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918화 (91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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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오전에 휘트니스 센터를 다녀온 후 김 비서는 느지막이 점심을 먹었다. 비록 차광막은 있었지만 뜨거운 햇볕이 내려쬐는 호텔의 테라스에서, 김 비서는 마치 여름날 달궈진 비치에서 식사를 하는 거 같은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었군.”

그 사이 얼음이 다 녹아 버린 펀치. 하지만 그럴 줄 알고 시간에 맞춰 음료를 다시 주문해 둔 터라....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룸서비스가 왔음을 알렸다. 김 비서는 굳이 움직이지 않고 방 안을 지키고 있던 경호 팀원에게 부탁을 좀 했다. 그렇게 룸서비스로 새로 얼음이 꽉 찬 레몬에이드를 받아든 김 비서.

“크으....셔”

첫 모금이라 그런지 레몬에이드가 많이 시게 느껴졌다. 그래도 뒷맛의 달달함이 그 신맛을 잡아주었고, 김 비서는 마저 음식을 먹었고 배가 부르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오후에는 뭘 하지?”

준열이 나가고 없었기에 김 비서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때 식후 노곤하니 잠이 왔다. 김 비서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바로 깨달았다. 그렇게 몸을 일으킨 김 비서는 자신의 방으로 갔고 침대에 누웠다. 그랬더니 이내 수마가 그녀를 찾아왔고 그녀는 별 고민도 없이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평소 누리지 못하던 오후에 즐긴다는 달콤한 낮잠을 자게 된 김 비서. 낮잠이란 게 대략 1시간, 길어도 2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김 비서는 3시간을 자버렸다.

“이런....”

그러니까 남들 퇴근 시간이 가까웠을 때 김 비서가 낮잠에서 깬 것이다. 그녀는 서둘러 욕실로 가서 씻고 나왔고 화장을....

“맞다. 화장품 다 썼지.”

미국으로 올 때 혹시 몰라 한 달은 쓸 수 있을 만큼의 화장품을 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그 한 달을 훌쩍 넘을 때까지 미국에 체류할 줄이야.

“화장품 사러 가야 하는데....”

한데 시간이 애매했다. 그녀가 화장품을 사러 근처 백화점을 가면 그 사이 백준열 부회장이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뭐 그녀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었다. 하지만 김 비서가 싫었다. 한국에서 그의 출근과 퇴근을 지켜봐 온 그녀 입장에서, 그가 외출을 나갔다가 들어왔을 때 그를 반기는 게, 이곳에서 그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생활 규범 같달 까?

미리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양해를 구해도 되겠지만 김 비서는 그냥 쿨 하게 생각했다.

“뭐 내일 가지 뭐.”

화장품이야 하루 바르지 않아도 됐다. 생얼로도 누구에게 꿀리지 않을 정도의 미모를 갖춘 그녀가 아니던가? 해서 김 비서는 남은 화장품으로 대충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었다.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서. 화장 대신 옷으로 자신의 미모를 더 커버 할 생각으로 말이다. 그때였다.

그녀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화인지 먼저 확인한 김 비서. 그녀는 후다닥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 아니 부회장님.”

며칠 전부터 준열은 자신을 JYB엔터의 대표 말고 삼명그룹의 부회장으로 부르라고 김 비서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김 비서도 삼명그룹으로 출근하게 될 거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고.

해서 김 비서는 입에 익은 대표님 대신 준열을 부회장으로 부르려고 노력 중이었다.

“네. 네. 아아....알겠습니다. 그럼 20분 뒤에 밑에서 뵙도록 하죠.”

김 비서는 준열과 통화 후 걸치고 있던 화려한 드레스 풍 옷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대신 편한 티셔츠에 청바지로 갈아입은 다음 액세서리로 귀걸이만 착용하고 호텔 방을 나섰다.

* * *

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김 비서. 거기에 딱히 화장도 하지 않은 거 같은 얼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호텔 로비를 직선으로 가로질러 걷는 김 비서는 주위 수컷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저, 저 여자 뭐야?”

“완전 여신이네. 여신. 검은 머리 여신.”

개중에는 그런 그녀와 말이라도 걸어보려 움직이는 수컷들도 몇 마리 있었다. 하지만....

“가드가 있네?”

“쳇....뭐하는 여자야?”

김 비서의 뒤로 그녀와 같은 동양인 건장한 경호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을 본 순간 그녀를 노리던 수컷들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곧바로 호텔 출입구로 걸어간 검은 머리의 여신.

그녀가 호텔 입구 앞에서 잠깐 기다리는 동안 호텔 로비의 수컷들의 시선 중 절반은 여전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호텔 입구 앞으로 차량들이 도착해 줄줄이 늘어섰고 그 중 입구 정면에 가깝게 멈춰선 차량에서 누군가 내리더니 뒷좌석의 차문을 열었다. 그러자 검은 머리 여신이 그 차에 탔고 잠시 후 그 차량들이 줄줄이 호텔을 떠나 어딘가로 가버렸다.

그걸 쭉 지켜봤던 수컷들 중 몇몇이 탄식을 흘리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저런 미녀가 임자가 없을 리 없지.”

“어떤 놈인지 복도 많아. 나도 저런 여자와....”

“꿈 깨. 저런 여자 끼고 다니려면 억만장자는 돼야 할 테니까.”

“그렇겠지?”

“안 그렇겠냐?”

그렇게 자신이 비즈니스 때문에 호텔에 체류 중이던 억만 장자까지는 아니어도 백만장자, 천만장자는 되는 능력 남들을 좌절케 만든 줄도 모른 채, 김 비서는 준열과 같이 차를 타고 근처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품이요? 그걸 어떻게....”

그녀는 준열이 예상한대로 차에 타자마자 그에게 왜 자신을 불러냈는지 물었고, 준열은 사실대로 얘기하는 대신 타미라를 핑계로 댔다. 어째든 타미라가 그에게 부탁을 한 건 맞았으니 말이다.

“아아....타미라가 그렇게 말했구나.”

준열의 대답에 김 비서가 바로 수긍이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타미라가 보기보다 섬세한 면이 많더라고요. 한국에 가도 그런 그녀의 장점을 고려해서 일을 맡긴다면 충분히 제 몫을 해 낼 거라고....”

받은 게 있으니 뭐라도 챙겨 주려는 듯 타미라를 칭찬하는 김 비서. 그런 그녀에게 준열이 말했다.

“타미라가 그러더군. 우리가 남이 아니라고 말이야.”

그러자 그 말이 김 비서도 마음에 든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타미라가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더군요. 남자로 태어났으면....어디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고도 남았을 텐데....”

김 비서의 그 말에 준열도 뭔가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럴 거 같군. 그러고 보니 김훈 대표가 요즘 뭐하고 사나 모르겠네.”

준열은 내친 김에 한국 최대 처리자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김훈 대표의 근황을 물으려고 한국에 있는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준열이 없는 동안 한국에서, 특히 지하세계에서 대폭 물갈이가 있었다. 바로 양태석의 태석파가 서울뿐 아니라 인천에 이어서 경기도의 주요 도시들에 진출하면서, 사실상 대한민국 넘버 원 조직으로 발돋움 한 것이다.

그 점을 높이 산 듯 양태석에게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 중에는 처리자 조직의 우두머리인 김훈 대표도 있었다.

-얘기 듣고 있었소. 다음은 강원도 쪽인가?

“넘겨 짚는 버릇은 여전하시군. 그쪽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예전에도 그랬듯이 양태석과 김훈 사이에는 묘한 경쟁심과 견제감이 흘렀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도 공통분모가 있었으니....

-미국에 간 백 대표는 언제 한국으로 들어온다던가요?

그건 바로 백준열이었다. 김훈에게 있어서 준열은 꼭 잡아야 할 최우수 고객이었고, 양태석은 그를 모시는 입장이니 두 사람에게 백준열은 진짜 중요한 사람이긴 했다.

“쯧....그게 궁금하면 직접 연락해서 물어보면 될 일을....”

왜 그런 걸 자신에게 묻느냐며 양태석이 못마땅해 할 때였다. 김훈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직접 전화했다가, 또 무슨 덤터기를 덮어 쓰려고.

앞서 김훈이 준열에게 많은 부분 착취를 당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양태석이었다.

“....”

해서 김훈의 그 속마음이 누구보다 잘 이해가 되었기에 양태석이 침묵했는데, 그때 김훈이 끌끌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잘 안다고....역시 양 상무가 그걸 알아주니 고맙군.

그러자 양태석이 바로 대꾸했다.

“양 상무가 아니라....양 전무요.”

-상무나 전무나.

“뭐요? 상무와 전무가 어떻게 같아? 당신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하지만 둘 사이는 마치 물과 기름과 같아서 결국은 대화 끝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 전 김훈 대표와 통화를 했던 양태석. 그런 그에게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누구 전화인지 아는 양태석은 반갑게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부회장님. 네. 네.“

백준열과는 적어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통화를 해왔기에, 두 사람 사이의 통화는 한국에서처럼 매끄럽게 이어졌다. 한데....

“김훈 대표 말입니까?”

갑자기 준열이 처리자 에이전시 쪽의 김훈 대표를 언급하자 양태석의 얼굴이 팍 굳었다. 하지만 화상으로 통화 중이 아니었기에 그 모습을 준열이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귀신 같이 상대 기분을 알아차리는 준열이었다.

-왜? 둘 사이....여전히 그런 거야?

양태석과 김훈의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좋지도 않음을 잘 아는 준열이었다.

“네. 뭐....”

-하긴 한 산에 두 마리 호랑이가 같이 살 수는 없긴 하지. 그런데 말이야. 이 ‘나’라는 산은 워낙 그 영역이 넓어서 두 마리가 아니라 백 마리가 살아도 상관없으니까, 양 전무도 김훈 대표 신경 쓰지 마. 뭐 하러 그와 밥그릇 싸움을 해? 주위를 둘러보면 먹을 거 천지인데.

준열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양태석이 아니었다. 사실 김훈의 처리자 에이전시와는 서로 협력하는 것이 태석파의 미래에도 좋았다. 그걸 알지만 막상 그와 만나거나 얘기를 나누게 되면 이상하게 호승심이 일었다. 그것까지는 양태석도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그는 생각했다.

‘앞으로 그놈과는 상종을 말자.’

비록 상종할 일이 생겨도 자기 말고 대리인을 내세워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준열의 말처럼 처리자 조직과 엮이지 않고도 태석파가 먹고 살 길은 그야말로 넘쳐났으니까.

-쩝....보아하니 내가 직접 김훈 대표와 통화를 해야겠네. 알았어. 아아. 그리고 나 이번 주말에 한국으로 간다.

“네?”

준열의 폭탄 발언에 양태석이 깜짝 놀랐다. 그럴 것이 이번 주말라고 해 봐야 오늘 빼고 나면 2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 * *

아직 두 곳 정도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티는 곳이 있었지만, 김훈의 처리자 에이전시는 사실상 서울의 처리자 조직을 다 흡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처리자 에이전시의 이름은 바로 ‘블루문(Blue-moom)’이다.

김훈은 그 블루문의 창립식을 거창하게 벌이고 싶었다. 그 동안 처리자 조직은 조폭 조직들보다도 더 어두운 곳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김훈은 자신의 직원들이 결코 그렇게 살게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에는 여러 부작용과 반대급부가 있을 터였다. 당장 자신의 밑에 처리자들 부터가 밝은 세상으로 나가는 데 대해 지금도 반대를 하고 있었고. 아마도 지금의 처리자의 삶에 길들여져서 새로운 처리자의 삶에 대한 이질감이 클 테지. 그러나 궁극적으로 사람은 밝은 데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으니까.

김훈은 그 점을 자기 밑에 처리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지금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처리자들을 한데 모아서 강연이라도 벌이고 싶었다. 그러나 처리자라는 자들의 특성이 그랬다. 바로 독고다이 말이다. 그렇다보니 김훈으로서는 그들과 일일이 만나서 설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지금까지 그의 설득에 처리자들이 다들 넘어오고 있단 점.

물론 쇠심줄이라도 삶아 드셨는지 그의 말을 곡해하고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처리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김훈은 주먹을 내세웠고 매 앞에 장사 없다고 그 골통 녀석도 김훈의 주먹 앞에 굴복했다. 그리고 그의 인도를 받아 밝은 세상으로 나온 그 골통은, 지금 그 어떤 마음을 바꿔 먹은 처리자보다 더 충실한 김훈의 지지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 김훈이 타고 이동 중인 차의 운전석에서 운전 중인 것도 바로 그 골통 녀석이었고.

“현석아. 내일부터는 한 시간 늦게 움직이자.”

“네. 대표님.”

매일 아침 7시면 집 앞에 와서 대기 중인 녀석에게 김훈은 아침 식사라도 하고 올 수 있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 동안에야 설득할 처리자들이 많아서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이제는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아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매일 10명 이상을 만나왔던 김훈도 오늘부터는 5명으로 그 수를 확 줄였다.

그로인해 생긴 여유 시간 동안 김훈은 처리자 에이전시의 훈련교본을 만들 생각이었다. 때문에 차로 이동 중 그의 머릿속은 어떤 식으로 교본을 만들지를 두고 고민 중에 있었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힐끗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김훈. 어째 걸려 온 전화의 번호가 길었다.

“국제전화?”

잠시 고민하던 김훈은 그 국제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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