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63. 첫 휴일 (63/95)



〈 63화 〉63. 첫 휴일

쉬운 게 하나 없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평일 오후, 점심시간이라는 것도 문제였고 이 주변에 회사원들이 많다는 것도 함정이라면 함정이었다.


"페이크 선수! 진짜 팬입니다!"
"꺄아! 페이크다! 페이크 선수야!"
"와. X발. 존나 예뻐!."
"진짜 여신이네. 와... 대박이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진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석류 알처럼 쏟아지는 직장인들에게 나와 상현 오빠는 둘러싸여서 때아닌 팬미팅을 하고 있었다.


"너무 팬이에요, 세나 언니."
"아, 고마워요."


찰칵!


그렇다고 내 이름을 불러가며 팬이라고 하는 분들에게 지금 밥 좀 먹으러 가야 하니까 그만 좀 들러붙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거 이러다가 점심  먹겠는데.'


이렇게 많은 직장인들이 몰려나왔다는 건 그만큼 이 주변 식당에 자리가 없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렇게 계속 붙잡혀 있으면 다들 손해 아닌가?


"저... 저기 그런데 다들 식사하셔야 하지 않나요?"


난 살짝 돌려서 이 부분에 대해 상기를 시켜줬더니 그들도 화들짝 놀라며 시간을 확인한다.

"뭐야?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야, 뭐야. 이거 자리 없겠는데?"
"이 대리, 우리는 예약해뒀지?"
"야야! 이럴 시간 없다. 빨리 가서 자리 잡자."

내 말에 그제야 조금씩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인지했는지 우리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눈을 반짝이며 주변에 남은 사람들을 보며 재빠르게 사진과 사인을 찍어 주고는 더 몰리기 전에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헐."

그러나  생각은 상현 오빠를 보고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많은 인파에 둘러 싸인 상현 오빠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일단 나라도 가서 자리를 잡는 게 좋겠다.'

이건 절대로 상현 오빠를 버리는 게 아니라 효율적이면서도 무척이나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사진 찍어주랴 사인해 주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현 오빠를 뒤로하고 난 슬쩍 뒤로 빠졌다.


"어? 가디스 선수! 맞죠? 여신!"

그러다 나를 알아본 사람과 또다시 조우했는데 상현 오빠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아, 네. 저기 상현 오빠도 있어요."
"상현? 아, 이상현? 페이크, 이상현 선수요?"
"네네. 저기."


난 상현 오빠에게 시선을 돌리고 혹여나 나를 더 알아보는 사람이 생길까 싶어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이고, 죽겠네."


난 시큰한 팔목을 붙잡았다. 직장인들이라 그런가 팬들을 다 하나씩 지참하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수첩이나 작은 노트까지 가지고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더 놀라운 건 팬이나 노트가 없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사인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헛웃음을 짓다가 두고 온 상현 오빠의 모습이 떠올라 큭큭거리며 꼬막 비빔밥 집에 도착했다.


"와...  봐라."


맛있다는 댓글들이 많아서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고 그냥 가기도 뭐 해서 난 대기하는 줄에 합류했다.

"손님, 식사하실 거면 여기에 성함과 전화번호 좀 적어주세요."
"아, 네."

 뒷줄에 가만히 섰는데 그런 나를 보고 직원 한 명이 소리쳤다. 뭔가 하고 봤더니 대기 순번과 메뉴를 미리 적는 판이었다.

"오호."
"여기다가 적어 주시면 되고요. 전화번호 적어 주시면 문자도 가니까 다른 일 보시고 오셔도 됩니다."

여기 줄을 서고 있는 사람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구나. 이제  식사 순번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 있는 거로 보였다.

난 꼬박 비빔밥 2개를 적고 전화번호까지 적은 뒤 상현 오빠에게 이곳까지 오는 길과 함께 주문을 미리 해뒀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금방 갈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답장이 왔는데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방 올 것 같지는 않은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숫자로 봐선 꼬막 비빔밥이 나오고도 못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상현 오빠의 인기는 대단했다. LOM 계정 숫자만 하더라도 2000만 명이고 동시 접속자는 300만 명이다. 그것도 한국에서만.


그러한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상현 오빠가 인기가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LOM은 몰라도 페이크는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아... 촬영이라도 할  그랬나."

요즘 대부분의 영상이 연습실에서 LOM을 하는 것 말고는 딱히 색다른 게 없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보긴 했지만 시청자 입장에선 좀 지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도 편집을 하면서 조금 그러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했으니 시청자들은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그렇다고 쉬는 날인데 방송 출연해 달라고 하기도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순번이 될 때까지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음식 말고도 상당히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어서 볼 거리가 제법 있었다. 돌아다니다 보면 나를 알아보고 놀라는 사람도 있었고 씩씩하게 다가와 사진을 찍게 해달라거나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사인보다는 사진이 많았다.


난 그럴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며 응해줬다.

"어, 잠시만요."


 펜을 잠깐 입에 물고는 주머니에서 패딩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상현 오빠인 걸 보고는 난 고개를 기울여 어깨에 끼우곤 입에 문 펜을 다시 들고 사인을 마저 해드렸다.

"어, 상현 오빠. 잠시만."


내 말에 내게 사인을 받으시던 팬 한 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옆에 있던 동료 직원의 어깨를 때린다.

"대박! 페이크 전화인가 봐!"
"아아, 아파 이것아!"

받은 만큼 갚아준다는 게 이런 건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묘령의 여인은 자신의 어깨를 쓰다듬으면서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페이크 님도 여기 계신가요?"
"아, 네. 아마 조금 있으면 여기로 올 거예요. 여기 앞에 꼬막 비빔밥 집에서 같이  먹기로 했거든요."
"아아, 거기 맛있죠. 꼬막무침도 엄청 맛있어요."
"그래요? 그것도 하나 시켜서 먹어야겠네요."
"네, 꼭 드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담언  이기세요!"
"노력해 볼게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곤 펜을 돌려주며 핸드폰을 손으로 들고 말했다.

"미안, 잠깐 사인 좀 해주느라. 오빠 어디야?"
[나 지금 네가 보내준 곳으로 왔는데 네가 없네?]
"아, 아직 우리 먹으려면 좀 기다려야 돼. 아마 거의  됐을 것 같으니까 내가 거기로 갈게. 나 여기 주변 그냥 구경하고 있었어."
[아하, 나를 버리고?]
"에이, 버리다니. 말을 섭섭하게 하시네. 지금 점심시간 때라서   붙잡혀 있었으면 점심은 무슨, 편의점 신세였어. 나한테 고마워해야 되는 상황이거든?"
[아, 그래? 음... 사람이  많긴 하네.]

이게 먹힌다고? 난 순진한 상현 오빠의 모습에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테니까."
[어, 알았어.]

전화를 끊고 난 웃으며 상현 오빠가 기다리고 있을 꼬막 비빔밥 집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줄을 서 있었고 난  순번을 살폈다.


"오, 거의  됐네."

아니나 다를까 문자가 왔다. 곧 식사가 준비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난 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혹시 지금 메뉴 추가할  있나요?"


내 물음에 직원은 친절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어떤 메뉴를 추가해 드릴까요?"
"꼬막무침이요. 누가 추천해 주셔서요. 여기, 윤세나에요."
"네, 윤세나 님. 꼬막무침 추가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난 꼬막무침까지 추가하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줄에 합류했다.

"여기 5번 맞죠?"


 앞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고 내 물음에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아, 네. 맞아요. 제가 4번이거든요."

나보다 그저 1번 빠른 것뿐인데 그게 왜 이렇게 부러운지. 정말 세상 부러웠다.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더 일찍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좋다고 하는 팬들을 탓할 순 없어 공허한 배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아까부터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게 엄청 거슬렸다.


"오빠, 배고프지?"
"어, 조금."
"난 미칠 것 같아..."

난 배를 쓰다듬으며 잔뜩 미간을 찌푸렸더니 상현 오빠가 그런 나를 보며 살짝 뒷걸음질을 친다.


난 그런 상현 오빠의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왜 뒷걸음질 쳐?"
"여자가 배가 고프다고 할 땐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좋다고 배웠어."
"뭐?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쿡쿡거리며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주변에 사람만 없었으면 진짜 미친듯이 웃었을 거다.

하여간  간신히 진정을 하고 내가 왜 웃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상현 오빠 때문에 또 다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아, 그만 좀 웃겨!"


내가 어깨를 때리며 나무라자 굉장히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5번 손님!"
"아, 네!"


난 손을 번쩍 들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드디어 먹는구나. 난 환하게 웃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는데 사람들이 진짜 한가득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 귀를 막아야 할 정도였는데 확실히 맛집은 맛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 걸 보니 안심이 됐다.

'맛이 없을 수 없겠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몰려와서 먹을 정도라면 말 다 했지 뭐. 적어도 실패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안내받은 자리에 상현 오빠와 앉았다.

식사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도 적었고 행여 알아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우리가 있는 테이블에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옆에 있는 동료에게 알려주면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우리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미 있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우리가 주문 했던 음식이 올려져 있었다. 꼬막 비빔밥이 각자 앞에 놓여져 있었고 꼬막무침이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반찬들이 있었는데 일반적인 식당에서는 보기 어려운 해조류나 해산물 반찬들이 많이 있었다.


"야, 제대로 장사하시네. 맛있겠다."


난 얼른 꼬막 비빔밥에 참기름과 김을 넣고는 상현 오빠에게 참기름과 김이 담긴 통을 건네줬다. 상현 오빠도 능숙하게 뿌리고는 비비기 시작했다.

"꼬막 진짜 좋아해? 싫은데 나 때문에 억지로 먹는 거 아니지?"
"아니야.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어."
"오, 그래? 나도 가리는 음식 없이  먹어. 새로운 음식 먹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 음... 아니야. 이건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내 말에 상현 오빠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기에  손을 들어 보였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밥을 먹으면서 하기엔 내가 아직 오빠 비위를 잘 몰라서."

내 말에 상현 오빠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나 비위 좋아."
"그래? 그럼 얘기할 테니까 후회하지 마라."


난 그렇게 단단히 경고를 한 뒤 말했다.

"내가 새로운 음식 먹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 근데 얼마 전에 TV에 나오는 거야."

상현 오빠가 잘 비빈 꼬막 비빔밥을 가득 숟가락에 담아 입으로 가져가며 묻는다.

"뭐가?"

나도 상현 오빠처럼 한가득 숟가락에 담아 입에 가져가 오물거리며 말했다.

"애벌레 쿠키랑 바퀴벌레 푸딩."


내 말에 상현 오빠는 생각보다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알고 있어. 난 책에서 봤어."
"책에서? 뭔 책? 요리 책?"

내 말에 상현 오빠가 웃더니 고개를 젓는다.

"아니, 미래를 예측하는 책이었는데 그중에 바퀴벌레나 애벌레가 미래의 먹거리 중 하나가 될 거라고 하더라."
"나도  얘기는 들어본 것 같아. 나중에는 식량이 부족해 질  있다고 하더라."


나도 어떤 책에서 본 것 같았는데 30년 후에 그러니까 2050년에는 세계 식량 수요가 70%정도 증가한다고 했다.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그에 반해 식량 생산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지도의 변화와 물 부족, 냉해로 인한 대기근의 위험 같은 것들이 상존해 있는 이상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거다.


식량자급률이 1970년대 80%대를 유지했지만 1990년대 농산물 시장 개방과 함께 34%까지 떨어졌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정부에서 목표를 세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하지만 55%를 전후로 왔다 갔다 한다고 들었다.

"올해는 50%가 깨진 거로 알고 있어. 45~46%라고 하더라."
"오, 맞아! 그런   어떤 책에서 봤어?"
"이건 뉴스."

호... 상현 오빠 은근이 브레인이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