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31-1. 암묵적 서열이 아닌 본보기로 보여드림.
"오늘부터 끝이자 시작이구만."
월요일 아침. 드디어 고대하고 기다렸던 월요일 아침이 오자 알렌은 거울 앞에서 세수하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후..."
짧게 한숨을 내쉬며 알렌은 얼굴의 물기를 닦으며 아침을 먹으러 갔다.
코델리아의 주종 역전 계약은 오늘 저녁부터 끝나니 그 이후로는 기숙사를 나와 로열 카지노에서 내게 꼽을 준 딜러 새끼를 조져야 했다.
오늘은 코델리아의 명이든 뭐든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만...
"아, 안녕하세요...!"
"으앗! 까, 깜짝이야... 너였냐?"
식당으로 가는 알렌에게 반가운 듯이 인사하며 고개를 꾸벅이는 한 소녀.
"것보다 너도 아침 먹으러 가는 길이냐?"
"아, 네... 저 혹시... 같이 아침을..."
"같이?"
"아, 아니...! 굳이 같이 안 드셔도 돼요...!"
"흐음... 아니다. 같이 먹자 그냥."
"네에엣...! 가, 감사합니다, 알렌 님...!"
"거, 참. 님자 붙이지 말라니까 그러네."
우연히 만난 미라이와 함께 알렌은 식당으로 들어와 오늘의 아침 메뉴를 시킨다.
"미라이는 뭐 먹을래?"
"오, 오늘은 알렌 님과 똑같은 걸...!"
"아, 그래? 여기 오늘의 아침 하나 더 주세요."
그렇게 미라이의 아침까지 주문한 알렌은 미라이와 함께 자리에 앉아 아침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산한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 걸까. 주위가 묘하게 조용했다.
'오늘은 급식들이 별로 없구만. 조용해서 좋기는 하네.'
급식들이 그만큼 없었기에 우리가 시킨 메뉴가 빠르게 나오며 일어나려고 하는 미라이에게 앉아 있으라고 말하며 나는 주문한 메뉴를 가지고 돌아왔다.
"마, 맛있게 드세요...!"
"어. 너도 맛있게 먹어."
두 사람은 각자 숟가락을 뜨며 스프와 빵, 샐러드를 먹으며 식사에 집중했다.
"자, 잘 먹었습니다...!"
"벌써 다 먹어... 아니... 남겼잖아? 어디 속이라도 안 좋아?"
"아, 아뇨... 너무 많아서요..."
"그 정도 먹고 벌써 배가 부르다고?"
"네에..."
미라이의 몸을 생각하면 많이 먹은 걸로 보이기는 하는데... 어째 불만족스러웠다.
아직 한창 자랄 나이에 저 어린 것이 이 정도 밖에 안 먹다니. 쑥쑥 자랄려면 더 골고루 더 먹어야 할 텐데.
오늘의 아침 메뉴로 나온 새하얀 우유를 천천히 마시는 미라이의 모습이 은근 귀엽게 느껴졌다.
'귀엽구만. 저 어린 것이 무슨 연유로 저주 상인이 된 건지는 몰라도 행복했으면 좋겠군.'
미라이가 아카데미에 온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딱히 별다른 저주나 사건도 없이 그냥 무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렌은 처음 암시장에서 만난 저주 상인 미라이 미레이가 아닌 같이 아카데미에 다니는 동급생이라는 인식으로 바꼈다.
"그럼 갈까?"
"넷...!"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던 미라이를 위해 일단은 남은 음식을 빨리 먹어치웠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각자 일어나 식기를 반납하고는 교실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 어느 소녀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알렌과 미라이에게, 정확히는 알렌의 앞길을 막는다.
"뭐야. 갑자기 무슨 볼 일이라도 있냐?"
"별 일 없으니까 지나가!"
"그럼 비켜주세요, 패배자 님."
"이번 만이야...! 내가 패배를 인정하는 건 이번 시험 뿐이니 다음 시험에서는 무조건 이길 거야..! 두고 봐!"
알렌의 앞을 막던 클로에가 다음 시험에는 이길 거라는 분노의 도전을 일방적으로 건네며 식당 쪽으로 사라진다.
"저, 저 분은 누구신가요...?"
한편 내 뒤에. 내 바지를 손가락으로 집으며 두려워하는 미라이의 모습이 어째 딸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닌가 싶었다.
"아, 저건 그냥... 같은 반 아이야."
딱히 클로에를 뭐라 설명할 순 없었다.
그냥... 시험에서 진 고양이? 아니면 내 예비 노예라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것보다 같은 반인데 몰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까지야 없고. 그럼 갈까?"
"아, 네... 아, 죄, 죄송해요... 바지가..."
"괜찮아. 바지야 뭐 여벌도 있으니까."
미라이가 살짝 쥔 정도로 교복 바지가 조금 주름졌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곧이어 미라이와 함께 교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몇 급식들도 시끄럽게 착석하며 저마다 자기네 무리끼리 얘기하며 슬슬 조용하던 교실이 슬슬 시끄러워진다.
'흐음... 잘까.'
이미 시끄러운 애새끼들 소리에 달관한 나는 그냥 잠을 자기로 마음 먹었다.
"아, 안녕히 주무세요..."
"...아니다. 미라이. 심심한데 우리 얘기나 할까?"
무슨 변덕일까. 잠을 자려던 알렌은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말하던 미라이를 바라보며 잠깐 뜸을 들이다 이야기나 하자며 말을 건다.
"저, 저랑 얘기하셔도 재, 재미는..."
"그렇게 무슨 상관이야. 재미있든 없든 그냥 이야기 하고 싶은데. 안돼?"
"아, 아뇨! 아, 안 되는 건 아닌데..."
생각하니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알렌은 나중에 있을 이벤트, 여행이나 모임에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스토리를 진행하기가 어려우니 우선 미라이를 첫 친구를 만드려는 불손한 계획이었다. 물론 이 게임의 주인공인 루센 녀석과 함께 지낸다면 좋겠지만,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게임에서는 루센의 옆자리는 바로 나, 알렌 메스티아였는데. 어느새 루센 녀석이 자리를 옮겨버린 것이다.
'기숙사에서 매번 마주치는 놈이 자리는 왜 바꿔? 그냥 모르모트로 쓰던가 해야지. '
그러나 알렌의 불손한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미라이는 지금의 상황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먼저 말을 걸며 이야기 하자고 하니. 당장이라도 벌게진 얼굴에 손바닥을 대며 귀여운 숨소리와 함께 눈을 질끈 감는다.
****
처음에는 미라이와 친해지는 계획을 세운 알렌이었지만, 미라이와 얘길 나누며 들으니 꽤 즐거웠다.
'아직도 나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버릇을 좀 고쳐야겠어. 괜한 선입견으로 미라이를 안 좋게 보던 과거의 병신아 반성해라.'
"그, 그래서...!"
한창 열을 내며 말이 빨라지는 미라이를 보며 소소한 힐링을 느끼는 알렌은 딸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이래서 다들 결혼하고 얘를 낳는구나. 내가 급식일 때는 애들은 딱 질색이었는데... 나이를 괜히 헛먹는 게 아니구만.'
미라이의 열을 띈 모습은, 조곤조곤하게 말하며 상기된 뺨과 똘망한 눈빛은 오늘 유치원에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자랑하는 딸아이 같으니 절로 흐뭇해졌다.
'귀엽구만. 클로에랑 다른 의미로 귀여워.'
한참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교실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코델리아가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또 얘기하자 미라이."
"네엣...!"
후에 얘기를 도모하자는 알렌과 고개를 끄덕이며 당차게 답하는 미라이.
그리고 또각이는 하이힐 소리가 교실을 맴돌기 시작하자 언제 급식들이 떠들었냐며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아직도 학습이 안 되는 꼬마들인가 보군."
살얼음 같던 분위기를 더욱 얼리는 그녀의 냉철한 목소리에 급식들이 숨 죽인 채로 가만히 땀을 흘릴 뿐이었다.
"언제나 말한다고 바뀐다면 세상 사는 것이 참으로 편하겠지. 오늘 전달 사항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집는 코델리아는 오늘의 전달 사항을 전한다.
역시나 들어봐도 별 볼 일도 없는 내용.
"오늘 전달은 여기까지고 다들 다음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이상."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는 코델리아의 또각이는 하이힐 소리가 복도에서 차츰 멀어질 때쯤. 급식들은 언제 그랬냐 싶듯이 또 시끄럽게 아가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하... 새끼들. 코델리아 선생님 나가자마자 아가리를 잘 털고 있네."
"지금 뭐라고 했냐?"
내 혼잣말을 들은 걸까. 웬 떡대 큰 새끼가 갑자기 정색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아가리 존나 잘 턴다고 했다. 왜?"
"우리가 떠들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인데 욕질이야. 너 죽고 싶냐?"
자기 덩치와 힘을 과시라도 하는 것인지 손가락 관절을 뚜둑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웬 떡대 급식.
"으으...."
"괜찮아. 야, 괜히 공포 분위기 조성하지 말고 ㄱ...."
쨔아악!
순간 시끄럽던 교실이 코델리아가 온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쯤에서 봐줄 테니까, 다음부터는 말 조심해라. 알았냐?"
처음이었다.
이쪽 세계로 오고 나서 처음으로 맞은, 그것도 싸대기를 정통으로 쳐맞아버렸다. 아프지는 않... 아니 솔직히 아팠다. 손바닥이 내 머리를 가릴 정도로 커다랬는데 당연히 아프지.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 것처럼 내 뺨을 때린 손바닥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내게 던진다.
"그거 비싼 거야."
그 말을 한 떡대 급식은 제자리로 돌아가 언제 그랬냐며 다시금 시끄럽게 떠들었고. 근처 조용히 나를 지켜보던 급식들은 수군거리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괘, 괜찮으세요...? 아, 아프시죠... 이 손수건 말고, 제 손수건을 빨리 적셔올..."
"괜찮아. 것보다 다치진 않았지?"
"그, 그래도... 알렌 님의 뺨이..."
"진짜 괜찮아. 웬 모기 새끼가 물었나, 하고 조금 가려울 뿐이니까!"
떡대 급식이 듣게 큰소리를 내질렀다. 그저 모기한테 물렸다고 말이다.
'내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지. 알아서 와라, 떡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