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왕게임 - 8
“오빠, 나.. 나 좀 일으켜줘.”
머리를 받친 내 손에 그대로 힘을 빼고 머리를 맡기고 있던 윤진이 나에게 말한다. 이제 좀 괜찮아졌나? 머리를 위로 드니 약간 뜨는 어깨 뒤로 손을 받치고 그대로 일으킨다. 휴우, 일으키고 보니 군살 없는 등을 따라 옆으로 넓게 퍼져 있는 것 같은 엉덩이 라인이 정말 좋다. 확실히.. 앞도 이쁘지만 뒤에도 이쁘네.. 하.. 가슴만.. 가슴만 있었어도..
“와.. 진짜..나 저렇게 뿜은 거 태어나서 처음이야..”
자신이 적셔버린 내 티셔츠와 바닥에 만들어버린 웅덩이라 하긴 부족한 흔적들을 가리키며 얘기한다. 그래, 나도 영상에선 많이 봤는데 실제로는 처음 봐.
“여왕님 혹시 새로운 세계에눈을 뜨신 겁니까?”
“몰라.. 모르겠어.. 지금도 좀 흥분감이 가라앉질 않네..”
“괜찮아 윤진아? 속옷이라도 가져다줄까?”
“어? 어.. 그.. 아냐. 좀만 더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
부정도 안하면서 속옷을 가져다준다는 데도 거절하는 이 모습. 음, 확실히 맘에 들은 것 같네. 그리고 나 역시 몇 시간 전에 두 번이나 빼고 온 나의 분신이라 해도 이 정도까지 왔는데 애들이랑 파워쎅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없을 리가 없다. 빳빳하게 세워진 이 녀석을 써먹기 위해서는 역시 콘돔이 필요한데.. 씨발.. 아까 가져올 걸..
어떻게 한 번 밖에 다녀와야 돼나 고민하는데 생각해보니 내 티셔츠가 저 모양 저 꼴이네. 양손으로 집어 드니 티셔츠 아래쪽이 다 젖어있다. 그건 그렇고 이거 이렇게 그냥 내비두면 당연히 이상한 냄새도 나겠지? 일단 화장실가서 물로라도 써서 대충 빨아놔야겠다.
“나 이거 대충 빨아가지고 올 테니까 쉬고 있어.”
“아.. 오빠.. 하아.. 미안해. 그거 찝찝해서 어떡해? 내가 내일 티 하나 사줄게.”
“됐어. 뭐 안 지워지는 거 묻은 것도 아니고 대충 여기서 물로 씻어놓고 세탁기 돌리면 돼.”
그리고 어차피 니가 그렇게 뿜은 것도 따지고 보면 나 때문이기도 하니까. 화장실로 티를 들고 가서 대충 물로 묻은 부분만 닦아내다가 아.. 그냥 집에 한 번 다녀오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왕 집에 다녀올 거 아예 그냥 내 방이나 정화 방으로 자리를 옮길까? 어차피 여기서 잘 것도 아니고...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구만. 완전 물에 적셔진 내 티셔츠를 반으로 접어 양쪽을 잡고 쥐어짜면서 물기를 짜낸다. 최대한 짜내고 다시 입으려고 하니 축축한 느낌으로 몸에 착 달라붙는다. 어으.. 나는 축축한 거 존나 싫은데.. 어쩔 수 없지.
불쾌감을 느끼며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윤진이 물을 마시면서 좀 쉬고 있다.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알몸의 여인이라니. 이거 참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구만. 여자들의 시선이 착 달라붙어 못 볼꼴의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젖은 티 쪽으로 쏠린다.
“야야, 여기서 이럴 바에 나 티도 갈아입어야 하니 자리를 옮기자.”
“어? 어디로 가게.”
“내 방이나 정화 방 가자. 어차피 여기서 잘 것도 아니고 안주도 뭐 별로 안 먹으니 대충 술만 조금 사가면 될 것 같은데? 그리고..”
대충 휴대폰을켜서 시간을 보니 벌써 1시 반이 넘어간다. 이럴 땐 두 가지지. 여기서 파하거나 아니면 좀 더 편한 곳에서 하거나.
“어차피 니들 왕게임 계속 할 거잖아?”
나의 말에 쉽사리 대답을 못하는 그녀들. 정화랑 아라가 서로 눈치 보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윤진이 손을 든다.
“저 또 왕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 뭐.. 열심히 해 봐.. 너 하는 거 봐서 시켜 줄게.. 윤진이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가 정화랑 아라가 눈이 마주치는 데 서로 머쓱해하는 눈치.
“너희도 뭐 괜찮지? 그럼 나갈 거니까 쟤 옷 좀 입혀라. 나는 이거 먹은 거 대충 정리 해놓을 테니까.”
“아, 나도 도와줄게.”
음식 접시랑 1/3 정도 남은 피쳐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아라가 붙어서 대충 접시랑 식기를 들고 따라온다. 대충 남은 술들은 싱크대에 버리면 되고, 음식들은.. 뭐 어디 따로 모아놓는 곳 있나? 찾아보려다가 대충 그냥 주방 안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만 한다. 두 명이서 몇 번 가볍게 왔다 갔다 하니까 금방 치워버렸다. 자, 대충 우리 테이블은 정리한 것 같고.
자리로 다시 돌아가 보니 윤진이는 어느 새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입고 있고, 정화는 티를 완전히 벗지는 않고 대충 팔을 빼서 목에 걸어놓고 브라를 다시 차고 있다. 오호, 저런 방법이. 아라까지 자기 브라를 집어 드는 걸 보고 나서 대충 계산을 하기 위해 포스기로 향한다. 어.. 닭발이랑.. 주먹밥이랑.. 계란말이랑.. 또 뭐 있더라.. 소주에.. 1700 2개니까.. 어우 시발 생각보다 많이 나오네.
제대하고 잠시 알바 뛰면서 조금 모아놓은 돈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대충 일단 내 카드로 먼저 긁어 놓자. 흑, 괜찮아. 다시 메꿔 놓을 거니까. 카드 긁고 영수증까지 뽑고 나니 벌써 애들이 준비를 다 마치고 키를 들고 나온다. 어우, 빨라서 좋긴 한데 드림창 설정할 시간이 없잖아.
“야야, 잠깐만 나가지 말고 기다려봐.”
“어? 왜? 뭐 안한 거 있어?”
어. 드림창 설정. 재빨리 가게 드림창을 띄우고 밑에 있는 왕게임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만족감 주는 두 항목을 지워버린다. 또 출입구 드림창을 띄워서 아예 영역을 없애버린다. 그리고 또... 아.. 이거 세 명한테 드림창 내용 복사 안 돼나? 되겠지? 나의 드림창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니까?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세 명의 드림창을 만든다. 그리고 기존의 가게 드림창에 있던 내용을 쭈우우욱 선택하여 드래그하듯이 이 쪽의 드림창으로 옮긴다. 그러면 그렇지, 곧 바로 딱 동일한 값의 항목들이 그대로 추가된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UI가 또 있을까!
“아냐, 이제 다 됐다. 나가자.”
문을 열고 나가니 선선했던 가게와는 다르게 후끈한 열기가 슬쩍 올라온다. 어후, 아무리 새벽이어도 이 열대야는 가실 생각을 안하는구나. 가져온 가게 열쇠로 문 위아래를 둘 다 잠근다. 잠깐 움직였는데도 몸에 달라붙은 이 축축함 때문에 불쾌감은 더더욱 상승한다. 게다가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물이 땀처럼 느껴져서 죽을 맛이다.
“으어어어, 죽을 것 같다 진짜. 존나 끈적해.”
“오빠 괜찮아? 내일 할 일 없으면 나랑 티 하나 보러 가자. 내가 미안해서 그래.”
쾌락에 몸도 제대로 못 가누던 그녀는 어디 가고, 어느 새 처음 그 모습이 그대로 돌아온 것 같은 윤진. 물론 얼굴에 조금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약간의 흐트러짐을 보여주기는 한다. 이렇게 보니까 윤진이 키가 확실히 크긴 크네.
“아이고, 괜찮으니 일단 빨리 가시죠. 아, 그래서 어디로 가냐? 내 방? 정화 방?”
“어.. 지금 내 방은 조금.. 요새 청소를 너무 안 해서.. 아까 오빠방 괜찮더만.”
“응? 아까? 아까 오빠 방에 있었어?”
“어? 어.. 아니 그게..”
그럴 것 같드라. 뭔가 아까부터 얘기하는 걸 보니 언제 한 번 들통나겠다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구나. 아라까지 놀란 눈치로 나한테 묻는다.
“오빠, 진짜야? 뭐야? 서로 오늘 알았다면서?”
“참.. 아까도 말했지만 그게 얘기를 하자면 긴데.. 일단 여기서 설명하기 조금 그러니까 방부터 가자..”
대충 느낌이 온 윤진이는 뭐야뭐야? 하는 오묘한 눈치를 우리에게 번갈아 주고 있었다. 하여간 정화 저거 아까부터 느꼈지만 은근 허당이야.
자꾸 관계를 슬쩍 슬쩍 떠보는 윤진과 당황스러워 하면서 대충 말을 돌리는 정화. 그 사이에서 추임새를 더하는 아라 셋의 꽁트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이에 원룸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이미 내 몸은 불쾌감으로 가득해서 티셔츠에 달라붙은 이게 물인지 땀인지 구별도 안 간다. 여기라고 안내를 한 다음에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간다.
드디어 도착한 내 방. 삑삑삑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아까 에어컨을 깜빡하고 안 끄고 나갔는지 방의 시원함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다. 하.. 씨발.. 오늘만큼은 나의 건망증이 장점이 된 것 같다. 존나 살 거 같다 진짜.. 들어오자마자 입고 있던 티를 그대로 벗어 바깥 베란다 쪽에 있는 세탁기에 집어넣고 밖에 널어놓은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는다.
“오.. 그래도 생각보다는 정돈하면서 사네?”
들어오고 나서 방을 둘러보더니 한마디 하는 윤진. 그래, 오늘 아다 좀 뗄려고 청소 좀 했다. 다들 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옷장에서 새 티를 하나 꺼내 입으며 말한다.
“오늘 청소해서 그래. 평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냐.”
“왜에? 왜 오늘 청소 했어? 누가 왔나봐? 어머나 세상에. 침대 위에 콘돔까지 뜯어져 있네?”
풀썩 내 침대 위에 앉으면서 미묘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윤진. 이 정도면 알면서 놀리는 거구만. 근데 그거를 얘기하기에는 정화도 제대로 설명 못 할 거고, 그렇다고 내가 정화 데리고 한 그짓거리를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괜히 복잡해지기 전에 얼른 설정 좀 해놓자. 윤진 옆으로 정화, 그리고 그 옆으로 아라가 풀썩 앉는다.
아까처럼 빠르게 내 방 드림창을 하나 만든다. 그리고 바로 ‘「정화가 오늘 내 방에 있었던 것을 신경쓰는 정도」’를추가해서 0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 궁금해? 얘기해 줄까?”
“어? 아냐 됐어. 아, 그것보다 오면서 술 사올 걸. 깜빡했다.”
바로 관심 끊는 그녀. 남은 여편네들도 아아 소리를 하면서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한 리액션을 취한다. 하긴 니들 오면서 이 얘기 하느라 정신 팔려있었잖아.
“자, 고렇다면 바로 한 게임 들어가고 사오도록 하겠습니다. 빠른 게임 고?”
“고고!”
세 명이 나란히 침대 위에 앉아서 발랄하게 외친다. 아까 정화 혼자만 있었을 때도 기분이 묘했는데 몇 시간 만에 세 명으로 불어났구나. 미래는 정말 한 치 앞도 모를 일이구만.
“자 번호는 아라 1 윤진 2 정화 3 나 4입니다. 바로 발표할까요?”
아까는 테이블을 쳐서 두구두구 하는 소리를 만들어 냈는데, 지금은 테이블이 없으니 자기들 허벅지를 가볍게 때리면서 소리를 만든다. 흠, 이 소리도 나쁘지 않은 걸?
“내 방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왕은.. 4번!”
발표와 동시에 으으으 하면서 그대로 풀썩 침대 위로 쓰러지는 윤진. 그 모습을 보더니 남은 두 명도 도미노 마냥 차례대로 으으으 하면서 쓰러진다.
“대충 서로 아는 것 같으니 바로 명령 내린다?”
“예이예이, 그러시죠.”
흐음.. 아까부터 윤진이만 계속 당하는 것 같으니 슬쩍 재밌는 일 시켜줘야겠네. 그 사이에 술 사러 다녀오면 되겠구만.
“자, 1번은.. 왕이랑 같이 술 사러 다녀오고 2번은.. 왕이랑 1번이 다녀오는 동안 3번을 애무해주고 계시면 됩니다.”
“...뭐?”
순간 세 명 동시에 고개만 벌떡 들고 놀란 듯이 큰 소리로 묻는다. 당황스러워 하는 정화와 달리 씨익 웃으며 몸을 정화 쪽으로 돌리면서 팔을 괴고 남은 검지손가락으로 슬쩍 정화의 턱을 요염하게 쓰다듬으며 묻는다.
“자아.. 3번이 누구일까..? 아아.. 우리 정화.. 혹시.. 3번이니..?”
“네? 아.. 아아.. 그.. 그게..”
“후후후, 맞나 보네. 두고 보자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어머 기뻐라..”
“어.. 그럼 나는 오빠랑 편의점 갔다 오면 되는 거지?”
“그렇지. 두 분이서 오붓한 시간 보내게 우리는 빨리 자리 비워줍시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생물이 된 것 같은 정화와 먹이를 앞에 두고 장난치며 놀고있는 맹수와도 같이 보이는 윤진. 그리고 몸을 일으키면서 침대 위에서 일어나는 아라.
“자자, 빨리 다녀오자. 아까 오던 길목에 있던 편의점 거기야.”
“어, 나 지갑 챙길까? 오빠가 챙겼어?”
“내가 갖고 갈게. 가자.”
몸이 굳어버린 정화와 달리 이제는 턱이 아니라 볼을 쓰다듬으며 거의 귀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대면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윤진이 보인다. 그 와중에 나가면서 슬쩍 쳐다보니 나랑 눈이 마주친다.
“너무 과하게만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대답 대신 찡긋 가볍게 윙크를 하는 윤진이다. 저걸로 남자 여럿 홀렸겠구만 아주.
문 밖으로 나서니 시원했던 방이 무색해질만큼 후덥지근하다. 그래도 티도 갈아입고 대충 몸도닦으니 아까보다는 훨씬 낫다.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바로 옆에 붙어서 따라 내려온다. 슬쩍 옆으로 시선을 옮기니 또렷한 눈망울이 어울리는 예쁜 얼굴과는 대비되는 가슴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어.. 이거 탐나는데? 나란히 계단을 내려오면서 말을 꺼낸다.
“야. 아라야.”
“어? 왜?”
“나 갔다 올 때 동안 팔짱 좀 껴주면 안 되냐?”
“팔짱? 갑자기 왠 뜬금없이?
“에이, 알거 아냐. 뭐때문인지.”
아라의 미간이 좁혀지며 눈이 가늘어진다. 대충 내가 원하는 바를 느낀 것 같다. 하지만 뭐어때. 안 되도 본전이고 되면 대박이지. 갑자기 고민하던 아라가 조건을 내세운다.
“대신 조건 있어.”
“조건? 뭔 조건?”
“아까 방에서 정화 언니랑 뭐 했는지 사실대로 얘기해주면.”
응? 갑자기 정화 얘기를? 아까 그거 신경 쓰는 정도 0으로 해놨을 텐데? 살짝 놀라긴 했는데 잠깐 생각해보니 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아 얘네들한테 직접 한 게 아니라 내 방으로 지정해놨었지. 근데 이상하게 이거에 은근 집착하네.
“어.. 진짜 뭐 별거 없었는데..”
“그럼 싫어. 안 해줘.”
“아.. 알았어. 그럼 얘기해 줄 테니까 그럼 팔짱부터!”
“... 떼먹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