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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음악을 하는 집안의 장점이 뭘까? 그건 그 집에 악기들이 갖춰져 있단 거다. 그리고 그 악기들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멤버들 역시 거기서 살고 있다는 거고. 즉 테오도르의 집에서는, 현장에서 하는 즉석 오디션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준열에게 오디션을 제안한 이 집 가족의 일원인 제이시였다. 그리고 제이시의 노트북에는 놀랍게도 노래방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다. 때문에 그 노트북 한대로 웬만한 최신곡의 MR(Music Recorded의 약자로 반주 음악을 뜻하지만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콩글리쉬이다.)을 틀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악기가 준비가 되어도 테오도르의 가족들이 직접 그 악기를 연주할 일은 없었다. 대신 그들은 준열과 같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오디션 참가자들을 지켜보며 그들을 나름 심사했다.
“오오~ 쥴리. 컴온, 컴온. 베이비. 내 손을 잡아 봐. 조금이라도 널 더 가까이 볼 수 있게....”
그래도 JYB엔터의 오디션이랍시고 제이시의 친구들의 70-80%가 JYB엔터 소속 가수들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스톱! 스톱!”
준열이 눈살을 찌푸리며 제이시를 향해 MR재생을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안나라고 했나? 너 엇박자로 노래 부르는 거 알아 몰라?”
“네? 내, 내가 그랬나요?”
“박자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탈락!”
준열의 단호한 말에 얼굴뿐 아니라 귀까지 빨게진 제이시 또래의 여자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오디션 무대를 빠져나갔다. 그걸보고 대기 중이던 다른 아이들이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다가 점점 더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제이시의 친구들이 하나 둘 씩 오디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준열이 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중, 가사 1절까지 다 들은 경우는 여태 딱 두 명 뿐이었다.
나머지 18명의 아이들은 1절가사의 반절도 다 부르지 못하고, 준열에게 제지 당하고 지적질을 당하고 무대를 나와야만 했다.
“자. 다음....”
준열은 힐끗 남은 아이들의 수를 확인하고는, 그의 옆에 다가 온 테오도로가 건네는 시원한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휴우....고마워요.”
준열은 얼음물 한잔을 단숨에 다 비우고 테오도로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준열이 테오도로에게 얼음물을 달라고 한 건 속에 천불이 나서였다.
즉석에서 이뤄진 오디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디션 보겠다고 온 아이들의 실력이 너무 처참했다. 준열이 그나마 1절 가사까지 다 들은 두 아이들도 사실 한국에 있는 연예 기획사의 연습생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준열은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준열이 꾹 참고 있는 건 그를 이 집에 초대해 준 테오도르에 대한 예의 때문. 테오도르도 그 정도는 눈치를 챘는지 거듭 준열에게 머리 숙여 사과를 했다.
“준열. 정말 미안합니다. 제 딸 때문에....”
“아뇨. 뭐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 같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 준열의 속내는 달랐다.
‘정말 내 인생에 있어 몇 안 되는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하루야.’
자신이 왜 저런 기본도 되어 있지 않는 아이들의 노래를, 이렇게 열심히 듣고 있어야 하는지 준열로서는 이 자리가 정말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거 같았다.
“푸훗....하하하하....”
그나마 끼는 있어서 무대 위에서 준열을 웃겨 준 아이와 나름 무대가 익숙한지 가수 흉내를 내며 주위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아이가 있어서,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저랬다.
“우, 우리 함께 걸, 걸어요.....나나, 나나나나나나....우, 우리 함께 가요. 저, 저 푸른 물결 바다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 없이 쭈뼛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저 아이처럼 말이다. 준열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제이시가 있는 쪽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제이시가 궂은 얼굴로 MR을 껐고 무대 위의 아이는 곧 울 거 같은 얼굴로 준열을 쳐다봤다.
“하아....몇 번을 말해요. 노래는 자신감이라고. 자신이 없으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가....”
준열은 앞서 했던 평가를 그대로 다시 읊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무대의 아이는 준열의 얘기가 채 끝나기 전에 무대를 나와 후다닥 떠나버렸다. 그걸 보고 테오도르를 제외한 그의 나머지 가족들이 준열을 보는 눈빛이 좀 더 차가워졌다.
“다음....”
그러던 말든 준열은 오디션을 계속 이어나갔고, 어느 덧 제이시의 집을 찾아온 그녀의 친구들 중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았다.
한데 그 친구는 남자였다. 물론 앞서도 남자 아이들이 무대에 서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남자 아이들과 달리 제이시가 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스틴. 파이팅!”
대 놓고 그 남자아이를 응원하는 제이시. 누가 봐도 저 오스틴이란 남자아이가 제이시의 남친 임을 알 수 있었다. 실제 테오도르를 제외한 그의 가족들도 다들 저 오스틴이란 아이를 아는 거 같았다.
“오스틴. 오늘 멋있어.”
“긴장 풀고 네 실력을 발휘 해 봐.”
그렇다보니 준열도 좀 더 자세히 그 아이를 살펴봤고, 일부러 신경 써서 말까지 건넸다.
“오스틴.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해 봐.”
물론 별 기대감은 가지지 않고서 말이다. 오스틴이란 남자아이는 제이시가 좋아할 만큼 키도 크고 잘 생겼다. 패션 감각과 센스도 갖춘 거 같았고.
제이시 또래 여자 아이들이라면 남친 삼고 싶어 할 외모랄까? 하지만 저 정도 꽃 미남은 한국 연예 기획사에 넘쳐났다. 즉 외모만으로 뽑기에 저 오스틴이란 아이는 준열의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다.
* * *
아이돌 그룹에서 비주얼 멤버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 비주얼 멤버가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건 다른 멤버들이 충분히 커버가 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 비주얼 멤버가 되려면 진짜 잘 생겨야 했다. 어디다 세워 놓아도 자체 발광, 즉 빛이 날 정도의 타고난 외모. 한데 오스틴이란 저 아이는 사실 그 정도 외모는 아니었다. 그러니 첫 인상 만으로 준열의 관심을 확 끌 수는 없었다. 그때 무대에 선 오스틴이 준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오스틴 버틀러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놀랍게 오스틴이 또박또박 한국말로 준열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준열이 움찔하며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 볼 때 오스틴이 제이시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제이시가 MR을 틀었고....
“오오. 베이비. 이 무대 위에서 너를 향해 손을 뻗으면 네가 잡힐 거 같은데....”
오스틴은 R드래곤이 작곡 작사하고 직접 부르기까지 한 노래를 불렀다. 노래 제목은 ‘리멤버(Remember)’로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노래로 승화시켜 부른 노래로, 오스틴은 그 노래를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바꿔서 불렀다.
근데 그 첫 소절을 부름과 동시에 준열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껏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대충 흘려듣기만 했던 그가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고, 지그시 눈까지 감고서 오스틴이 부르는 노래를 제대로 경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준열에게 있어서 노래란 불러서 기분 좋고 행복해지는 음악이었다. 그러려면 노래의 가사가 중요했는데, 그 가사를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목소리, 그걸 준열은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봤다. 물론 음정이나 박자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은 목소리였다. 한데....
‘미친....’
준열의 귀를 후벼 파는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오스틴이라는 제이시의 남자 친구의 뱉은 첫 소절의 노래에서 말이다. 사실상 그걸로 끝이었다.
엔터 업계의 대표인 준열은 R드래곤의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귀가 어디 보통 귀이겠나? 엔텨 업계의 유명 프로듀서들은 가수의 첫 소절만 들어도 해당 가수의 잠재력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유명 프로듀서들보다 실력 면에서 더 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 천재 작곡가가 바로 R드래곤이었다.
그 R드래곤의 능력을 갖춘 준열이 오스틴이라는 아이의 목소리에 지금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감정의 모자람과 더함 없이 그저 말하듯 툭툭 내 뱉는 오스틴의 담백한 목소리.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좀 전까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준열의 입 꼬리를 한껏 위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됐어!’
그런 준열을 보고 제이시가 흥분한 얼굴로 바라보며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그 사이 오스틴의 노래는 계속 이어졌고....
“....멈춰 버린 기억 그 속에....점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사라져 가고....시간 속에 지친 너와 나는 다시....더 늦기 전에 너를 찾아....REMEMBER REMEMBER....”
준열은 영어로 된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노랫말이 가슴에 팍팍 꽂혀 오자 도저히 입가로 번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오스틴이라는 남자 아이의 노래의 전달력이 그의 생각 이상으로 뛰어났던 것이다. 그러며 준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미국에 기획사를 하나 차리던지 해야겠는데....’
오스틴이라는 저 아이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서 한국의 아이돌로 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파이가 작아진다. 반대로 저 아이를 미국에서 한국 연예기획사가 아닌 미국 연예기획사에서 데뷔 시켜 미국의 아이돌로 키워 낸다면....분명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을 터였다.
‘가만....이때 저스틴 비버가 인기를 끌지 않았나?’
확실히 올해 저스틴 비버가 베이비(Baby)라는 곡으로 세계적인 아이돌로 우뚝 섰다.
준열은 오스틴이라는 저 남자 아이에게서 저스틴 비버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해서 그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물었다. 오스틴이 아닌 그의 여친인 제이시에게 말이다.
“제이시. 혹시 저스틴 비버라고 알아?”
“저스틴 비버? 그게 누군데요?”
제이시가 비록 K-pop에 푹 빠져 산다고 하더라도 미국 내에 발매되는 팝 앨범은 꾸준히 듣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저스틴 비버를 모른다? 혹시 몰라서 준열은 저스틴 비버가 불러서 히트 친 바로 그 노래 베이비의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라라라라....루루라라라....룰라라라라....”
하지만 제이시도 그렇고 오스틴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 노래를 처음 듣는 거 같은 반응을 보였다.
‘뭐야? 그럼 진짜 저스틴 비버가....’
준열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구골에 저스틴 비버를 검색했다. 하지만....
‘....없다.’
캐나다 출신인 저스틴 비버는 아직 미국은커녕 캐나다에서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준열도 알 수 없었다. 뭐 알아보려면 알아볼 수는 있겠지만....그걸 당장 알 수 없으니 준열은 바로 관심을 껐다. 지금 중요한 건 보고 있으면 절로 저스틴 비버를 떠오르게 만드는 저 오스틴이라는 남자 아이였다. 그리고....
“준열. 좀 전 당신이 흥얼거린 그 노래....혹시 당신 회사 곡인가요?”
제이시가 준열이 흥얼거린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에 관심을 보였다. 원래라면 베이비는 올해 발매 되었어야 할 저스틴 비버의 싱글로 그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음원이었다. 하지만 그 베이비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맞아. R드래곤이 남긴 노래야.”
“뭐, 뭐라고요?”
준열의 입에서 R드래곤이란 말이 나오자 제이시가 노트북을 팽개치고 곧장 그에게 달려왔다.
“그러니까....당신이 흥얼거린 그 노래가....R드래곤이 남긴 유작곡이란 거죠?”
졸지에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가 R드래곤의 베이비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잠깐 화장실 좀....”
나는 끈질긴 제이시를 겨우 떼어내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JYB엔터의 LA지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곳 지사장은 미국 음반 시장에 대해 잘 알았고, 특히 요즘 미국 가요계에 뜨고 있는 라이징 스타들에 대해 빠삭했다. 그 스타들을 벤치마킹해서 그 정보를 JYB엔터로 보내는 게 그의 주 임무였기도 했고. 해서 미국 연예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그에게 나는 저스틴 비버와 베이비란 곡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현재 미국 가수협회에 등록 된 가수 중에 그런 하이틴 가수는 없습니다. 올해 저작권 협회에 등록 된 노래 중에 베이비란 노래도 없고요.
비록 빌보드 차트에서 최고 순위는 5위 밖에 기록하지 못하지만, 엄청난 음원 판매량과 롱런 등으로 인해 저스틴 비버의 최고 히트 곡이자 2010년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뽑히는 베이비가 미국 음악 저작권 협회에 등록 되어 있지 않단다. 그 말은....
‘내가 등록하면....’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는 내 노래가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