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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곳 호텔의 스위트룸에 묵는 VIP고객에게는 개인집사, 즉 버틀러가 붙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걸 뭉텅 거려서 버틀러 서비스라고 보면 됐다.
“타시죠.”
나와 김종훈이 버틀러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사이 도착한 엘리베이터. 그 엘리베이터를 잡고서 버틀러 샘이 말했다. 그러자 우리보다 앞서 호텔 직원하나가 우리 짐을 실은 러기지 카트를 끌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우리가 탈 공간을 남기고 러기지 커트를 엘리베이터 안쪽에 붙여두었다.
그걸 보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버틀러 샘이 우리보고 타라고 손짓을 보냈고, 우리가 타자 마지막으로 버틀러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리곤 우리를 실은 엘리베이터가 이곳 호텔 건물에서 가장 높은 층인 5층에 도착했고 제일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샘이 앞장서서 그 층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갔다.
이내 5층 복도 끝에 위치한 커다란 쌍여닫이문 앞에 멈춰 선 샘. 그가 보는 사람이 놀라게, 호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꺼내서 잠겨 있는 그 문을 열었다. 두 짝의 커다란 양문이 활짝 열리고 그 안으로 드러난 공간은....
“여기....뭐가 이렇게 넓어?”
하긴 호텔 제일 위층에서 ㄷ자로 삼면 중 한 면의 바닥에서 천장까지를 다 방 하나로 쓰고 있는 스위트 룸이었다.
평수로만 따져도 500평은 더 되는 데다, 층고 또한 여타의 호텔 방에 비해 거의 세 배는 높아 보였다. 그러니 실내 공간이 실로 커 보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벽과 천장이 빈틈없이 각가지 장식과 화려한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슨 왕궁을 보는 것 같군.”
나와 달리 어리어리한 이곳 스위트룸에 김종훈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말이 한국어라 버틀러 샘은 못 알아듣는 거 같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은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여기 스위트 룸에 대한 각별한 자긍심 같은 게 샘에게서 느껴진 달까? 하지만 김종훈에 비해서 별 대수롭지 않은 듯 대충 방을 주위를 훑어보고 그대로 방 안, 그 중에서 여러 침실 중 한 곳으로 들어가는 나를 버틀러 샘이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곳 방에는 장식품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거울이 많았다. 해서 나는 김종훈과 버틀러 샘을 지나쳐서 움직여도 그들 거울을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내 짐을 침실 중 한 곳에서 바로 풀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발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무좀 까지는 아니어도 발이 많이 간지러웠다. 해서 나는 호텔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침대에 앉아서 구두와 양말을 벗은 다음 가져 온 통풍이 잘 되는 슬리퍼를 신었다.
“휴우. 이제야 좀 살 거 같네.”
생각 같아서는 발부터 씻고 싶었지만 아직 버틀러 샘이 방안에 있었기에 나는 그가 있는 널따란 거실로 보이는 공간으로 움직였다. 그곳에 김종훈이 긴 소파에 앉아 있었고 샘이 그 앞에 서서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바로 몸을 돌려서 좀 전 내가 나온 침실로 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침실에 딸린 욕실로 들어가서 훌훌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샤워 중 내가 가장 신경 써서 씻은 곳은 다른 곳이 아닌 내 발이었다. 그렇게 내가 꼼꼼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편한 옷을 갈아입은 후, 거실 같은 공간으로 다시 나가자 버틀러 샘은 보이지 않았다.
김종훈만 혼자 소파에 앉은 채 앞에 테이블 위로 서류 몇 개를 올려놓고, 그 서류를 열심히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가며 내가 물었다.
“뭐해?”
그러자 힐끗 고개를 들어 날 쳐다 본 김종훈이 바로 시선을 원래 그가 살펴보고 있던 서류로 돌리며 말했다.
“일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그럴 게 앞으로 뭘 할지 나도 대충 생각만하고 있는데 김종훈이 일정 운운하니 기가 찼던 것이다. 뭐 하지만 내가 뭘 하든 그걸하고 나면 반드시 여유 시간은 남기 마련. 그 남은 시간을 뭘 하며 보낼지에 대해서 나는 진짜 아무런 계획이나 생각이 없었다. 그런고로 김종훈의 저런 모습은 확실히 경호에만 특화 된 문대식과 경호팀원들과는 달랐다. 뭔가 좀 더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랄까?
“배 안 고파?”
하지만 역시 뭘 하든 제일 중요한 건 먹는 거다. 내 그 말에 김종훈도 배가 고팠던지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 * *
시차 적응을 해야 했기에 도착 당일, 나는 어떤 약속도, 일정도 잡지 않았다. 해서 호텔 방에서 가급적 푹 쉴 생각이었다.
어째든 여기도 미국이니 나와 김종훈은 그걸 먹었다. 지금 여기는 오후였고, 저녁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랐다. 그래서 나는 김종훈과 간단히 이곳 호텔식 햄버거를 시켜 먹었던 것이다.
“쩝쩝쩝....역시 미국 햄버거야.”
“우걱우걱....이거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데요?”
아무래도 미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많이 사용하다보니, 본질적인 맛에서 한국에서 먹던 햄버거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어째든 맛은 있었기에 나와 김종훈은 뚝딱 햄버거 하나씩을 해치웠다.
“그 일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 대충 정리하고 쉬어.”
내가 김종훈에게 쉬라고 한 건 빨리 시차 적응을 하라는 소리였다. 그 말을 바로 알아들은 김종훈이 바로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뒤 나는 내 침실로, 김종훈은 그가 쓰기로 한 침실로 들어갔다. 이곳 스위트 룸에는 침실만 10개나 있었다. 그 정도로 컸지만 또 호사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그 방마다 각기 다르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는데 벽에는 꽤나 비싸 보이는 그림들이 수십 점 걸려 있고, 바닥은 전부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침실에 들어간 나는 바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얼마간 잤을까? 잠에서 깨어 시간을 보니 오후 6시가 좀 넘어 있었다.
“쩝....”
햄버거 먹고 잔지 4시간 정도 됐는데 벌써 배가 고팠다.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실을 나서자 김종훈이 그 널따란 거실에서 이번에는 노트북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뭐하는데?”
내가 다가가며 형식적으로 묻자 그가 날보고 말했다.
“잘 주무셨습니까?”
“어. 김 과장은?”
나는 김 비서 말고, 그것도 남자를 김 비서라고 부르는 게 좀 그랬다. 그래서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에게 김 비서가 아닌, 직급을 붙여 부르기로 했다. 뭐 당연히 그 점에 대해서 나는 굳이 김종훈에게 묻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부르겠다는 데 지가 어쩔 건데? 뭐 다행인지 김종훈은 내가 그를 김 과장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 쭉 이렇게 김 과장으로 부르면 될 일이었다.
“네. 저는 푹 잘 잤습니다.”
“나도. 근데....진짜 뭐하고 있었어?”
나는 그 말을 하면서 김종훈 쪽으로 다가갔고 그의 노트북 화면을 슬쩍봤다. 그랬더니....
“일정표네?”
“네. 할 일도 없고 해서 일정표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뭐 김종훈 입장에서야 여기 온 게 출장, 즉 일하러 온 거니 뭐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대표인 나 보기 무안 할 터였다. 그래서 이런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잠깐 본 것만으로 일정의 70-80%가 관광이었다. 뭐 내가 여기 관광하러 온 것도 아니고....
“저녁이나 먹자. 배고프다.”
내 그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김종훈이 말했다.
“안 그래도 제가 미리 저녁 식사 주문을 해 뒀습니다.”
“그래?”
“네. 좀 있으면....”
김종훈이 뭘 주문했는지 채 말하기도 전에 그가 주문한 룸 서비스가 도착한 거 같았다. 방 밖으로 초인종이 울렸고 실내 인터폰이 설치 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김종훈이 나가서 직접 방문을 열어주어야 했다. 그 결과....
“으음....맛있군.”
김종훈이 시킨 룸 서비스는 대단히 흡족했다. 우리는 이곳 스위트 룸에 포함 된 테라스에서 우아하게 칼질 중이다.
쪼르르르!
그때 식사 중 내 와인 잔이 비자 옆에 대기 중이던 소믈리에가 즉시 내 술잔에 고색창연한 술병에 들어 있던 와인을 따라주었다.
뭐 TV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넓은 테라스에 소믈리에 말고, 바로 근처 쉐프가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든, 즉석요리를 서빙해 주는 호텔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와인을 즐기는 나와 달리, 자신은 나를 지켜야 한다며 술은 마시지 않겠다던 김종훈. 하지만 샴페인 정도는 괜찮을 거라는 내 말에 그럼 맛만 보겠다더니, 아 글쎄 그 샴페인이 맛있다며 거의 한 병을 다 비워 버렸지 뭔가.
알코올이 들어가서일까? 간이 커진 건지 김종훈이 나를 보고 궁금한 걸 하나 둘씩 묻기 시작했다.
“여긴 이용료가 어떻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여길 내가 직접 예약했다니 여기 숙박비도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고 물은 듯 했다.
“3만 달러 정도?”
나는 사실대로 대답해 줬다. 그랬더니 김종훈의 눈이 동그래졌다.
“헉! 3천만 원도 넘는다는....혹시 한 달? 아니면 일주일에?”
“당연히 하루 숙박비지.”
김종훈의 물음에 쿨하게 대답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나도 여기 하루 숙박비가 비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막말로 여기가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나 각국의 회담이 자주 열리는 유명한 곳도 아니고 말이다. 순 촌 동네에 아무리 특급 호텔이고 VIP룸이라도 너무 비쌌다.
‘뭐 오늘 하루만 묵을 테니까.’
실제로 나는 컬럼비아에 하루만 있을 생각이었다. 컬럼비아는 미국 중부 미주리주에 있는 도시이로 미주리주 중앙부, 미주리 주의 양대 도시인 세인트루이스와 캔자스시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미주리 주에서 고용과 국내총생산의 대략 5분의 4를 차지하고 있는 건 서비스업인데, 그 대부분이 캔자스시티와 세인트루이스에 집중되어 있었다. 즉 내가 뭘 좀 하려면, 그러니까 돈을 쓰려면 그 두 곳에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 두 곳은 그래도 연방 준비 은행의 구역 지점이 위치해 있었으니까. 당연 각종 금융 인프라도 발달 되어 있었고.
“와아. 진짜 비싸네요. 일주일만 묵어도 돈이 얼마야? 하루 3천 3백만 원이니까....허얼....23억?”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떠들어 대는 김종훈. 그야말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게 은근슬쩍 말했다.
“대표님. 이 샴페인 맛있는데 한 병 더 마셔도 될까요?”
그런 그에게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러자 좋아하는 김종훈. 그런 그에게 내가 툭하니 말했다.
“그 샴페인, 돔 페리뇽 로즈 골드라고 5만 달러 짜리야.”
“....”
내 그 말에 갑자기 말이 없어진 김종훈. 하긴 무슨 물마시듯 마셔 댄 그 샴페인이 6천 5백만원도 넘는다니....
내가 알기로 김종훈의 연봉이 1억이 좀 넘는 걸로 안다. 그러니까 김종훈은 자신의 연봉의 반을 좀 전에 자기 입에 털어 넣은 거다.
“저, 저기....그럼 지금 여기 음식 값은....”
“당연히 그 샴페인 값보다 많이 나오겠죠.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와인 값만 1억은 될 테니까.”
내 그 말에 김종훈은 이미 주문 되어 나온 샴페인은 물론, 호텔 직원들이 즉석에서 요리 되어 가져 오는 음식들을 하나 남긴 없이 싹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뒤이어서 나온 디저트.
“이거 맛있네. 좀 먹어.”
“크으....여기서 더 먹었다간....배가 터질 거 같습니다.”
김종훈은 디저트로 나온 샤벳트와 아이스크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잠시 후 식사가 끝나고 돈지랄 행사, 즉 룸 서비스로 온 사람들이 스위트 룸을 다 나가자, 김종훈이 겨우 걸어서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가 걱정이 되어 그의 침실로 가 봤다. 그랬더니 소화제를 잔뜩 먹고 있는 걸 보고 피식 웃으며 내 침실로 돌아갔다. 그리곤 핸드폰을 통해 지금 서울의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이 저녁 9시니까, 서울은 오전 10시겠군.”
나는 출근해 있을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내 전화를 김 비서가 바로 받았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농담조로 말했다.
“인수인계는 잘 되어가나? 김 총괄본부장?”
-하아....그게....
그랬더니 김 비서가 길게 한숨을 내 쉬더니, 자신이 지금도 인수인계 중에 있는 나의 예비비서들, 강혜정과 박수영. 그 둘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강 비서는 영리는 한데 불만이 너무 많고 또....박 비서는 성실은 한데 자기 주도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게 부족해 보이고....
나는 쉬는 중이라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가만히 김 비서의 얘기를 경청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