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51-2 어지러운 머릿속.
무언가에 열중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아무리 복잡한 고민이더라도 빡빡하게 일을 한다거나, 야동을 본다면 기껏 고민했던 일이 바보처럼 느껴질 것이다.
[일어나거라. 언제까지 누워있을 셈이더냐?]
메마른 대지.
소년은 감았던 눈을 뜨니 붉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소녀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얼른 일어나라고 타박하는 중이었다.
“살살 해주시면 안 됩니까?”
[본좌가 가르침을 일깨워준다는데, 대충하면 되겠느냐? 자, 아직 시간은 많으니 시작하자꾸나]
메마른 대지에 드러누운 알렌은 눈을 질끈 감고 일어나 옷에 묻은 마른 흙을 털며 클로 세로를 보았다.
[예로부터 마법사는 육체가 연약한 족속이었지. 하물며 인간은 타 종족과 다르게 몸뚱이가 종잇장처럼 쉽게 찢어지고 흩어지기도 했지]
“헤에... 그렇구나.”
[어찌... 건성으로 듣는 것 같다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누구의 말씀이신데요.”
[흠. 아무튼, 잠재적인 재능과 센스. 본좌의 반지 덕에 여타 인간보다 월등한 마나를 품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법이 미숙하구나]
“네? 제가요?”
[너는 마나를 사용할 줄만 알지,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 매우 서툴러]
서툴다.
클로 세로에게 마나를 다루는, 사용하는 방법이 잘못됐다고 들은 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서툴다. 맞는 말이네요.”
클로 세로의 지적에 알렌은 공감하며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방안을 말씀해보시죠.”
[가르침을 사사 받는 처지인데도 꽤 당당하구나]
“기가 죽은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좋다. 그러면 손을 잡도록 하여라]
“네.”
클로 세로가 내민 손을 잡은 알렌.
그리고 유녀의 손을 잡은 손이 점차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인간치고무한에 가까운 마나량을 지녔지만, 비루한 몸뚱이는 과연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나 시험해보도록 하마. 반격해도 좋다]
‘에블린과 마나 대결을 했던 그건가.’
점차 붉은 핏줄이 도드라지는 것처럼 팔꿈치까지 클로 세로의 마나가 차올랐다.
자신의 불타는, 용암을 품은 팔을 보며 마나를 사용해 밀어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처음부터 고대의 용, 레드 드래곤인 클로 세로의 마나에는 당해낼 수가 없다, 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역부족이었다.
평소에도 자연스레 쓰는 마나가 왠지 불편했다.
[어떠느냐? 이제 잘 알겠느냐?]
어느새 어깻죽지까지 차오른 클로 세로의 싱긋 웃으며 알렌에게 말한다.
“이거... 기분이 묘하네요.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위험을 느껴서 오싹하다고 할까. 아무튼, 나쁘지 않은 기분이네요.”
[별... 희한한 녀석을 다 보는구나. 보통 사람, 아니, 종족이라면 타인의 마나가 자신의 심장을 침식하는 것에 기겁하고 놀랄 터인데]
골려줄 생각으로 웃었던 것인지, 어느새 클로 세로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나를 계속해서 집어넣는다.
“후...”
알렌이 숨을 내쉬자 작은 불꽃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내쉬자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커다란 불꽃이 알렌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재미있네요. 뭔가 새로운 걸 알아가는, 배워가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군요.”
불꽃이 튀어나온 입 주변을 매만지며 알렌은 기뻐했다.
[좀 더 기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인간이면서도 용의 숨을 내쉴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니까]
“일부로 이렇게 케어해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손수 키운 인간을. 후에는 본좌와 결투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강해질 필요가 있는 법이지]
호전적인 얼굴로 알렌의 손을 강하게 쥐는 클로 세로.
“그러다가 나중에 저한테 지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본좌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곧 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강자 사이에서도 당연히 독보적인 그들 사이에서도 정점을 오른다는 것이지]
호전적인 얼굴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것이다.
클로 세로는 전투에 열광하는, 순수한 웃음과 눈동자는 투명한 물처럼 순수했다.
“그렇다면 저는 정점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더냐?]
“그거야... 침대 위에서는 제가 클로 세로 님을 이긴... 어으윽!?”
[불손한 말을 지껄이는 것이 그 입이더냐?]
알렌은 손으로부터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따스하게 감싸 안던 클로 세로의 마나는 순식간에 변해 알렌을 괴롭혔다.
처음으로 맛본 무력감. 그리고 몸속에는 수많은 가시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극심한 통증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죄송합니다. 그러니 이 이상 했다가는 제 팔이, 몸이 풍선처럼 터져나갑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이곳은 무의식의 공간인데, 죽는다고 해도 기껏 식물인간이 될 뿐이겠지]
“한낱 인간이 장난삼아 한 말에 대륙의 정점이신 클로 세로 님께서 속좁은 만행이 알려진다면 대륙 모두가 비아냥거리지 않겠습니까?”
[괜찮다. 어차피 무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본좌가 직접 펼친 세계를 누가 알겠느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거둬주시죠.”
[잘못했다는 인간치고는 차분하구나? 본좌가 그리 우스운 존재가 아니거늘]
클로 세로는 한숨을 내쉬며 알렌에 몸을 침범한 자신의 마나를 빠르게 거둬들였다.
그 과정에서 다리 힘이 풀려 쓰러지지 않으려고 겨우서 있었지만, 언제나당당하던 알렌의 굴욕적인 모습을 본 클로 세로는 좋은 것을 보았다며 내심 흡족해한다.
[다음에도 이러면 정말 뼛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태울 것이니 언행에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하여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그렇게 끊어서 답하는 이유는 무엇이더냐...?]
“아뇨. 별.거.아.닙.니.다.”
클로 세로는 스타카토로 끊어서 말하는 알렌을 보며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니겠지. 본좌가 살짝 꾸짖었다고 복수를 할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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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뭘 잘못했지?”
[....]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건가?”
[...아닙... 니다...!]
메이드복을 입은 클로 세로는 지금 침대에 걸터앉아, 알렌의 발치에서 도게자한 상태로 분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내게 말해보도록.”
[오, 오늘 제가 주제넘은 무례를...]
“잘 아는군. 그러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겠지?”
알렌은 손에 들린 바이브를, 자신의 자지를 본떠 만든 바이브를 클로 세로에게 보여주었다.
[이, 이것은...?]
“내 자지 모양을 본떠 만든 바이브.”
[네...?]
“이제부터 벌을 주마. 지금 당장 내 앞에서 내 자지를 본뜬 바이브로 자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