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일상 - 8
[다시 시점 변환]
그래, 저 표정. 세상 좆같음과 어이없음을 한 데 모으면 나타날 것 같은 저 표정. 내가 원했던 모습이야.
어? 시발. 남은 여자랑 카톡 한 번 하면 막 설레고 애는 몇이나 낳을지, 노후는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고 그러는데, 이 새끼는 뭐어어어? 야아아앙다리?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상황을 만든 거다. 어찌보면 저번 쪼다새끼한테한 거랑 비슷한 것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저번 쪼다새끼는 지가 아무리 발악을 해봤자 아무것도 못하는 결과에 좌절감을 맛보게 해줬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에 가깝다고 하면 좋을 것 같아.
그렇다고 여기서 끝나냐? 아니지 그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걸. 물론 내가 판을 짜줬지만 전체적인 틀만 짰기 때문에얘네들이 어떻게 나올지 나도 궁금하긴 하거든.
민서가 꺼내든 콘돔을 보다가 손을 들어서 콘돔을 가져가려고 하는 순간. 그녀가 갑자기 손을 뒤로 빼며 콘돔을 집으려 했던 손이 빗나가게 만들며 한 마디 한다.
“근데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응? 뭐지? 약간 당황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뭔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얘기하는 그녀.
“나 오늘 안전해요.”
그러면서 손으로 자기 아랫배를 살짝 톡톡 친다. 뭐야 이거. 오늘따라 안전한 애들이 많네. 내 얼굴이 피임률이 높은가? 하긴 못생긴 얼굴은 콘돔보다 피임율이.. 씨발. 갑자기 왜 이 생각이 나는 거지?
아무튼 안전하다고 얘기를 들었으니 옮겨야지. 굳이 고르자면 나는 고무 끼고 하는 것 보단 살과 살을 문지르는 게 더 좋으니까. 거기에 수빈 누나가 피지컬이 좋지만, 얘도 얼굴이랑 몸이 부족하지는 않잖아.
“아니.. 씨발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이거?”
남자 XX가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지껄인다. 흐흐, 거기서 보고나 있거라. 잡고 있던 누나 허리에서 손을 떼고 민서에게 묻는다.
“그럼 너랑은 생으로 해도 돼?”
“음.. 하는 거는 상관없는데..”
제일 중요한 게 상관이 없는데 도대체 뭐가 걸리는 걸까.
“저는 섹스는 남자친구랑만 해서 그게 좀 걸리네요.”
의외인데. 설정해둔 항목 때문에 섹스에는 거부감이 없지만, 예상치 못한 자신만의 신념 비스무리한 게 있을 줄이야. 근데, 뭐 그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
“그럼 사귈까?”
“뭐!?”
큰 소리를 내며 이목을 집중시키는 남자. 어허, 왜 그러실까?
“서, 선배님. 왜, 왜요?”
“아니, 이 새끼가.. 무슨 사귄다는 소리를 그렇게 쉽게 하냐? 미쳤냐?”
“오빠는 왜 또 그래?”
무책임하게 사귀자는 말을 던져버린 나를 오히려 감싸주듯이 내 앞에서 남자와 대치하는 민서. 아까 누나도 그렇고 이게 약간 다르거든. 저번에 쪼다새끼때는 그래도 윤진이가 양심에 찔려서 대놓고 내 편은 못 들어줬는데, 지금은 또 다른 맛이야.
“아니, 아니.. 이건 아니지. 애초에 니가 쟤랑 왜 사귀어? 여기 옆에 남자친구가 떡하니 있는데!”
어허, 이 새끼. 니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할 말은 한다.
“서, 선배님도 민서말고 수빈 누나랑도 사귀잖아요.” “어? 그게 지금 왜 나와?”
“아니.. 당연히.. 선배처럼 민서도 남자친구 두명 사귈 수도 있죠..”
매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턱하니 말문이 막혀버린 것 같이 표정이 굳는 이 놈. 그래. 이게 이번 상황의 핵심이다. 내로남불. 정말 상황도 딱 맞군. 지가 하면 로맨스고 내가 하면 불륜이야? 어? 불륜은 아니지만 NTR은 맞긴 하지.
옆에서 알몸인 상태로 서서 조용히 듣고 있던 수빈 누나가 한 마디 거든다.
“말 되네.”
그 말에 허탈한 표정으로 누나를 쳐다보는 남자. 그래 이 새꺄. 할 말 있으면 해봐라.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오히려 기대된다.
세 명의 시선을 동시에 받고 있던 남자는 이리저리 표정이 바뀌며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다가, 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고개를 돌려 깊은 한숨을 내쉰다.
자, 여기서 살짝 정리 겸 한 방 더 먹여볼까.
“그,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세 명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선배랑 누나랑 민서 사귀고 있으니까. 저도 껴서 저도 민서랑 누나랑 사귀면 남자친구 두 명씩. 여자친구 두 명씩. 딱 맞아서 공평하지 않을까요?”
공평같은 소리를 내뱉고는 있지만 웃음이 피식피식 나올뻔 했던 것을 참으며 최대한 스무스하게 얘기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반발하듯이 욕짓거리를 내뱉으려고 하는 남자.
“무슨 개소리..”
“오, 그거 좋은데.”
이 소리는 수빈 누나가 감탄하듯이 내뱉은 소리. 그리고..
“저도 좋아요.”
이 소리는 너무나 쾌활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민서의 소리다. 아주 평화로운 두 여자와는 다르게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남자를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그.. 그래도 진짜 괜찮아? 진짜?”
믿어지지 않는 듯이 재차 물어보는 새끼.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절망스럽기 그지없다.
“너도 두 명 사귀는 데 뭐 어때?”
“맞아. 그 동안 자기 혼자만 양다리 걸치고. 좋은건 같이 해야지.”
당해보니까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뭐.. 표정만 봐도 알 거 같다. 뭔가 말은 하고 싶은데 할 말은 없고 화는 나는데 어디다 하소연할 곳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야. 너무 어이가 없다보니 웃는 걸로 보일 지경이고.
이제 방해할 건 없으니 슬슬 시작해볼까. 상황에 만족하는 것 같아 보이는 민서에게 다시 물어본다.
“그럼 이제 사귀는 거니까 섹스해도 돼?”
“네? 아.. 그럼 뭐..”
“여기서 해도 돼지?”
“상관없어요.”
허락이 떨어졌으니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민서 옆으로 간다. 그리고 손을 뒤로해서 숏팬츠 위로 엉덩이를 움켜쥐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몸을 기대오며 손으로 내 거시기를 부드럽게 쥐는 그녀. 으음, 반응이 빨라서 좋네.
남은 한 손을 가슴으로 가져갈까 하다가 핫팬츠를 내리려고 바지 근처로 가져가는 순간.
“잠깐만.”
뒤에서 누가 제지한다. 누나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알몸의 그녀가 허리에 손을 얹고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원래 나랑 하기로 했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기왕 하는 거 콘돔 안 씌우고 하는 게 좋아서 넘어간 거잖아. 입을 떼려는 순간, 남자가 누나를 다시 제지한다.
“누나, 왜 그래?”
“응? 뭐가?”
“아니, 안 하면 되잖아. 왜 그걸 굳이 말을 해?”
“섹스하는 게 뭐 나빠? 너 이상하다 오늘.”
“그걸 왜 굳이 쟤랑 하냐고! 나,나도.. 있는데..”
아까부터 거시기 세우고 있더니 기어코은근슬쩍 자기도 하고 싶다고 어필을 하는구만. 아니, 은근슬쩍이 아니라 거의 대놓고 구나.
자, 근데 내가 설정한 내용에 너랑 하는 건 없어. 나랑 하는 성적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랑 나에 대한 호감이랑 사귀고 싶은 마음만 올려놓은 상태거든. 물론, 니가 나를 뭐라고 할 때 화가 나게 하는 것도 있었고.
니가 이렇게 나오니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드네. 좋아, 요렇게 더 추가해보자고. 두 사람의 드림창을 가져와서 요 내용을 추가한다.
「XX와 성적 행위를 하기 싫은 정도」 - 7
「XX대신 나랑 성적 행위를 할 수 있다면 최대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싶은 정도」 - 8
좋아, 일단 이거 정도면 되겠지. 잠시 민서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던손을 멈추고 상황을 진행한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세 명의 시선이 또 나에게 쏠린다.
“서로 사귀는 사람 두 명씩 이니까. 남녀 두 명씩 짝지어서 섹스하는 걸로.”
여자 두 명은 적당히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둘의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슬쩍 둘이 같이 고개를 돌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남자를 보고나서 서로 눈치를 보다가..
“그럼 내가 @@이랑 할게!”
곧바로 손을 들어서 의견을 피력하는 수빈 누나. 오오, 눈치싸움 승자인가.
“아,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원래부터 나랑 하려고 했거든.”
뾰루퉁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고 누나를 보던 민서가 손을 들고나에게 말한다.
“@@ 오빠. 나랑 하면 콘돔 안 끼고 안에다 싸도 돼.”
“오오..”
절로 오오 소리가 나온다. 뭔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스스로를 지명하는 이 상황. 꼴려어어.
“지금 뭐야? 뭐하는 거야? 왜 새치기를 하려고 해?”
“오빠가 누구랑 한다고 아직 안 정해졌잖아. 꼭 언니랑만 해야 하는 법도 없고.”
“야! 순서를 지켜야지!”
“선택은 @@오빠가 하면 되잖아?”
화난 표정으로 노려보는 수빈 누나와 한치도 물러설 생각 없이 당당하게 맞서는 민서. 생각보다 치열하다. 어느 정도 둘이 신경전을 펼치리라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날카로워질 줄이야.
이 재밌는 광경을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남자가 둘 사이에 끼어든다.
“그, 그럼 누나는 나랑..”
“넌 좀 가만히 있어.”
남자는 쳐다도 보지 않고 계속 민서만 노려보며 가시가 돋힌 목소리로 말하는 누나. 오우야.. 누나 쎄다.. 그리고 무서운 그녀의 모습에 바로 깨갱하고 꼬리를 내리는 남자. 꼬무룩까지 한 거 같은데.
그렇게 말없이 노려보던 둘의 신경전은 누나의 한 마디로 다시 시작되었다.
“그럼 나도 안에 싸도 돼.”
응? 어라?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야? 나뿐만 아니라 다른 두 명도 놀란 눈으로 누나를 본다. 어.. 그러고보니 원래 처음에도 누나랑 안 끼고 하려고 했으니까. 싸는 건 입에다 싸는 거였지만.. 사실 누나도 안전한가?
음.. 물어보면 되겠네.
“누나도 안전한 날이야?”
나의 물음에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
“사후피임약 먹으면 돼.”
어... 그.. 그거도 피임률 100%는 아니잖아. 안 먹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만...
누나의 파격적인 발언에 살짝 당황했던 민서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말한다.
“그, 그래도 진짜 확실하게 안전한 날인 나한테 싸는 게 더 낫지 않아?”
으음.. 잠시 고민 하는 척을 한다. 사실 둘 다 괜찮은 몸이라 누구랑 하던 크게 상관은 없는데.. 역시 그나마 더 안전한 사람이랑..
“끝나고 입으로 빨아줄게.”
약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하나 더 공약을 거는 누나. 응? 아까 내가 입으로 빠는 건 안 하도록 설정해놨는데.. 뒤에 추가한 내용이 더 커서 묻혔나?
흐음.. 좋지. 행위가 끝나고 애정을 담아 입으로 청소해주는 거. 은은한 만족감이 계속 유지되서 좋거든. 잠깐 다시 누나쪽으로 혹하려고 할 때 다시 민서가 말한다.
“그 정도는 나도 해줄 수 있거든.”
어? 그래? 그럼 뭐 나야 상관없지. 뭔가 회심의 한 마디였는지 누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민서의 모습에 잠깐 동요한 모습이 보였지만,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날도 쓰게 해줄게.”
이번엔진심으로 놀라서 누나를 쳐다봤다. 내가 드림창 쓴지 그리 오래되진 않은데다가 굳이 아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지금까지 안했는데.. 이렇게 먼저 여자쪽에서 얘기를 꺼내니까.. 어어 시발? 존나 혹하는데?
원래 누나 그 쪽으로도 했던 그런 여자인가? 궁금해서 슬쩍 남자를 보니 입이 떡 벌어져 있는 걸 봐서 거의 폭탄선언인가 보다. 그래도 물어는 봐야지.
“누.. 누나 거기로도 해봤어?”
“.... 아니.”
처음인데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하는 건가? 괜찮으려나?
“처음이면 많이 아프지 않을까?”
“해보면 알겠지.”
“그거.. 막 관장도 해야 하지 않나..?”
“음.. 까짓거.. 해보지 뭐.”
너무나 당당한 걸. 미지의 영역에 발을 힘차게 내딛는 그녀의 개방적인 마인드에 슬쩍 감탄하려고 하는 사이.
“그럼.. 나, 나도 해줄게.”
뭔가 질 수 없다는 듯이 본인의 가능성을 말하는 민서. 뭐지 이거? 경매인가?
“너는 해봤어?”
“아니.”
내가 인싸들이 어떻게 노는지 몰라서 그러는데. 이런 게 보통일까? 아니, 보통은 아니겠지. 그만큼 이 두 사람은 쟤랑 하기 싫고 나랑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나오니 궁금한데? 어디까지 가려나? 흥미가 생겨서 뒤에 자리에 앉아다리를 꼬고 턱을 매만지며 상황을 지켜본다.
“너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그러는 언니야 말로..”
두 사람의 눈과 눈이 마주치는 지점에 뭔가 스파크가 튄다는 게 알 것 같다. 물론 그 지점에는 거의 멘탈이 나가 있는 남자가보이지만.
누나가 다소 다급함이 생겼는지 내가 앉아 있는 의자에 가까이 다가와서 내 어깨위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입어 달라는 거 다 입어줄게.”
오호. 이번엔 코스튬으로 승부인가. 하긴 요새 복장의 중요성에눈 뜨고 있기는 한데.. 어떤 옷이 제일 꼴리는가 생각하고 있으니 질 수 없다는 듯이 민서가 반대편 쪽으로 와서 검지로 내 유두를 슬쩍 만지면서 얘기한다.
“그러면 나는 그거 받고 상황극까지.”
부드러운 손가락이 차가워진 젖꼭지를 스칠때마다 몸이 조금 움찔한다. 상황극? 그거 뭐 내가 만들면 되기는 한데. 오히려 생소해서 더 끌리네. 어색한 연기가 더 꼴릴 수도 있으니까. 음. 이것도 킵해둬야겠군.
“그.. 그럼 오늘 얼마든지 해줄테니까..”
약간 다급해진 목소리로 내 거시기에 손을 대는 누나. 으음, 슬슬 내세울만한 게 떨어지나? 하지만 옆에서는 가소롭다는 듯이 끈적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민서가 있다.
“나는 직장도 안 다니니까. 오빠가 원할 때 언제 어디서나 다 해줄게.”
그러면서 내 목덜미를 혀로 스윽 핥아올린다. 이야.. 시발.. 이 돌발행동도 좋긴 하지만.. 여기서 학생과 직장인의 차이가 드러나는구만.
두 사람이 곁에 있어서 느껴지는 따스함과 야릇함에 눈을감고 만끽하고 있으니, 갑자기 누군가가 손으로 꼬여 있는 내 다리를 푼다. 어라? 슬쩍 눈을 뜨니 수빈 누나가 어느 새 다리를 벌리고 내 위로 올라와서 좆을 잡아 꽂으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마인드인가. 흠, 뭐 나는 굳이 말리거나 반항하지는 않고 누나가 하려는 그대로 내버려둔다. 말리려는 사람은 따로 있거든.
“뭐 하는 거야!!”
“아 몰라! 원래 그냥 나랑 했으면 되는데 니가 방해했잖아!”
밀어내려는 민서와 버텨내며 좆을 보지에 삽입하려고 애쓰는 알몸의 누나가 내 위에서 서로 대치를 하는 모습을 보니.. 허허..
세상 말세야 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