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21. 식사는 괴로운 건가. (24/116)



〈 24화 〉21. 식사는 괴로운 건가.

'존나 쉽네.'

알렌은 시험지 문제를 대충 살펴보며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쉽게 답을 적었다.

어차피 시험 점수라는 게 거기서 거기고. 그다지 순위에는 관심이 없다지만, 이번에는 학년 1위를 노려야 하기는 했다.

'악역 영애 따까리를  편으로 영입하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흔들리겠지.'

그렇게 마지막 시험지를 푸는 시간 겨우 10분. 다른 학생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며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와 별개로 내게는 너무 쉬운 시험이라 한숨 밖에 나오질 않아 잠이나 잤다.

"시험 종료다. 다들 펜을 놓도록."

비중도 없는 엑스트라 선생이 시험 종료라고 말하자 급식들은 아쉽다는 소리와 시험이 끝났으니 이제는 놀자면서 황급히 교실을 나가지만, 알렌은 피곤한 탓인지

"이봐."
"엉? 뭐야?"

엎어져 자고 알렌의 책상을 귀엽게 내리치는 소리와 놀라며 잠에서 깬다.


"침 흘리는 꼴을 보니 시험을 포기한 모양이네."

시험 점수를 압도하고서는 영입하려는 클로에.

순위가 나올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려고 했는데 알아서 찾아오다니.

'것보다 잘 봤나? 자신 있는 표정이네.'

"으그그그그으윽!!!"

요란스럽게 기지개를 켜는 알렌은 앓는 소리와 함께 팔이 저렸다.

"쩝...! 것보다 꽤 자신이 넘치는 얼굴이네?"
"당연한 거 아니야. 나보다 멍청한 사람이 나를 가르친다고 하는 터무니 없는 소리에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했어."
"그래. 공부는 열심히 하더라. 그런데  어쩌라고? 공부하는 것과 시험을 치는 것 별개야, 클로에."
"하! 무슨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당돌하네."

기가 찬다는 코웃음을터트리며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어째 작은 강아지가 투정부리는 걸로 보여서 귀엽네.


'약간 비글끼가 있네.'

"꽤 자신감이 넘치네. 어차피 나는 꽤 스파르타니까 알아서 잘 따라오도록 해라."
"스, 스파, 뭐? 무슨 소리야 그게? 그리고 잘 따라오라니. 네가 나보다 시험을  봤다는 거야!?"

의자에서 일어난 알렌은 자신의 가슴팍에 오는 클로에를 내려보며 말한다.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실망은 하지도 말고, 울지도 마라. 그럼 배고파서 먼저 간다."

머리를 무의식적으로 쓰다듬으며 활기찬 미소를 짓는 알렌은 그대로 교실을 나갔다.

"뭐하는 녀석이길래 저렇게 허세를 떠는 거야? 그리고 남의 머리를 마음대로 만져...!"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는 클로에는 교실을 빠져나간 알렌을 뒷모습을 보며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 믿으며 책상을 정리하고는 기숙사로 향했다.

한편 교실을 나온 알렌은 레드 드래곤의 반지를 사용하며 체내의 잠든 마나를 활성화하자 피곤했던 몸이 산뜻하고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요 며칠 마나 운용을 하지 않아서 굳어있을 줄 알았는데. 나쁘지는 않네.'


순환하는 마나의 기운은 실로 따뜻하며 뜨거웠다.


레드 드래곤의 반지가내 마나의 성질을 억지로 바꾸게 했으니 당연한 걸까.

"배고파 죽겠네..."


잠깐 잠에서 깨는 목적으로 마나를 순환한 탓인지 더욱 배가 고파졌다.


홀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 알렌은 아무도 없는 썰렁한 분위기에 내심 잘못 찾아온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향긋한 향과 식욕을 자극시키는 냄새는 이곳이 식당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며 오늘의 점심 세트를 선택하고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흐음... 도박으로 조지려면 아이템이 필요하겠지.그런데 아이템을 살려면 돈이 필요하지. 그런데 지금의 난 돈이 거의 없지.'

솔직히 메스티아 가문은 돈이 많은 집안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돈으로 어덜트 아이템을 샀다고 들키는 날에 절연할 정도로 알렌, 브렌드의 아버지 메스티아 후작은 아주 깐깐한 사람이다.

'결국에는 도박... 을 해서 벌어야 하나. 아니야. 리스크가 너무 큰데. 그렇다고 안면을 튼 파멜라에게 돈을 빌리기는 꺼림칙하고.'


"저, 저기..."
"우와와앗!? 뭐, 뭐야? 네가  여기 있어?"
"저, 저도... 배고파서... 식당에..."

존나 놀랐다. 진심 장난  까고 존나게 놀랐다. 하마터면 의자에서 꼬라질 뻔했네, 씨아아앙!

"크, 크흠...! 그래?"


머쓱함에 헛기침하는 알렌의 맞은편에 앉은 미라이 미레이는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아니, 시발..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굳이 내 맞은편에 앉겠다는 이유가 있나? 설마 찍혔나? 이게 그 담당일진 같은 그건가?'

저주.


이것만은 지금의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하물며 저주  자체라고 하는 암상인 미라이 미레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해야 뒤탈이 없는 법.

'처, 처음으로... 사람이랑...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남...!'

그러나 걱정스러운 알렌과 달리 르카네가 미라이에게 여성스러움을 가꾸라면 기른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이 자신의 얼굴을 가린 것이 다른 의미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기뻐했다.

미라이 미레이라는 소녀에게 있어 가족과의 식사는커녕 타인과 제대로  식사를 함께한 적이 없었다.


미라이가 근처 음식점에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식중독, 구더기가 들끓는 썩은 고기. 온갖 부정적인 사건 사고가 소녀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물론 미라이의 마나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따지자면 모든 일이 미라이의 마나가 한 짓은 단언컨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여도 미라이의 불행과 저주라는 이상한 마나 성질 때문에 부모에게 버려졌으며 타인과 어울리지 못해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쁠 정도로 심히 말을 더듬기도 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마치 다른 이의 잘못이, 불행이 모두 미라이 본인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매일 밤을 베개에 파묻혀 눈물을 적시며 조용히 울곤 했다.


만약... 르카네라는 존재가 미라이 곁에 없었다면 미라이는 분명 고뇌의 늪에 가라앉았다면 끝내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기 앉아 있어."
"네? 아, 네..!"

알렌이 의자에서 일어나 골랐던 오늘의 점심 세트와 미라이가 고른 요리를 들고는 자리에 앉았다.


"감사... 합니다!"
"이 정도로 되겠어? 너무 적게 먹는 거 같은데."
"괘, 괜찮아요!"
"더 먹어. 그렇게 먹다가는 나중에 쓰러진다."


미라이가 고른 메뉴는 정말인지...답이 없었다.


풀때기... 그것도 고기는 들어있지도 않고 오로지 견과류와 양상추만 존재하는 풀때기.


'아니, 시발. 이런 걸 왜 파는 거야? 그리고 얘는 이걸 왜 사는 거야? 내가 준 돈은 어쨌는데?'


솔직히 미라이를 멀리하자고.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지만, 내 앞에서 채식하는 다람쥐처럼 먹는 모습이 어째 불만이었다.

키는 어째 클로에보다 작았으며 헐렁이는 교복 소매와 함께 여리여리한 팔목에 알렌은 지금의 세계가 아닌 원래 세계의 일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그만 간섭하고 말았다.


"고기 먹어라, 고기. 풀때기만 먹으면 키  큰다. 아직 입도 안 댔으니까 안심하고 먹어. 혹시 채식주의자면 내가 미리 사과하고."
'아, 아니에요... 가, 감사합니다..."


미라이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처럼 다양한 음식을 좋아한다.

하지만 매번 식사할 때면 과거의 기억이 그녀를 괴롭혀 먹은 것이 역류하며 시큼한위액을 토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있어 식당과 식사는 너무나도  트라우마다.


두려운 시선. 역겨운 것을 보는 혐오의 시선. 하루라도 빨리 죽으라는 살기가득한 시선.

어리고 미숙한 소녀가 다른 이의 온갖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며 하는 식사가 얼마나 힘들고 식당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다른 사람은 모른다.


오로지 소녀, 미라이 미레이와 르카네만이 아는 사실.


그래도 사람은 언제까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라이가 알렌을 보며 호감을 느꼈던 것처럼.

아주 사소한 계기로 과거에 머무르던 사람이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다.

미라이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부터. 그리고 첫날부터 사람들과 어떻게든 어울려 무서운 식당을 억지로 극복하는 노력을.

물론 첫날 반 친구와 식당에서 먹은 요리는 화장실로 직행했지만, 그래도 소녀는 노력했다.

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의 옆에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말이다.


"많이 안 먹어도 되니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고기의 절반을 먹기 좋게 나이프로 썰어 미라이의 접시에 옮겨주는 알렌.


"가, 감사합니다... 저, 그런데..."
"응."
"이, 이름을... 몰라서..."

생각하니 알렌은 미라이를 아카데미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미라이는 알렌의 이름을 몰랐다.


"알렌 메스티아. 편하게 알렌이라고 불러."
"가, 감사합니다, 알렌님..."
"알렌님은 무슨. 그냥 알렌이라고 해."
"아, 네... 알렌..."


그렇게 알렌은 고기의 절반을 넘겨주고는 자신의 굶주린 배를 절반 정도 채우며 깨작깨작 먹고 있는 미라이를 무심히 보았다.

'잘 먹네. 은근 귀엽... 아니. 정신 차려, 병신아... 발정난 개새끼도 아니고 뭔... 아니다. 귀엽기는 귀여운 거지.'

"자, 잘 먹었습니다...!"
"다 먹었어? 아직 남았잖아?"
"아, 그, 그게... 배불러서..."

몸집이 작은 만큼 위장도 작은 건지 미라이는 그래도 내가 준 고기를 다 먹은 건 어째 기특했다.


나이 어린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접시 줘."
"아, 아뇨...! 제, 제가 할게요...!"
"앉아 있어. 그리고 마실 것도 사올 테니까 여기서 가만히 있어."

미라이의 식판을 자신의 식판을 포갠 알렌은 식당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곧이어 딸기 우유  잔을 주문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자, 마셔."
"저, 저기... 얼마인지...?"
"내가 사는 거니까, 마셔. 정 뭐하면 다음에는 네가 사. 그럼 됐지?"


딸기 우유가 든 유리잔을 미라이에게 건네며빨대를 꽂아준다.


'역시... 피곤할 때는 달달한 게 최고구만.'

다른  같았으면 커피나 가벼운 음료를 마셨지만, 지금은 미라이의 행동이 신경 쓰이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챙겨줘야 할 것만 같은 여동생 같은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불편한  있으면 나한테 말해. 그리고 공부도 힘들면 나한테 기대고."
"네, 네!"
"그럼 나는 먼저 갈게. 그럼 내일 보자."
"아, 안녕히 가세요, 알렌니... 알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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