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47-2 납치된 엘프 (80/116)



〈 80화 〉47-2 납치된 엘프

“반가워요, 엘프 여러분.여러분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를 믿으시나요?”

발랄한 여성의 목소리.

로브를 깊게 눌러 쓴 웬 여자가 마을 중앙에 서서 손을 확성기처럼 모아 크게 소리친다.

“썩 나가라, 인간 계집!”

가공한 스태프를 들어 내리치는 에블린은 마을 중앙에  여자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 교단에서 지금 아주 특별한....!”

슈웃!

매섭게 공기를 가르는 화살이 로브를 쓴 여자 발치에 꽂혔다.

“경고는 이번 한 번이다!  돌아가라, 인간!”

에블린은 가공한 스태프를 다시 내리치자 다음에는 경고를 끝내지 않는다며 나선으로 뒤엉켜 창의 형태를 내보이는 나뭇가지들은 그녀를 노리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같았다.

“어머나? 그렇게 적의를 드러내시지 마시고. 일단  얘기를 들어보세요, 엘프 여러분~”

그러나. 에블린의 경고에도 그녀는 좋은 말씀을 전하러 왔다고 하며 그들의 수많은 활과 창 끝에도 개의치 않고 포교 활동을 이어나갔다.

“10초라는 시간을 주마. 그때까지 마을을 나가지 않는다면 죽인다.”

10초라는 시간을 내줬는데도 그녀는 나갈 생각조차, 아니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계속 교단의 좋은 점을 어필한다.

그렇게 짧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계속해서 떠드는 인간 여자를 무심히 쳐다보는 에블린은 이윽고 손을 높게 들어로브를 쓴 여자를 보며 말한다.

“원망하지 말도록.”

 말을 끝으로 높이 든 손을 내리자 일제히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와 함께 에블린의 주위를 맴돌던 나무 창도 무서운 속도로 그녀를 향해 뛰쳐나간다.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여러 방향에서 쏟아지는 화살과 커다란 나무 창은 목표를 정확히 맞추어  불길한 소리와 함께 비릿한 냄새가 슬며시 풍겼다.

한 마리의 고슴도치.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포교 활동을 하던 그녀의 쓰러진, 피를흘리는 모습을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아... 놀랬다! 하마터면 깜짝 놀라 죽을 뻔했잖아요!”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여인은 길게 눌러  로브를 보며 화를 낸다.

“아! 진짜 아끼는 로브였는데! 구멍투성이가 됐잖아요!? 수선한다고 해도  때문에 세탁하는 것도 어려울 텐데! 어쩔 거예요!? 물어주세요!”

엘프들과 장로 에블린은 당황했다.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아니, 확실히 죽었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몸에 박힌 화살을 빼내자 피와 함께 살점이 떨어졌다.

 정령의 힘을 빌려 만든 창을 힘겹게 빼내는 그녀의 존재가 의심스러웠다.

“어머. 몸에 구멍이 났네?”

힘겹게 에블린의 창을 뺀 그녀가 자신의 몸에 난 구멍을 보며 손을 넣으며 신이 난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하하!”

자신의 몸에  커다란 구멍을 보고 웃으며 노는 여자를 본 엘프들은 경악했다.

차라리 좀비나 구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성도 없이 그저 생물을 잡아먹는 죽은 자들이니까.

그러나 저것은 다르다.

본래 생물이 죽는다는 개념 자체를 망각이라도 한 것인지.

수많은 화살이 심장을, 커다란 나무 창이몸을 통째로 뚫어도 재미있다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기이하고, 무서웠다.

“여러분은 새로운 세계를,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으신가 보네요?”

해맑게 웃는 그녀가 얼굴을 감싼 로브를 벗었다.

로브를 벗자 감춰진 백발의 머리카락이 자그맣게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린다.

“날씨가 참으로 좋아요. 기분 좋은 바람.”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감으며 손에 묻은 피로 머리를 매만지는 소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기이했다.

바람을 맞이하는 태평한 소녀를 그냥 놔둘 리 없는 에블린이 이번에는 얇고 길게 벼룬 나무 창을 만들어 잡았다.

그리고는 손에 쥔 나무 창에 마나를 한껏 주입하자 얇은 나무 창이 초록빛을 내며 타오르는 초록빛 불꽃에 대기하고있던 엘프들이 웅성거린다.

“어머?  창을 던지시게요?”

여유롭게 바람을 맞이하던 소녀가 마나를 머금어 초록색으로 불타오르는 창을 자신에게 던지려는 모습을 보며 말을 걸었다.

“교주님도 너무하시지. 저는 포교 활동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데. 장로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시끄러워, 괴물 인간.”
“괴물이라뇨. 저는 아주 평범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걸요?”

****

“미, 미안해! 다, 다시는 안 그럴...! 끄아아악!!!”
“죽이려고 달려든새끼가 다시는 안 그럴게? 뭘 안 그래. 뒤질라고.”

달궈진 칼끝으로 살려달라고 비는 남자의 허벅지에 그대로 쑤셨다.

타오르는 역한 냄새와 함께 고통에 찬 남자의 절규는 나무에 앉아 노래하는 새들을 놀라게 했다.

만일 다른 사람이 남자의 절규를 들었다면 짐승의 비명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남자는 허벅지에 박힌 타오르는 검의 고통에  이겨 그만 정신을 잃는다.

치이이익...!

허벅지에 박힌 칼을 뽑자 묻었던피가 증발하며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를 향해 차츰 걸어가는 알렌은 문득 자신이 한 행동을 되돌아보았다.

 처음 팔목을 자른 남자를 제외하고 주저 없이 다른 사람의 몸에 칼침을 놓는 나를 되돌아보니 어째 소름이 돋았다.

‘다른 사람, 손목이나 팔, 다리를 찔러도 죄책감이 안 들다니. 신기할 따름이네.’

“아저씨 부하들 의리가 있다. 도망 안 가고 보스를 지키다니. 멋지다, 멋져.”
“히, 이이이익!?!”

다가오는 알렌을 보고 도망치는 남자. 그러나 제 앞에 놓인 돌부리에  본 것인지 그만 발에 걸려 꼴사납게 넘어져도 재빠르게 기어가며 도망쳐보지만.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야 뭐야?”
“사, 살려주게나! 내, 내가 모은 재산을 다 너, 넘겨주지!”
“벌써 포기하네? 그리고 내가 돈이 없는 거지새끼로 보이나. 돈은 됐고. 엘프를 잡으라고 한 의뢰주가 누구야? 그것만 말하면 깔쌈하게 살려줄게.”
“저, 정말 그것만 아, 알려주면 살려주는 건가....?”
“당연하지. 나는 나쁜 놈이 아니야, 아저씨. 그냥 아주 간단한, 의뢰주가 누구인지 알려만 준다면 아주 쉽...”

푸욱!

기분 나쁜 소리. 뼈가 뚫려 살을 파고드는 소리와 함께 알렌의 얼굴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피가 얼굴에 묻었다.

“끌끌... 이래서 노예나 파는 놈들과 거래하면 안 된다고 했거늘.”

‘이건 또  일이야... 아, 존나 불안하네...’

자신의 다리를 잡은 죽은 두목의 손을 차내는 알렌은 뒷짐을  채로 웃는 마부 영감을 보았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이딴 버러지들과 손을 잡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안 그런가?”

왜소한 몸. 허리를 과하게 숙여 더욱 왜소해 보였지만,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꼬마야. 이 숲에 무슨 볼일이 있어 찾아온 게냐? 너도, 엘프를 원해서 그러는 거라면...”
“아는 동생 부탁 들어주러 왔습니다.”
“호오라. 동생의 부탁? 각별한 형제애구나.  동생이 위독한 모양이로구나? 홀로  숲을 들어올 정도면.”
“위독하긴 하죠. 16살이라는 나이에 발기부전이라 하니, 아주 위독한 병이죠.”
“예끼. 노인을 놀리는 게냐?”
“저는 거짓말 안 합니다. 그러는 노인께서는 이곳은 왜? 혹시 이놈들과 관련 있는 모양이죠?”

시시콜콜한 대화가 끊기며 일순, 분위기가 달라졌다.

알렌이 노예상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듣자 장난스럽게 화를 내며 웃던 노인의 분위기가 날카롭게 변했다.

숨이 텁텁 막히는, 목에 칼을 들이댄 것처럼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했다가는 머가리에 칼이 꽂혀 죽은 이 남자처럼, 자신도 이렇게 되지는 않을까, 라는 직감이 들었다.

‘게임에서 본 적도 없는 영감인데? 도대체 이 게임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알 수가 없네, 씨앙...!’

“아이야. 무언가 안다고 해야 모른다고 해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란다.”

조용히 웃으며 내게 인생의 조언을 건네는 할배의 말이 오싹하게 들려왔지만, 왠지 중2병 같은 대사가 우습기도 했다.

‘흐음... 빨리 움직이면 닿으려나?’

알렌은 손에  검을 살며시보며 다시 노인을 쳐다보았다.

“끌끌. 머릿속이 아주 시끄럽구나.”

늘어지는 웃음을 보이는 노인을 보며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어떻게 공격하며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마땅히. 아니,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같았다.

‘마법으로 다이다이 깨면 이기겠지만, 검을 던지는  보면 마법 쓰기 전에 죽을 것 같은데.’

마법으로 따지자면 분명 알렌의 압도적인 승리일 것이다.

그러나 노인을 바라보는 알렌은 노인에게 느껴지는, 지닌 마나가 단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순수한 위압감을 지닌 채로 방대한 마나를 품은 알렌을 역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가져가거라.”
“네?”

노인의 물음에 긴장과 동시에 목숨을 건 알렌은 얼빠진 목소리를 내며 노인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여기 갇힌 엘프를 구하러  것이 아니더냐?”
“그... 렇긴 하죠. 그런데 순순히 가져가라고 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원래 노인들 변덕이 죽 끓듯 아주 심하지. 자, 얼른. 훠이훠이.”
“가, 감사합니다? 그러면...”

노인의 말에 따라 알렌은 직사각형의 철창에 갇힌 코렛트 보았다.

무슨 약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빠져 자는 건지는 몰라도 아주 평온한 얼굴로 드러누워 침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낙천적인 녀석이네. 것보다...’

알렌은 마부 영감을 의식했다.

“괜찮다니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테니, 어여 들고 가.”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으나, 마땅한 대안도 없었다.

‘모르겠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칠이 벗겨진자물쇠를 잡고 녹여버리는 알렌은 곧 녹슨 철창을 열어 그 안에 잠든 코렛트를 일으켜 등에 업혔다.

“진짜로 갑니다?”
“끌끌. 그러려무나.”

노인을 뒷짐을 지던 손을 풀고는 느릿하게 손을 움직이며 가보라고 한다.

“아까 변덕이 죽 끓듯 심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마음에  아이는 죽이지않는 편이란다. 그러니 마음 편히가거라.”
“그 말 믿어도 됩니까? 혹시나...”
“낚시해 본 적이 있느냐? 비록 몸뚱이가 세월에 못 이겨 검을  힘이 없지만, 이 낚시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더구나. 대륙에서 내놓으라 하는 물고기를 먹어보았지만, 아직 못 먹어본 물고기가 진득하게 많더구나, 끌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낚시라는 말을 들은 알렌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맛있는 물고기를 낚는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아주 기분이 좋지. 허나 그 맛있는 물고기의 새끼를 잡는다면 마냥 기뻐할 수가 없지. 살코기도 적고 무엇보다 지금 먹는다면 너무 아깝다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니 방생하고 좀 더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낙이란다.”

‘...웰턴 삘이 나는 중2병 할아버지구만. 그냥 쉽게 말해도 되는 것을.’

“...그럼 감사히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아, 혹시 이름은 무엇이더냐?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이름을 듣고 싶구나.”
“알렌. 알렌 메스티아입니다.”
“좋은 이름이로구나. 그럼 다음에, 좀 더 성장하면 만나자꾸나, 끌끌.”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떠나는 알렌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알렌이 놓고 간 칼을 들었다.

“아주 잘 베일 것 같은 칼이구나.”

아직 열기가 남은 칼을 든 노인은 불편한 몸을 이끌어 널브러진 그들의 심장에 칼을 내다 꽂는다.

“마무리는 하고 떠나야겠지, 끌끌.”

****

“창을 던지지 않는 걸 보니 이제  얘기를 들어줄 의향이 있으세요?”
“시... 끄러워!”
“저는 여러분을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기껏 마음에 든 아이를 이렇게 만드시다니, 정말 너무해요! 그런데 엘프들도 사술을 쓰는 모양이네요? 마녀의 불꽃은 종족 상관없이 들킨다면 바로 죽는다는  잘 알고 계시죠?”
“그러는 너야... 말로. 타인의 영혼까지 갈취하는... 노예로 부리는 사술을... 하아... 하아...!”
“지치셨으면 우리 차라도 한잔하면서 얘기를 나눠볼까요? 우선... 어? 어. 어머 정말? 알았어. 아,죄송해요. 누가 말을 걸어서, 헤헤! 오늘은 예쁜 엘프를 봐서 영광이네요!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갈 테니 다음에 ㄸ...! 아핫! 너무해~ 작별 인사하는데도 창을 던지시다니. 그럼 잘 있어요, 엘프 여러분~”

발랄한 인사와 함께 창이 여러 꽂힌 머리가 흐물적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살점과 피가 녹아 부스러지면서 나오는 역겨운 연기와 함께 푸른 잔디로 이루어진 땅이 생기를 잃으며 곧 급속도로 시들어버렸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얼마 남지 않은 마나로 엘프 마을이 오염되지 않도록 칩입자가 남긴 흔적들을 모아 하나의 구체로 압축한 에블린은 마지막으로 초록 불꽃을 띤 창을 던져 그대로 태워버린다.

“허억... 허억...!”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억지로 쓴 탓에 에블린은 머리가 어질 거리며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애써 난간을 붙잡으며 겨우 서 있었다.

“녀...”
“마녀다...”
“초록색 불꽃을 쓴 장로는 마녀다...”

나무 위에 있던 엘프들이 난간을 붙잡은 채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에블린을 향해 마녀의 재림이라 하며 두려운 눈으로 모두가 화살을 장전하며 일제히 에블린을 향해 겨누었다.

“마녀는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된다!”

두려움을 떨쳐내는 크나큰 고함과 함께 엘프 한 명이 활시위를 놓자 에블린을 향해 매섭게 날아가는 화살.

그리고 날아가는 화살이 신호가 된 것인지 활시위를 당기던 엘프들도 에블린을 향해수많은 화살이 쏟아 내리기 시작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오면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가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던가.

이미 눈앞까지 다가온 수많은 화살에 에블린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으며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각오는 했다.

침식해오는 저주를 막기 위해서는 불꽃이 필요했다.

설령 그것이 그들에게 외면받는 일이라고 해도 나는... 후회하지.

“뭐 하냐, 에블린.”

죽기 직전의 환청일까.

“빨랑 일어나.”
“뭐야, 너. 언제 온 거야? 그보다 화살은?”
“화살이라는  존나게 아프구나. 어깨에  방 맞았다.”

솟구치는 불길 속에서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뽑으면 아프겠지? 그보다 회복 주문 쓸 줄 알아? 나는 쓸 줄은 아는데, 마나 성질이 지랄맞아서 효과가 별로거든.”

두꺼운 팔로 쓰러진 나를, 쏟아지는 화살로부터 나를 지켜주며 곧 어깨에 박혀 흘러내리는 두 줄기의 핏물이  얼굴에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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