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67. Y1 vs 담언
생각해 보니까 언니 전화가 뜸한 것 같기는 했다. 내가 갈 땐 나 없으면 심심해서 어떻게 하냐고 하던 언니가 그러고 보니 잠잠해도 너무 잠잠했다.
필시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 난 언제 한번 집을 급습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 남자네.'
하. 이것 봐라? 난 살짝 끌어오르는 화를 가라 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네. 내가 왜 몰랐을까?"
난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는데 그런 내 모습에 다들 움찔 몸을 떨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후우."
난 심호흡을 하며 이 화를 협곡에 풀기로 했다. 4시간 솔랭을 하며 시원하게 풀어야지. 딜 서포터 위주로 하면서.
#
기다리고 기다렸던 담언전. 난 서슬퍼런 칼날을 갈았다. 오늘 이기던 지던 어쨌든 내일은 쉰다. 그러면 난 집을 급습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집을 조사하면 분명히 물증이 나올 것이다.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내 눈빛이 꽤나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감독님께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신다.
"세나 오늘 뭔가 눈에 파이팅이 넘치는데?"
"아아. 그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습니다."
난 미소를 지었는데 감독님은 그런 내 미소에 왠지 몸을 떠시는 것 같았다.
눈빛으로 주변 선수들에게 '세나 무슨 일 있냐?' 하고 물으시는 것 같아 난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허업!"
감독님은 자신의 생각이 읽혀서 놀라셨는지 헛바람을 집어 삼키시며 날 쳐다본다. 난 가만히 미소만 지으며 내 상태가 무척 괜찮다는 걸 어필했다.
그럴수록 감독님은 상체를 조금 뒤로 젖히시긴 했지만...
하여간 담언이고 뭐고 다 담가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방금 라임 괜찮았다.'
난 혼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어느덧 눈에 보이는 경지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오늘 경기 끝나자마자 내가 향할 곳은 집이다.
[언니가 오늘도 일이 좀 있어서, 집에서 TV로 응원할게!]
그 일이 도대체 뭘까? 언니가 경기 전 내게 보낸 문자였다. 동생이 프로 데뷔해서 경기를 하는데 개막전도 안 오고 두 번째 경기도 안 오고.
하. 도의적으로 한 번은 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부모님이야 멀어서 그렇다고 쳐도 말이야. 같은 서울에 살면서 언니가 그러면 안 되지.
"나 괜찮다."
우재가 내 뒤에서 감독님과 코치님에게 내 기분이 무척 좋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해 전달하고 있는 모습이 창에 비치기에 말해줬다.
"네."
감독님과 코치님은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우셨고 우재는 빠른 대답과 함께 자기 자리에 앉는다.
경기장에 도착해 내리자 버스 주변으로 상당히 많은 팬들이 몰려 있었다. 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사인이나 사진도 찍어주면서 이동했다.
"고마워요."
난 양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고는 선수 대기실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은근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건 선수들도 감독님, 코치분들도 마찬가지였다.
"너희도 알겠지만 담언 못 이기면 어차피 우리 우승 못해."
감독님은 짧게 얘기했다.
"이기자."
우리 모두는 감독님의 말에 힘차게 대답했다.
"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코치님들은 빠르게 분석 내용에 대해 우리에게 얘기해 주셨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쓰셨다.
우린 집중해서 듣고 시간이 되어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경기장으로 이동하며 들리는 팬들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Y1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또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팀이니 만큼 팬들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와... 함성 소리가 장난 아니네."
우리가 경기장에 들어가자 쏟아지는 환호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온전히 우리를 향하는 함성에 온몸에 전율이 인다.
데뷔전 때는 긴장을 해서 그런지 귀에 잘 안 들어왔는데 두 번째라고 팬들이 좀 보이기 시작한다.
경기가 경기인만큼 많이 찾아오실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객석이 거의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우린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장비를 점검했다. 감독님과 코치님들도 부스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가 장비 점검을 하는 동안 경기에 대해 끊임없이 피드백을 해주셨다.
"오늘 근데 사람 진짜 많다."
감독님의 말에 스태프 한 분이 말씀하신다.
"오늘 만석이래요."
"아, 그래요? 얘들아 어쩌냐. 오늘 만석이란다. 너희들 오늘 지면 집에 못 갈지도 몰라."
감독님의 말에 난 웃으며 말했다.
"이겨도 못 가는 거 아니에요? 담언 팬들이 버스 테러하고 막 그러는 거 아니에요?"
"우리 팬들이 우리 버스에 그러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
감독님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린다.
"그것보단 훨씬 낫겠네요. 무조건 이겨야겠는데?"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긴장을 풀었다. 난 가볍게 점검도 하고 손을 풀 생각으로 연습 모드에 들어가 오늘 플레이할 챔피언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상황에 따라 고르는 챔피언이 다르긴 하겠지만 어쨌든 이번 담언과 경기에서 내 서포터 픽은 딜이 강한 서포터 위주의 픽으로 정해졌다.
'어쩌면 내가 딜 1등 먹을지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서포터가 딜 1위를 기록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게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상대는 캰 냐르, 케니언 올라프, 쇼메이크 죠이, 게스트 카이샤, 배릴 노틸러쓰였고 우리는 칸느 캬밀, 앨림 릴리야, 페이크 야지르, 구마 사미랴, 가디스 모르가냐였다.
모르가냐도 꽤 많은 연습을 했던 챔피언이기 때문에 고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물론, 지금 많이 쓰는 챔피언은 아니었지만 노틸러쓰 상대로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자, 시작했다. . 오더 집중하고. 담언 한번 잡아 보자. 결승전이라고 생각하고 하자."
난 팀원들에게 마인드 컨트로를 걸어주며 게임에 집중했다. 초반 라인전 단계에서 바텀을 비롯해 전 라인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6분. 난 사라진 올라프를 찾기 위해 미니맵은 연신 확인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정글 동선 파악 안 되니까 조심해야 돼. 미드 아니면 탑 같거든?"
칸느는 냐르를 상대로 힘든 라인전을 하고 있었다. 미니언이 포탑으로 계속 밀려서 받아 먹고 있었는데 자칫하면 다이브를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페이크 오빠는 안정적인 라인전을 바탕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쇼메이크 선수를 상대로 미묘하게 우위를 잡고 있었다.
"미드는 아닌 것 같고... 이거 바텀 느낌이거든? 민영아 이거 조금 사려야 한다. 이쪽 시야가 없거든?"
난 용 쪽을 찍으면서 말했다. 라인이 당겨진 상태로 시야를 먹으러 나갈 수도 없는 상태. 난 차분하게 오더를 하며 민영이에게 갱의 가능성을 인지시켰다.
"여기 있어."
난 우리 3단 부시 중 우리와 가까운 부시를 찍으면서 말했고, 아니나 다를까 부시에서 노틸러쓰의 닻이 날아왔다.
"실드 걸었어, 그냥 뒤로 쭉 빠지면 돼. 오케이, 좋아. 정글 여기 위치 확인."
"와, 누나 대박이네. 이걸 반응하네."
"예상했잖아. 있을 거라고."
조금만 늦었어도 민영이는 죽었을 거다. 운이 좋게 살았어도 아마 스펠이 다 빠졌겠지.
난 다시 위로 올라가는 올라프를 핑으로 찍어주면서 팀원들에게 올라프 위치를 한번 더 확인시켰다.
"여기, 여기 지금 올라간다. 나 우리 정글 쪽 들어가서 시야 먹어줄게."
어차피 당겨지는 라인이고 스펠도 다 살아 있고 노틸러쓰의 Q가 빠져 있는 상태라 다이브 위험은 크게 없을 거라고 판단한 나는 우리 정글 쪽으로 이동했다.
"여기는 없네. 용 쪽에 그냥 와드 할게. 이거 용 먹으려고 할 수도 있거든? 그냥 주자."
우리 정글 위치가 탑에 있었고 바텀 라인은 밀려 있는 상태고 우리 탑도 마찬가지. 싸우면 손해를 더 많이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자는 판단을 했다.
"오케이, 알았어."
난 와드만 해서 용을 먹는 걸 체크만 하고 바텀으로 복귀했다.
"나 그럼 여기 안으로 들어가서 빼 먹을게."
탑 주도권이 있으면 전령을 먹으라고 했을 텐데 칸느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응, 그게 좋겠다. 있으면 다 빼 먹어, 앨림아."
바텀으로 복귀한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상체 주도권을 찾기란 힘들 것 같고. 그나마 미드 주도권을 활용해 정글이 자유롭게 돌아다나긴 했지만 부족하다.
"민영아, 이거 바텀에서 풀어야 돼."
우리 스킬 구성이 훨씬 좋다.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펠이 조금 문제다.
"앨림아 이거 바텀 한 번 봐라."
"알았어. 아래로 동선 짤게."
다음 용까지 주는 건 곤란했기 때문에 바텀 주도권을 쥐고 있을 필요성이 있었다. 지금처럼 반반을 가면 우리가 불리하다.
난 그런 판단을 내리고 앨림을 불렀다. 난 착실하게 시야를 잡아 앨림이 직선 갱을 올 수 있도록 도왔다.
"여기, 여기. 다 시야 없애버렸거든?"
"아, 오케이. 오케이."
앨림의 릴리야가 총총 내가 찍은 핑을 따라 이동해 3단 부시에 숨어 기회를 노렸다. 우린 강하게 라인을 압박해 안전하게 앨림이 두 번째 부시까지 들어올 수 있게 만들었다.
"좋아. 이거 스펠만 빼도 이득이야. 무리할 거 전혀 없거든? 지금 올라프 위치 위쪽 확인 됐으니까 될 것 같으면 무조건 걸어."
난 빠르게 지시하며 집중했다. 이번 싸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다?"
앨림은 말하기 무섭게 궁을 사용했다. 화들짝 놀란 둘이 도망쳤고 노틸러쓰는 딜을 넣기 위해 가까이 붙는 민영이의 카이샤를 찍었지만 그전에 블랙 쉴드를 걸었다.
난 동시에 잠들어 있는 카이샤에게 Q를 날려 속박했고 W 장판을 사용하고 점화까지 걸었다.
"카이샤! 카이샤!"
내 외침에 딜이 카이샤에게만 집중됐다.
"오케이! 점멸, 힐 다 빠졌다."
속박이 풀리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뒤늦게 둘 다 사용하며 포탑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나와 민영이의 평타가 들어가 죽고 말았다.
"좋아. 나이스. 아, 이거 킬을 내가 안 먹었으면 더 좋았는데."
"노틸러쓰 점화도 빠졌어. 나한테 걸었어."
앨림의 말에 난 스펠 체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게임 하기가 엄청 편해지지. 스펠이 없다는 걸 이용해 우린 시야를 확실히 먹은 상태에서 압박을 넣었다.
바텀 주도권을 활용해 두 번째 용을 가져왔고 서로가 6레벨을 찍은 이후에 벌어진 교전에서 난 완벽한 스킬 연계로 상대 바텀을 찍어 눌렀다.
"와, 진짜 누나. 블랙 쉴드 예술이다."
민영이의 칭찬에 난 엣헴! 하며 헛기침을 했다.
"방금 진짜 궁이랑 Q연계 진짜 좋았다."
"잘했어, 잘했어. 진짜 잘했다."
상현 오빠한테도 칭찬받았다. 헤헤. 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방금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거 이제 바텀 주도권 넘어왔거든. 찬동이랑 라인 스왑하자."
"하, 진짜 죽겠네."
앓는 소리를 내는 찬동이를 보며 난 미소를 지었다.
"찬동이 지금 잘하고 있어. 잘 버텨줬어. 너 때문에 바텀이 큰 거야. 아까 텔 끊은 거 진짜 잘했어."
캰을 상대로 상성상 불리한 픽을 가지고 저 정도 했으면 사실 찬동이가 이긴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난 그런 말도 찬동이에게 해주면서 더 잘 계속 두드려 맞게끔 용기를 북돋아 줬다.
"이거 우리 올라가면 냐르 내려갈 거야. 바텀 포탑 없으니까 한번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내 말에 앨림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전체적으로 상황이 무척 좋았다. 확실하게 우리가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조금 유리한 건 사실 담언을 상대로 유리하다고 볼 수 없었다. 조금만 삐끗하면 넘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신중하게, 집중해서 하자. 한 번이라도 발 헛디디면 죽는 거야."
내 살벌한 말에 팀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집중해서 플레이하는 게 느껴졌다. 다른 팀도 아니고 담언이다. 담언을 이겼다는 건 상당히 많은 걸 시사한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고 우리도 상대방도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다.
"어어, 빼자. 빼자! 보였다. 여기 보였다."
우리 정글 깊숙하게 들어온 상대 정글의 모습에 난 민영이에게 핑을 치며 뒤로 빠지도록 했다.
"이거 라인 밀어야 돼. 미드도 올라와야 돼. CS 먹지 말고! 내가 말하면 바로 움직여야 돼! 탑은 해도 되겠다. 텔만 못 오게 해봐. 너 안 와도 되니까."
순식간에 탑 근처에서 3:2 싸움이 벌어지려고 한다.
상대 바텀과 먼저 도착한 올라프가 포탑 주변을 에워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