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53-1 그들의 반응.
“냄새 좋네. 오늘 아침은 생선인가?”
식당 문을 열자 희미하게 풍겨오는 구운 생선 냄새가 비릿하기보다는 오히려 식욕이 돋구는, 조금 익숙한 냄새였다.
“아줌마. 오늘 아침은 뭐에요?”
“알렌 학생 왔어? 저번 주에는 왜 식당에 안 온 거야?”
“아, 머리를 다쳐서 잠시 입원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냄새 죽이네요. 혹시 장어?”
“어머? 알렌 학생이 장어도 알아?”
“에이. 장어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사소한 대화.
어느 때와 다름없는 대화였지만, 알렌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식당 아주머니와 나누고서는 지글지글 구워지는 장어의 소리와 냄새에 눈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입원한 것도 몰랐으니 아줌마가 퇴원 기념으로 장어를 듬뿍 올려줘야겠다.”
“그래 주시면 고맙죠. 그럼 앉아서 기다리겠습니다!”
’역시 식당 아줌마랑 친하게 지내면 덤이 딸려 온다니까. 개꿀~‘
의자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알렌은 점차 먹음직스럽게 구워지는 장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는가?”
“어, 뭐야? 일찍 일어났네?”
알렌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 들리자 고개를 뒤로 젖힌다.
“몸은 괜찮은가?”
“몸은 이제 괜찮지. 쪽지는 받았지?”
“코델리아 선생에게 받은 쪽지를 말하는 건가?”
“그래.”
“나는 너의 검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니 쪽지에 무엇을 쓰든 나는 그걸 따라야 한다.”
“새끼. 말투는 여전히 딱딱하네.”
아카데미를 떠나기 전, 엘프의 숲으로 가기 전에 쪽지에 쓰인 내용은 간단했다.
미라이에게 다가가지 말도록. 이었다.
내 심복이 저주를 받아 능력치가 내려가는 것도, 미라이가 다시 방에 틀어박혀 떠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소녀에게 사죄했다고는 해도, 아직 큰 상처로 남아있겠지.”
“나 없는 동안 철이라도 들었나? 갑자기 왜 이런다냐?”
“그저... 미안하기 때문이다. 이제껏 공작이라는 위치에서...”
주절주절 딱딱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웰턴.
“알았다, 알았어. 요점은 간단하네. 반성하고 있는 거네. 맞지?”
“맞다.”
“그럼 됐어.”
혹시나 내 앞에서 거짓을 고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웰턴의 기도에 새긴 술식을 확인해보았다.
‘거짓은 아니네. 만약 내 앞에서 위선적인 거짓말을 했다면 많이 맞았을 텐데.’
“그럼 이만 가겠다. 아침 맛있게 들...”
“어디 가? 같이 밥이나 먹어.”
“아니. 그 소녀가 아침을 먹으러올 수도 있으니...”
“그냥 먹어. 한창 클 나이에 식사를 거르다니? 그게 말이나 돼? 빨리 장어 덮밥 5인분 시키고 와.”
“알았다. 그런데 왜 5인분을?”
“그 정도는 먹어야 체력을 기르지.”
“알았다. 그럼 갔다 오지.”
식당 아줌마에게 주문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웰턴.
“아, 그리고 수업 끝나고 나랑 어디 좀 가자.”
“알겠다.”
“어디인 줄 알고 냉큼 대답하냐?”
“설령 전장이라 해도 나는 거부하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너의 명령이라면.”
“오글거리기는... 수업 끝나고 마로스한테 가자. 좋은 약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설마 미약인가?”
“아니. 뭐랄까... 원기 회복 포션? 같은 거야. 너도 이참에 마셔두면 좋을 거 아니야.”
“알겠다. 그럼 수업이 끝나고 같이 가도록 하지.”
짧은 대화가 오가는 두 사람.
그리고 아침 식사가 나왔다는 소리에 두 사람은 동시에 일어난다.
****
‘또 먹고 싶네. 역시 장어야... 최고야 장어...’
체육복을 입고는 교실에 앉아 오늘 아침에 먹은 장어 덮밥을떠올리는 알렌.
‘점심에는 뭐가 나오려나... 아침에 장어가 나올 정도면 점심은 뭐가 나올까...’
식당 아주머니에게 덤으로 듬뿍 쌓인 장어 덮밥을 7인분이나 흡입한 알렌은 턱을 괴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다들 조용.”
어수선한 분위기를 휘어잡는 낮으면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렌 메스티아. 퇴원한 모양이군.”
“네. 아직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퇴원했습니다!”
“그, 그렇군. 흠흠...”
알렌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잠시나마 일그러진 얼굴을 출석부로 가리며 헛기침하는 코델리아.
그 모습을 본 알렌은 히죽 웃으며 코델리아를 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축제에서 우리 1-A와 1-B가 합동으로 축제를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다시 올라오며 학원생들은 축제라는 키워드를 듣고는 묘한 흥분에 휩싸이며 이런저런 즐거운 얘기가 들려왔다.
“테마는 연극이다. 이제껏 아카데미 역사상 다른 반과의 합동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역시. 코델리아가 아카데미 내에서 입김이 강하니 합동도 수월하군. 좋아.’
“물론 처음엔 다른 반과의 합동이 내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저 웅크려 앉아 다른 사람과 비슷한 관례를 할 바에는 차라리 전대미문의 도전을...”
다른 학원생은 코델리아의 말을 귀를 쫑긋 세우며 경청하는 모습이, 멋지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애를 쓰는구나. 하긴. 내 뒤통수를 아작냈는데 합동은 무조건이지.’
“...다들 처음이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이상으로 마치겠다.”
축제에 대한 장엄한 설명이 끝나자 학원생은 간소한 박수와 함께 코델리아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칭찬받을 일이 아니니, 손뼉은 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알렌 메스티아는 나를 따라오도록.”
“네.”
평소와 같은 표정과 말투로 알렌을 불러내 그대로 교실을 나가는 코델리아.
코델리아의 나가는 모습을 보고 느긋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르는 알렌.
“네. 부르셨어요, 코델리아 선생님?”
“...지인에게 좋은 약을 구해왔다. 자.”
공간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는 코델리아.
그리고는... 발렌타인데이 이벤트에서 남자 주인공에게 초콜릿을 주는 듯한 츤데레의 표본적인 모습으로 손바닥 위에는 작은 병에 담긴 연고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머리가 지금도 깨질 듯이 아프지만! 연고라도 바른다면 그 아픔이 조금이라도 가시겠죠?”
“미, 미안하다.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니...”
“괜찮아요. 그런데 합동 연극이라니. 제 의견을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고맙기는 무슨... 아, 그런데 키가 조금 큰 건가? 전에는 내 턱에 닿을 정도였는데.”
“성장기잖아요. 쑥쑥 커야죠.”
“아무리 성장기래도 이건 너무...”
“싫어요?”
동등한 눈높이.
알렌은 싱긋 웃으며 당황하다가 이내 얼굴을 피하는 동시에 출석부로 또 다시 얼굴을 가린다.
“시, 싫은 건 아니다. 다만, 너무 빠른 성장이 신기해서...!”
“앞으로 신기할 일 투성인데 겨우 이 정도로놀라면 어떡해요?”
능글맞은 웃음으로 살짝 뒷걸음질친 코델리아에게 다가가는 알렌.
그러다 문득 클로에의 공부는 잘 가르쳐줬는지 궁금했다.
“아, 그런데 제가 부탁한, 클로에 과외는 어찌 괜찮았나요?”
소년의 입에서 클로에라는 이름이 나오자 얼굴을 가린 출석부를 원래 위치에 놓고는 알렌을 노려보았다.
“...나 갈래.”
“네? 아니...?”
붙잡을 틈도 없이 코델리아는 공간을 찢어 그대로 알렌의 앞에서 사라졌다.
“반응이 귀여워서 놀려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뢰였나 보네.”
귀엽게 삐쳐서는 공간 너머로 사라진 코델리아를 보며 혼자 나지막한 웃음을 보이는 알렌.
‘인기가 많았던 적이 없어서 그런가. 다른 여자 이름만 대도 질투하는 모습이 참 귀여워.’
끊이질 않는 웃음을 억지로진정시키며 알렌은 교실로 되돌아가려다 그냥 보건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네스는 과연 내 명령을 잘 지켰으려나?”
****
“어라? 언제 돌아오셨어요?”
아네스의 말투로 보아 보건실에는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어제돌아왔지. 읏차!”
신발을 벗고 아무도 없는 보건실 침대에 팔자 좋게 누운 알렌.
“그런데 크리스틴선생이랑 비비안은 어때?”
“크리스틴 선생님은평소와 똑같았... 아! 이상하게 손바닥을 자주 만지시더라고요!”
“손바닥을 자주 만진 다라... 오케이. 다음은?”
손바닥을 자주 만진다는 아네스의 말에 알렌은 내심 걱정이 됐다.
‘혹시 마나의 잔재가 남아있는 건가? 나중에 살펴봐야겠네.’
“아시다시피 크리스틴 선생님은 제가 교무실이나 사적으로 만날 수는 있는데, 비비안 학생은 보건실말고는 딱히 접점이 없어요.”
‘하긴. 아네스가 보건 선생이라 보건실에만 있는데 비비안의 행적을 알 리가 없겠지.’
“아, 그래도 빈혈 증세가 보여서 약을 주긴 했어요.”
“그래? 빈혈 증세라. 오케이. 마지막으로 미라이는 좀 어때? 많이 괜찮아진 거야?”
“미라이 학생은 많이좋아지긴 했지만... 기숙사에서 나오고 있질 않아요. 코델리아 선생님이 기숙사를 방문하시기도 하고, 저도 걱정돼 일이 끝나면 들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오케이. 알았어. 그럼 간다.”
“버, 벌써 가시게요...?”
“왜? 어디 만져주고 가?”
“아뇨... 그냥...”
보건실에 와서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지, 보건실 침대에서 일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가려고 하는 알렌을 보며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내는 아네스.
실망한 듯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춰, 문을 닫아 성큼 아네스에게 다가가는 알렌.
“왜, 왜 그러세요...?”
“귀여움받고 싶으면 비밀 공간으로 와. 오늘은 그만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을 만큼. 제발 애원해도 멈추지 않을 거니까.”
“아, 네! 꼭 갈게요! 꼭!”
기대했던 말을 들으니 아네스는 침울했던 얼굴에서 금세 환한 미소를 보이며 알렌을 보았다.
“그런데...”
“왜 그러는데?”
“키가 자라신 거 같네요? 전에는 제 머리를 간신히...”
의자에서 일어난 아네스가 키를 재보려는순간 알렌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왜, 왜 그러세요오오?”
“왜? 네가 좋아하는 키 작은 꼬마가 아니라서 실망했어?”
“아, 안 되는 건 아니... 하, 하하...”
멋쩍은 웃음. 아니, 당황스러우면서도 다른 이가 본다면 부럽다며 야유를 날릴 부끄러운 상황에 아네스는 안경을 황급히 고쳐 쓰며 두 뺨에는 작은 홍조가 피어났다.
“나중에 봐, 아네스.”
감았던 허리를 풀며 나중에 보자는 인사와 함께 보건실을 나간 알렌.
그리고...
“...좋네요. 성장하신 알렌 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