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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제 뉴욕 시티FC에 남은 원정 2경기의 상대는 FC 몽레알, 샬럿 FC 두 팀 뿐이다. 문제는 그 두 팀이 MLS의 상위 성적 팀으로 각기 리그 3위와 5위를 달리고 있는 강팀이란 거다.
그렇게 당장 내일 모레 뉴욕 시티FC가 상대할 팀은 바로 FC 몽레알. 아직 리그 우승을 포기하지 않은 FC 몽레알로서는 뉴욕 시티FC와 같은 최약팀은 그냥 가볍게 이기고, 다음을 대비하는 연습 상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는 몽레알을 잡고 강등 탈출의 종지부를 찍는다. 다들 알겠나?”
“네에~”
뉴욕 시티FC의 닉 감독의 말에 뉴욕 시티FC 선수들이 일제히 큰소리로 대답했다.
리그 말 MLS의 하위 팀들은 연패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꼴찌 팀이었던 뉴욕 시티FC는 연승을 이어나갔고. 그 결과 남은 경기를 따졌을 때 뉴욕 시티FC는 한 경기만 더 이겨 승점 3점을 획득 할 시, 강등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순위, 그러니까 리그 17위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물론 뒤로 남은 경기들까지 다 이기며 연승 행진을 이어나갈 시, 최대 12-13위 까지 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었고. 하지만 당장 뉴욕 시티FC의 감독인 닉의 입장에서는 강등 탈출이 시급했다. 그래야 자신의 내년 임기가 보장 될 테니까. 아니 당장 감독의 재계약부터 체결할 수 있을 터였다.
아직 닉은 1년의 임기가 남았고 구단과 합의 시에 한해 임기 1년 연장 옵션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닉은 FC 몽레알의 경기에서 이겨서 뉴욕 시티FC가 강등을 탈출 할 시 구단 측에 직접적으로 요청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재계약을 말이다. 그리고 구단에서 재계약을 마다한다면 구단 측에 감독 계약 해지를 즉각 요구할 생각이었고.
‘흐흐흐흐. 여기 말고 갈 때는 많으니까.’
꼴찌 팀을 이끌고 강등 탈출을 이뤄 낸 감독. 그런 감독이라면 리그 하위권의 팀에서는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즉 닉은 오늘 경기만 이기면 뉴욕 시티FC가 자신과 재계약을 해줘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는, 그야말로 최상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는 셈이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일장연설 이후, 평소와 달리 더 적극적으로 팀 훈련 중인 선수들을 지켜보는 그의 입가에서 좀체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닉을 옆에서 힐끗거리며 쳐다보던 토미 수석 코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또 무슨 꿍꿍이를....”
하지만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토미 수석 코치가 투덜댔다.
“뭐 감독이 알아서하겠지. 우리에게는....준열이 있으니까.”
그렇게 어제처럼 뉴욕 시티FC 선수들은 오전에 기초 훈련을 실시했고, 11시 30분 정도에 평소보다 빨리 훈련을 끝낸 토미 수석 코치가 선수들을 한 곳에 불러 놓고 말했다.
“식사 후 1시에 여기 다시 모이 되 그때 자체 평가전을 치를 생각이다.”
토미의 말에 뉴욕 시티FC 선수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럴 것이 낼 모레 FC 몽레알과 리그 경기가 있는 마당에 팀 내 자체 평가전이라니....
리그 경기 전에 선수들의 체력은 물론 그로인해 부상 선수라도 나온다면....
이건 선수들 입장에서 그리 반길 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그런 우려 섞인 선수들의 눈빛을 받으며 토미가 계속 말을 이었다.
“가벼운 자체 평가다. 몸 푼다고 생각하고 뛰어라. 감독님 지시니 그런 줄 알고.”
감독의 지시란 말에 선수들의 눈에 서린 불만의 눈빛이 싹 사라졌다. 어째든 뉴욕 시티FC 감독의 자리는 선수 선발권과 출전권을 손에 쥐고 있는 절대 권력자였다. 그런 감독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모르는 뉴욕 시티FC 선수는 거기 없었으니까.
“그럼 자체 평가전을 치를 A팀과 B팀을 나누겠다. A팀은 도날드, 쿠퍼....B팀은 마이클, 데니얼, 백준열....”
준열은 일단 자체 평가전에 스트라이커 마이클과 같은 B팀에 속하게 되었다.
“이상. 다들 식사 맛있게 해라.”
토미 수석 코치는 팀 자체 평가전을 치를 선수 명단을 불러 준 후, 곧장 닉 감독이 있는 감독실로 향했다. 감독실 안에서 두 사람은 뭔가 심각하게 얘기를 주고받다가, 이내 같이 감독실을 나와서 구단 사무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 * *
준열은 점심 식사 후 휴식을 취하다가 시간에 맞춰 필드로 향했다. 곧 팀 자체 평가전이 있을 예정이었지만 뉴욕 시티FC 선수들에게는 어떤 긴장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하긴 말 그대로 팀원들끼리 인원을 나눠서 하는 경기였으니까.
“전반 15분 뛰고 5분 휴식 후 후반 15분을 뛰도록 하겠다.”
직접 심판을 볼 생각인지 토미 수석 코치가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집합한 뉴욕 시티FC 선수들에게 말했다.
“A팀이 이쪽, B팀이 저쪽이다.”
토미 코치가 맘대로 진영을 선택했고 준열은 자신이 속한 B팀 쪽으로 향했다. 마이클은 공격수답게 센터 서클로 바로 움직였다. 거기서 A팀 공격수인 도널드와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 사이 양쪽 진영이 갖춰졌고 토미 코치가 곧장 길게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이익~
그렇게 자체 평가가 시작 되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준열은 훨훨 날았다. 기량 면에서 현재 뉴욕 시티FC 선수들 중 준열을 능가할 선수는 없었다. 준열이 자신의 능력을 쓰지 않아도 호세 가르시아의 축구 천재의 재능만으로도, 그는 상대 진영을 마구 휘젓고 다니기 충분했다. A팀 수비진과 미드필더들이 아무리 준열에게 달라붙어도 소용없었다.
“저, 저....”
“와아....이건 뭐....레벨이 다르네. 달라.”
당장 경기를 지켜보던 코칭스태프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닉 감독 옆에 있던 수비 코치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닉 감독을 쳐다보자, 닉 감독이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비코치가 터치라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백준열! 나와! 교체다!”
수비코치가 두 손을 휙휙 돌려가며 그라운드 안으로 교체 신호를 보냈다. 준열은 그걸 보고 벤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준열의 모습을 뉴욕 시티FC 선수들 뿐 아니라 심판으로 뛰고 있었던 토미 수석 코치 역시 넋 놓고 지켜보았다.
“여기서 뛸 선수가 아냐.”
혼잣말로 중얼 거리던 토미는 계속해서 자체 평가전 경기를 진행 시켰다. 그런데 막상 준열이 빠지고 나자 뉴욕 시티FC의 경기력이 확 떨어졌다. 아니 경기력이라기보다 그 질이 확 떨어졌다는 게 맞는 표현일 듯 했다.
선수들 개개인의 드리블이나 롱 패스, 크로스의 정확도 등에서 준열의 기량에 비해 차이가 나도 너무 났던 것이다.
“쯧쯧....”
토미 수석 코치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이러니 뉴욕 시티FC의 경우 해외파 선수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그 해외파 선수의 컨디션이 나쁘면 팀의 성적도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때 토미 수석코치는 백준열을 해외파 선수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미 수석코치는 깜빡 잊고 있었다. 백준열이 자신의 팀 선수이기 이전에 이 팀, 즉 뉴욕 시티FC의 구단주란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토미 수석코치의 말은 일견 맞았다. 백준열이 뉴욕 시티FC 같은 팀에 뛸 선수가 아니란 거 말이다. 어떤 미친 구단주가 축구선수도 아닌 바에야 자기 팀의 경기에 선수로 뛰겠나? 간혹 선수 출신 구단주가 구단을 인수했을 경우 구단주이면서 감독, 그리고 선수로 뛰는 경우는 있었다. 물론 그것도 저 밑 하부리그의 구단일 경우 가능한 얘기였지만.
* * *
닉 감독은 벤치로 돌아 온 준열을 보고 흡족하게 웃었다. 구단 사무실에서 갑자기 들이 민 동양인 선수에 처음 닉 감독은 기분이 나빴다. 아무리 꼴찌 팀 감독이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감독인데 선수 영입과 기용 문제까지 구단 사무실에서 간여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불만은 필드에서 백준열의 기량을 보고 싹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에 있어 백준열은 닉 감독에게는 귀인이었다. 자신의 감독 자리를 확실하게 책임져 줄 귀인 말이다. 그런 준열을 향해 닉 감독이 말했다.
“준열. 이리로....”
닉 감독의 부름에 준열이 그 옆으로 다가오자 닉 감독이 그를 보고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 FC 몽레알과의 경기에서 너는 저번처럼 중앙미드필더를 맡게 될 거야. 이게 내일 우리 쪽 출전 선수 명단이야. 대충 보고 내일부터 그들과 호흡을 좀 맞춰 봐.”
“알겠습니다.”
준열은 닉 감독이 건넨 내일 모레 있을 FC 몽레알과의 경기에 출전한 뉴욕 시티FC 선수들의선발 출전 명단을 쭉 훑어봤다. 그런 준열에게 닉 감독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때 긴 휘슬소리가 필드 안에서 울렸다. 팀 자체 평가전이 끝난 것이다.
“자자. 다들 이리로 집합!”
토미 수석 코치의 외침에 벤치에 있던 준열도 선수들이 모이고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준열을 흐뭇한 눈으로 쳐다보던 닉 감독.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감독실로 향했다.
오늘 훈련은 이걸로 끝이었다. 뒤처리야 토미 수석코치가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고. 닉 감독은 감독 실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차 키를 챙겨서 양키 스타디움에서 관계자만이 주차할 수 있는 지정 주차장으로 갔다. 거기서도 유독 돋보이는 최고급 세단의 운전석에 탄 그는 출발하기 전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어. 에이미. 나 지금 네 집으로 갈까 하는데....마트?....어어. 알았어. 그것들 사가지고 갈게.”
통화 후 닉은 차를 몰아 지정 주차장을 빠져 나와서 막 도로로 진입하기 전 신호 대기 중이었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하지만 누구 전화인지 확인 후 닉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 그의 핸드폰에 표시 된 발신자 이름은 다름 아닌 'Wife'였다.
그렇게 닉 감독이 먼저 퇴근하고 나서 한 시간 쯤 뒤 뉴욕 시티FC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핵심 선수들이라고 볼 수 있는 세 명의 선수들이 한 번에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바로 뉴욕 시티FC의 주장인 잭슨과 스트라이커 마이클, 그리고 중앙미드필더 백준열이었다.
“진짜 안 갈 거야?”
그때 마이클이 섭섭한 얼굴로 백준열에게 물었고 준열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귀찮아.”
“뭐?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어떻게 동료의 초청에 그런 말을....”
“내가 아니라....잭슨의 와이프가 귀찮다고. 잭슨. 너 와이프에게 물어는 봤어?”
준열이 마이클 옆에 잭슨을 향해 묻자, 잭슨이 바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하지만 에이미라면....너희들 데리고 집에 간다면 좋아할 거야.”
잭슨의 대답에 준열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며 잭슨을 향해 말했다.
“잭슨. 너....최근 네 와이프에게서 뭐 이상한 점 못 느꼈어?”
“뭐?”
준열의 말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지 잭슨이 멍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준열이 한심하다는 듯 잭슨을 보고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너 아이도 없다며? 거기다 와이프가 대학 미인대회 출신이고?”
“마, 맞아. 근데 그게 왜....”
“세상에 완벽한 와이프는 없어. 특히 예쁜데 착한 와이프는....착한 척 하는 거지.”
한 팀에서 주장 노릇을 하고 있는 잭슨이었다.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기에 그는 준열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 그러니까 네 말은....에이미가....바람이라도 피고 있단 거냐?”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지. 그렇지 않고야 남편이 갑자기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간다는 데 그걸 좋다고 대답할 와이프....가 과연 있을까?”
준열이 잭슨에게서 시선을 거둬서 마이클을 쳐다봤다. 왜냐하면 마이클도 유부남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이혼 소송 중이었지만.
“크음....”
준열과 눈이 마주친 마이클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슬쩍 옆으로 돌렸다. 그리곤 두 사람에게 만 들리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 결혼 생활 중 친구들 데리고 집에 간 적은....한 번도 없어. 와이프가 질색을 했거든.”
마이클의 말에 그 보란 듯 준열이 어깨를 으쓱하자 얼굴이 금세 시뻘게진 잭슨이 허겁지겁 자신의 차로 달려가서는....
부아아아앙!
빠르게 질주해서 준열과 마이클 눈앞에서 이내 사라졌다. 그때 마이클이 신기한 눈으로 준열을 쳐다보며 말했다.
“준열. 너 진짜 대단하다.”
“대단 할 거 없어. 그냥 다른 사람들에 비해 통찰력이 높을 뿐....”
그 말 후 준열이 대기 중인 자신의 차로 걸어갈 때 마이클이 빠르게 그를 따라 붙으며 물었다.
“그 통찰력을 나한테도 좀 써 주면 안 될까?”
그 말에 준열이 걸음을 멈추고 빤히 마이클을 쳐다보며 말했다.
“뭔데?”
그러자 마이클이 뛸 듯이 기뻐하며 즉시 입을 열었다.
“너도 알지? 지금 내가 이혼 소송 중인 거. 그런데 와이프가 바람을 피워놓고 아니라고 발뺌을....”
쭉 마이클을 얘기를 듣고 난 준열. 그가 잠시 한심하다는 듯 마이클을 쳐다보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네가 사는 곳이 맨하튼에서도 웨스트빌리지라고 하지 않았나?”
“맞아.”
“거기 요즘 가로등보다 더 많은 게 CCTV카메라 아냐?”
“어? 어어어....”
그제야 준열이 말한 뜻을 알아들은 마이클. 그가 후다닥 자신이 차로 뛰어가며 준열에게 외쳤다.
“고마워. 준열.”
그리곤 먼저 떠난 잭슨만큼이나 급하게 차를 몰아서 준열 눈앞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