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73화 (73/250)

Chapter 73 - 선술집을 나오다.

"로만···엘프에게 흥미가 일절 없어 보이는군? 영애 때문인가?"

제법 날카로운 키티···가 아니라 에클레어의 질문에 나는 참지못하고 낄낄 웃었다.

"흥미가 없다라. 그래보여?"

"이래 봬도 남성이 대부분인 집단을 통솔하고 있는 몸이다. 인간의 시점에서 엘프는 미의 결정체·· 욕정을 떠나 예술품을 봤다는 감상조차 없다는게 이상하다는 거다. 어딘가 문제라도 있는건 아니겠지?"

이럴때 보면 황실 기사단장은 역시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다. 남자가 엘프를 보고 무덤덤하다고 건강까지 가다니.

생각보다 진지하게 꺼낸 이야기인지 에클레어는 양손으로 턱을 괴고 나를 보았다.

"아픈건 아냐. 완전 멀쩡해."

"정말인가?"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애매한 타이밍에 주문했던 음식이 테이블에 놓이면서 이야기 템포가 한번 늦어졌다.

"호색한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저 모험가가 완벽한 이목구비를 보유한 엘프들을 보고 어째서 반응이 없는가? 그런 의문이 생기는 것도 당연해."

"···여기에 당연하다 할 이유까지 숨어있나?"

우리가 할 일은 림노에 섞여들어 커틀러 듀어를 특정하고 가능하다면 관련된 인물들의 위치파악까지 하는것.

어차피 지금 선술집에서 할 수 있는건 몇가지 정보만을 가지고 닮은 인물이나 주워들을 소문이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에서 끝이다.

여기 앉아 의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것 보다 시덥잖은 잡담을 주고 받으며 눈이나 가끔 굴려주는게 반대로 훌륭한 임무수행이 되는 것이다.

"남자라는 생물에 대해 보고, 듣고, 혹은 서책으로 익혀온게 있지만. 정작 '친구'인 로만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다는 뜻이지."

주위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눈으로 확인한 에클레어는 작지만 매끄러운 호선을 보이며 웃었다.

"사담을 나누기에 썩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군."

"술은?"

널려있는 음식점을 두고 가성비 안좋은 선술집에서 밥만 먹는 무리만큼 이상한게 있을까.

처음 권유와 달리 에클레어는 호쾌하게 받아들였다.

"조금이라면."

-

내 머리에 존재하는 이미지상 고급스러운 와인이나 유리를 멋지게 세공한 양주병만 뜯을것 같은 에클레어 드리트나였지만.

예상외.

동화 몇개로 살 수 있는 싸구려 럼도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이런 술도 나쁘지 않군. 야성미라 해야할지··본연의 맛이 강한게 마음에 들어."

"의외네. 이게 입맛에 맞을거라 생각못했어."

술잔을 비운 그녀는 병을 들어 자신의 잔과 내 잔에 술을 꼴꼴꼴- 채워넣었다.

"그 말을 들으니 서로에 대해 모른다는게 확실히 이해되었다."

후아-!

가득담은 한컵을 스트레이트로 들이키자 뜨거운 숨이 터져나왔다.

일을 하는 중이라는건 인지하고 있기에 촉감이 둔해지는 취기를 살짝 즐기다가 마나로 풀어낸다.

"우리 키티의 첫 의문부터 해소해볼까?"

"···."

"그냥 알려주면 재미없으니 한번 유추라도 해보는건 어때? 나는 저 엘프들에게 관심이 없는게 맞아. 어째서일까?"

종족과 성별을 가리지않고 뜨거운 눈길을 받고있는 엘프 종업원들을 한번 보고 에클레어는 추론을 몇가지 내놓았다.

"그녀가 존재하는 이상 동성애자라는 가능성은 없겠지···일차원적인 의견을 내보자면 외모가 애초에 관심을 가지는 전제 조건이 되지 않는다거나. 특정 종족 자체에 거부감인가?"

"키티 ~ 답이라는걸 찾기 위해서는 등잔 밑 부터 봐야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고? 그쪽은 내 소문을 누구보다 열심히 수집했잖아."

황실에서 의뢰를 주기전에 내 입소문을 얼마나 긁어모았는지 알고있다.

에클레어는 파문이 일어나는 술잔을 보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니, 처녀를 선호한다는게 모든 조건보다 앞에 있다고? 혹시 그 소문이···."

"자랑거리가 아니라서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친구에게 소문을 확인시켜주자면 - 예상하다시피 이거거든."

흉터 가득한 손가락 하나를 뾰족하게 세워 이마에 붙인다.

그와 동시에 에클레어가 보여주는 어이없다는 표정은 실로 나쁘지 않은 안주다.

"절제를 업으로 삼는 기사나 귀족 중에는 가끔 존재하지만, 이름있는 모험가 중에서 유니콘 피를 마신 인물을 보는건 처음이다···."

자유로움을 내세우고 최고가치로 삼는 모험가가 자기 손으로 족쇄를 건다는건 흔하지 않은 그림이긴 하다.

"나도 나 말고는 본적 없어. 있는데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경우일지도 모르고."

"꺼낼 이유가 없긴 하지···그녀도 알고있는 사실인가?"

에클레어가 말하는 그녀라 함은 리케를 지칭하기에 나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지금 사이가 되기 전부터 언급 할 기회가 있었거든."

"어쩌다 그 이야기를 언급하는 상황이 있었는지 모르지만···둘의 관계는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씹을거리를 추가 주문하자 견과류와 말린 생선이 담긴 나무그릇이 나왔다.

짭짤한 가루가 뿌려진 땅콩을 씹으며 이번엔 내가 에클레어의 술잔을 채웠다.

"일이 아니잖아? 궁금한건 속에 삼키지말고 일단 물어봐."

"···그렇지. 이건 그런 자리가 아니지."

"서로 외부로 유출만 하지 말자고."

에클레어는 술잔을 한번에 비우고 웃음기를 담아 말했다.

"앞의 이야기도 그럴 일이 없다는걸 알고 말해준것 아닌가?"

"···눈치가 빠른데."

"그럼 사양하지 않고 호기심을 해소하겠다."

"들어와."

말린 생선을 씹으며 그녀의 질문을 기다렸다.

"경위는 모르지만 유니콘의 피를 마셨다면···후회하지 않나? 잔병치레가 없다시피 한 활력은 행복 중 하나라 생각하지만 그런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당연하게 여기며 살게 되지않나."

"후회라. 확실히 순결함을 떠나 좋은 여자들은 많았으니. 가치관이 완전히 자리잡기 전에는 '저 여자랑 만났다면' 그런 가정을 하며 아쉬움도 느끼긴 했었지."

"그 말은 가치관이 완전히 자리한 지금은 아니라는 것인데. 그녀를 만났기 때문인가?"

내 머리에 있는 이걸 뭐라 설명해야할까.

나는 머리가 먹히고 꼬리만 남은 생선을 펜처럼 빙빙 돌리며 생각을 거듭했다.

"키티. 혹시 5일 전 저녁에 뭘 먹었나 기억할까?"

남들이면 당장에 모른다 할것을 그녀는 한참을 고민했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군."

"나는 민트젤리를 곁들인 양고기였어. 특별한 날도 아니지만 기억하고 있지."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것 아닌가?"

에클레어는 술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순박한 얼굴을 보여준다.

그것이 기실 이 자리의 백미.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키티. '기사는 명예롭고 모험가는 자유롭다' 말하지만 속을 까보면 다른 생물의 내장을 칼로 쑤시고 폼멜로 머리통을 깨서 살아가고 있는거잖아."

"인지하고 있다. 딱히 기분이 상할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런 녀석들. 다른 생명을 지우고 피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진짜 중요한건 살아 돌아온 이후 -."

꼬리만 남은 생선을 으적으적 씹으니 에클레어가 내 말을 이어받았다.

"전투의 후유증이나 스트레스의 관리를 말하는건가?"

"역시 똑똑하네 바로 그거지 그거. 모험가에게는 술이나 잠자리 같은 방법이 대표적이지."

"우리 단원들도 크게 다른건 없다만···5일 전 저녁 이야기를 꺼낸건 스트레스 관리를 먹는 것으로 하고 있다는 뜻인가? 무척 건전하다 생각한다."

"내가 한 말을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지. 하지만 폭식이나 미식을 말하는게 아니라면?"

"속뜻을 숨긴거라면···이야기는 돌만큼 돌았다 생각한다."

답을 기다리는 에클레어의 잔에 마지막 잔을 채운다.

"쾌락은 정신을 관리하는데 큰 도움이 돼. 누구도 부정 못할 사실이고. 그건 잠자리가 될수도 있고 전날이 기억나지 않을만큼 진탕마신 술이 될수도 있지."

"···."

"이제부터는 내 개인적인 견해와 기준이라는건 명심하고 들어. 그래야 이해가 될거다."

"명심하지."

"잠자리나 술에서 오는 쾌락은 단순하면서도 강해. 하지만 정신이 힘들어질 때마다 그런 것들로 해결하면 점점 기준선은 높아지고 쾌락에 무뎌지지. 그때는 두개를 합하거나 어떤 비윤리적이고 배덕적인 행위가 포함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수습되지 않는 순간이 오게 돼."

에클레어는 귀를 열어두고 마지막 술잔을 단번에 넘겼다.

"나도 정신이 지쳐서 애를 쓴 시간이 있었거든. 그때 답을 찾은건···지루할테니 바로 결론으로 가자. 한번에 몰아치는 쾌락이나 행복이 아닌, 꾸준하고 소소한 행복들을 계속 자각하고 의식하고 지내면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거지."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그렇기에 더 어려운 방법이군."

"나에겐 5일 전 저녁도 그 다짐의 파편이지. 양고기도 무척 맛있었지만 호불호가 강한 민트젤리를 내가 못먹을까 긴장하는 리케의 표정이 엄청 귀여웠거든."

"하 ㅡ!"

마지막에 헛웃음을 터트리는 에클레어에게 나는 마무리 설명을 이었다.

"좀 더 나아가 - 만약 키티의 동생이 언니를 위해 저녁을 준비했다 치자. 그 요리의 맛이 어떻든 먹으면 행복하겠지?"

"···그렇다."

"거기서 행복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자체적으로 추가하여 느끼는 법은? 재료를 구입하고 손질하며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동생의 모습을 연상하는 법이 시작이다! 간단히 이런 뜻."

"모든 행위에 그런식으로 연관을 지어서 상상하는건가··?"

"내 여자가 해주는 많은 것들에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려면 이런게 당연한거지."

"···제국의 남자라 하기엔 이질적이군."

"이런건 연방국 스타일인가?"

"그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너무···독특해."

어떤 이야기를 하다 여기까지 왔더라?

유니콘의 피를 마신걸 후회하냐는 이야기였구나.

"처음으로 돌아와 답을 내자면. 후회한 순간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거지."

··

··

선술집에서 큰 수득 없이 나온 우리는 빠른 일처리를 위해.

둘이 찢어져서 의심가는 가게를 살펴본 뒤 숙소에서 모이기로 했다.

"일단 오늘은 의심이 되는 가게만 한번 돌아보고 끝내겠다."

"끝나고 보자고."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