 안 쳐 맞아도 되지?”
홍영수의 그 말에 홍상수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럽 퀸이자 경기도지사의 딸인 류지혜.
안하무인인 그녀를 룸에서 쫓아내 버린 그 VIP가 누군지 홍상수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막 동생에게 VIP의 정체를 알아보라고 말하려는 데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고 안 받아도 될 전화면 씹을 생각이었던 홍상수. 하지만 그는 확인과 동시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전화 건 상대가 클럽 줄리아나의 대표인 박도출이었다. 그러니 재깍 그 전화를 받을 밖에.
-거긴 어때?
“네. 잘 돌아갑니다.”
-이따가 DJ유태열이 올 거야.
“네. 압니다.”
세계적인 명성의 DJ유태열. 박 사장이 무슨 인맥으로 그를 클럽에 섭외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줄리아나의 무대에 선다는 얘기 때문인지, 오늘 클럽 줄리아나는 밤 10시가 좀 넘고 나자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자신과 유태열이 친한 사이라고 하도 얘기를 한 탓에 홍상수도 오늘 밤 무대에 유태열이 클럽 디제잉을 할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맞기 위해서 좀 있다가 박도출 사장도 여기 오기로 되어 있었고. 한데....
-나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거기 못 갈 거 같아.
그때 핸드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앙. 사장님. 거기는....아아앙....
바로 박도출 사장이 최근에 새로 살림 차려 준 강남 룸살롱의 에이스 희수라는 여자였다. 아무래도 박 사장이 희수와 그 짓을 더 하려고 여기 못 오는 모양이었다.
-홍 지배인이 나 대신 유태열에게 잘 좀 얘기 해 줘. 내일 떠나기 전에 내가 연락할 거라고 전하고.
“네. 잘 알겠습니다.”
유태열과 그렇게 친하다더니 계집질 더 하려고 그와 만나는 것도 취소할 정도면 과연 그게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흥....”
홍상수는 가볍게 콧방귀를 뀐 후 아직 지배인실을 나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신의 동생 홍영수를 보고 버럭 소리쳤다.
“빨리 나가서 일 못 해?”
“알았어. 나가. 나가면 되잖아.”
그제야 툴툴거리며 지배인실을 나가려고 지배인실 문을 막 여는 동생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던 홍상수, 그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재빨리 말했다.
“잠깐만. 영수야.”
막 지배인실 문을 열던 홍영수. 그가 고개만 뒤로 돌려 홍상수를 보며 말했다.
“왜?”
“특실에 그 VIP, 누군지 좀 알아 봐.”
홍상수의 그 말에 홍영수가 눈빛을 반짝 거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나 역시 궁금했어. 클럽 퀸을 깐 새끼가 누군지 말이야. 바로 알아보고 알려줄게.”
그 말 후 이미 열려 있던 지배인실 밖으로 나가는 클럽 줄리아나의 웨이터 홍영수.
그는 곧바로 클럽 VIP룸, 즉 특실로 향했다. 그때 호출이라도 받은 듯 웨이터 하나가 황급히 특실 쪽으로 움직이는 게 홍영수의 눈에 띠었다.
“어이. 잠깐만....야! 거기 서 보라니까.”
홍영수가 거의 뛰듯 달려가서 기어코 그 웨이터를 붙들어 세웠다. 상대는 안 그래도 바쁜 데 누가 그를 붙잡자 버럭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특실 호출인데 누구야?”
이곳 클럽에서 오로지 특실만은 예외적인 곳이었다. 웨이터들이나 관계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최우선시 해야 할게 바로 특실 손님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고로 지금 웨이터가 특실 운운한 건 누군지 몰라도 자기를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를 한 것이었다.
“오호. 특실? 그거 마침 잘 됐네.”
“헉! 너, 너는....”
한데 그 상대가 이곳 지배인인 홍상수의 동생인 홍영수였다. 비록 같은 웨이터지만 지배인의 동생인 웨이터가 보통 웨이터와 같을 리 없었다. 당연히 홍영수가 눈앞의 웨이터 보다 더 지위가 높았다.
“특실은 내가 들어 갈 테니 넌 그만 가 봐.”
“뭐?”
횽영수의 그 말에 웨이터는 얼굴을 붉혔지만 결국 뒤돌아서 씩씩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걸 보고 피식 거리고 웃던 홍영수.
“저 새끼 또 휴게실 가서 그만 두네 마네 난리를 떨겠네.”
그 말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는 곧바로 특실로 가서 거기 문에 노크를 한 후 그 문을 열고 특실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