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2화 〉43. 일단 잡혀봄. (72/116)



〈 72화 〉43. 일단 잡혀봄.

“으으읍!!?”
“오, 일어났냐?”

손과 발, 입이 묶인 것에 당황한 엘프가 읍 읍 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노려본다고 내가 풀어줄 것 같냐? 가만히 있어, 괜히  빼지 말고.”

알렌은 가방에서 꺼낸 육포를 꺼내 질겅 씹으며 계속해서 읍 읍 거리는 엘프를 보았다.

‘멍청하기는 해도 얼굴은 봐줄 만하네. 몸매도 평타치고.’

묶여있는 멍청한 엘프를 묶인 몸뚱이를 보며 육포를 씹는 맛은 가히 천상의 맛이라 할  있었다.

밧줄에 묶인 채로 발버둥을 치니 흐트러진 옷매무새.

반항적인 눈매를 계속해서 보니 여러 아이템이나 도구로 엉망진창으로 조교 하여 발밑에 두고 싶었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어차피 이곳에  목적은 월광초를 얻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야, 너도 묶여있으니 힘들지?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풀어줄게.”

풀어준다는 말에 잠시 발버둥치던 몸이 멈추었지만, 이내 그 말을 조금이라도 믿었던 자신을 책망하듯 엘프는 땅에 올라온 새우처럼 허리를 펄떡인다.

“우선 첫 번째로. 월광초는 숲에 있나?”
“...으읍...!”
“아, 그냥 풀어줄게. 자, 말해 봐.”
“빨리 이거 풀어, 인간!”

목소리에 위압감을 섞어 내며 알렌을 협박하는 엘프.

그러나 묶여 있는 상태로 제아무리 협박한다 해도 무서울 것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플랜을 짜놨으니까.

“하등하기 짝이 없고, 오크보다 비열한 종족이라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 아, 아야!?”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마를...! 아얏!?”

딱밤.

알렌은 시끄럽게 나불대는 되도 안되는 협박을 하는 엘프의 새하얀 이마에 딱밤을 때리며 말을 끊는다.

“내 말에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딱밤 때린다.”
“우, 웃기지 마! 가, 감히 고귀한 숲의 요정을..! 히, 히이익!?”

눈앞에 다가온 알렌의 손가락에 다시금 고통이 찾아오는 듯했으나.

“...? 아야!? 너,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기는. 그냥 네가 내가 한 말을 듣지도 않고 이상한 소리나 지껄이니 때린 거잖아.”
“그, 그게 아니라! 도대체가 눈을 감고 떴는데 왜 때린 거냐고!!”
“그래야 쫄깃하잖아?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자, 그러면 또 한 번 묻는다. 월광초는 어디 있어?”

****

“저, 저쪽으로 가면 월광초 군락지가 있어...”
“있어?”
“요...”

이마를 문지르며 발이 묶인 채로 월광초 군락지를 안내하는 엘프.

“허튼짓했다가는 알아서 해.”
“아, 알았어...!”
“어?”
“...요...”

울퉁불퉁 부어버린 이마를 만지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작게나마 반항하는 엘프를 보고 있으니 꽤 재미있었다.

“그런데 인간.”
“왜?”
“저, 정말로 노예상이 아닌 거지? 그치?”
“노예상이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하냐. 그냥 월광초가 필요해서 왔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하냐?”
“아, 알았으니까, 그렇게 화내지 마...”

긍지를 품고 등장한 엘프는 어느새 겁을 먹으며 몸을 움츠렸다.

“야.”
“어, 어! 오, 왜 불러?”
“엘프들은 자존심이 쎄고, 자기들끼리 동료애도 넘치는 놈들이잖아?”
“응, 맞아! 우리 엘프는 동료애가 아주 각별하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네. 저것도 재능인가?’

“아무튼, 백발백중의 활 솜씨에다가 정령까지 부리는 너희가  노예상을 두려워하는 거지?”
“그, 그건... 그, 그게 그러니까...”

노예상을  두려워하냐고 물으니 당당하던 녀석이 또다시 움츠러들며 말을 더듬는다.

“사, 사실은...”
“코렛트! 달려!”

어디선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내가 묶은 엘프 다리에 묶은 밧줄이 맥없이 뚫린 채로 끊어지며 그대로 도망친다.

“빨리도 오네.”

솔직히 내비게이션 노예를 구하러 오는 엘프는 예상했었다.

“거기, 인간. 손을 들어라. 들지 않는다면 머리를 향해 쏘겠다.”

어느새 도망친 내비게이션 엘프는 자신을 구해준, 그리고 나를 겨냥한 채로 경고하는 한 엘프가 눈앞에 보였다.

“저기 말이야. 나는 딱히 노예상도 아니고, 그냥 월광초 몇 뿌리만 캐려고 온 거야. 그러니 저 엘프도...”
“거, 거짓말이야, 로자리아! 저, 인간 녀석! 내 이마를 이렇게...! 황야에 굴러다니는 자갈처럼 만들었어! 혼내줘!”

‘하아... 저거, 훈육이 필요하겠구만.’

새롭게 등장한 엘프의 말마따나 알렌은 손을 들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표명한다.

‘일단 손을 들까. 어차피 보험은 들어뒀으니까.’

“좋다. 그대로 서 있어라. 코렛트.”
“응, 로자리아! 내가 죽일까?”
“가서 저 인간을 묶어.”
“어? 무, 묶어? 주, 줄도 없는데...”
“네 발목에 묶인 건 밧줄이 아니라 장신구니? 그 정도면 손은 묶을 수 있으니 빨리 가서 단단히 포박해.”

기어가는 목소리로 알겠다며 내게 조심스럽게 되돌아오는 내비게이션 엘프 코렛트.

“넌 이제 죽었어! 감히 나를 건드리고 무사히 돌아갈  있다고 생각해...!”

내게 다가온 코렛트는 조용한, 그러면서도 사악한 목소리로 내 발과 손을 묶은 후에도 비열한 표정으로 웃고는 있지만, 애석하게도 긴 귀는 그렇지 못한 듯 뾰족한 귀의 끝이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로자리아! 다 묶었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다 묶었으면 장로님께 돌아가자.”
“알았어! 넌 이제 죽었다! 베에~!”

장로님께 돌아가자는 말에 코렛트는 혀를 내밀며 손이 묶인 나를 놀린다.

“흐으응~ 흐응~”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로자리에게로 다시 돌아온 코렛트.

조금 전만 해도 벌벌 떨던 귀가 제 주인이 왔다고 안심하는, 반갑다며 꼬리를 치는 강아지처럼 기쁘게 움직인다.

‘맹한 엘프를 쳐내지 않는 걸 보면 동료애는 강한 모양이네.’

로자리아는 마지막으로 손이 묶인 알렌의 밧줄이 단단히 묶였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코렛트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코렛트. 앞으로 10년은 수련만 해.”
“어, 알아...? 어!? 내, 내가  잘못했길래?”
“숲의 문지기가 인간에게 당했는데 당연하잖아. 자격이 박탈당하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하, 하지만...!”
“내가 누누이 말했지. 실력이 없다면 우리를 지킬  없다고. 하여간에, 예나 지금이나 너란 아이는...!”

손의 자유를 잃어, 마치 엘프들의 노예가 된 알렌은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두 미녀 엘프의 말싸움. 아니, 일방적으로 호통치며 잔소리하는 로자리아는 코렛트의 볼을 꼬집는다.

점차 신랄하고 직설적인 로자리아의 야단에 조금 전만 해도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코렛트는 조금 울먹이며 귀가  늘어져 있었다.

“미, 미안해... 로자리아.”

미간을 짚는 로자리아는 땅이 꺼지라 할 한숨을 내쉬며 알렌을 노려보았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자초지종 들을 생각이니 거짓말을 했다가는 알아서 해, 인간.”
“알겠습니다.”
“잡힌 사람이 취할 목소리와 태도가 아니군.”
“그야, 잘못한  없으니까?”
“우리가 사는 숲에 멋대로 들어와 놓고 잘못이 없다니. 인간들은 항시 그런 태도지.”
“뭐야 갑자기?  씌운 거야?”

당당한 태도를 보이던 알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로자리아를 웬 커다란 가죽 주머니를 알렌에 얼굴에 씌운다.

“엘프들이 사는 곳은 극비다. 가자, 코렛트. 녀석을 잘 끌고 와.”
“아, 어, 응...! 너도 빨리 와!”
“이거 쓰면 숨쉬기가 불편한데. 벗겨주며 안 돼... 어이? 이봐?”

숨을 쉬기 불편하다는 알렌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끌고가는 코렛트.

거칠게 끌고 가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알렌은 지금이라도 미리 둔 보험을 터트릴까 생각했지만, 애써 참았다.

이런 곳에서 쓰면 보상이 별로니까.

‘후우... 참자, 참아. 머리가 깨진 와중에 혈압 올리면 안 된다... 후우... 참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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