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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리암의 얼굴이 가주의 전화를 받고 더 살벌하게 굳었다. 가주의 입에서 그가 지금 듣는 것만으로도 바로 폭발할 이름이 튀어 나왔으니까.
‘백준열....’
근데 이어진 가주의 말에서....녀석에 대한 악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러자 최악이었던 기분이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한데 가주의 말은 백준열에게서 완전히 손을 떼라는 일종의 언질이었다. 이는 가주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 얘기였는데 이러면 리암이 백준열에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일들이 죄다 물 건너가게 된단 얘기였다. 더불어 자신의 뉴욕에서의 스포츠 사업역시도....
“안 돼. 녀석이 아니면 대책이 없단 말이야.”
부실의 크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올해를 넘기게 되면 사실상 자금 부족으로 인해 그 두 구단을 공개 매각해야 할지도 몰랐다. 말이 좋아 공개 매각이지 사실상 헐값에 두 구단을 내놓아야 한단 소리.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극심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다 가문의 수치로 남을 테고 그 책임 역시 오롯이 리암이 져야 할 터....
“그럴 수는 없지. 그러니까....그 전에 놈이 스스로 그 두 구단을 사들이게 만들어야해.”
지금까지는 백준열을 살살 꼬드겨서 그 두 구단을 녀석에게 팔아치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자신이 더 이상 개입할 수 없게 되었으니, 놈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찾아와서 두 구단을 넘겨 달라고 부탁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럼 가주도 그걸 두고 뭐라고 하지 않을 터.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나? 조금만 알아봐도 그 두 구단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걸 알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어떡하든 녀석이 억지로 그 두 구단을 사게 만들 수밖에....”
백준열이 울며 겨자 먹기로 두 구단을 사들일 수밖에 없는 방법....그게 하나 있긴 했다.
“쥬리. 미안. 네가 먼저 나를 떠난 이상....내가 너의 비밀을 지켜 줄....필요도 없겠지?”
그 말을 하면서 리암이 입가에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자신의 방 비밀 금고 속에 보석함을 꺼냈다. 그 보석함에는 실제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같은 보석도 있었지만 USB 몇 개도 있었다.
값비싼 보석과 같이 있는 USB라....그건 마치 그 USB안에 있는 게 보석만큼이나 리암에게는 중요하다는 걸 대변해 주는 듯 했다. 리암은 그 보석함 안의 USB들 중에서 한 USB를 꺼냈다.
“여기 있었군.”
그 USB는 그냥 보면 흔해 빠진 USB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스텐인레스 테두리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근데 지금 리암의 손에 들려 있는 USB의 스테인레스 테두리에는 새겨진 이름은 ‘Juri’였다. 즉 그의 손에 USB에 쥬리에 대한 뭔가가 저장 되어 있단 얘기였다.
“어디....”
리암은 스스럼없이 TV쪽으로 가서 그 USB를 TV단자에 꽂았다. 그리고 TV를 켠 다음 몇 번 조작을 하자, TV화면 USB 속에 저장 되어 있었던 비디오 파일 화면이 떴다. 그러자 요염한 백인 금발 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리곤 살랑살랑 스트립쇼를 펼쳤다.
“오오....”
그걸보고 감탄하며 TV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리암이 TV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TV화면 속의 미녀가 애무해 주는 운 좋은 백인 남자를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 * *
리암이 쥬리 몰래 찍은 섹스 동영상은 모두 다섯 개였고, 그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TV단자에 꽂혀 있는 USB속에 고스란히 저장 되어 있었다. 리암은 그 중 한 편을 보다가 그것도 중간에 끊었다. 왜냐하면 울컥 울화통이 치밀었으니까.
리암이 여태 살아오면서 자신이 실증이 나서 여자를 버릴 지언즉 그가 먼저 여자에게 차인 적은 없었다.
한데 백준열이라는 그 동양인 때문에 그의 여자인 쥬리가 그를 걷어 차 버린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겠지. 그 동양인도, 그놈이 좋다가 그를 버리고 떠난 그년도 말이다.
“어디 보자. 그 놈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이야.”
그 말을 하면서 음흉하게 미소 짓던 리암. 그는 TV단자에서 USB를 빼내서 그걸 들고 침실로 향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지금은 뭔가를 하기보다는 잠을 자야 할 시간이었다.
리암은 손에 들려 있는 USB를 대충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두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술도 많이 마신데다가 안돌아가는 머리까지 굴리느라 피곤했던 그는 두 눈을 감자마자 그대로 깊은 수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으으음....”
그런 리암이 다음 날 깨었을 때....시간이 벌써 9시가 다 됐다. 리암은 끔찍한 두통과 함께 속이 메슥거렸다.
“너무 많이 마셨군.”
그는 숙취 해소제를 먼저 먹고 샤워 후 자신의 비서에게 연락을 했다.
“쥬리, 아니 케이트.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지?”
리암은 자신의 새로운 여비서로부터 오늘 일정을 쭉 들은 뒤 말했다.
“오늘 오전 일정은 다 취소시키거나 뒤로 미뤄.”
들어보니 오전 스케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오후에는 그가 반드시 만나서 처리해야 할 만큼 비즈니스 상 중요한 미팅이었다. 해서 리암은 오전 중에 그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어디 보자....”
리암은 비릿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에 쥐어진 USB를 자신의 노트북에 꽂았다. 그리고 그 USB속의 비디오 파일을 재생해서 일정 화면을 캡처 한 다음 그 화면을 사진 파일로 만들어 그걸 쥬리의 메일로 보냈다.
그 다음 핸드폰을 꺼내서 쥬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메일 하나 보냈는데 확인하라고 말이다. 그 후 리암은 자신의 집 사용인을 불러서 아침 식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30분쯤 시간이 지나고 리암이 자신의 방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리암의 입 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리암은 씹던 음식을 목으로 넘기고 입을 물로 헹군 다음 느긋하게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리암. 당신 미쳤어!
하지만 그에게 전화를 건 상대는 리암과 달랐다. 잔뜩 화가 난 듯 날 선 목소리로 외쳤고 그 소리가 오히려 리암을 방긋 미소 짓게 만들었다. 물론 화상 통화가 아닌 관계로 상대는 리암이 지금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 * *
이미 훤히 날이 밝은 상태에서 침대 위를 뒹굴던 쥬리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고 섰다.
“으윽....”
순간 아랫배에 찌릿한 통증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 보다 맑았고 몸의 컨디션 역시 최상의 상태. 단지 어제 밤도 무리하게 섹스를 하느라 허리가 좀 결리는 거 같았지만 몇 걸음 움직이자 그것도 금세 없어졌다.
요 며칠 준열과 같이 지내면서 쥬리는 매일 밤 천국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렇게 매번 실신할 정도로 좋아도 되나 싶었지만 그 걱정은 준열을 생각하면 거짓말처럼 머릿속에서 싹 지워졌다. 그 만큼 지금 쥬리는 준열이라는 남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
“어디 갔지?”
쥬리는 준열이 침실 밖에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묵고 있는 맨해턴 호텔의 로얄 스위트 룸 안에서 준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거실용 공간의 테이블에 쪽지를 발견한 쥬리. 그녀는 곧장 그쪽으로 가서 쪽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일주일 더 미국에 있을 거라더니....바쁘네.”
준열로부터 자세하게 까지는 아니지만 사업상 일주일 더 미국에 체류하게 되었다는 말은 이미 들은 쥬리. 그녀는 준열이 오전에 중요한 미팅 때문에 같이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쪽지를 읽고는 시선을 식탁 쪽으로 돌렸다. 거기에 준열이 룸서비스로 시켜 둔 음식들이 있었다.
그가 시킬 때 그녀가 아침에 먹을 샐러드와 커피를 미리 시켜 놓은 것. 따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룸서비스로 시켜 먹으라는 준열의 메모에, 그가 자신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쥬리였다. 쥬리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챙겨서 식탁으로 갔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핸드폰을 살폈다.
“응?”
그랬더니 십여분 전에 전 연인이자 자신이 모셨던 대표 리암에게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쥬리는 별 생각 없이 그 메시지를 확인했고....순간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메일?”
그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메일을 보냈는지 모르지만, 분명 얘기했었다. 자신과의 모든 연을 끊어 달라고 말이다. 쥬리는 생각 같아선 그가 보낸 메일을 지워버리고 다신 이런 짓 말라고 답신을 보내려다 참았다. 보나마나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는 수작일테지만 쥬리는 이번 만 그가 보낸 메일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메일 수신함에 들어간 쥬리....
“이, 이게 뭐야?”
그랬는데 리암이 보낸 건 그녀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이 미친 새끼가....”
동영상의 화면 중 하나를 캡쳐 해서 사진 파일로 보낸 그 장면은, 리암이 뒤치기 직전 그녀를 부르자 쥬리가 뒤돌아 본 모습이었다. 즉 그녀의 엉덩이와 보지구멍,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그 화면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었다.
이건 한마디로 리암이 자기를 떠난 쥬리를 엿 먹이겠다는 제스처였다. 제대로 빡 친 쥬리. 그녀는 아직은 그녀 핸드폰에 저장 되어 있던 리암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뻔뻔한 리암이 그녀 전화를 받았다.
-어. 쥬리. 무슨 일이야?
마치 자기가 한 짓에 대해 일말의 미안함도 없는 듯 능청스럽게 자신의 전화를 받는 리암에 쥬리가 발끈해서 빽 소리를 쳤다.
* * *
쥬리와 통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성을 잃은 그녀가 리암에게 할 말이라고 해 봐야 욕 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리암은 쥬리의 그 욕을 다 들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랬기에 쥬리가 욕을 할 때 잠깐 핸드폰을 치워두고 있었던 그는 이쯤이면 됐다 싶을 때 그냥 그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그녀에게서 재차 전화가 걸려왔지만 리암은 더 이상 그녀의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다.
“흐흐흐흐....쩝쩝쩝....”
그렇게 비릿하게 웃으며 마저 하던 식사를 끝내고 나서 리암은 쥬리와 섹스 동영상이 저장 되어 있는 USB가 여전히 꽂혀 있는 노트북이 있는 쪽으로 가서, 쥬리 말고 다른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앞서 쥬리에게 보낸 동영상 화면을 캡처한 사진파일이 아니라 그냥 동영상 파일 하나를 통째로 그 사람에게 보냈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외출을 위해 옷을 챙겨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리암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누구 전화인지 확인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그 전화를 받았다.
“오오. 마이 브로. 준열. 네가 어쩐 일이야?”
쥬리 때처럼 그는 능청스럽게 백준열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평소와 다른 착 가라앉은 백준열의 목소리가 리암의 귀에 들려왔다.
-이게 무슨 짓이야?
“왜? 그 동영상에 나오는 여자 끝내주지 않아?”
-....
“그것 말고 더 있는데....그거 다 풀면....쥬리 얼굴 성형은 네가 시켜 줘야겠네? 크크크크!”
비아냥거리며 어서 화를 내라고 백준열을 도발하는 리암. 상대가 이성을 잃고 화가 나야 뜯어 낼 게 더 많아진다는 걸 사업가인 리암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원하는 게 뭐지?
상대는 정말 20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하게 대응을 해 왔다. 그게 리암을 더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내가 뭘 원할 거 같나?”
해서 리암은 준열을 좀 가지고 놀면서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든 뒤 자기가 원하는 바를 말하려 했다. 한데....
-혹시....뉴욕 닉스와 뉴욕 시티FC를 나보고 인수해 달란 건 아니겠지?
“....”
녀석이 단번에 그가 원하는 걸 말하니 리암의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로인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상대가 이쪽이 원하는 게 뭔지를 눈치 채 버렸다.
-맞군. 근데 그걸 내가 왜 받아드릴 거라 생각하지?
“뭐?”
-여자 하나에....그것도 내 아내와 여동생도 아닌데....내가 굳이 수천 만 달러를 써가면서 그 부실한 구단들을 인수해야 할까 말이지.
근데 그 말에 리암이 황급히 한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실 지금 리암의 상황에서 웃음이 아니라 화가 나야 맞았다.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는 분명 다른 말을 준열이 해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리암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힐끗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살펴봤다. 그러자 그의 눈에 빠르게 카운트 되는 숫자와 그 밑으로 준열이 하는 말이 파동 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리암은 준열과 통화 내용을 전부 녹음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