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왕게임 - 3
“아니,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가 뭔데.”
“여기 달린 거, 젖탱이. 니들 젖탱이가 왜 이렇게 크냐?”
푸우우우웁.내 뒤에 있던 남자들 테이블에서 뭔가 뿜는 소리가 들린다. 슬쩍 뒤돌아보니 마시던 맥주를 정통으로 앞에 있는 놈한테 뿌린 거 같다. 이 상황이 웃긴지 맞은 놈도 실실 웃고 있고, 뿌린 놈도 엎드려서 끅끅 대고 있다.
“아니 오빠 말할 때 뇌를 좀 거쳐서 말하면 안 돼?”
그러는 정화의 입에서도 웃음기가 가득하다. 아라 역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닭발을 씹고 있지만 눈에서도 웃음이 보인다. 역시 효과는 제대로 먹히는구나.
“야, 아니 내가 뭔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젖탱이가 그리 웃기냐?”
“아니 웃긴 게 아니라 어이가 없잖아!”
“그런가? 아니 그래서 왜 그렇게 크냐고.”
닭발 맛있나? 나도 닭발 하나 먹어야지.
“아 나도 몰라! 지가 알아서 커진 걸 어쩌라고.”
흠, 그런가? 슬쩍 옆에 아라랑 눈을 마주치면서 눈으로 너도? 하듯이 고개를 살짝 내미니 끄덕끄덕 거린다. 그렇구낭. 닭발 마시땅.
띠링띠링. 그 사이에 새로 손님이 들어왔나 보다. 슬쩍,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데.. 어머 씨발. 씹던 닭발 떨어트릴 뻔 했다.세상에나.. 진짜 존나 이쁜 여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절로 와우 소리가 날 정도였다.
키는 70에 가까워 보이는 큰 키에 흔히 말하는 여신웨이브 긴 머리로 한쪽은 머리를 내려 웨이브를 살리고 한 쪽은 귀 뒤로 넘긴 상태. 그 쪽으로 보이는 옆얼굴이 가지는 날렵한 턱선. 새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포인트를 가진 붉은 입술과 라인을 따라 날카롭게 올라가는 콧날에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슴 같은 눈망울까지. 별 포인트 없는 얇은 하얀 면티에 검은 톤의 스키니 진에도 크진 않지만 볼륨감이 살아있는 바스트와 한껏 업된 힙을 강조하고 있었다.
와 근데 나 언제 이렇게 분석적인 사람이 됐냐. 아무튼 쉽사리 눈 떼기 어려운 외모의 소유자인 것은 확실했다. 여기 자리 많다고 얘기하던 그녀가 정화랑 눈이 마주치더니 어! 하면서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정화야!”
“어! 윤진아! 오랜만이야.”
“어우야, 진짜 오랜만이다~”
그 모습에 갑자기 아라가 일어서더니 꾸벅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머! 아라도 여기 있네? 뭐야~ 둘 다 잘 지냈지?”
“나야 뭐 하는 거 없으니까 잘 지내지. 너는 되게 바빠 보이던데.”
“아냐아냐, 내가 바쁘긴 무슨.”
하면서 둘이 막 손을 맞잡고 조잘조잘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막 한다. 슬쩍 아라한테 들리도록 입을 가리고 묻는다.
“뭐야, 둘 다 아는 사이야?”
“저희 과 선배에요. 정화 언니랑 동갑이고 3학년인데 저희 셋 다 MT에서 만났거든요.”
“아.. 그래?”
근데 아라 가까이서 봐도 윤진이라고 했나? 얘한테 크게 밀리는 건 아니네. 이건 뭐 취향인 것 같다.
슬쩍 뒤로 보아하니 밖에 생각보다 인원이 좀 있다. 얘 뒤 따라 온 애들인가? 내가 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화도 슬쩍 밖을 쳐다보고 물어본다.
“근데 밖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뭐야?”
“아, 우리 이번에 봄에 또 MT 새로 갔다 왔잖아. 그때 같이 간 1,2학년 애들이랑 우리 3학년 애들이랑 학기 끝나고 한 번 모이기로 했거든. 근데 자꾸 미뤄지고 시간도 안 맞고 해서 결국에는 오늘아니면 안 되겠다 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도 보자 해서 늦게나마 본 거야. 근데 1차 끝나고 2차 가려고 했는데 가게 연 곳도 얼마 없고 자리도 없어서 엄청 헤매다가 여기 딱 자리 많아보여서 얼른 들어왔지.”
어이고, 밖을 보니 여자는 한 명에 사내놈이 여섯이나 되는데? 뒤를 보니까 아까 맥주 뿜고 슬슬 나갈 준비 하던 놈들도 술 더 시킬까? 이러고 있다. 옆 테이블에 있던 남자 두 놈도 앞에 있는 여자는 뭐 쳐다도 안보고 계속 힐끗거리는 게 내 눈에도 보이는데? 주먹밥 하나 더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생각한다.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여서 술 먹고 싶은데 사내놈들만 가득하겠네.
흐음.. 보자보자.. 정화랑.. 아라랑.. 새로 들어온 얘 윤진인가 하는 애까지.. 괜찮은 애가 세 명씩이나 있네.
적당히 배도 찼겠다. 슬슬 시작해 볼까?
[※ 이번 에피소드명이 왕게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노래도 소리가 작아서 않아서 조용하게 즐기고 있던 포차가 나름 시끌시끌해진다. 윤진이가 데려온 인원들이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옹기종기 앉아있는데, 별 다른 이야기가 없어도 혼잡하다는 느낌을 준다. 혹시 몰라 새로운 멤버가 될까 하며 그 사이에 앉아 있는 여자애를 잠깐 봤지만 뭐, 특출난 점이 없어서 아웃.
정말 인싸다운 모습이다. 예쁘다고 칭찬해주시는 이모님과 함께 몇 시까지 하냐, 여기는 뭐가 맛있냐 조잘조잘 웃으면서 떠들어대는 친화력을 보인다. 일행들은 반은 메뉴판에 집중하고, 반은 그 대화에 껴드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오빠 안 먹어? 술 다 마셨네.”
슬쩍 피처를 드는 정화를 보면서 잔을 들어 기울인다. 쟤들 어차피 다 내쫓을 거니까 주문하기 전에 시작하는 게 좋겠지? 맥주가 다 따라지고 나서 잔을 놓고 더 이상 방해꾼이 없도록 바깥에 새로운 드림 공간을 하나 만든다. 가볍게 가게 출입구와 그 앞쪽 거리를 감쌀 정도의 크기를 만들어놓고 ‘「이 가게에 들어오고 싶지 않은 정도」 - 7’, ‘「이 가게에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 정도」 - 7’ 이 정도면 더 이상 방해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자자, 잠깐만 여기 주목해주세요.”
드르륵 의자를 밀며 일어나면서 말하니 일동 전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어우 시선이 존나 많이 느껴지니까 갑자기 긴장되네. 괜찮아, 긴장하지 말자. 어차피 이 중에 대부분은 돌아갈 사람들이다.
이 곳의 드림창을 슬쩍 가져온다. 오늘의 핵심 키워드를 추가하자.
「왕게임을 하고 싶은 정도」 - 7
어어? 어, 잠시만. 나도 시발 왕게임 존나 하고 싶어지잖아. 아아 잠깐만 안돼, 나는 제외하고 해야지 씨발. 아 근데 왕게임 존나 하고 싶네. 이러다가 나도 휩쓸릴까봐 급하게 하나 추가한다. 나의 드림창을 꺼낸다. 내거는 솔직히 마스터 드림창이겠지? 근데 왕게임 빨리 시작하고 싶네. 아씨 잠깐만 추가 좀 하자. 「모든 드림창 효과에 면역」 - ON을 추가한다.
휴우, 타오르던 불꽃에 물을 끼얹은 마냥 왕게임에 대한 열정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듯 했다. 어후, 7이 좀 쎄긴 하구나. 하지만 확실하게 다 보내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혼자 쌩쑈를 하는 나를 쳐다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에 머쓱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크게 둘러보면서 얘기한다.
“저희 지금 왕게임 할 건데 같이 하고 싶으신 분들 손들어주세요.”
왕게임? 갑자기? 수군수군 하던 애들. 하지만 물어서 무엇을 하리. 곧바로 무섭게 다들 손을 든다.흠, 안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어? 잠깐만 이모님까지 드실 필요는 없는데. 아니... 어... 뭐, 이모님도... 에이 괜찮겠지.그냥 시작하자.
“오빠 갑자기 왠 왕게임이야 뜬금없이?”
“그래서 안 할 거야?”
“나 손 든 거 안보여?”
“그럼 일단 가만히 있어봐. 자, 그럼 전원 참여하시니까 왕게임을 시작할 건데요.”
슬쩍, 필요한 내용을 더 추가한다. ‘「이 곳의 왕게임은 내가 말하는 룰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정도」 - 7’, ‘「내가 말하는 룰이 정말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정도」 - 8’
“여기서는 제가 알고 있는 변형식 왕게임을 할 겁니다. 일단 먼저 사회자 겸 참여자인 제가 각각 번호를 부여해 드릴 겁니다. 번호는 자기 혼자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번호를 지정해주기 전에 ‘「왕게임에서 부여 받은 번호는 자기 번호 밖에 기억하지 못함」 - ON’을 추가한다. 그리고 나서 나를 기준으로 1번, 아라를 2번 정화를 3번으로 한명씩 가리키면서 번호를 지정해준다. 지정해주면서 윤진이 번호도 기억한다. 18번. 그리고 의외로 정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기 차례를기다리는 이모님..까지.. 대놓고 크게크게 번호를 얘기했지만 정작 자기 번호밖에 몰라서 참여자들에게는 쪼는 맛이 있을 것이다.
“이모님. 혹시 뭐 주방이나 화장실 안에 다른 사람 있나요? 알바생이나?”
“없어. 요새 사람도 없어서 그냥 내가 혼자해도 충분하거든. 한 푼이라도 줄여야지.”
“아.. 그런 뜻이... 예. 감사합니다.”
갑자기 씁쓸한 느낌이.. 흠흠, 여기 있는 인원은 이게 전부다. 좋아. 이제부터 나의 왕게임의 룰을 알려주지.
“각자 번호를 부여받은 후에 사회자인 제가 왕게임의 번호를 발표할 겁니다. 그럼 그 번호인 사람이 이번 게임의 왕이 되는 겁니다. 제가 발표하긴 해도 정말 공정하고 깨끗하게 선정하고 발표하니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사내놈들 테이블에서 오,, 왠지 재밌을 것 같다 이런 얘기가 슬쩍 나온다. 암, 재밌지. 나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의 명령에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 - 7’, 「왕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행동이라 생각하는 정도」 - 8‘
“왕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왕게임이라는 거는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거니 무조건 왕의 명령을 따라주셔야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다들 약속하실 수 있으시죠?”
약간 들뜬 목소리들로 다 함께 네~ 하고 대답을 한다. 다들 대답은 잘 하셔요.
“자, 그럼 첫 번째 왕을 발표하겠습니다. 첫 번째 왕이 될 사람의 번호는..”
번호는... 하면서 슬쩍 말을 끄니 한 명이 시작한 손가락으로 책상들 두들기며 두구두구 하는 게 전염이 됐는지 모두 가볍게 책상을 치면서 긴장감을 형성한다. 갑자기 이게 뭐라고 효과음까지 깔아주세요.. 슬쩍 정화랑 아라를 보니 얘네도 눈을 반짝반짝하면서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치면서 움직이는 몸에 조금씩 들썩이는 젖들은 덤.
“번호는.. 처음이니까 1번! 1번입니다.”
아아아아~ 하는 탄식이 꽤나 크게 터져 나온다. 진짜 기대 했는지 긴장감에 살짝 일어났던 애들이 자리에 풀썩하면서 앉는 소리까지 난다. 와우, 다들 진짜 진심으로 참여하나 보네. 아니 뭐 좋은 거니까. 그리고 나서 다들 두리번거리면서 왕을 찾는다. 8명 있는 테이블에서 1번 어떤 새끼지? 하는 소리도 들린다. 나다 이 씹새끼야.
“운 좋게도 제가 첫 번째 왕이 되었네요.하하..”
말을 꺼냄과 동시에 시선이 빠르게 쏠린다. 오우 약간 소름 돋네 이거.
“오, 좋겠다 오빠. 그래서 뭐 시킬 거야?”
내가 왕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 절대왕정에 전제군주제가 시작되는 거지.
“자, 왕이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저는 사람 많은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세 명만 남기겠습니다. 2번, 3번, 그리고 18번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 주세요. 자, 2번, 3번, 18번 누구인가요?”
이야, 너무나 놀랍게도 정화랑 아라랑 윤진이가 손을 들잖아!? 이것 참 이런 우연이. 약간의 비난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오는 것 같긴 한데. 짐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야. 그래도 돌려보내는 거긴 하니 약간 조작을미리 추가해놔야겠다. ‘「가게에서 나가는 순간 왕게임에 대해서는 잊어버림」 - ON’, ‘「가게에서 나가는 순간 뭔가 즐거웠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정도」 - 6’ 요 정도로 추가해놓으면 되려나?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어이구, 나도 돌아가야 하는 건가?”
이모님이 나를 보면서 묻는다. 아, 맞다. 이모님. 어.. 어떻게 하지? 근데 이모님도 돌아가시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랑 걱정되는 마음에 우물쭈물하시는 게 보인다. 그렇다면 저만 믿어주시면 됩니다 이모님. 이모님 드림창을 빠르게 켜서 ‘「나를 신뢰하는 정도」 - 7’을 추가한다. 어이구 근데 생각보다 동안이시네.
“이모님 저한테 맡기시고 그냥 들어가서 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고 그럴까? 학생 이제 보니까 되게 믿음직스럽네.”
“아, 예. 감사합니다”
“어어, 가게는 그 우리 알바생한테 가끔 남는 키 주면서 대충 손님들 가시면 잠그고만 가라고 하거든? 고렇게 해주기만 하면 될 것 같아.”
그러더니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시는 이모님. 다른 사람들은 좀 더 하고 싶은데 라고 투덜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갈 준비를 한다. 이전에 있던 사람들은 결제 어떻게 하는 지 서로 논의하고 있고. 주방에서 이모님이 기쁘게 나오시면서 키를 건네준다.
“아, 예 감사합니다. 근데 이모님 결제 좀 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아이고, 그르네. 조금만 기다려.”
하면서 결제하는 곳으로 슬쩍 가신다. 결제할 필요가 없는 애들은 슬슬 가게를 나서고, 나서자마자 뭔가 신호가 오는 지 다들 한 번씩 멈칫하다가 발걸음을 옮긴다. 대충 좋게좋게 흘러가는 게 보이는 데 뭔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윤진이가 보인다. 무리 중에서 자기 혼자만 남게 되니 뭔가 뻘쭘한 느낌이 드려나? 대충 정리 되는 느낌이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딱 이렇게 세 명만 남지? 대박이네.”
“그러게, 남은 사람이 언니랑 윤진 선배랑 해서 다 아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야야, 정화야. 이제 남는 사람 네 명인데 윤진이 여기 부르는 게 낫지 않겠냐?”
“그렇겠다. 잠시만.”
시킨 것도 없어서 결제도 안하고 나가서 그런가, 벌써 윤진이 혼자만 남았다. 정화가 윤진아! 이리로 와! 하고 부르는 모습에 기쁘게 웃으면서 호다닥 오는 모습. 내 옆에 살짝 의자를 빼고 앉을 때 가볍게 목례를 나눈다. 옆에서 보니까 곡선이 어우야.. 옆얼굴도 어우야.. 정화가 슬쩍 나를 소개시켜준다.
“오빠, 얘도 나랑 같은 과 임윤진. 옆에는 내 방 맞은편에 사는 박@@ 오빠. 근데 오빠 무슨 과야?”
“나? 나 기계과.”
“아아.. 안녕하세요. 어휴, 아까 제 번호 부르실 때 진짜 깜짝 놀랐어요.”
“아.. 저도 그냥 생각나는 번호 그냥 막 불렀는데 뽑히셨네요. 하하....”
그럴 리가 있나.
“어떻게 술..은 뭘로 드릴까요?”
“아, 저 이미 조금 마시고 와서 맥주 조금만 마실게요.”
옆에 엎어져 있는 빈 글라스를 들어 건네고, 맥주 피처를 들어 따른다. 어라 이제 얼마 안 남았네. 하나 더 시켜야겠는데. 결제를 마치신 이모님이 다가오신다.
“학생들 더 필요한 거 있어? 필요한 것만 해주고 나도 나가 보려고.”
“아, 예. 요거 1700 하나만 더 주시고요. 그리고 이모님 여기 통유리 가릴 만한 거 있나요?”
“저거? 저기 유리 위에 보면 블라인드 있어. 고거 내리면 돼. 맥주 바로 갖다 주께잉.”
슬쩍 우리 애들이랑 나랑 전원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내리고 유리 위쪽을 보니 블라인드가 숨겨져 있었다. 아이고 좋네 좋아. 의자를 밀어서 일어나고 블라인드를 땡기러 간다. 드르륵 드르륵. 내려보니 불투명하고 빛도 막아주는 블라인드다. 아주 좋아. 유리에 블라인드만 내리면 문은 불투명해서 밖에서 안 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즉, 안에서 무슨 짓을 벌여도 밖에서는 못 본다는 거지. 흐흐.
자리로 돌아가니 금방 맥주를 채워 오신 이모님이 옆에 놓아둔 키를 들어 설명하시듯 나에게 말하신다.
“요게 키인데 요것이 위에 키고 남은 건 아래에 키여. 둘 중에 하나만 잠궈도 되고 둘 다 잠가도 돼. 나는 내일 4시 넘어서 쯤에 나오니까 고때 갖다 주면 되고. 알겄지?”
“아, 예. 이모님. 제가 카드단말기 쓰는 법 아니까 제대로 먹은 거 결제까지 하고 잘 잠그고 가겠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고, 그려. 학생 되게 믿음직해서 괜찮을 것 같여. 고러믄 나는 믿고 가볼테니께 잘들 먹고 가잉.”
이모님이 앞치마를 벗어 두고 총총 걸음으로 나가신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일어나서나가시는 이모님의 뒤로 인사를 한다. 안녕히 가세요. 드디어 판이 다 깔렸다. 으따 기분 좋은데 한 잔을 안 할 수가 없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