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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11일차 (50/94)



〈 50화 〉11일차

피아노 앞에 앉았더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소리가 큰 연주가 뭐가 있을까. 딱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악보가 있나 살펴봤다.

우습게도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있었다. 지금 내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뜻일까?

홀린 듯 악보를 들고 피아노 앞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실소가 계속 나왔다.

심호흡을   한 뒤에 앞에 펼치고 연습했다.


"후우."

가만히 하는 컴퓨터와 달리 가슴이 엄청 걸리적거린다.

내가 피아노 칠 때는 몸을 많이 움직인다는 것이  느껴졌다.


적당히 몸에 맞춰서 연습을 하고있자 뒤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으흡!"

줄리가 베게에 얼굴을 묻고 자위중이었다.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강제로 막으면 되는구나.

물론 숨겨도 연주 사이로 쾌락에 가득찬 신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이젠 익숙해졌는지 다들 자기 할 일을 한다. 모르는  해주는게 자연스러워졌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벌써 적응했다고? 놀랍지만 그렇다.

지랄 발광을 하던 나조차도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까.

줄리의 자위가 끝나도 나는 피아노 치는 것을 멈출  없었다.

고민에 고민이 계속 쌓인다.


이미 변한 몸에서 남자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그건 확실하다.


변해가는 몸에 연연하다가는 분명 다른 것도 놓칠 것이다.

그럼 받아 들이라는 뜻인가? 나도 결국 적응하게 되는 것인가?

처음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분명 나였다. 하나 하나 적응하는 순간 망가질 것이라 주장한 것도 나였다.


하지만 오늘 충격은 내 멘탈을 와장창 부숴버렸다.

누가 봐도 지금  모습은 여자다. 부정할  없다.


그렇게 애써도 개조 하나 막지를 못했다.

남들 앞에서 오줌도 싸고 기절 직전까지 노력해도 소용 없었다.


외부적 요소에 하나하나 신경을 쓰다가는 남은 20일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융통성 없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생각만 옳다고 여겨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대로 흘린것이다. 줄리나 엘리스의 말이 결국 옳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자.

나는 아직 남자인가?

그렇다.


그러면  이런 고민을 하는거지? 초반에 했던 다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나?

그럴 것 같다.


  말에 대해서 확신을 못하고 망설일까. 이미 변할 거라고 예상 했었는데도 충격을  받을까.

내가 나를 못 믿으면 누가 날 믿지?

현실에 순응하는게 옳은 방법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은 맞다.

이쯤 되니까 생각의 결론이  방향으로 가게 된다.

외형이 여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자.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납득이 되질 않는다. 이게 정말 맞는 방법인가?

일단 나를 설득 해야한다.

앞으로 이 곳에서 우리들에게 시킬 짓들은 더 악랄해질 것이다. 여기서 도태되면 1등 확률은 더 적어진다.

 여기서 1등을 하지 못한다면 버틸 자신이 없다. 남아서 5년동안 여자로 살고싶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로 남기 싫어서 1등을 하려면 이 신체에 적응해야 한다.


결국 여자가  수 밖에 없을까?

이게 내 운명인가?


진짜?

팔이나 손가락, 어깨까지 땡겨왔지만 피아노를 계속 쳤다.


저항해서 버티고 1등이 되면 가장 여성스러워 보이는 개조를 시킨다.

게임에서 1등을 하기 위해 노력하려면 여성의 신체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괴리감이 나를 계속해서 조여왔다.


거칠게 흔들리는 몸을 따라 가슴이 움직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뭘까. 남자로 남아있기? 내 모습을 되찾기?

다른 것들은 이미  소용 없었다. 그럼 보이는 가장  목표가 뭘까.

1등.


나의 유일한 희망은 한 달 뒤 1등을 하는 것이다. 벌써 10일이 지났으니 20일 뒤에 1등을 하면 된다.


남자냐 여자냐 고민할 시간도 아깝다. 1등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결론에 다다른 것일까? 뭐. 그건 상관 없지


머리속이 점점 정리가 되어간다. 내가 고민하던 것들은 다 바꿀  없는 고민이었다.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나는 남자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1등이다.


이것 말고는 신경쓰지 말자.

피아노를 너무 열정적으로 쳐서 땀이 흘렀다. 생각했던 것 처럼 가슴골에도 땀이 찬다.

그래도 아까만큼 불쾌하지 않았다.


이렇게 연주에 몰입한 것은 오랜만이다. 마치 중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미친듯이 치던 피아노를 마치고 나니까 온 몸이 저렸다.

생각을 확실히 정리했더니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그래.

일단 받아들이자.

내가 남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가 나갈 수만 있으면 된다.


1등을 하고 나갈  있게 되면 그 때 아파하자. 지금 다른 감정은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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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차


오늘도 변함없이 일어났지만 가슴의 묵직함이 달랐다. 애써 무시하고 양치를 했다.


"아."


멍하니 이를 닦다가 흘렸는데 가슴 위로 떨어졌다. 이런 클리셰적 상황을 겪을 줄이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휴지를 대강 뜯어서 슥슥 닦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와서 대변을 눈 기억이 없다. 먹은게 없어서 그런가.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양치를 끝냈다.

매일 하던  처럼 몸이 뻐근하길래 스트레칭을 했다. 다리를 찢고 앞으로 상체를 숙였는데 가슴이 땅에 닿는다.

무시하고 꾹꾹 눌렀다. 바닥에 눌려 말캉대는 감각이 느껴진다.

의외로 하루만에 스트레스도 잘 안 받는다. 어제는 진짜 가슴이 커지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냥 가슴에 살찐 기분이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니까 전부 다르게 보였다.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내 정신만 멀쩡하다면 몸이 어떻게 망가지든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어제 피아노를 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엘리스의 말에 그렇게 반대를 했었는데. 왜 그랬을까. 내가 어리석었다.

개조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면 나만 죽어나간다.

줄리의  처럼 더 밑바닥을 상상하며 다짐하니까 별거 아닌  처럼 느껴졌다.

오늘도 몸이 변하는건 막을 수 없다. 여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1등을 해야한다. 그것만이 목표다.

한 달 뒤 1등을 하지 못한다면  때 괴로워 하자.



[오늘의 게임은 '치킨게임 2' 입니다! 저번에 했었던 게임에 이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까지 버티면 이기는 바로 그 게임!]

역시나 개인방에서 눈을 떴다. 이젠 같이 하면 오히려 어색할  같다.

그런데 전에 했던 게임을 다시 들고 올 줄이야.


하긴. 강도가 그 때 약하긴 했다. 이제 다들 확실한 여자로 변했으니 더 강한 미션들을 시킬게 뻔하다.

[마찬가지로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개별 방에서 진행됩니다. 한  빼고 4명이 다 실패하는 순간 게임은 끝납니다. 같은 단계에서 실패를 하더라도 순서대로 점수를 주는건  아시죠?]

처음 페널티로 취기를 맛봤던  게임이다.  때만 해도 나에게 정액이란 것이 있었는데.

옆을 보니 그 때 처럼 거울이 있다. 얼마나 추잡한 일들을 시킬지 걱정이다.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옛날 일 같다.

게임의 양상이 어떻게 흘러가려나. 이제 페널티의 무서움을 모두가 안다.


죽기 살기로 5등을 안하려고 노력할게 뻔하다.


이번엔 어떤 추태를 부리더라도 꼭 1등을 할 것이다.


내 몸이 어차피 망가질 거라면 사릴 이유가 없다. 악착같이 하는 수 밖에.


어떤 시련이 와도 다 참아낼 수 있다.

[1단계 미션은 매우 쉽습니다! 바로 팔 굽혀 펴기 10회! 자세를 잘 지키며 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작!]

오랜만에 하는 기분이다. 망설임 없이 바로바로 해야 했다.

시간이 금이다.

정확하게 자세를 잡고 상체를 숙이자 가슴이 땅에 닿는다.


무시하고 다시 팔을 편다. 1회 추가가 되었다.

기분은 엄청 나쁜데 평소보다 덜 내려간 것도 1회로 쳐줬다. 가슴이 커지고 처음으로 이득인건가.

무게가 늘어났으니까 여전히 손해다. 가슴 커진 것은 진짜 도움이 하나도  된다.

틈마다 몸을 풀어주고 조금씩 운동한게 아니었다면 내가 제일 먼저 탈락이었을 것이다.


꾸준히 조금씩 했던게 그나마 도움이 된다.

그래도 이런 단순한 미션이 너무 반가웠다. 매번 운으로 결정되는 게임만 하면 이해는 해도 열이 안 받을 수가 없다.


처음 여자 몸이 되었을 때 팔 굽혀 펴기 5개로 벌벌 떨었던 기억이 스쳤다.

지금은 5개를 금방 마쳤다. 오히려 몸은 무거워졌는데 신기했다.

그 때랑 달리 가슴이 출렁이긴 하지만 몸은  재빨라졌다.

이 몸에 적응이 된걸까? 기왕 이렇게  거 빨리빨리 해야겠다. 다른 사람들도 빨라졌을 수 있다.

8개째 올라오는 길에 체크가 안됐다. 살짝  내려간 모양이다.


잠시 무릎을 꿇고 팔을 털었다. 다들 빨리 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앞섰다. 침착해야한다.

쭉쭉 뻗어서 팔을 풀어준  다시 자세를 잡고 마저 했다.

평소에 몸을 안 풀어 놨으면 굉장히 힘들 뻔 했다. 이거 했다고 팔이 살짝 저릿하다.


바로 안 끝나는 것 보면 내가 5등은 아니지 않을까?


앉아서 마음 졸이며 쉬고있자 MC의 말이 나왔다.


[1단계 미션에서 가장 늦게 미션을 달성한 줄리는 페널티가 적립됩니다! 그럼 10분간 쉬고 2단계 미션을 시작 하겠습니다!]

맞다. 여기서는 페널티 종류를  안해줬었다. 이제야 생각이 난다.


다음 미션도 몸을  수 있으니까 스트레칭을 계속 하고 있어야겠다.

10분이 지나자 다음 미션이 나왔다.

[2단계 미션은 윗몸 일으키기 30회! 자세를 잘 지키며 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작!]

뒤에 윗몸일으키기 기구가 아래서 올라왔다. 이젠 덜 신기하다.

그대로 자세를 잡고 윗몸 일으키기를 시작했다. 망설일 시간이 아깝다.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키며 팔꿈치를 무릎에 댔다.


반동을 사용하니 체크를 안해줬다. 역시 깐깐하네.


최대한 속도를 내려고 팍팍 움직였더니 가슴이 허벅지에 닿는다. 미묘하게 신경쓰였다.

20개가 넘어가자 복부가 엄청 땡긴다. 몸을 비틀며 올라가려 해도 더이상 올라가질 않는다.

잠시 누워서 심호흡을 했다. 아직도 반동을 쓰면 안되려나?


이쯤 돼면 괜찮겠지 하고 살짝 반동을 이용했다. 다행스럽게도 체크가 됐다.


반동을 이용하니까 가슴의 출렁거림이 조금씩 강해진다. 만약 스포츠 브라도 없었으면 보기에 좀 그랬을 것이다.

마저 30개를 채우고 벌러덩 누웠다. 생각보다 더 힘들다. 남자일 때는 쉽게 했던  같은데.

처음 치킨게임 할 때만 해도  하지 않았나?

"하아."

이 몸에 적응하기로 해놓고 아직도 예전 생각을 하다니.


아니지. 남자의 기억은 계속 상기해야 하니까 예전 생각을 하는게 맞다.

어제 다짐을 새로 했더니 헷깔린다. 내 뺨을 치며 정신을 차렸다. 한 숨이 저절로 나온다.

"에휴."


이정도면 충분히 빠르게 한 기분이다.

누워서 기다리니 잠시 후 결과가 나왔다.


[2단계 미션에서 가장 늦게 미션을 달성한 세리아는 페널티가 적립됩니다! 그럼 10분간 쉬고 3단계 미션을 시작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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