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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야말로 폴이 원하는 폭약들이 창고 안에 다 있었다. 그 중에서 폴의 시선이 집중 된 폭약은 바로 TATP(트라이아세톤 트라이페록사이드)로 만들어진 완성형 폭탄이었다.
이 TATP 폭탄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세톤과 과산화수소 등이 재료로 폭발력이 매우 강력해 '사탄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녀석으로, 세계 여러 테러에서 쓰여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 냈다.
특히 요즘 테러하면 생각나는 IS가 많이 쓰는 폭발물이었는데 폴은 이번에 자신이 만들어 낼 축제의 배후에, IS가 있는 거처럼 꾸밀 생각을 TATP 폭탄을 보고 막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비릿하게 웃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단장도 좋아하겠군.”
카이클 단장이라면 틀림없이 자신의 생각을 칭찬해 줄 터. 폴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TATP 폭탄을 챙겼고 혹시 몰라 자신이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폭탄, 즉 수류탄과 TNT, 그리고 기폭장치를 대충 챙겨들고는 폭약들이 가득 들어 있는 창고를 나왔다. 그러자 공장 안의 사람들이 다시 폴을 공장 입구로 데려다 주었고 대기 중이던 갱 단원이 그에게 물었다.
“필요한 거 다 챙겼나?”
“....”
그 물음에 폴이 대답대신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챙긴 것들을 보여주자 갱단원이 승합차 문을 열면서 말했다.
“실어.”
폴은 공장 안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챙긴 폭약들을 승합차에 전부 실었다. 그리고 자신이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서 카이클이 묵고 있는 모텔 앞에 도착했다. 그때 차안에 전화벨소리가 울렸고 갱 단원이 핸드폰을 받았다.
“네. 네. 잠시만....”
그리곤 자신의 핸드폰을 폴에게 건넸다. 그 핸드폰을 받아 든 폴이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폴의 귀에 들려왔다.
“여보세요?”
-나다. 폴. 지금부터 내가 지시한대로 움직여 주기 바란다.
카이클의 지시란 아까 그가 폴에게 말한 그 축제를 말함이었다. 폭약을 챙김으로 해서 이제 그 축제를 즐길 준비가 끝난 폴이었다. 그의 입에서 곧장 자신감 가득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축제 판을 벌여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장님.”
-화려한 축제 판이라....좋지. 그럼 너만 믿겠다. 폴.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폴이 갱 단원에게 말했다.
“뉴욕 시티FC의 홈구장으로 가자.”
폴의 요구에 갱 단원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승합차를 몰고 뉴욕 시티FC 홈구장인 양키스타디움이 있는 뉴욕 브롱스 East 161st Street로 빠르게 움직였다.
* * *
그 시각 폴보다 대략 한 시간 정도 빨리 움직인 카이클과 4명의 용병단원들. 그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임무 수행을 위해 뉴욕 번화가의 로타리에서 흩어졌는데, 그 중 단연 기동성이 제일 좋은 오토바이를 탄 카이클이, 아무래도 4명의 용병단원들에 비해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짓도 이제 끝이로군.”
카이클이 도착한 곳은 바로 그 여자 킬러가 묵고 있는 호텔이었다. 평소의 그 여자 킬러 타미라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을 했다. 그랬는데 오늘은 그 출근 시간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였다. 그녀가 이렇게 출근을 늦게 하는 건, 바로 오늘이 뉴욕닉스의 창단기념일이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에 창단 된 뉴욕닉스는 원래 창단기념일에 구단 직원들이 모여 각종 행사를 해왔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그런 행사가 없어지고 대신 당일 기념일 하루를 푹 쉬기로 했는데, 그걸 새로운 구단주가 동의하면서, 오늘 하루 구단 직원들은 출근하지 않고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으니, 뉴욕닉스의 운영팀장인 타미라도 출근하지 않고, 오전 시간 동안 쉴 수 있게 된 것이고.
바로 그걸 알게 된 카이클이 일부러 D-데이를 오늘로 잡았다. 아무래도 뉴욕 닉스와 뉴욕 시티FC 구단 사무실에 들어가 있는 타미라를 잡는 것보다, 밖에 나와 있는 그녀를 잡는 게 카이클의 입장에서도 수월했으니 말이다.
카이클이 호텔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며 머릿속에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나오는군.”
카이클이 노리고 있는 그 타미라라는 여자 킬러가 탄 차가 경호 차량들 사이에 끼어서 호텔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카이클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대충 털어서 길바닥에 버리고 오토바이에 올라타면서 거의 동시에 헬멧을 썼다. 바로 그때였다.
삐익!
갑자기 시끄러운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뉴욕 경찰이 카이클에게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그걸 본 헬멧 쓴 카이클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Fuck!.....하필이면....”
카이클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문제를 만들어서 좋을 건 없었다. 그래서 경찰에게 순순히 과태료 딱지를 받을 생각이었다. 끽해야 5분 정도 시간을 잡아 먹을 텐데 그 정도는 오토바이로 따라 잡을 수 있었다. 해서 카이클은 쓰고 있던 헬멧을 벗었고 딱지를 떼는 동안 경찰이 요구하는 걸 다 들어줬다. 그런데....
“가만....이 오토바이 불법 개조한 거 같은데?”
어떻게 경찰은 카이클에게서 딱지만 끊을 거 같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안 되겠다.’
카이클은 5분 이상의 시간을 여기서 소비할 수 없었고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눈앞의 경찰을 처리하고 여길 뜨기로 말이다.
빠악!
그 결정과 동시에 카이클의 손이 움직였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헬멧으로 경찰의 머리를 후려쳤다.
“크으윽!”
경찰은 그 한 방에 옆으로 나가 떨어졌고 카이클은 당연히 그걸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연이어 헬멧을 들어 쓰러진 경찰의 머리를 헬멧으로 더 내려치려는 순간....
“멈춰! 움직이면 쏜다!”
아뿔싸! 근처에 다른 경찰도 있었다. 카이클이 그 소리가 울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새파랗게 젊은 경찰이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총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걸 본 순간 카이클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움직였다.
“야이 씨....움직이지 말라고....”
타앙!
그걸보고 놀란 경찰이 떨리는 손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경찰 총의 첫 발은 공포탄이었고 공포탄은 쏴 봐야 사람을 상하게 만들 수 없었다. 그 사이 카이클은 오토바이에 타고 헬멧을 썼다. 그리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그걸 확인한 경찰은 재차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지만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쏘는 경찰의 총은 오토바이에 탄 카이클을 맞추지 못했다. 그 사이 카이클은 오토바이 액셀러레이터를 돌렸고....
부아아앙!
오토바이는 굉음과 함께 질주를 했고 그런 카이클을 향해 경찰은 두 발의 총을 더 쐈다.
탕! 탕!
하지만 역시나 그 총알은 카이클이 탄 오토바이를 피해갔고....
“더글라스!”
더 쏴봐야 소용없음을 안 경찰은 카이클의 헬멧에 맞고 쓰러진 동료 경찰에게 달려가서 그의 상태를 살폈다.
“크으으으....”
다행히 동료 경찰이 의식을 되찾았다. 카이클을 향해 총을 쐈던 경찰은 황급이 911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뉴욕 파라다이스 호텔 옆 장미공원 입구 근처데 경찰이 둔기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있습니다. 빨리 구급차를....”
그때 정신을 차린 경찰이 911과 통화 중인 동료 경찰에게 외쳤다.
“아론. 지원 요청하고 오토바이 수배하게 번호부터 알려!”
“네? 알겠습니다.”
그 말에 경찰 생활을 시작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햇병아리 경찰 아론이 911과의 통화를 끝내고, 황급히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로 협조 요청을 했다. 이어 방금 내뺀 오토바이 번호판의 번호를 알려 뉴욕 시안에 모든 순찰차에 수배령을 내리게 했고. 그런 아론을 보면서 비록 아론과 같은 Police offer지만 승급 시험을 통해 곧 Sergeant, 즉 순찰팀장이 될 예정인 더글라스였다.
비록 좀 전에 다쳤지만 지금 자신의 몸 상태는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았다. 머리가 딱히 어지럽거나 두통이 심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MRI를 찍어도 뇌에 문제가 없을 터.
“휴우....”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더글라스의 입 꼬리가 옆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동시에 며칠 전 자신이 만났던 훤칠하고 잘 생긴 동양인 젊은 남자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젊은 남자의 말대로라면 오늘 일로 인해 더글라스는 승급 시험 결과와 무관하게 Sergeant가 될 수 있을 터였다.
* * *
평소처럼 자신의 구역을 순찰 돌던 더글라스. 하필 자신의 파트너가 이틀 전 다치면서 파트너도 없이 혼자 순찰 길에 나선 더글라스는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물론 팀장으로부터 위험지역 순찰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게 개소리란 것쯤은 경찰 노릇 1-2년 해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사고나 사건이 주로 그런 위험지역에서 터져 나오니 말이다. 그리고 경찰은 그런 사고와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있는 존재들이었고. 따라서 위험하지만 더글라스는 순찰차를 몰고 위험 지역을 돌았다.
“후아아....”
다행히 위험지역 안에서 문제가 될 말한 건 보이지 않았고 안전한 곳으로 나온 뒤 더글라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잠깐 공원 벤치에서 휴식을 취할 때였다.
“안녕하세요?”
그때 키크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더글라스에게 다가와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네. 뭐....”
더글라스는 백인이지만 백인우월주의자도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먼저 접근해 오는 동양인이 거북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동양인의 말에 슬쩍 돌리고 있던 더글라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번에 좋은 일....승진 하실 거 같군요?”
“네?”
더글라스가 일주일 전에 승진 시험을 친 걸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적어도 눈앞에 동양인이 그걸 알리는 없었다.
“내가 점쟁이나 예언가는 아니지만 사람을 보는 눈을 확실하거든요. 물론 잘못 볼 때도 있지만 그럴 경우 내가 그걸 해결해 줄 능력도 가지고 있고요.”
“네? 그게 무슨....”
동양인의 묘한 화술에 더글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었고 잠시 후 그에게서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그, 그러니까 내일 모레 여기 오토바이가 한 대 서 있을 테니 그 오토바이 운전자를 어떡하든 붙잡고 늘어지면 내가 확실하게 승진을 하게 된다 이 말이요?”
“네. 그렇게만 해주시면 당신은 100% 승진을 하게 될 겁니다. 당신이 치른 승진 시험 결과와 무관하게.”
“....”
확실히 동양인 남자는 더글라스가 승진 시험을 치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군지 밝히며 명함을 건넸는데....거기에 적혀 있는 그 동양인 남자가 다니는 회사와 직위를 보고서 더글라스는 숨이 턱 막혔다.
“허, 허억!....삼, 삼명그룹....부회장....준열, 백?....당신이 진짜 삼명그룹 부회장이라고?”
“확인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하세요. 그리고 내 제안을 받아드리든 말든 그건 순전히 당신 결정에 달린 거고. 그럼....”
그렇게 자기 할 말을 다 한 뒤 그 동양인 남자는 공원을 빠져 나갔고, 혼자 남은 더글라스는 잠시 혼돈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명함이 주인에 대해 알아봤다.
어차피 인터넷 검색 몇 번하면 알게 될 사람이었다. 삼명그룹의 부회장이라면 그 조직의 2인자 일 테니 말이다.
“진짜....맞네. 삼명그룹 후계자....부회장....준열, 백....”
좀 전에 봤던 그 키크고 잘 생긴 동양인 남자의 모습과 더글라스가 검색 해 본 결과 나온 삼명그룹 부회장은 일치했다. 그렇다는 건 동양인의 제안이 전부 사실이란 얘기였다. 사실 일주일 전에 본 승진 시험을 더글라스가 잘 본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쭉쑨 것도 아니고. 해서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떨어진다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한데 그 승진을 확실하게 챙겨준단다. 삼명그룹의 후계자께서 말이다. 내일 모레 오후에 여기 있을 예정인 오토바이 운전자를 최대한 붙잡고 있어 준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다.
“쩝....뭐 그게 사실이라면....못 할 것도 없지.”
그렇게 더글라스는 사실상 오늘 처음 만난 동양인의 제안을 받아드리기로 하고 순찰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마저 자신의 구역 순찰을 돌았다. 그리고 이틀 뒤 오후에 다친 동료가 복귀하기 전까지 땜빵 온 신참 경찰과 같이 순찰차 이곳 공원을 찾은 더글라스의 눈에....
“맙소사. 진짜 오토바이가 있네?”
그 동양인이 말한 그 자리에 떡 하니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었고 그 옆에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자가 더글라스의 눈에 띠었다. 그때 그 수상쩍은 자가 피고 있던 담배를 털고 그 자리에 담배꽁초를 버린 뒤 오토바이에 타는 게 보였다. 그 순간 더글라스가 외쳤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저 새끼. 무조건 붙잡고 늘어진다.’
LA의 가족들을 뉴욕으로 불러 오려면 대출이 필요한데 지금 그의 지위에서 받는 대출과 팀장이 되어 받는 대출은 그 격차가 컸다. 해서 올해 반드시 팀장으로 승진을 해야 하는 더글라스로서는 동양인의 제안을 무조건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