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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뭐 어디까지나 내가 내 진짜 신분을 밝히는 건 최후의 일이다. 내가 누군지 밝히지 않고 록펠러 가문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일단 그렇게 할 거고. 지금으로서는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해 나갈 생각이었다.
“아하아암....진짜 자야겠군.”
시간이 자정이 다 되어가자 잠이 쏟아져 왔고 나는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화인지 확인하니 양태석이다. 양태석의 전화는 받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진짜 급한 일 아니면 양태석이 이렇게 직접 내게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흔치 않았으니까.
“네.”
내가 전화를 받자 양태석이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네왔다.
-거긴 새벽일 텐데. 이렇게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양 전무가 급하니 했겠죠. 무슨 일입니까?”
-그게....
양태석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내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렇군요. 생각보다 빠른 감이 없진 않은데....잘 지켜보다 그분 돌아가시면 내가 시킨 대로 처리하세요.”
제주도로 돌아간 윤재구 회장이 별장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양태석이 알아보니 윤 회장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노구를 이끌고 간 서울행이 안 그래도 안 좋았던 그의 몸에 꽤나 큰 부담을 준 거 같았다. 스스로 남은 수명을 깎아 먹은 것이다. 하여 양태석의 말에 따르면 윤재구 회장이 오늘 내일 한다고....
나는 윤 회장이 죽으면 그 자식들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지, 미리 양태석에게 지시를 내려 둔 터였다. 그리고 그 지시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왜냐하면 윤 회장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데 지금까지 제주도에 내려 온 자식이 하나도 없다는 양태석의 말을 듣고서 말이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 대통령 아들 말인데....고맙습니다.
뜬금없는 양태석의 말.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내가 아니다.
“뭘요. 나 때문에 양 전무와 식구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죠.”
그냥 내가 그러라면 그런 줄 알면 될 것을, 양태석이 기어코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 본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양태석에게 전 대통령 아들에 대해 더 파보게 했다면, 그와 그의 조직이 검경에 제대로 낚였을지 몰랐다. 그 정도 공권력을 휘두르는 거야 전 대통령 측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양태석과 그 휘하 조직이 바로 발을 뺀 덕분인지, 그쪽에서도 괜히 무리해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모든 걸 양태석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파악했다.
그 말은....
‘최철기가 조직 내 자리를 잘 잡은 모양이로군.’
내가 보낸 인재 최철기가 본격적으로 조직을 이끌기 시작한 게 확실했다. 그걸 확인하는 건 의외로 간단했다.
“최 상무가 똑똑하죠?”
양태석은 최철기가 마음에 쏘옥 든 듯, 그를 재정상무로 삼아 자기 바로 밑에 두었다.
그걸 알기에 나도 최철기의 이름을 다 언급하지 않고, 그의 성에 직급을 붙여서 말한 거고.
-네. 정말이지 매일 놀라고 있습니다. 왜 유방이 제갈량을 얻으려 삼고초려 한지 알겠더군요. 하하하하.
역시나 내 생각대로였다.
‘유방이 아니라 유비겠지만....’
양태석을 통해 직접 그 대답을 들은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그와 통화를 매듭지었다.
어째든 지금 시간이 자정이었고 내일 중요한 일정을 위해 나도 이제는 잠을 자야 했으니까.
* * *
아침에 잠에서 깨니 아침 7시다. 더 자려 했는데 더 잠이 오지 않았다. 해서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고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고 스위트룸을 나섰다.
내가 듣기로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이 호텔 정원이 그렇게 끝내 준단다. 그리고 그 정원으로 나 있는 샛길로 조깅을 하면 그렇게 좋다나? 아무튼 묵을 호텔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런 후기를 본 게 떠 오른 나는 아침 조깅에 나섰고....
“좋긴 좋네.”
호텔 뒤쪽 정원의 조경은 확실히 잘 구획되어 있었다. 나름의 테마를 두고서. 그래서 아침 조깅을 하는 동안 먼저 눈이 즐거웠다. 그리고 공기도 너무 좋았고. 서울의 공기는 사실 좋다고 볼 수 없었다. 특히 미세먼지가 심한데, 거기다 황사라도 오면 바깥출입도 꺼려지는 데 조깅은 무슨....
“헉헉헉헉....”
단점이라면 구불구불한 샛길로 인해 조깅 구간이 너무 멀었다. 덕분에 아침 조깅 후 내가 이렇게 녹초가 된 거고. 무슨 마라톤이라도 뛴 거 같았다. 그렇게 맥 빠진 채 호텔로 돌아오니 스위트 룸 안에 커피 향이 가득했다.
“생각보다 부지런하시네요?”
거실로 쓰이는 공간의 창을 바라보는 리클라이너소파에 편하게 기대앉은 채 커피를 마시던 김종훈이 나를 보고 물었다.
누가 봐도 상당히 건방져 보이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대표와 비서의 수직 관계로 보자면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었고 나는 여기서 꼰대로 굴 생각은 없었다.
그 점은 어제 내가 내 입으로 김종훈에게 말했었고. 그랬기에 김종훈도 저럴 수 있는 거였다.
“아침은?”
김종훈이 룸서비스로 저렇게 커피를 시켜 마시고 있다는 건 아침 식사 주문도 했을 거라는 생각에서 내가 한 그 질문에, 김종훈이 바로 대답을 했다.
“아메리칸식 블랙퍼스트로 주문을 했습니다만. 더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프런트로 연락 하시던 지요.”
“아니. 괜찮아.”
나는 지금 먹는 거 보다 씻는 게 급했다. 그리고 아침 식사로 아메리칸식 블랙퍼스트가 내 생각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단지 너무 많이 뛰어 허기가 좀 많이 졌을 뿐
“양은 많이 나오겠지?”
“혹시 몰라서 3인분 시켰습니다만.”
김종훈의 그 말에 나는 더는 두말할 거 없이 내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실에 딸린 욕실을 향해 훌훌 땀에 젖은 트레이닝복을 벗어 던지고 속옷 차림으로 그 안에 들어갔다.
쏴아아아아!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자 그나마 없던 기력도 좀 돌아왔다. 나는 샤워 후 편한 복장으로 침실을 나왔다. 그러자 스위트 룸 안에 좀 더 진한 향들이 풍겨왔다. 그 중에는 커피와 함께 베이컨 향과 스크램블을 만들 때 들어간 버터향이 강하게 났다.
꼬르르르....
그 냄새가 바로 내 허기진 배를 자극했고, 나는 그 냄새가 풍기는 쪽으로 발걸음을 내 디뎠다.
“앉으시죠.”
거실용 공간 뒤로 주방과 함께 식탁이 있었는데 그곳에 김종훈이 주문한 아메리칸식 블랙퍼스트가 룸서비스로 도착해서 차려져 있었다. 그래도 김종훈은 먼저 식사를 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식탁 쪽으로 걸어가서는 김종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인데 천천히 드십시오.”
“어?”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다보니 김종훈이 뭐라고 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내 앞에 비어 있는 접시를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김종훈을 쳐다보니 그가 자기 접시를 최대한 자기 쪽으로 붙이고, 그 앞을 두 팔로 막고 은근히 있는 게 보였다.
거의 2인분을 먹어치운 내가 그의 아침 식사까지 뺏어 먹을까 봐 저러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배가 불렀다. 하긴 아메리칸식 블랙퍼스트의 양은 생각보다 많다. 그걸 2인분 가까이 먹어치웠으니 내 배가 부를 수밖에. 생각보다 기름진 식사로 인해 배에 포만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러니 내 식욕이 팍 식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한 모금쯤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 넣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김종훈에게 말했다.
“안 뺏어 먹을 테니 천천히 먹어.”
그 뒤 뒤돌아서 내 침실 쪽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시간적으로 여유는 있었지만, 그래도 손님을 맞을 준비는 해 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 * *
나는 언제든 외출이 가능하게 옷을 갖춰 입었고, 그런 나를 보고 김종훈도 눈치껏 자신도 외출 준비를 했다. 나는 그런 김종훈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던 오늘 오전 일정을 얘기했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김종훈이 말했다.
“복권 당첨금 수령하러 가실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한데 그에 대한 준비를 이렇게까지 해 두셨을 줄은....”
김종훈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나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손님들이 오신다니 준비는 해야겠군요.”
나 대신 김종훈이 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속 된 시간이 다 되자, 호텔 프런트에서 연락이 왔다. 그 전화를 김종훈이 받았고.
“네. 맞아요. 그분들 올려 보내세요.”
그리고 로비에 있던 내가 미국에서 미리 고용한 로펌의 변호사와 미국에 있는 동안 나를 지켜 줄 보안업체 담당자가 같이 스위트 룸을 찾아왔다. 김종훈이 문을 열어주자 그 두 사람만 안으로 들어오고 나머지 덩치 좋은 보안업체 직원들이 문 밖에 대기하고 있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어서 오세요. 저는....”
김종훈이 나와 그들이 접촉하기 전 먼저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그들을 데리고 내가 있는 거실용 공간으로 그들과 같이 왔다.
“저분이 여러분들이 뵙고자하는 그 백 대표님이십니다.”
김종훈이 능숙한 영어로 나를 소개했고 나는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저는 에슐리 스미스입니다. 미주리주 변호사이면서 CPA(공인회계사)로, 이곳 컬럼비아에서는 단연 최고라 자부합니다.”
“반갑습니다. 바이널리(Binarly) 컬럼비아 지부장 네이슨 커트입니다. 고객께서 이곳 컬럼비아에 계시는 동안, 그 누구도 고객님의 몸을 털끝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겁니다.”
두 사람 다 백인으로 내 앞에서 상당한 자신감을 내 비쳤다. 하지만 나는 말보다는 실력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 실력을 보고 내가 특별히 고용한 자들이긴 했지만, 어째든 그 실력이 사실인지는 어차피 내가 몸소 겪어봐야 알 일이었다.
“복권국으로 가시기 전에 그 당첨 복권부터 확인할 수 있을까요?”
변호사 스미스의 말에 나는 김종훈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김종훈이 007가방을 들고 왔고 그걸 보고 변호사 스미스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
“저 가방 안에 당첨복권 10000장이 들어 있나 보군요?”
“맞습니다.”
나는 김종훈이 가져 온 가방을 열고 그 안을 꽉 채운 9999장의 복권 위에 내 지갑 속에 넣고 있던 한 장의 복권을 더 올렸다.
변호사 스미스는 그 복권을 자신이 가져 온 이번 주 메가 밀리언(Mega Million) 복권과 비교를 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메가 밀리언이 맞네요. 그리고....”
그는 이어서 복권의 회차와 번호, 재질 등을 정확히 살폈다.
“이건....당첨 복권이 확실하네요.”
그는 이어 9999장의 복권 중 몇 장을 빼내 확인을 했고 내 말이 사실임이 확인되자, 복권을 원위치 시키고 007가방을 닫았다.
“아시다시피 저희 주의 경우 복권 당첨자의 신원에 대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아. 물론 당첨자께서 원하실 경우 신분을 공개하셔도 무방합니다.”
당연히 나는 내가 당첨 된 사실을 밝힐 생각이 없다. 물론 나는 당첨금을 수령하는 그 즉시 법인을 세울 생각인지라 그 법인은 노출이 될 거다. 그리고 그 법인의 대표가 나라는 것을 미국의 일부 사람들은 알게 되겠지.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함부로 퍼트릴 수 없다. 그랬다간 내 돈을 받은 미국의 그 악랄한 변호사들이 그들의 껍데기까지 홀라당 다 벗겨버릴 테니까.
* * *
제이크는 마약 중독자로 약물중독치료센터에서 막 나와서 세인트루이스의 한 호텔에 취직을 했다. 그가 그 호텔에서 하게 된 일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가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하고 받는 돈은 주급으로 골랑 300달러였다. 그와 같이 일하는 로건의 경우 670달러나 되는 데 말이다.
이게 다 그가 마약 중독자로 정규직 직원 처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직장을 구한데 어딘가?
제이크는 비록 적은 돈이지만 그 돈으로 생활하면서 다시는 마약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 3달째 그는 마약을 끊고 살았다. 약물중독치료센터에서 마약의 금단증상을 이겨 낸 터라 제이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물론 그 대신 그의 하루 일과가 너무 고됐지만.
일이 힘들다보니 일 끝내고 집에오면 씻고 자기 바빴다. 그래서 제이크는 마약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던 중 제이크가 세인트루이스의 다운타운가의 한 주유소 편의점에 들렀을 때였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그곳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게 된 그는 살짝 목이 말랐고 시원한 콜라가 생각나서 편의점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정말 우연히 복권을 구매하게 되었다.
“맙소사!”
한데 그 복권이 떡하니 당첨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오. 신이시여!”
미국 슈퍼 로또로 불리는 메가 밀리언. 그 당첨금이 무려 3달이나 이월이 되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제이크는 복권을 살 당시 그 사실 조차 몰랐다.
어째든 그 결과 누적된 당첨금 총액이 무려 16억 달러. 그 엄청난 복권의 당첨자가 바로 제이크 자신인 것이다.
“으아아아아! 으하하하하!”
제이크는 괴성을 내지르고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그 때문에 옆집과 아랫집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 소리들을 내일부터 그가 다시 들을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