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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서진그룹 김학수 부회장.
“오오....”
그는 드디어 백준열과 만난다는 사실에 고양 된 흥분이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랄까?
대학에 들어갈 때, 또 서진그룹에 처음 입사 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부친인 김명진 회장이 처음 그에게 주식을 양도했을 때도, 결혼 했을 때도, 그리고 첫 아이를 안아 봤을 때도 이렇게 흥분 되지는 않았다.
“우황청심환 좀....”
“부회장님. 이미 두 개나 드셨습니다.”
김학수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우려 섞인 얼굴로 말하자 그가 버럭 소리쳤다.
“하나 더 가져 와.”
“네.”
이제 그 누구도 그의 말에 감히 토를 달지 못한다. 그는 이런 절대 권력을 쥐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가 한다면 하는 거고 꼭 해내야했다.
“쩝쩝쩝쩝....”
김학수는 기어코 우황청심환 하나를 더 씹어 먹었다. 마시는 것도 있었지만 효과가 좋은 쪽은 역시 환으로 나온 거다. 그래서 씹기 귀찮아도 김학수는 우황청심환을 꼭꼭 씹어 먹었다.
“여기....”
그걸 옆에서 쭉 지켜보던 비서실장이 김학수에게 생수를 건넸다. 김학수는 생수로 마지막 입가심을 했다.
평소의 김학수라면 이렇게 흥분이 될 때 술을 마셨다. 하지만 지금은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아버지를 닮아선지 몰라도 김학수 역시 낮술을 즐겼다. 그러나 지금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됐다. 그 전에 너무나도 중요한, 그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 일이란 바로 누구와 같이 골프를 치는 것. 그 골프 회동에서 김학수는 반드시 그 누구의 마음을 얻어야만 했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접대해야 할 그가 풀풀 술 냄새를 풍긴다? 그 자리는 바로 파토가 날 것이다.
그가 만나야 할 그 누구는 그 정도로 예민하고 깐깐한 녀석이었으니까.
해서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춰 놓았지만 그래도 김학수는 못미더워서 한 번 더 점검 할 것을 비서실장에게 시켰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다른 사람 시키지 말고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직접 확인하게 말이다. 이내 김학수 옆에 비서실장이 떠나고 홀로 남은 김학수.
“오늘이후....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도....”
아직 돌아가신 건 아니지만 코마 상태의 부친 김명진 회장. 불과 얼마 전까지 그 부친의 벽은 정말 높아 보였다. 모든 면에 걸쳐서 자신은 부친에 비할 바가 못됐으니까. 하지만 최후에 웃는 자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이제 30분 남았군.”
백준열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오면서 김학수는 고양되고 있던 흥분감이 초조감으로 바뀌어가면서 오줌이 마려웠다. 우황청심환 먹으면서 마신 생수 때문인지 남은 30분 동안 벌써 세 번이나 화장실을 다녀 온 김학수.
“됐다.”
드디어 백준열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됐다. 그가 점검 차 보낸 비서실장도 그 사이 돌아와서 그의 옆을 지켰다. 한데....
“늦는군.”
“제가 그쪽에 연락을....”
“아냐. 됐어. 한 10분 늦는 거야....”
김학수는 백준열이 차가 밀려 좀 늦는 거라 넓은 마음으로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내 든 비서실장을 말렸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백준열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여보세요? 저는 서진그룹 비서실장인....”
그래서 옆에 비서실장이 전화를 거는 것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그러며 김학수의 넓은 마음도 빠르게 밴댕이 소갈딱지로 변해갔다.
* * *
약속 시간에서 한 시간이 다 되어 갔다. 그때까지 백준열 쪽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JYB엔터의 백준열 비서는 지금 거기로 백 대표님이 가시고 계시니 기다리라는 말만 되뇌었다. 거기가 무슨 중국집도 아니고 말이다.
“으드득....”
김학수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아주 대 놓고 이까지 갈아대는 김학수를 보고 그의 비서실장이 초조해 하며 발을 동동그렸다. 이런 식이라면 백준열이 와도 문제였다.
김학수가 백준열의 마음을 훔쳐야 하는데 지금 봐서는 훔치기는커녕 때려잡을 거 같았던 것이다.
-치익! 왔습니다. 백준열이 확실합니다.
그때 서울CC 정문에 배치시켜 둔 서진그룹 경호팀원으로부터 무전이 날아왔다. 드디어 그들이 그토록 기다려 마지않았던 백준열이 온 것이다. 그 무전을 받고 비서실장은 곧장 김학수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부회장님. 백준열이 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걱정 마. 내 기분 때문에 중요한 일을 망치지는 않아.”
좀 전까지 눈앞에 백준열이 있다면 그를 뜯어 먹을 거처럼, 악귀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김학수.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걸 보고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비서실장. 하지만....
“내 언제고 그 새끼....꼭 갈아 마시고 말테다.”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김학수에게 비서실장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비서실장은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황급히 약속 장소인 이곳 서울CC 클럽 하우스의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지금쯤이면 백준열을 태운 차가 입구 앞에 도착할 때가 다 되었던 것. 의전이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주인을 대신해서 그가 백준열을 맞아 주인 앞까지 안내하는 게 여기서 그가 할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이쪽으로....”
도착한 백준열을 비서실장이 앞장서서 안내했다. 근데 좀 전까지 잘 웃고 있던 김학수 부회장이 잔뜩 인상을 쓰고 앉아 있었다. 그걸 보고 비서실장은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원래라면 김학수 부회장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백준열을 맞아야 했다.
근데 반대로 김학수 부회장은 일어서지도 않고 앉은 채, 그것도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저건 결코 손님을 맞는 자세가 아니었다. 마치 빚쟁이가 채무자가 만날 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친....’
이러면 그들이 여기 준비해 놓은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지 몰랐다.
“크음. 부회장님. 백 대표님 오셨습니다.”
안되겠다 싶었던 비서실장이 헛기침을 하면서 김학수에게 눈치코치 다 보냈다. 다행히 그걸 본 듯 김학수가 찌푸리고 있던 얼굴은 일단 풀었다. 그리고 비서실장의 손짓에 몸을 일으켰고. 그때 백준열이 도리어 환하게 웃으며 김학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상대가 사과를 하는 데 당연히 나이가 더 많은 김학수가 넓은 아량으로 포용을....
“그러게. 한 시간이나 늦다니. 좀 심하군.”
그런데 정작 괜찮다며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해야 할 김학수의 입에서 딴 소리가 튀어 나왔다.
“헉!”
순간 비서실장은 놀라며 급히 한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하지만 이미 비서실장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경악성은 김학수도, 백준열도 다 들었다. 그런데 정작 기분 상해야 할 백준열은 그대로 웃고 있는데 김학수가 자신의 비서실장을 돌아보며 버럭 외쳤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죄, 죄송합니다.”
“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
비서실장은 자신의 오른팔이었다. 그런데 지금 김학수는 그 오른팔을 스스로 잘라냈다.
* * *
나는 차가 서울CC 클럽 하우스 입구 앞에 도착해서 차문이 열리자 차에서 내렸다.
“백 대표님!”
그때 서진그룹 비서실장이 나를 맞았다.
“좀 늦으셨네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 비서실장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 즉 적의에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 웃음은 클럽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계속 되었다. 나는 클럽 하우스 안에 들어서며 바로 「개호구」스킬을 사용했다.
저기 클럽 하우스 커피 전문점 안에 억지로 웃고 앉아 있는 김학수 부회장에게 말이다.
그랬더니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싹 돌변했다. 원래 지금 그의 기분에 따른 그의 본색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개호구」스킬을 김학수 부회장에게 건 이상 그는 오늘 하루 철저히 내 호구 노릇을 해야만 한다.
「개호구」스킬이 5UP이 되면서 스킬 사용 시킨 뿐 아니라 새로 생겨나고 보강된 능력들이 장난 아니었다.
그 중에 자신은 본색은 숨긴다고 하지만 그게 겉으로 그대로 드러나게 만드는 능력도 있었다.
그 능력을 내가 쓰다 보니 김학수 부회장은, 지금 느끼고 있는 기분 그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쯧쯧쯧....그래봐야 소용없는데 말이야.’
비서실장이 나름의 노력했지만 정작 이 만찬장의 주인이 그걸 똑 바로 하지 않으니 준비한 게 제대로 진행 될 리 없었다. 거기에 최악은 김학수 부회장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비서실장을 질책하며 쫓아내 버린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가운데 김학수 부회장이 준비한 계획이 나름 차질 없이 착착 진행 되는 중이라는 점이었다.
“하하하하. 부회장님. 여기서 뵙는군요.”
40대 초중반의 아주 뺀질뺀질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아주 반갑게 웃으며 김학수에게 다가왔다. 그런 그를 보고 김학수가 실제로 반가워하며 말했다.
“아아. 박 사장. 어서 와. 여기는 JYB엔터에 백준열 대표. 백 대표. 이쪽은 프로나인 기획사 박 대표.”
예정된 수순처럼 김학수는 그 중년 남자를 나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그 중년 남자가 나를 보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이런 곳에서 그 유명한 JYB엔터의 백 대표님을 다 뵙는군요. 저는 프로나인의 박충호라고 합니다.”
“네. 백준열입니다.”
나는 박충호가 내민 손을 잡으며 살짝 갈등했다. 눈앞에 이 자에게도 「개호구」스킬을 쓸지 말지를 두고 말이다.
‘쓰지 말자.’
김학수만으로도 지금 이 자리는 우중충했다. 그런데 같이 골프 칠 게 유력해 보이는 박충호까지 본색을 그대로 드러 낼 걸 생각하니 여기 분위기가 너무 칙칙할 거 같아서 말이다.
박충호와 가볍게 악수를 끝내고 막 손을 회수할 때였다.
“어머. 대표님!”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 그리고 등장한 8등신의 늘씬한 미녀.
“와우....”
내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매력을 소유한 완벽한 미인이 화사하게 웃으며 박충호 옆에 다가와서 섰다. 그러자 반쯤 넋이 나가 내 시선이 미인에게 꽂혀 있는 걸 보고 박충호가 비릿하게 웃더니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은혜야. 너 여기 어쩐 일이니?”
“친구들이랑 골프 치러 왔죠.”
“그으래? 잘 됐다. 우리랑 같이 치자. 괜찮죠? 부회장님?”
박충호가 나름 열연을 펼쳤지만 그래도 연기자가 아닌 만큼 어색한 티가 났다. 하지만 내가 미인에게 제대로 꽂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고 김학수가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흐흐흐흐. 좋지.”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계신 박 대표님 소속사 배우인 이은혜라고 해요.”
미인이 아주 대 놓고 노골적으로 나만 보고 인사를 했다. 당연히 그런 그녀의 반응에 기분 나빠해야 할 김학수는 오히려 웃고 있었다. 마치 그가 짜 놓은 음모가 착착 잘 진행 되어가고 있다는 듯 말이다.
“은혜야!”
“뭐해?”
그때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여자 둘이 더 등장했다. 근데 그 두 여자 모두 이은혜 못지않은 미인들이었다. 그녀들을 본 순간 나의 시선이 이번에는 그 두 미인들에게 꽂혔다.
‘이것 봐라?’
그럴 것이 이은혜도 그렇고 지금 등장한 두 여자들 역시 딱 백준열이 좋아하는, 아니 보면 환장하는 부류의 미인들이었다.
즉 김학수가 제대로 백준열의 취향을 저격하는 여자들을 여기에 준비 시켜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개새끼 백준열에게 빠져 나오지 못할 제대로 된 함정을 판 거다. 하지만....
‘나는 그 개새끼 백준열이 아니거든.’
백준열이었다면 아주 좋아 죽었을 거다. 그의 취향을 저격하는 세 미인에, 보아하니 김학수는 황제골프 접대를 준비한 거 같았다. 이러면 이전의 백준열이라면 꺼뻑 넘어가고 남았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무엇보다 채 한 시간도 전에 미인 프로골퍼 성유리와 그렇게 빠구리를 하고 오지 않았나?
그러니까 세 미인들이 내 앞에 있어도 별로 성욕 같은 게 일어나지 않았다.
성욕이 일지 않으니 세 미인들이 내 눈에 따 먹어야 할 여자가 아니라, 보기 그럴싸한 관상용 마네킹으로 밖에 안 보였다.
그런 가운데 정해진 수순 마냥 새로 나타난 두 미인들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그녀들의 오늘 타깃인 나를 향해 자신들을 소개했다.
“반가워요. 저는 걸그룹 헤나온의 리더 한초임이라고 해요.”
“저는 모델 겸 연기자로 활동 중인 제시에요.”
두 미인은 완전 서로 상반된 미모를 자랑했다. 그 중 한초임은 키가 성유리 정도로 크지 않았으나 얼굴이 오밀조밀하니 정말 예뻤다. 얼굴로만 보면 정말 역대 급 미모였다. 그에 반해 그 옆에 미인인 제시는 일단 키가 컸다.
하이힐을 신으면 자칫 나보다 더 커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얼굴은 한초임에 못 미치지만 몸매만큼은 쭉쭉 빵빵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