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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뉴욕에서 스포츠 구단이 지닌 인지도? 영향력? 아무튼 그 힘을 여실히 느낀 안소니 의원.
그가 오늘 있을 예정인 뉴욕 시티FC의 홈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직접 양키 스타디움을 찾은 건 어쩌면 뉴욕 시장 후보로 당연한 행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에 그가 뉴욕 시티FC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라커룸을 찾는 일은 없었다. 그게 내일 신문 일면을 장식할 뉴스 꺼리임은 그도 잘 알았다. 하지만 안소니 의원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그런 짓이 오히려 팬들을 짜증나게 하는 어리석은 짓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무엇보다 이 경기에 뉴욕 시티FC가 지기라도 한다면....자칫 자신이 그 원인 제공자가 될 수 있었다.
아무리 뉴욕 시티FC 구단의 지지를 받는 후보라지만, 쓸데없이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을 찾아가서 선수들에게 부담을 줘, 경기 컨디션을 망쳐 놓았다고 말이다. 그 결과 경기에서 졌고.
그랬기에 그는 자기 대신 자신의 비서를 전반전 시작 전에, 뉴욕 시티FC 라커룸으로 보내서 자기 대신 격려의 말을 전하게 했다.
“자자. 오늘 안소니 상원 의원님께서 특별히 오늘 경기를 직관하시러 여기 와 계신단다.”
닉 감독이 안소니 의원의 비서에게 그 말을 듣고 선수들에게 전할 때 라커룸 안에서 막 유니폼을 갈아입고 있던 준열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어진 닉 감독의 말에 준열의 표정이 굳었다.
“....데 우리가 이기면 직접 오셔서 너희들 사인을 오늘 승리한 공에 받아 가시겠다니까 그런 줄 알고.”
당연한 말이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안소니 의원은 준열을 알아볼 게 확실했다. 때문에 준열은 경기가 끝나면 그 즉시 경기장을 빠져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전반전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 라커룸을 나설 때 그 점을 닉 감독에게 미리 알렸다.
“뭐? 하지만....”
그랬더니 닉 감독이 팔짝 뛰며 경기 종료 후 준열의 이탈에 대해 불만을 토로 하려 했다. 그러나....
“이건 구단주로서 하는 말입니다. 닉 감독.”
“그, 그렇지만....”
닉 감독 입장에서야 오늘 경기도 최고의 활약을 펼쳐서, MOM이 될 것이 확실한 준열이 경기 끝나고 바로 사라진 걸 팬들이나 기자들이 알았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골치가 아플 거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단주가 그러겠다는 데 어쩌겠는가?
한 동안 넋 나간 얼굴로 준열이 라커룸 터널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닉 감독.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경기장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에이. 나도 몰라. 배가 아파서 먼저 갔다고 하지 뭐.”
아무리 극성스런 팬들과 기자들이라도 선수가 아파서 먼저 갔다는 데 어쩌겠는가? 무엇보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했다. 축구에서 전반에 잘하다가 후반에 망치고 역전패 당하는 일이야 비일비재했으니 말이다.
닉 감독이 막 라커룸 터널을 빠져 나와 경기장 안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의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닉 감독이 뒤를 돌아보자 상대 팀인 FC 댈러스 선수들이 이제야 라커룸에서 터널로 나오고 있었다. 근데 다들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긴 자신이 FC 댈러스의 감독이라도 선수들이 경계심을 가지게 잔소리 깨나 했을 터였다. 그 만큼 요즘 뉴욕 시티FC는 강팀으로 거듭 나 있었으니까.
“저들이....전반에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지금까지는 결과적으로 봐서 경기 전 스트레스는 원정 팀 감독의 몫이었다. 당연히 그는 상대 팀 감독이 받고 있을 그 스트레스에 대해서 알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 * *
준열은 오늘 경기에서도 역시나 중앙 미드필더로 준수하게 활약을 펼쳤다. 그걸 지켜보며 닉 감독과 토미 수석 코치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서로를 쳐다보게 된 두 사람. 이때 토미 수석 코치가 닉 감독에게 말했다.
“준열은 오늘도 대단하네요?”
“맞아. 경기를 끌어가고 있지. 정말 최고야.”
준열이 지금 같은 활약을 계속 보인다면 탈꼴찌는 물론이요, 강등권 탈출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니 감독으로서 닉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반전이 시작 되고 20분이 넘어가는데 아직 골이 터지지 않고 있단 사실이 두 사람의 얼굴을 점점 굳어가게 만들었다.
이때 틈을 노리고 있던 준열이 마이클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마이클이 갑자기 치고 올라가고 준열은 공을 왼쪽 측면 미드필더에게 패스했다. 그 뒤 자신이 상대 진영으로 뛰어가며 손을 들었다.
순간 왼쪽 측면 미드필더가 준열에게 패스를 찔러 넣었고, 다소 느슨해져 있던 FC 댈러스의 앞쪽 수비 라인이 그대로 무너졌다. 하지만 2선의 FC 댈러스 선수들은 공격수인 마이클을 타이트하게 밀착하고 패스의 길목마저 차단했다. 하지만 준열은 마이클이 아닌 좌측면으로 쓰루 패스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 곳에 뉴욕 시티FC 좌측 윙어가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크로스를 올렸다.
파파파팟! 파악!
준열은 네 걸음 만에 페널티에어리어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는 그대로 몸을 솟구쳐 올렸다. 그때 골 에어리어 밖으로 FC 댈러스의 골키퍼가 뛰어나오며 두 손을 내뻗었다. 좌측 윙어가 올린 크로스는 살짝 높았지만 준열의 고공 점프력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족히 20센티는 더 뛰어 올랐다. 때문에 높아보였던 공에 준열의 머리가 가 닿았다.
툭!
준열이 건드린 공은 30도 각도로 비껴서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그때 뒤늦게 FC 댈러스 골키퍼가 내 뻗은 두 손이 허공을 휘저었는데 준열은 헤더 후 지면으로 내려가면서도 그의 시선은 계속 공의 궤적을 쫓았다.
‘들어갔다.’
그리곤 그의 다리가 지면에 안착할 때 그의 얼굴이 미소가 드리웠다.
철썩!
준열이 헤딩한 공이 골대 좌측 그물 망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와아아아!”
진지한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뉴욕 시티FC 코칭스태프들이 환호성을 내질렀고, 그들 중 닉 감독은 벌떡 몸을 일으켜 박수를 치며 감격한 나머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멋진 골이야. 역시 대단해.”
이는 닉 감독이 딱 원하는 플레이였다. 측면에서 올라 온 공을 간결하게 끊어 먹으면서 그걸 골로 연결시키는 것. 이건 골대로 향하면 골로 연결 된 가능성이 70-80%는 족히 넘었다. 무엇보다 쉽게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었다.
요즘 유럽에서 가장 핫한 골 장면이 이랬다. 즉 준열이 그런 최신 선진 축구를 닉 감독 앞에서 선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닉 감독이 가르친 적도 없는데 말이다.
닉 감독은 준열이 오늘 뛰는 걸 보고 그가 자신의 전술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는, 아니 그 전술에 최적화 된 선수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 *
프로 축구팀의 감독이란 자리는 결국 결과로 증명을 해야 하는 자리였다. 결과가 좋지 못하면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닉 감독이 이끄는 뉴욕 시티FC가 이번 리그에서 강등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닉 감독은 그날로 감독 자리를 내 놔야했다. 사실 닉 감독은 뉴욕 시티FC의 강등을 확신했다. 그 말은 곧 자신도 경질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말이었고. 그런데 그 확신이 싹 사라졌다. 단 한 선수가 팀에 합류하면서 말이다.
뉴욕 시티FC는 모든 면에서 이미 손을 댈 때가 없는 구제불능을 팀이었다. 한데 공수에 걸쳐서 그 모든 걸 해결 해 줄 수 있는 조커 같은 선수가 지금 닉 감독의 눈에 보였다.
“백!”
닉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로 공수를 완벽히 조율해 내고 있는 준열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현재 뉴욕 시티FC의 포메이션을 4-3-3으로, 주력과 드리블이 좋은 양쪽 윙 포워드로 하여금 상대 측면을 부수고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려, 스트라이커 마이클로 하여금 마무리를 짓게 하는 것이 이번 공격 전술의 핵심이었다.
뭐 이 전술은 앞서 FC 신시네티와의 경기에도 써 먹었다. 그래서 FC 댈러스에서 나름 대비를 해왔다. 하지만....
파파팟! 뻥! 철썩!
상대의 대비를 준열이 그대로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지!”
“와아아아!”
마이클이 측면에서 날아온 공을 헤딩으로 떨어트리자 언제 나타났는지 페널티에어리어 안에 들어 온 백준열이 깔끔하게 터닝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바로 마이클과 함께 공격에 가담한 중앙 미드필더 백준열이 FC 댈러스와의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넣은 것이다.
전반전에 벌써 2번 째 골. 그 2골을 전부 뉴욕 시티FC에서 넣었고 2골 다 준열이 넣었다. 과히 준열 혼자서 FC 댈러스를 씹고 뜯고 맛보고 있었다.
FC 댈러스에서는 백준열에게 첫 골을 먹고 그에 대한 대비를 했다. FC 댈러스 감독이 허겁지겁 준열에게 전담 마크맨을 붙인 것. 하지만 준열은 그 마크맨을 간단히 떨쳐내고 또 다시 골을 터트려버렸다.
“백....벌써 두골 째네. 나도 한 골 넣자.”
“그래. 좋아.”
준열은 자신을 축하해 주러 다가 온 마이클의 조금 푸념 섞인 말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경기가 재개 되고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말을 지켰다.
준열이 FC 댈러스의 중앙을 무너트리고 마이클에서 킬 패스를 찔러 넣어 준 것이다.
마이클은 완벽히 무너진 FC 댈러스 진영 안에서 퍼스트 터치 후 정확히 골대 구석으로 공을 차 넣었다. 최근 두 경기 실점이 없었던 FC 댈러스의 골키퍼도 골대 사각지대로 날아 든 공을 막진 못했다.
“우와아아아....”
“뭐야? 언제 3대 0이 됐어?”
“그러게? 뉴욕 시티....무섭다.”
백준열이 중심축으로 중앙 미드필더에서 자기 역할을 해 나가는 뉴욕 시티FC은 전반 40분까지 3골을 터트리며 FC 댈러스를 완전히 압도했다. 하지만 아직 전반이 끝나려면 5분의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에 준열은 한 골을 더 어시스트 했다. 이번엔 윙 포워드를 이용해서 패스를 받았고 그 공을 백 힐로 등 뒤의 마이클에서 전달했다.
툭!
마이클은 가볍게 비어 있는 골대로 공을 차 넣었다. FC 댈러스의 골키퍼는 준열이 공을 잡자 그를 덮쳤는데, 그때 이미 공은 준열을 떠나고 없었다. 때문에 마이클이 골을 넣지 않아도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을 상황이었다.
“으으윽....”
골키퍼와 뒤엉켜 쓰러진 준열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준열을 짓누른 FC 댈러스의 골키퍼는 이미 멀쩡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 뒤였다. 두 선수가 다들 일어나자 주심은 FC 댈러스의 골키퍼에게 구두 경고를 했다.
“조심 좀 해. 몸이 재산인 선수끼리 다치는 불상사가 생기면 곤란하잖아?”
“네. 조심하겠습니다.”
해 맑은 얼굴로 대답하는 FC 댈러스의 골키퍼. 하지만 준열은 녀석이 부딪쳐 올 때 팔꿈치로 자신의 얼굴을 가격한 걸 알고 있었다. 준열이 아닌 다른 선수였다면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준열은 이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얼굴을 골키퍼의 팔꿈치에 가격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고. 그렇지만 당한 건 당한 거다. 준열이 FC 댈러스의 골키퍼를 쏘아보자 녀석이 씨익 쪼개며 웃었다.
‘저 새끼. 일부러 그런 거네.’
하긴 전반에만 4골을 헌납하고 있으니 골키퍼로서 열불이 날 만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 선수에게 보복을 하는 건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새끼. 혼 좀 나야겠군.’
저런 녀석을 그냥 둘 준열이 아니었다. 아니 이대로 당하고 참을 준열이 아니었다.
“여기....”
어느 덧 전반전 45분의 시간이 다 흐르고 추가 시간이 주어졌다. 주심이 호각을 손에 쥔 것을 보아하니 이번 뉴욕 시티FC 공격이 끝나면 바로 전반 종료 휘슬을 불 모양이었다. 준열은 그때 뉴욕 시티FC 측면 윙어에게 손을 들어 공을 달라고 했다.
촤르르륵!
그러자 그 측면 윙어가 준열에게 쓰루 패스를 차 주었고, 준열은 그 공을 받아서 다시 FC 댈러스 중앙 돌파에 나섰다.
파팟! 휙! 툭! 툭!
준열은 간단히 FC 댈러스의 미드필더를 뚫고 페널티에어리어를 향해 드리블을 해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앞을 FC 댈러스의 센터백과 풀백이 동시에 막아왔다. 준열은 드리블해 달려 온 기세 그대로 공을 찼다. 공은 두 선수 사이로 날아갔고 서로 그 공을 처리하겠지 의식했던 두 선수는 그 공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으힉!”
준열이 킥을 한 거리는 골대와 20미터 정도 거리가 있었다. 때문에 FC 댈러스 골키퍼는 준열이 찬 공이 날아오는 걸 보고 몸을 날렸다. 공의 궤적은 골대 왼쪽으로 붙어 들어왔기에 골키퍼는 그대로 그 공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어어....”
그런데 허공에 뜬 상태에서 FC 댈러스 골키퍼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것이 직선으로 날아오던 공이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방향을 꺾어 그의 얼굴 쪽으로 날아온 것.
놀란 골키퍼는 뻗고 있던 두 팔도 거둬들이고 다급히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막으려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게 날아오는 공의 속도가 더 빨라졌고, 그의 내리던 두 손 사이로 공이 통과했다. 그 말은....
퍼억!
FC 댈러스 골키퍼의 얼굴에 강한 충격이 일었고 동시에 머리가 핑 돌았다.
“와아아아!”
잠시 뒤 환호성 소리가 FC 댈러스 골키퍼의 귀에 환청처럼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