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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살, 살려 주시오. 돈, 돈이라면 내 얼마든지....”
돈이야 넘쳐 나겠지. 자신의 뒷배에 매년 연초 포브스에서 선정하는 세계 갑부 10위 안에는 늘 드는,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 있었으니 말이다. 백 회장이야 삼명그룹이 아니더라도 현재 자신이 가진 재산만으로도 세계 갑부 30위 안에는 너끈히 들사람이었다. 그를 아버지로 둔 내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돈은 됐고. 뭐 하나 물어보지.”
“뭐, 뭐든 물어보십시오.”
표성수는 지금 정신이 없어서 이성적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걸 노리고 내가 지금 같은 상황을 만들어 냈으니까.
“백 회장이 왜 삼명그룹으로 돌아가려는 거지?”
“....”
나는 내 이 질문에 표성수가 바로 대답해 줄 거라 여겼다. 목숨이 여분으로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 아니었다.
좀 전까지 내 협박에 파리한 얼굴로 덜덜 몸을 떨고 있던 표성수. 그가 내 입에서 백 회장이 거론되자 사람이 싹 돌변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떨고 있던 몸이 진정 되고 파리했던 얼굴이 빠르게 생기가 돌면서, 잔뜩 겁에 질려 확장 되었던 동공이 살짝 줄어들더니 제법 강한 안광이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회장님이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 게 뭐가 문제지?”
표성수의 입에서 너무도 확고부동한, 그래서 마치 나한테 따지는 거 같은 어투의 말이 흘러나왔다. 문제는 그 말에 그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감 같은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사람이 달라진 거 같군.’
나는 나를 날카로운 눈으로 올려다보는 표성수를 지그시 내려다보다가 왼손을 움직였다.
쫘악!
순간 표성수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홱 돌아갔고, 다시 원래자리로 돌아와서는 살짝 찌푸린 얼굴로 다시 내 얼굴을 쏘아봤다.
쫘아악!
다시 내 왼손이 움직였고 이번에는 표성수의 고개가 아닌 몸이 오른쪽으로 홱 돌았다.
“....끄으으으....”
잠시 후 표성수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의 몸이 되돌아서 나를 향할 때, 그는 감히 나를 올려 다 보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에 두었다. 녀석이 감히 항거조차 할 수 없는 내 폭력 앞에 굴복한 것이다. 그걸 보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문제가 되고 말고는 내가 정해. 너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된다. 알겠나?”
“....”
나는 표성수가 말이 없자 왼손을 들었고, 그걸 보고 움찔한 표성수가 황급히 외쳤다.
“알았다. 알았으니....제발 그만 때려.”
그렇게 말하는 표성수의 입안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앞선 내 싸다기에 아무래도 그의 입안 어디가 찢어진 모양이었다. 그런 표성수에게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처 맞기 싫으면 대답을 잘 하라고.”
그 말 후 내 오른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알다시피 지금 내 오른손에는 흉기, 그러니까 군용칼이 쥐어져 있었다.
서걱! 파스스스!
내가 휘두른 군용칼은 녀석의 이마 아래로 내려와 있던 앞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러자 잘린 머리카락이 표성수의 눈 아래로 흩어져 내렸고, 그걸 본 순간 표성수의 얼굴이 다시금 잿빛으로 변하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어대기 시작했다.
* * *
백 회장이라는 배경이 표성수의 두려움을 극복해 내게 해준 일종의 키워드였다면, 좀 전에 준열이 휘두른 군용칼이 표성수의 앞 머리카락을 잘라낸 것은, 표성수로 하여금 내게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거 같다는 절망감을 선사했다. 그래서일까?
“나, 나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강 지부장이 뭔가 중요한 비밀을 알아냈,고 그걸 백 회장님께 알린 것으로 안다. 그 후 강 지부장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신변을 보호해 줄 것을 백 회장님께 요청했고....”
준열은 묵묵히 표성수가 털어 놓는 얘기를 경청했다. 그러다 표성수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준열을 쳐다보자....
“널 살려두면 나에 대해 백 회장 쪽에 알릴 테지?”
“아, 아니. 나는....컥!”
“아니긴 뭐가 아냐?”
이미 준열의 눈에 표성수의 몸에서 회색빛 아우라, 즉 배신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게 빤히 보였다. 그러니 표성수는 살려둘 수 없었다. 뭐 이미 표성수의 왼쪽 목에 군용칼이 꽂혀 있었지만.
털썩!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로 표성수의 몸이 욕조 바닥으로 쓰러졌다. 준열이 잠시 표성수를 내려다보다가 그의 목에 박혀 있던 군용칼을 뽑아냈다. 그러자 군용칼이 뽑힌 표성수의 목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 피분수도 이내 잦아들면서 한 동안 꾸역꾸역 표성수의 몸속에 피를 욕조 바닥에 쏟아냈다.
준열은 군용칼에 묻은 피를 세면대에서 씻은 후 상태창을 열고 인벤토리 안의 개 컨테이너 속에 군용칼을 휙 던졌다. 그리고 내친김에 욕조 쪽으로 가서 이제 거의 피가 흘러나오지 않은 표성수의 시신을 들어서 개컨데이너 속에 던져 넣은 뒤 욕실을 나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준열의 시신이 침대로 향했고 금발 미녀가 추웠던지 이불을 덮은 채 곤히 자고 있었다.
“으음....”
준열은 잠시 고민을 했다. 저 금발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서 말이다.
“내가 무슨 연쇄 살인마도 아니고....굳이 나를 보지도 못한 여자까지 없앨 필요는 없겠지.”
준열은 그 말 후 금발 여자는 살려두고 곧장 표성수의 최고급 연립 주택을 나왔다.
스르륵!
준열의 모습이 그가 처음 연립 주택 앞에서 사라졌을 때의 바로 그 장소에 나타났다. 그는 주위를 한 번 스윽 훑어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서 큰 길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택시 승강장이 보이자 그쪽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 준열은 걸으며 생각했다.
‘나와 강 지부장의 접점이라고 해 봐야....’
이미 처리한 형수 신미나와 두 조카들. 그들의 장례식에 강 지부장이 깊게 관련 되었을 뿐, 준열과 강 지부장은 딱히 접점은 없었다. 준열이 딱히 강 지부장에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지시한 적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다면....그 장례식과 연관이 있다는 건데....’
준열은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횡단보도 앞에서 멍하니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보행자 신호등이 켜졌는데, 순간 준열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으니....
‘맞아. 강 지부장이 그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뭔가를 알아 낸 거야.’
그게 아니고는 강 지부장이 굳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신변을 지켜 줄 것을 백 회장에게 부탁할 리 없었다. 왜냐하면 준열을 막아 줄 존재가 강 지부장이 생각했을 때 그의 부친인 백 회장 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두 조카들의 죽음에는 그 어떤 단서도 없었다. 애초 그런 걸 남길 준열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준열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는 법. 뭔가 그가 모르는 단서가 있었고 그걸 강 지부장이 발견해서 백 회장에게 넘겼다고 보면....
‘모든 게 딱 맞아 떨어져. 백 회장이 왜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려 하는 지도....’
준열의 생각이 맞다면, 지금 백 회장은 자신의 손자들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 복수의 대상이 자기 아들이자 삼명그룹 후계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군.”
이렇게 되면 삼명그룹을 두고서 백 회장과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말은 곧 준열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얘기. 그 전에 이곳 미국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이 준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운데, 준열은 어느 새 택시 승강장에 도착해서 비어 있는 택시의 문을 열고 있었다.
* * *
준열은 원래 오늘 밤 안에 두 명을 만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만난 표성수 지사장을 통해 알아낼 건 다 알아낸 탓에 굳이 두 번째 인물은 찾아가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준열이 표성수 지사장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만나려던 인물은 바로 미국 동부 최대 범죄조직의 보스 아놀드 바르시니. 그는 준열의 여자인 타미라와 그를 다치게 만들 뻔한 그 부르가 용병단을 뉴욕으로 불러들인 자였다.
그 자를 통해서 준열은 백 회장의 미국 쪽 인맥을 알아 낼 생각이었다. 그 인맥을 쭉 타고 올라가다보면 그 끝에 아마 백 회장이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준열은 백 회장이 왜 자기 자리를 되찾으려 하는 지 알게 될 거라도 봤다.
하지만 백 회장이 왜 자기 자리를 되찾으려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순간, 굳이 그 미국 쪽 인맥까지 자신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해서 준열은 택시 기사에게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가 달라고 말했다. 그 뒤 팔짱을 끼고 창밖을 쳐다보며 준열은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감히, 나와 내 여자를 해치려 한 자를 그냥 둘 수는 없지.”
해서 준열은 조만간 아놀드 바르시니를 찾아가기로 했다. 더불어 그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배후를 알아낸다면 그 배후까지 조져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자신의 일을 거의 대행하고 있는 자신의 수행비서 김종훈 과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까지 뉴욕으로 넘어오라고 말이다. 그랬더니....곧바로 김 과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준열은 그 전화를 바로 받았다.
“여보세요?”
그랬더니 김 과장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준열에게 물어왔다.
-부회장님. 또 뭐가 문젠데요?
준열도 알고 있었다. 김종훈에게 강남에 건물주를 만들어 주겠다는 미끼로 그를 너무 부려먹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바짝 날이 선 김종훈의 말에도 준열은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이제 그만 한국으로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아. 자세한 건 내일 만나서 얘기하고.”
평소와 확연히 다른 준열의 심각한 목소리. 김종훈도 그 정도는 눈치를 챈 듯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따.
-지금 아틀란타라서....비행기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미국이란 땅이 워낙 넓어서 하루 만에 가지 못하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준열을 태운 택시가 그가 묵고 있는 호텔에 도착했을 때 김종훈으로부터 긍정적인 연락이 왔다.
새벽 비행기가 있어서 그거 타고 두 군데 경유해서 날아오면 내일 저녁쯤에는 뉴욕에 도착할 거라고 말이다.
준열은 김종훈에게 왜 바로 뉴욕으로 오지 두 군데나 경유해서 오는지 묻지 않았다. 그거야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일 김종훈이 뉴욕에 온다는 거고, 그가 오면 구체적으로 그동안 준열이 미국에 벌려 놓은 일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할지 얘기가 가능했다.
준열은 가급적이면 김종훈을 미국에 남겨 두고 그로하여금 자신이 미국에 벌여 놓은 일을 계속 추진해 나가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재가 없어. 있어도 믿을 수가 없고.”
이동훈 실장이야 내 사람이 확실하지만 한국에 가서 내 수족처럼 움직여 줄만한 인재는 삼명그룹 내에서는 없었다. JYB엔터나 블랙머니 투자사에서야 쓸 만한 인재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당장 삼명그룹 일에 끌어다 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김종훈은 달랐다. 한국에서도 삼명그룹에서 스파이로 일을 했고, 또 미국에서 일을 하면서 삼명그룹 쪽의 일에 깊숙이 관여를 한 상황. 한국에 가면 김종훈 만큼 확실하게 내 수족 역할을 해 줄 인재는 없었다. 해서 나는 무조건 김종훈을 한국에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JYB엔터 쪽 인재들을 대거 삼명그룹의 핵심 주요 부서에 박아 놓을 것을....”
뭐 어차피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미리미리 준비를 해 놓았을 수도 있었던 걸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자신의 여자들이 다들 잠들어 있었기에 준열은 최대한 기척을 내지 않고 자신의 로얄 스위트 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번 밤 외출에서 준열이 땀을 흘릴 정도로 몸을 쓰지는 않았다.
“에이....귀찮아.”
준열은 씻기 싫어서 그냥 이대로 자기로 하고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스르르 수마가 몰려왔고 그대로 깊은 수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허헉!”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준열은 꿈을 꿨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잠에서 깬 것은 그가 악몽을 꿨고, 그 악몽은 순전히 그의 미래 예지 능력에 기인했다.
즉 준열의 미래 예지 능력은 그 자신과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위해가 가는 일이 미래에 생겼을 때, 그걸 미리 꿈에서 보여주는 능력이었다. 그러니까 준열이 그 꿈을 꾸는 거 자체가 준열 자신에게 있어서 무조건 악몽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대체 무슨 악몽을 꿨는지 모르지만 준열은 안색부터 좋지 않았고, 온몸이 식은땀이 흘러선지 당장 입고 있는 옷부터 다 축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