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9일차 (44/94)



〈 44화 〉9일차

이  줄리가 일어났다. 너무 시끄럽게 떠들었나 보다.


멍하니 상체만 일으킨 그녀는 자기 가슴을 쳐다봤다.


마리가 그녀에게 물었다.


"줄리. 좀 괜찮아요?"


"글쎄. 나도 내 몸을 잘 모르겠어."


줄리는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저렇게 말하는 거 보면 오히려 좋은 소식인 걸까.

개조할 때 가슴과 유두에 쾌감이 증가했다길래 나는 옷도 입기 힘들 줄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조물조물 만져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느낌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잠시만."

그녀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 썼다. 젖꼭지라도 꼬집어볼 생각인가?


줄리는 한동안 꿈지럭대더니 고개를 들었다.


"예민해진건 맞네."


얼굴을 붉힌 그녀는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더니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에 갔다.


우리 둘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줄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부끄러우니까 그만 봐줄래?"


"네."

나는 고개를 돌려줬다. 마리도 아쉬워 했지만 다시 컴퓨터를 보기 시작했다.

아마 애액이 증가해서 살짝 느낀 걸로도 흘린 모양이다.


어차피 다 알거 아는 사인데 부끄러워 할만한 사항인가? 물론 부끄러워 할 수 있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면 우리가 보는데 가슴을 만져보질 말던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제니퍼가 일어났다.


아무 생각 없이 제니퍼를 봤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들 중에선 메이크업이 가장 극적이지 않을까 싶다. 순해보이던 인상이 거의 180도 바뀌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봉긋한 자신의 가슴을 쳐다봤다.

하얀 스포츠 브라 위로 쿡쿡 찔러도 보고 살짝 주물러도 보더니 얼굴을 붉힌다.


저런 얼굴을 예전에 순정만화 책표지에서 본  같기도 하다. 아닌가?

"얼굴 확인 해봐."


가슴에만 관심있어 보이길래 말해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별 말 없이 일어나서 거울로 간 제니퍼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매만졌다.

"무슨 하이틴 영화에 나온 뱀파이어 같네요."


머리카락 색이 수수한 대신 얼굴이 눈에 띄었다. 결국 티 별로 안나는 개조가 없었다.

그 사이 화장실에서 나온 줄리의 유두는 비키니 위로 잔뜩 성이 나있었다. 애액을 어떻게 처리한 그녀는 침대에 앉으며 머리를 짚었다.

"진짜 미친 몸이네."

"심각해요?"

제니퍼가 묻자 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민감해진 것도 짜증나는데 살짝 만지고 꼬집은 걸로 애액이 나왔어. 이게 누가봐도 비정상이지."

정말 화난 표정이었다. 아마 잠시  자위를 해야해서 더 그런 모양이다.

"전에는 절정 해야 이정도 애액이 나왔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응?"


줄리의 계속된 투정에 엘리스도 조금 있다가 일어났다.

백금발 웨이브 머리를 쓸어넘긴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멍하니 봤다.

"허."


그리고 헛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짚었다. 스포츠 브라를 입었는데도 꽤 커보이니 역시 C컵이다.


나였어도 자고 일어났을  갑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는 가슴이 보이면 어이없을 것 같다. 계속 가슴 커지는게 두려워서 미치겠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엘리스는 가슴을 조물거리며 만졌다. 저건 필수 코스인가 보다.


예민해진 감각이 궁금한 모양이다. 줄리처럼 이불속에서 하면 좋을텐데 너무 대놓고 한다. 우릴 신경 안쓰는 저게 정상인 건가?

하긴. 어떻게 숨어서 한다고 해도 사이트 들어가면 다 보이더라. 당당하게 해도 될 듯 하다.

그 사이 엘리스는 아예 브라 속에다 손을 넣고 조심스럽게 만지기 시작했다. 감각이 미묘한지 얼굴이 붉어졌다. 옆을 보니 마리도 구경하며 얼굴을 붉혔다.


뭔가 알아보려고 하다가 실수로 유두를 건드린 모양이다. 그러자 제니퍼와 달리 몸을 움츠리며 신음을 질렀다.

"하아앙!"


여기있는 모두가 얼었다. 물론 엘리스의 얼굴은 터질듯이 빨개졌다. 마리가 허둥지둥 딴청을 피웠다.

"다들 알았으니까 할  해!"

오히려 그녀가 소리쳤다. 그녀가 뭘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써 모르는 척 하며 자기 할 일을 했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나까지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방이 있었다면 당장 그곳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원룸이라 괴로운 점이 너무 많다.

급한대로 생각나는 아무 음악이나 치기 시작했다. 신나는게 뭐가 있을까 잠깐 고민하니 예전에 연습했던 캐논 변주곡이 문득 떠올랐다.

살짝 애매하긴 한데 신나는 종류로 쳐주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했다. 제니퍼도  쪽에 있기 창피했는지 내 옆으로 왔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여기  있을게요."

"그래."


악보는 없었지만 대강 이어서 계속 쳤다.

내가 연주를 하자 줄리는 휴지를 잔뜩 챙겨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피아노를 치면 자연스럽게 자위를 하려는 모습이 이해는 가지만 불쾌했다.

뭔가 싸구려 음악이 된 느낌이다. 부정적인 마음을 지우고 좋게 여자를 절정시키는 연주라 생각하니 좀 나아졌다.

어느 연주자가 피아노로 여자를 자위하게 만들겠는가.


엘리스도 아무렇지 않은  게임기를 붙들었다. 하지만 얼굴은 아직도 빨갰다.


자기 때문에 이 사태로 변했는데 모르는 척 하니까 웃겼다.

이렇게 서로 괜찮은 것 처럼 연기하면 해결이 되나? 참 어려운 문제다. 진짜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줄리의 억눌린 신음소리가 피아노 소리 사이로 들린다. 이걸 어떻게 괜찮은  할 수 있지?


내일 그녀가 다음 개조를 받아 신음을  참게 되면 어떻게 할까.


만약 내가 자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누가 피아노 역할을 해주지?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어이없었다. 그냥 피아노나 쳐야겠다.


그 사이 줄리는 자위를 마친 모양이다.

그녀가 자위를 마쳤다는 말이 나오고 침대가 들썩였다. 얼추 마무리를 했는지 줄리가 꽤 젖은 휴지 뭉텅이를 들고 일어났다.


저걸 보니 애액량이 정말 많아졌다는게 확 느껴졌다.


그녀에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음란한 냄새가 퍼졌다. 나는 피아노를 멈추고 게임하는 엘리스에게 갔다.


앉아서 게임기를 들고있는 그녀 옆에 앉았다.

"기분이 어때."


"...큭. 어떨 거 같냐?"

그녀는 다시 생각해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런 그녀에게 돌직구로 물어봤다.

"아직도 마지막  까진 여자로 적응하고 버틴다는 말 유효해?"

나는 진지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엘리스는 백금발 머리를 마구 헝클어 버리더니 나를 노려봤다.


"1등 포기한거 아니거든? 내가 1등 하면 원래 모습으로 바꿔서 나갈거야."


"1등 하려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그거 말고. 1등을 향해 가는 동안 여자 모습을 받아들이겠다며. 아니야?"


내 말의 의도를 모르겠는지 얼타던 엘리스는 점점 씩씩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와서 어쩌라고 이러는데? 내가 게임 도중 취기랑 발정 때문에 자위한거 가지고 그래? 아니면 신음 못참고 질러대는 것 때문에 그래?"

"둘  가지고 그러는 건데?"

담담하게 대답하니까 엘리스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무슨 대답을 원해?"

솔직하게 말했다.


"여자로 적응하지 않고 남자로 버티겠다는 말."


엘리스는 허! 하고 기가차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도 그거 가지고 꿍해있어? 서로 알아서 하기로 합의 봤잖아. 내가 여자로 적응하던 남자로 남던 설득 안한다면서?


게다가  생각 때문에 널 덮친거나 다름 없다니까? 사과도 했잖아. 무슨 대답을 원하는거야? 진짜."


그녀가 의문을 담아서 내게 막 쏘아붙였다. 그래도  담담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야. 남자로 끝까지 버틸 수 있겠냐고."


그제야 내 말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엘리스는 날 다시 노려봤다.


"내가 신음 몇  질렀다고 여자 된게 좋은 것 같아? 절대 아니거든? 나 참내. 무슨 시비를 이렇게 거나 했네. 누가 걱정을 이따위로 해?"

"그럼 됐어."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 치고 일어났다.

미묘한 표정으로 날 보는 엘리스를 뒤로하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엘리스에겐 미안하지만 그녀의 다짐을 들어야 했다.

마리와 대화를 나누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녀는 이미 과거의 자신보다 지금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거의 확신에 차있는 모습이었다.


아까처럼 마리가 다른 이들에게 말한다면. 나처럼 거절할 수 있을까? 지금은 몰라도 조금만 지나면 충분히 설득된다.

중간중간 대화를 나눠보면 줄리나 제니퍼도 머지않아 보인다. 초반인데 벌써 망설인다는 뜻은 후반엔 무조건 넘어간다.


오히려 엘리스가 개조는 심각한 상황이지만 가장  버틸 듯 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버티는 것이다. 여자로 만들고 쾌락을 잔뜩 집어넣어 달달 볶는데 견디기 쉬울  없다.

그러다 결국 다들 여자로 지내는게 좋아지면?

나아가서 4명이 다 여자가 된게 좋다고 같이 있자고 설득하면 난 거절할 수 있을까?

지금은 바로 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음주는?  다음주는?

오늘 게임에서 맛본 절정은 진짜 신세계였다. 온 몸이 울렁거리고 달아올른 기분이 잊혀지질 않는다.

몇 주 동안 여성의 쾌락에 익숙하게 만들면 나는 바로 거절할  있을까? 글쎄...

나는 누워있다 말고  뺨을 찹찹 쳤다. 이게 날 깨우는 주문이다. 끝까지 견디고 버텨야 한다.


솔직히 혼자서 끝까지 버티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을 주면 안되는데 그건 힘들다. 나도 사람인지라 같은 고생을 겪는 이들에게 정이 간다.


저번주만 해도 다들 뭘 하든 거슬리고 안좋게만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내심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도 5명이 함께 받으니까 버틸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습게도 여기서 하나  떠나가면 이상한 배신감을 느낄 것 같다.

"휴우."


이러면 안되는데 마음이 약해진다.

겨우 3분의 1 지나갔는데 이래도 괜찮나 싶다.

결국 스스로 계속 다짐하는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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