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819화 (817/921)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한동수 국회의원. 그가 다른 국회의원들에 비해 유독 더 거만하게 구는 건, 그가 단지 여당의 3선 중진의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동수는 바로 국회상임위원회에서 법사위원장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칭 법사위, 본래 명칭은 법제사법위원회다. 법무부, 법제처, 감사원 소관에 속하는 사항과, 헌법재판소 사무, 법원과 군사법원의 사법행정, 탄핵 소추, 법률안, 국회 규칙안의 체계, 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한 사항을 담당한다. 즉, 입법과 법무행정, 사법부를 담당하는 곳으로 권한이 너무 막강하고 분야끼리의 공통점이 크지 않기 때문에, 법제위원회와 사법위원회로 분리하자는 말이 있는 곳. 바로 그곳의 수장이니 한동수의 권력이야 말해 뭐하랴!

그런 그가 요즘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건 바로 자신의 장녀인 한효주의 결혼 문제였다. 다들 그러지만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소위 말해 잘 나갈 때 자식들 전부 결혼 시키는 게 중장년층 부모들의 공통 된 염원 아니겠나?

한동수도 그러고 싶었고 마침 장녀가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를 데려 왔고, 자신처럼 당당히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있는 예비 사위가 한동수는 딱 보고 마음에 들었다.

한데 문제는 혼수였다. 예비 사위에 비해 내 세울 거라고는 아버지를 잘 둔 거 뿐인 장녀에게 제대로 한 몫 떼어 줘야겠는데 막상 그러려니 돈이 부족했다.

“법사위원장이면 뭐해?”

진짜 돈이 필요할 때 정작 수중에 돈이 없는 것을 말이다. 물론 한동수가 미쳐 날 뛰면 바리바리 돈 싸들고 올 곳이야 많았다. 하지만 요즘 안 그래도 청와대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곧 강력한 사정의 칼날이 공직사회에 불어 닥칠 거라는 소문이 여의도에서도 떠돌았고. 그 정도면 청와대가 작정하고 공직사회 기강을 잡으려 함이 확실했다.

물론 입법부인 국회는 다르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언론의 눈에 잘 띄기 마련, 여기서 한동수가 뒷돈을 챙겼다간, 그 얘기가 바로 청와대 귀로 들어갈 게 확실했다. 청와대 어르신이 그 말을 들으면 바로 자신을 힐책 할 터. 그걸 알면서 뒷돈을 챙길 정도로 한동수는 어리석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눈치 없는 장녀가 계속 그를 압박해 온 탓에, 그 스트레스로 안 피우던 담배까지 피우고 있는 한동수.

똑똑똑!

그때 의원실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리고....

“누구야?”

기분이 안 좋은 탓에 신경질적으로 외치는 한동수.

“접니다. 의원님.”

“이 보좌관? 들어와.”

자신의 최측근 인사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한동수가 처음 국회의원이 될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의 곁에서 음으로 양으로 그를 돕고 있는 이대수 보좌관. 그와는 속엣 말도 스스럼없이 털어 놓을 수 있는 사이였다. 잠시 후 이대수가 의원실 안으로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한동수 앞에 서서 말했다.

“의원님. 유재섭이라고 왜 저번 선거 때 제법 큰돈을 후원한 자를 기억하십니까?”

“유재섭?”

이대수의 말에 한동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은 유재섭을 모른다는 얘기. 그러자 이대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하던 말을 이어서 했다.

“왜 이태원에 청림 빌딩 주인 말입니다.”

이대수의 입에서 청림 빌딩이 거론되자 책상 의자에 기대 있던 한동수의 상체가 벌떡 책상 쪽으로 움직였고, 한동수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이 이대수를 쏘아보며 말했다.

“유재섭이 그 청림 빌딩 주인이었어?”

“네. 그 청림 빌딩 주인 유재섭이....”

이대수는 유재섭이 청림 빌딩 주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하며, 지금 자신이 한동수 앞에 선 이유를 조곤조곤 얘기하기 시작했다.

* * *

이대수가 한동수와 처음 만난 건 한동수가 정치 신인으로 운 좋게 지역구 공천을 따낸 그 다음 날이었다.

그때 이대수는 충청권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4선 의원인 권정동의 밑에 비서관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한데 권 의원 사모님의 인척이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비서관 자리에서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좋게 보았던 다른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그를 한정수에게 소개 시켜 주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벌서 14년 째 한정수 곁에서 수석 보좌관 노릇을 하고 있는 이대수.

그런 그는 한동수 의원의 사소한 몸짓이나 눈빛만 봐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하물며 요 며칠 한동수를 만나러 와서 질질 짜는 그의 장녀 한효주. 그녀가 왜 그러는 지야 뻔했다.

결혼을 한 달 앞두고 혼수는 물론 들어가서 살 신혼집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러는데, 준비 된 혼수만 10억원이 넘고, 들어갈 살 집은 무려 한남동 유엔 빌리지다. 국내에서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부촌 말이다. 그런데도 한효주가 그러는 건 딴 목적이 있어서다.

그걸 알기에 이대수도 한동수와 덩달아 요즘 골치가 아팠다. 모시는 분의 고민은 자신의 고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한데 그 고민을 해결 해 줄 길이 있었고, 그걸 이대수는 한동수에게 전부 얘기 했다.

“그러니까 유재섭이라는 자가 자신을 중앙 지검에서 빼내주면....청림 빌딩을 싸게 넘겨주겠다고 했단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이대수의 대답에 한동수의 입 꼬리가 쓰윽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금 그의 상체가 그의 책상 의자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한결 편안해진 얼굴의 한동수가 이대수를 보고 물었다.

“지금 중앙 지검장이 누구지?”

“김정수로 52세, 한국대 법대 출신에 사법연수원 xx기로 알고 있습니다.”

즉각적인 이대수의 대답에 한동수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xx기? 나이는 나보다 4살이나 어린데 사법연수원 동기네?”

“네. 뭐....”

한동수가 법대를 졸업하고 겨우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에 비해 김정수 지검장은 법대 3학년 재학 중에 사법고시를 패스했다. 그리고 사법연수원에서도 두 사람 사이에 성적의 격차가 워낙 컸고. 김정수가 높고 한동수가 낮은 쪽으로.

때문에 사실 사법연수원 동기이긴 했지만 둘 사이에 접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따져 보면....

검찰에서 초 엘리트로 승승장구하며 중앙 지검장이 된 김정수보다, 3선 국회의원으로 법사위원장이 된 한동수가 더 급이 높았다. 한동수가 작심하고 쳐 내려 든다면 중앙 지검장 자리쯤은 얼마든지 갈아 치워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걸 알기에 한동수가 다시 느긋해진 얼굴로 이대수를 보고 말했다.

“그래서....그 유재섭이라는 자....빼낼 수 있겠지?”

한동수가 묻고 있었지만 그건 묻는 게 아니었다. 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대수였다. 지금 한동수는 유재섭을 빼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청림 빌딩을 갖다 바치라고....

“네. 가능은 하겠지만....”

이대수가 살짝 대답을 머뭇거리다가 이어서 말을 했다.

“상대가 중앙 지검장인 만큼 제 선에서는 한계가....”

척하면 척이었다. 이대수의 말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을 한동수가 아니었다.

“필요할 때 전화 바꿔.”

한동수가 직접 중앙 지검장인 김정수에게 얘기하겠단 소리였다. 그 대답을 듣자 그제야 이대수가 확실하게 대답을 했다.

“네. 지시하신대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시원스런 대답에 한동수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대수는 그만 나가보겠다고 말하고는 의원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인사 관리를 맡고 있는 비서관에게 물었다.

“박 비서관. 서울 중앙 지검장실 전화번호 좀 알려 줘.”

“네. 수석 보좌관님.”

잠시 후 박 비서관이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 이대수에게 건넸고, 그걸 호주머니에 쑤셔 넣은 이대수는 의원 사무실을 나왔다. 이어서 한동수의 지역구로 내려가면서 호주머니 속에 메모지를 꺼냈다. 그리곤 바로 그 메모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 *

국회의원 보좌진은 총 10명으로 4급 보좌관 2명, 5급 선임 비서관 2명, 그리고 6급, 7급, 8급, 9급 비서관 각 1명, 인턴 1명으로 구성된다.

보좌진은 정무, 정책, 행정 업무 등 다양한 업무를 총괄하는 수석 보좌관과, 지역구를 담당하는 지역구 보좌관(사무국장), 그리고 운전기사를 겸하는 수행비서, 행정비서 각 1명씩 두고 나머지는 전부 정책을 담당한다.

한동수 의원의 수석 보좌관인 이대수는 지금 지역구의 보좌관이자 사무국장인 윤성길을 만나러 한동수의 지역구인 충주로 내려가고 있었다. 한동수의 지시도 있었고 원래라면 유재섭의 일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대수가 부득불 충주로 내려가는 이유는 자신과 같은 보좌관인 윤성길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다들 눈치 챘겠지만 같은 보좌관 자리에서 누구는 서울에서 의원님 모시고 폼 나게 사는데 누구는 지역구에서 썩으며 좆뱅이 치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렇지만 지역구 의원에게 있어서 지역구 관리는 정말 중요했기에 누군가는 지역구에 박혀서 궂은 일을 맡아줘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일에 누구보다 최적화 된 인물이 바로 윤성길이었고.

때문에 이대수는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충주로 내려가서 윤성길과 어울려 주어야만 했다. 안 그랬다가 윤성길이 딴 마음이라도 먹는 날에는....

그래서 이대수는 다른 일은 차치하고서라도 윤성길을 만나기로 한 날의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켰다. 그건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고.

충주로 가는 차 안에서 잠깐 머리를 식히면서 또 어떻게 서울 중앙 지검장인 김정수의 기분을 상하지 않는 선에서 이 문제를 풀어 나갈지를 고심하던 이대수.

“끄응....”

그는 좀 체 가시지 않는 두통에 입밖으로 앓는 소리를 내다 차창을 열었다. 그러자 차가운 공기가 그의 얼굴을 때렸고....어느 정도 머리가 식자 김정수는 차창을 닫고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아까 박 비서관에게서 받은 서울 중앙 지검장실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꺼냈다. 그리곤 이어 자신의 핸드폰을 정장 상의 호주머니 속에서 빼내서는 메모지에 적힌 번호를 핸드폰 키패드에 찍었다. 이어 그의 엄지가 통화버튼을 눌렀고 이내 전화 연결 음이 울렸다.

-여보세요?

중후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대수는 직감했다. 지금 그의 전화를 받은 사람이 중앙 지검장 김정수란 걸 말이다.

박 비서관이 누가 법사위원장의 비서관이 아니랄까? 서울 중앙 지검장의 핫 라인, 즉 직통 전화번호를 이대수에게 넘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안녕하십니까? 저는 법사위원장이신 한동수 의원님의 수석 보좌관인 이대수라고 합니다.”

-아아. 네....

이대수가 자신을 소개하자 상대, 김정수 지검장이 꽤 놀란 듯 보였다. 하긴 법사위가 어떤 곳이던가? 법으로 검찰의 손발을 묶어 버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의 수장인 법사위원장의 수석 보좌관의 연락이면 제 아무리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서울 중앙 지검장이라도 긴장할 밖에. 그런 김정수에게 이대수가 비교적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지검장님께 이렇게 전화를 드리게 된 건....”

아무리 이대수가 법사위원장의 수석 보좌관이라고 해도 대 놓고 지검장에게 누굴 풀어주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왜 속되게 어떤 주제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따위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걸 요즘 말로 썰을 푼다고 한다던데, 이대수는 김정수에게 그런 썰을 풀었다. 주제는 검찰의 청부, 표적, 별건 수사에 대해서 말이다. 당연히 검찰의 수뇌부 중 한 명인 강정수가 듣기에 이대수의 그런 썰은 사실 도가 넘은 소리긴 했다. 안 그래도 검찰 개혁 문제가 안팎으로 검찰을 압박해 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법사위원장의 수석 보좌관이었기에, 김정수 지검장은 차마 이대수의 말에 대거리를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대수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지검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왜 찌르되 비틀지는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직후 김정수 지검장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이대수의 말에 드디어 토를 달았다.

-서설이 너무 긴 거 같군요. 그분의 뜻이 뭔지 이제 말하셔도 됩니다.

기껏 검찰 개혁 쪽으로 얘기를 몰아가서 상대를 흔들어 놓고 본론을 꺼내려 했던 이대수의 노력이 김정수 지검장의 태클 한 방에 흐지부지 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네. 뭐 지검장님이 그러시다면....실은....”

이대수는 여기서 더 수식어를 붙어봐야 좋을 게 없다고 보고 자신이 왜 김정수 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지금 누구라고요?

“유재섭이라고 지금 중앙 지검의 강력범죄수사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안 됩니다.

“네?”

너무나도 단호한 김정수 지검장의 말에 오히려 이대수가 더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이대수는 유재섭을 잘아는 거처럼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