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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51화 (151/250)

Chapter 151 - 고민이 많은 시기 -1-

레오 플로이드의 입장에서 상상도 못 했고 상정한 적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오늘?

그 성녀가 온다니.

에클레어는 전날에 연락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단원인 레오는 당일이 되어서야 알았다.

"눈치도 없고 몸뚱이도 병신인 년이··· 씨발-!"

매번 성녀의 뜬금없는 기행에 교단도 행사 준비를 서두를 공직자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하기는 했지만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

레오 플로이드가 오늘 아버지의 이름까지 빌려 에클레어에게 뜬금없이 청혼을 한 건.

자신이 생각해도 제법 높은 확률로 실패할 결과를 상정하고 있었지만 행동의 방향성을 정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찔러본 것이다.

이 상하관계로는 평생을 가도 자신의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지금부터 결과에 따라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흑마법사에게 떠넘겨 받은 구슬과 그걸 담는 검은 주머니.

어지간한 교단의 인물이 와도 '아마도' 들키지 않을 거라 말했지만 교단의 성녀 앞에서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무리다. 그년은 소문만 들어도 보통이 아니야··.'

애초에 목숨까지 걸고 도박을 할만한 상황이 아니다.

비록 몸은 허약하지만.

안락한 수도를 벗어나 소외된 자들을 만나 교단의 교리를 설파하고 불우한 자를 돕는다.

자애로움을 대륙에 뿌리고 다니는 미녀라 하지만 고위 귀족의 일원인 레오는 알고 있다.

흑마법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 중 한 명이 그녀라는 걸.

그 여리여리 하고 벌레 하나 못 죽일 것 같은 얼굴로 악마나 이교도, 언데드, 흑마법사 같이 섭리에 반하는 것들은 마주치는 즉시 찢어 죽인다고 들었다.

다른 집단의 인간들에게 칭찬과 인정에 인색한 아버지도 성녀의 성법술을 실제로 보고 감탄했다고 말할 정도니.

지금 흑마법사의 물건을 몰래 소유하고 있는 레오가 여기 있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이걸 떼어낼 수만 있어도··!'

사악함과 불신의 대명사 악마가 중재했다 해도 마나로 이루어진 계약은 무조건 계약서의 내용대로 간다.

레오가 아무리 봐도 자신이 이득인 흑마법사와 철두철미한 계약을 하고 주머니까지 통째로 건네받은 그날부터.

이상하게 몸에서 이 구슬을 떨어뜨릴 수 없다. 멀어지면 불안해지고 손발이 떨려온다.

이건 흑마법이나 구슬이 내포하고 있는 힘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몇 명인지 모를 제물로 만든 그것이 계약을 어기고 레오에게 해를 끼치려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주머니를 뚫고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사념에 노출된 레오가 붙들린 것이며.

레오의 정신이 사념에게 잠식당하고 오염당하는 속도는 범인과 비할 수 없이 빨랐다.

이것도 재능이라 한다면 레오는 천재요.

살아온 삶의 형태와 천성을 더 한 진성으로 글러먹은 노력과 재능의 영역이다.

부정에 찌든 정신은 자는 순간에도 품에 그것이 있어야 할 만큼 의존증을 불러일으켜 왔고.

구슬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이 없으면 잠에 들 수 없었다.

성녀를 맞이하는 행사를 준비할 때 아프다고 빠지거나 자리를 비우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때까지 성녀의 행적을 생각하면 수도에 있을 때 수시로 제국의 기관을 돌아다니며 공직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계속 피하기도 힘들 것이고 제일 큰 문제는···.

해가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술과 여자 생각으로 미칠 것 같았고 성욕의 해소가 간절했다.

저벅-

"후우- 존나 남자다웠다··."

평소에도 과하다 지적받아왔던 즉흥적인 감정과 판단이 발광하듯 강해져 청혼장을 던지고 덤으로 사표도 던졌다.

문을 나와 단장 앞에서 자신이 벌인 발작에 가까운 미친 행동들에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널려있는 가게들을 보는 순간 레오의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모르겠다··! 술이나 마시자.'

어차피 에클레어가 아니면 귀찮게 새벽에 출근하거나 밤늦게 퇴근할 때가 허다한 황실에 있을 이유도 없고 그녀와 상하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야 아버지 밑으로 소속되어 영지의 기사가 되면 앞날은 창창하니.

*****

약속 장소로 정하고 만난 곳은 외곽이지만.

클로에가 로만을 안내한 곳은 다시 수도의 중심부로 조금 가까워지는 방향이었다.

하루하루 고민을 하며 클로에가 결정한 음식점은 별실이 달린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었다.

이건 귀족들끼리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자유를 가치로 하는 모험가라는 강한 색채를 가지고 있는 오라버니에게 그런 자리는 되려 불편하지 않을까.

'정말로 배가 부르기 위해 든든한 식사를 하는 자리··.'

애초에 레스토랑은 실패가 없는 무난한 선택지지만 오라버니의 배를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

자신이야 코스 요리면 충분하지만 에너지 소모량 자체가 다른 오라버니는 부족하지 않을까?

코스 이외에 추가 요리를 시켜도 되겠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조금 더 힘을 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발품을 팔았다.

리케는 항상 아카데미가 끝나면 바로 사라져서 같이 오지 못했지만.

세리아와 아카데미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겸해 미리 사전탐방을 거친 곳으로.

귀족이 아닌 평범한 가정집 수준에서 특별한 날이나 한턱 크게 쏘는 날에 오는 음식점.

"··여기에요."

"분위기 좋네~ 활기차고."

메뉴를 보면 간결한 레스토랑 느낌도 나면서 가정식까지 겸해서 판매하는 곳으로.

함께 왔던 세리아도 언니와 같이 와야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요리의 맛도 합격점.

거기에 방음이 제대로 되는 별실까지는 아니라도 칸막이가 제대로 되어있어 주위의 시선이 몰리지 않아 좋았다.

적막한 침묵보다는 적당하게 들려오는 소음들이 어색함을 밀어내준다.

자리에 앉기 전에 카디건과 박스를 건네받은 클로에는 카디건과 조화 한 송이를 옆 자리에 두고.

술병이 안치되어 있는 네모난 박스를 로만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제가 답례로 준비한 물건이에요·· 괘, 괜찮으시면 받아주세요··!"

"밥만 먹어도 충분한데. 그래도 클로에가 준비해 줬으니 잘 받을게."

"···."

자신의 손을 떠나는 답례품을 보며 클로에는 긴장감에 침을 꼴깍 넘겼다.

"지금 확인해 봐도 괜찮아?"

"대단한 건 아니지만··· 네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만이 손을 움직였다.

포장된 박스 안을 확인 한 오라버니의 눈에서는 놀라움이. 입에서는 미소가 번졌다.

"호-! 이거 윈터뱅크잖아! 인기가 많아서 구하기 힘들 텐데 어떻게 구했어?"

오라버니의 진심 어린 반응을 보니 갇혀있던 긴장감이 일시에 해방되며 육체와 정신이 느슨하게 풀려왔다.

"전문점에 갔더니 마침 딱 하나가 남아있어서 운이 좋았어요. 헤헤··."

"이야···그런 경우가 있나? 아무튼 고맙다. 잘 마실게."

세리아의 언니분이 가게 직원과 이야기하더니 마침 딱 하나 남았다며 창고에서 꺼내줬던 물건.

자신의 용돈 선에서도 부담이 없는 가격임에도 희소성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좋은 분을 만난 덕에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한테 고, 고맙다고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야말로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나한테는 빙정보다 클로에가 준 이 술이 더 귀하게 느껴지는데. 고심했다는 게 느껴지는 답례품이라 감동했어."

직진으로 들이박히는 말에 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비비적거리며 입을 우물거리던 클로에가 주제를 슬쩍 돌렸다.

"메뉴··! 보시겠어요?"

··

··

소소하다고도 말하기 힘들 정도의 영양가 없는 잡담을 하며 기다리자.

두 명이 먹기에는 과해 보이는 양의 요리들이 자리했다.

식사를 시작하고 빠르게 비워지는 접시를 보며 클로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음식은 부족하지 않으세요? 입맛에 맞지 않으시거나··."

"양도 푸짐하고 요리들이 집에서 해 먹는 느낌이 나서 좋네. 클로에가 좋은 가게를 알고 있구나."

"헤헤··."

지금을 위해 용기를 내고 노력한 것들이 허사가 아니라는 걸 실감한 클로에가 배시시 웃었다.

"아카데미는 어때? 나야 주에 한번 수업을 하다 보니 생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단 말이지."

"친구들도 너무 좋고·· 매일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있으니 하루가 보람차다 느껴져서 그냥 좋아요··."

세리아와 리케가 그리 좋은지 생각만으로도 웃음을 짓는 클로에를 보며 로만은 흐뭇하게 웃었다.

"하루가 보람차면 걱정과 잡념이 줄어서 잠을 푹 잘 수 있지. 확실히 클로에는 잘하고 있어."

확실히 숙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 자신이다.

어쩐지 부끄러운 모습을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자, 잠을 잘 자는 건 맞지만···! 매일 실수만 하는데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요··."

칭찬을 받고도 습관적으로 부정하고 투정까지 부렸다는 생각에 클로에는 깜짝 놀라서 정정을 하려 했지만.

로만은 턱의 흉터를 톡톡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클로에.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해. 이것만 해도 내 실수이자 실패의 흔적이지. 거울에 비치는 이 흉터를 볼 때마다 그때를 상기하며 정신을 다잡기도 하고."

"···."

클로에가 조용히 말을 듣고 있자 로만은 컵에 있는 물을 비우고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실수는 결국 성공을 위한 계단이자 발판이 되는 거야. 실수를 하고 클로에처럼 기억을 하고 있는 것과 그걸 고찰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인간의 사이에는 점점 간극이 생겨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차이는 메꿀 수가 없다 생각해."

"···."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 클로에를 보며 로만은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분위기를 풀어냈다.

"눈치 볼 필요 없이 속에 있는 말을 편하게 해도 좋아. 내 말을 부정해도 이상한 게 아니야."

한참 뜸을 들이던 클로에는 자신의 손을 보며 우물쭈물 이야기를 꺼냈다.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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