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7. 스킬을 배웠습니다.
남자일 때 어두운 골목을 지나가도 딱히 두렵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생전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게 느껴졌다.
불빛이 없는 으슥한 골목길에 인적마저 드문 곳. 고등학생 남자 다섯 명이나 내게 다가온다면 내가 남자였어도 이건 겁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거기 예쁜 누나!"
"휘이이익~ 누나! 여기 좀 봐요!"
"누나아! 우리랑 좋은 곳으로 놀러 가요!"
나도 모르게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줄 알았는지 빠르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야, 핸드폰 뺏어!"
확실하네. 핸드폰을 뺏으라고 하는 거 보니까. 난 메시지를 확인한 뒤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갑자기 내가 멈춰서 몸을 휙 돌리자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제자리에 멈춰선다.
"너희들 뭐야!"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지르며 주변에 혹여 듣는 사람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와! 씨! 대박!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뻐!"
집에 가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 내가 평범한 여자였다면 지금 이 상황이 무척이나 두려웠겠지. 아니, 방금.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무서웠지만 이젠 조금 달랐다.
띠링!
문자가 온 소리가 핸드폰 화면이 밝아진다. 난 핸드폰 화면을 봤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정의를 구현합시다.
보상 : C급 스킬 쿠폰 1개
그래, C급 스킬 쿠폰 줄 때가 됐지. 난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들었더니 어느새 다가왔는지 꽤나 키가 훤칠한 학생 한 명이 내 핸드폰을 뺏어가려고 하기에 손가락을 덥석 붙잡았다.
"아아아악!"
그대로 붙잡고 손가락을 꺾어버렸다. 그러자 그놈은 아주 죽는소리를 낸다. 어깨를 잔뜩 치켜올리고 입을 있는 대로 벌리며 온몸을 비비꼬는 모습에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내가 확! 하고 손가락 꺾으면 부러지겠지?"
"아아아아아!"
힘을 조금 더 줬더니 정말 부러진 것처럼 앓는 소리를 내기에 난 피식 웃으면서 조금 장난을 쳐봤다.
"확!"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 손! 내 손가락!"
손가락을 조금 더 꺾고는 밀쳤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자신의 손을 붙잡고 우는 소리를 낸다. 친구들이 놀라서 그 친구를 부축하며 손가락을 살피며 내 눈치를 본다.
"야야. 안 부러뜨렸어. 하여간에 남자가 엄살은 심해가지고."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심하단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한 놈이 빈정이 상한 모양이다.
쭈그려 앉아서 손가락을 살피던 놈들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오더니 말한다.
"이게 예쁘다고 봐줬더니. 확, 그냥!"
손을 치켜 들어 올리며 금방이라도 때릴 기세이기에 난 고개를 기울여 때리기 편하게 만든 후 말했다.
"왜? 치게? 쳐! 쳐 봐! 누나 돈 좀 벌자."
내가 가까이 다가가 뺨을 대줄 줄 몰랐는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난다. 겉멋만 잔뜩 들었지 고딩은 고딩이다.
난 피식 웃으면서 여전히 치켜 올라간 손목을 붙잡고는 말했다.
"안 그러면 누나가 교육 들어간다."
난 그대로 몸을 빙글 돌려 업어치기를 했다. 깔끔하게 들어간 기술에 그놈은 그대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됐다.
"커헉!"
아스팔트 바닥이라 충격이 꽤 있을 거다. 등짝 다 나갔겠는데? 이제 세 놈 남았나? 난 세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웃기게도 날 죽어라 쫓아오던 놈들이 뒤로 물러난다.
"뭐야? 누나랑 놀려고 온 거 아니었어? 아까 누나한테 좋은 곳으로 놀러 가자고 한 놈은 누구야?"
내가 세 놈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자 두 놈의 눈빛이 한 놈에게 고정되는 게 보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지목 당한 놈은 두 놈을 보면서 으르렁거렸지만 의리보다 자신의 살 길이 우선으로 보였다.
"너야?"
내가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기에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대답할 때까지 좀 맞아야겠다."
"제. 제가 그랬습니다."
맞기는 싫었는지 얼른 자백하는 그놈의 대답에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럼 좀 맞아야겠지?"
내 말에 우물쭈물하며 뒷걸음질 치는 그놈을 보며 난 어깨를 으쓱이곤 말했다.
"뭐 맞는 거로 퉁 쳐줄려고 했는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경찰서에 신고해야 되겠네."
내 말에 그 녀석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다.
"하.. 한 대만 맞으면 되나요?"
완벽하게 전세가 역전이 된 상황에 웃음이 나왔지만 난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딱 한 대만 맞자."
내 말에 그놈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기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맞기 싫으면 하지 마. 난 그냥 신고해서 합의금 받을게. 경찰서에 부모님 모시고 와. 부모님이 정 그러면 학교 선생님이나. 뭐, 학생 주임 선생님이나. 그런 분들."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얼른 내 앞으로 와 눈을 질끈 감는다.
"진짜 한 대만 맞으면 되는 거죠?"
"그럼."
난 그렇게 말하며 그 녀석의 손목을 붙잡고 또다시 업어치기를 먹여줬다. 이게 사람 넘기는 맛이 있네. 사람 넘기는 맛이.
"크아악!"
역시나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떨어진 놈은 숨도 못 쉬고 헐떡였고 밀려오는 고통에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이제 둘 남았네.
난 그런 둘을 보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가 먼저 올래?"
#
난 그 추운 겨울에 바닥에 무릎을 꿇게 만들고 일장 연설을 끝없이 했다. 나중에는 얼굴에서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다는 표정들을 볼 수 있었는데 무척이나 뿌듯했다.
하여간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말을 그 추운 으슥한 골목길에서 쉼 없이 내뱉고는 돌려보내고 집으로 들어왔더니 피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대충 옷을 벗은 나는 몸을 침대에 던졌다. 천근만근 감기는 눈을 간신히 뜨고 핸드폰을 봤다.
무도[B급]
B급 무도 능력을 얻습니다.
-무도 능력은 태권도, 유도, 유술, 검도로 한정합니다.
엉겁결에 얻긴 했지만 내 생각엔 전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비록 고등학생이긴 했지만 B급 능력이라도 다섯 명을 상대로 제압할 수 있었고.
제압이라고 하기엔 조금 그런가? 처음에 강렬한 모습을 보여줘서 기가 애초에 꺾인 상태라 전의를 일찍 상실하긴 했다.
기술적으로 내가 뛰어날지는 몰라도 여자의 신체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B급 무도 능력 중 들어가 있는 유술은 상대적으로 여자가 신체적인 불리함을 딛고 남자를 이길 수 있는 무도였다.
"저건 좀 마음에 드네."
다른 건 몰라도 B급 무도 스킬 안에 유술은 다른 무도에 미안하지만 두 개를 버려도 저 유술 한 개를 얻고 싶을 만큼 여자에겐 좋은 무도 중 하나였다.
여자가 되고 첫 날이었지만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여자가 된 모습으로 세연 누... 아니. 세연 언니와 그것도 알몸으로 마주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으로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이정후. 그리고 소꿉친구인 정수정까지 여자인 모습으로 처음 대면했다.
거기다가...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남자였을 때는 꿈도 못 꾸던 번호 따이기를 몇 번이나 당했는지 모르겠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아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질문을 당하고 없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번호를 묻는 이 난감한 상황을 몇 번이나 마주했는지 모르겠다.
예쁜 여자들은 원래 이렇게 번호를 많이 따이나? 남자일 땐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일들을 오늘 하루에 상당히 다채롭게 겪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 피곤해.'
자고 일어나면 혹시 다시 남자로 돌아온다던가... 정말 이 모든 게 그저 꿈이었다던가 하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번쩍!
눈이 나도 모르게 떠졌다. 천장을 보며 난 기묘한 내 몸의 느낌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난 슬쩍 이불 안에서 손을 꺼내봤다. 새하얗고 작은 예쁜 손등이 보인다. 이미 눈을 떴을 때부터 알아차렸다.
"꿈이 아니었어."
평소대로라면 우주의 기운이 내 몸의 중심부에 똭! 하고 몰린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이 익숙해지지 않는 가슴의 무게감과 덩달아 느껴지는 이 조임. 처음 착용했을 때부터 브래지어는 답답했다.
"아, 어제 그냥 잠들었네."
어제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난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고 몸 상태를 점검했다. 어제 무리한 움직임을 가져갔는데 신기하게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음... 무도를 하기에 적합한 신체도 주는 건가?"
하여간 나름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이불을 대충 정리하고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깼어?"
"어, 누... 언니."
하. 언니라는 말이 익숙하지가 않다. 평생을 누나라고 불러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것도 차차 적응해 나가야겠지.
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맛있는 냄새나네. 뭐 하고 있어?"
"김치찌개. 얼른 씻고 와. 아침 먹자."
"응."
세연 누나의 말에 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돼서 제일 체감이 되는 건 세연 누나가 나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변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남자였던 나를 대할 때와 여자인 나를 대할 때가 판이하게 달랐다.
본래였다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깼어? 하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미친놈이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까지 처자빠져 자고 있어."라고 했을 게 분명하고.
내 질문에는 "응, 네 거 아니야."라고 했을 거다. 어울리지 않는 세상 예쁜 미소로 아침 먹자는 말을 들어봤던 적이 있던가? 꿈에서도 그런 기억은 없다.
'흠, 이건 좀 괜찮네.'
여자로 변한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누나에게 아침상을 받아볼 줄이야.
난 기쁜 마음으로 얼른 씻고 의자에 앉아 숟가락과 젓가락을 얼른 깔고는 세연 누나, 아니 세연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어?"
내 물음에 세연 누나는 정말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없어, 맛있게 먹기나 해."
도무지 믿기 힘든 말이다. 누나들의 등쌀에 얼마나 서럽게 살았던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수많은 셔틀로 살아왔던 내게 이렇게 사람대접을 해줄 줄이야.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어."
세연 누나가 차려준 아침상을 받으며 김치찌개에 잔뜩 들어간 고기와 두부, 얼큰하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며 달걀말이를 입안에 쏙 넣었다.
막 지은 밥은 일품이었고 세연 누나가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들어둔 각종 반찬들도 엄청 맛있었다.
"천천히 먹어, 체 하겠다."
세연 누나는 내가 급하게 먹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컵에 물을 따라주곤 내 앞에 놓는다.
난 미소를 지으며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시곤 다시 식사에 들어갔는데 이제야 누나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돌핀 팬츠에 검은색 끈 나시티를 입고 있었는데 내가 남자였을 땐 볼 수 없었던 옷차림이었다. 거기다가 노브라... 노브라였다.
'워... 원래 집에선 브라를 벗는 건가?'
생전 처음 보는 누나의 모습에 난 조금 당황하며 고개를 숙이곤 밥만 열심히 먹었지만 가끔씩 가는 시선은 어쩔 수 없었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누나는 내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어서 계속 힐끔거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난 갑작스러운 누나의 물음에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응? 아, 아니. 없는데?"
"그래? 그런데 언니를 왜 그렇게 계속 쳐다봐? 왜? 용돈 필요해?"
아니, 누나의 입에서 먼저 용돈 필요하냐는 말이 나오다니. 이게 실화인가? 누나도 그렇고 나도 결국 용돈 받아서 쓰는 건 똑같았지만 누나는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과외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얻는 수익이 꽤나 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내게 용돈이라고 줘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남자일 때랑 여자일 때랑 나를 대하는 게 이렇게나 다르다고?
뭔가 좀 이제는 서러워지기까지 한다.
"응, 필요해!"
난 당당하게 세연 누나에게 용돈을 요구했다. 내가 힘 있게 용돈을 요구하자 세연 누나는 웃더니 묻는다.
"얼마나 줄까?"
"컴퓨터 한 대만 사줘."
내 말에 세연 누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컴퓨터?"
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