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57-2 축제 준비, 그리고 무의식.
‘오늘은 늦는군.’
수선한 교복을 입고 턱을 괴며 앉아있는 알렌은 조회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오질 않는 코델리아.
코델리아가 조회 시간에 나오질 않자 학원생들은 이리저리 떠들며 몇 여학생들은 교복을 입은 알렌을 흘깃 쳐다보았다.
‘부담스럽게 계속 쳐다보네.’
이미 여학생들의 열렬한 시선을 느낀 알렌은 잘생긴 것도 죄라며 스스로 자신을 타박한다.
“미라이.”
“네, 알렌 님.”
“축제 때 뭐 하고 싶어?”
“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애초에 축제가 처음이라서, 헤헤...”
내 옆에 앉아 머쓱하게 웃으며뺨을 긁적이는 미라이를 보니 진짜 귀여움의 화신이 따로 없었다.
“미라이는 이번 축제가 처음이라는 거네?”
“네에...”
“그러면 재밌게 즐기자. 내가 아침에 말했던 것처럼 나는...”
드르르륵!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단숨에 가라앉았다.
“늦어서 미안하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짧게 설명하마.”
코델리아의 입에서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자 알렌을 제외한 나머지가 학생들이 놀란다.
“우선 축제에 관한 이야기다.”
코델리아의 입에서 축제 이야기가 나오자 급식들은 놀람도 잠시, 모두가 즐거워하며 가볍게 대화하는 모습이
“우선 첫 번째로. A반과 B반의 축제 테마는 연극이다. 아무래도 인원이 많다 보니 연극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지. 또 소품이나 장식을 만드는 시간도 빠듯하지. 그러니 방과 후가 된다면 모두 자리에 앉아서 대기할 수 있도록.”
‘연극’
알렌 메스티아가 생각해낸, 비비안을 공략하기 위해 떠올린 축제 테마였다.
비비안과 사적인 만남은 아직 무리였고. 또 매번 검술 수업에 들어가도 쌩하고 무시하는데 어떻게 공략을 할 수 있을까?
막말로 미약을 먹이고 조교를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지만, 비비안이 쉽게 따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코델리아와 다르지만, 비슷했다.
억지로 따를 바에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는 성격.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내가 주인공. 그리고 여주인공은 비비안.
그러면 연극 연습을 하면서도 아주 사소한 감정이 싹을 피우지 않을까.
“그리고 알렌 메스티아.”
“네.”
코델리아는 조용히 알렌의 이름을 부른다.
“테마는 정해졌으니 어떤 연극을 할 셈이지?”
3주도 채 남지 않은 시간.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인 만큼.
코델리아는 어떤 연극을 하는 것인지 기획을 담당한알렌을 향해 묻는다.
“푸른 마녀 이야기는 어때요?”
원래라면 다른 이야기를 하는 편이 좋지 않으냐고 말하고 싶었던 코델리아는 그간 자신이 알렌의 뒤통수를 술병으로 후려쳤던, 어제 정을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알겠다. 그러면 푸른 마녀를 필두로 한 극을 진행하기로 하고. 나는 나가보도록 하마.”
짧지만 굵은 내용의 조회.
코델리아는 도도하게 교실을 나가자 급식들은 연극 테마가 푸른 마녀 이야기로 결정됐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주로 여자 급식들이.
푸른 마녀 이야기.
게임 안에서는 밀리언셀러로 유명한 작가의 소설인데.
내용은 간단했다.
푸른 마녀와 기사가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는 전형적인 로맨스 판타지.
처음에는 그저 여타 소설과 다름없는 킬링타임 용으로 나온 소설이었다.
하지만, 어떤 귀족 영애가 서점에 놓인 먼지 쌓인 푸른 마녀 이야기 소설을 집어 들고는 나중에는 영애들이 모인 자리에서 푸른 마녀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대부분 영애는 원치 않는 결혼을 요구당한다.
귀족의 여식이란 그런 삶을 살아가니까.
이익을 위해서라면 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가문도 많다.
이 때문일까.
귀족 영애들은 세상과 가문에 저항하는 기사의 모습을 보며 언젠가 이런 남성이 찾아오지는 않을까? 라는 망상이 속출하는 영애들.
문화란 참으로 무섭다.
그도 그럴 것이. 푸른 마녀 이야기가 나오고 1년이 지난 지금.
가족의 눈을 피해 사랑하는 남자와 야반도주하는 영애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귀족 사회에서 난리가 났었다.
푸른 마녀 이야기를 유해도서로 지정하자며 귀족의회, 독자들의 자유를 앗아가지 말라는 출판업계.
두 집단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공방.
계속 거듭되는 그들의 싸움은 결국에는 왕까지 나설 정도였다.
왕이 개입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푸른 마녀 이야기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다.
출판계는 환호했지만, 마냥 환호할 수는 없었다.
검열.
귀족에 관한, 귀족의 마음을 울리는 문구를 모두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후로 모든 검열을 끝마치고 새롭게 나온 푸른 마녀 이야기의 개정판.
물론 많은 사람이 실망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재미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했다.
원작을. 새롭게 나온 소설이 아닌, 모두가 열광하며 귀족 영애를 환희에 젖게 한 원본을 원했다.
이미 초판으로 나온 푸른 마녀 이야기는 금서로 지정되어 회수됐지만, 모조리 회수하지는 못했다.
주로 암시장에서도 간혹 푸른 마녀 이야기의 초판을 고가로 판매하는 암상인도 꽤 있었으니.
“저기, 알렌. 어떤 이야기로 할 거야?”
어느새 알렌의 책상 앞에는 여학생이 가득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기대하는 눈빛과 말투로 어떤 이야기를 할 거냐는 그 말에, 알렌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글세. 지금 세간에서는 푸른 마녀 이야기가 독이라는 귀족들이 많아서. 또...”
저 갈망한다는 눈빛. 잘 알고 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소녀들은 기대한다.
연극을, 푸른 마녀 이야기를 꺼낸 내게 초판과 개정판을.
그녀들은 몸소 협박하는 듯한 행동으로 나를 압박해오며 내 입에서 초판의 이야기가 나오도록 조금씩 책상이 밀렸다.
“현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초판 이야기는 다른 귀족이 보기에는 눈살이 찌푸릴 정도겠지. 그래도 어차피 하는 축제인데 재밌는 편이 더 좋잖아.”
말을 빙빙 돌리며 알렌의 말투에 모두의 눈이 이글거린다.
“그래도 B반과의 합동인 만큼 모두가 의논하고 결정하는 게 좋겠지. 초판인지 개정판인지. 물론 나는 초판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해.”
머쓱한 웃음으로 여학생들을 사로잡는 미소.
‘남녀불문하고 로맨스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그것도 화제가 된 푸른 마녀의 초판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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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알렌 형님!”
“큰소리 내지 마라. 시끄럽게.”
“아, 네... 조심하겠습니다.”
아카데미의 교문.
그곳에서 깔끔한 차림을 한 다이스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알렌에게 큰소리로 인사했다가 된통 쓴소리를 듣는다.
“마로스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요 며칠 동안은 내 밑에서 일해라, 다이스.”
“뭘 하면 될까요, 알렌 형님?”
“쉬운 일이야. 갓난아기도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지. 너, 아무것도 하지마.”
“...네? 저는 일하러 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다이스는 당혹스러웠다.
일을 하러 왔는데, 일하지 말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요 며칠 약 제조 하느라 고생했다면서. 한 일주일 동안은 편히 쉬고 있어. 아카데미 측에서는 네가 내 사용인이라고 말해뒀으니 문제없을 거다.”
고민했다.
시험에 들려는 소리가 아닌지.
“이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는말인데. 진짜 그냥 쉬고 있어. 가끔은 휴가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가... 감사합니다, 알렌 형님.”
“됐고. 딱 한 가지만 부탁하자.”
“네. 뭐든 말만 해주십시오.”
“사용인 기숙사가 있는데. 거기 가면 룸메이트 사용인이 있을 거 아니냐?”
“네, 맞습니다.”
“그러면 그 녀석들이랑 친해져서 이빨이나 좀 털어봐. 너 그런 거 잘하잖아.”
사실 알렌이 다이스를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주인공과 여주인공.
연극을 들어간다면 분명 역할 배분이 있을 것.
물론 나야 주인공을 할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비비안이 여주인공이 아니라면 내가 합동한 이유도 연극을 할 이유도 애초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만다.
“간단해. 축제 때 A와 B과 합동으로 연극을 한다는데, 글쎄 주인공은 알렌 메스티아와 여주인공인 비비안 아락시스, 라고 말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다이스 녀석은 도박도 잘하고, 애초에 로열 카지노에서도 최상위 딜러였으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아주 쉬울 것이다.
그리고 다이스 녀석이 사용인에게 소문을 퍼트리며 모시고 있는 녀석들 귀에 들어가면 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다른 급식에게 말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비비안이 여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꽤 높다.
물론 본인이 거절한다면 어쩔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잘해보자, 다이스. 못하면 혓바닥, 알지?”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도련님.”
“그래. 역시 이빨을 잘 털어서 좋아.”
어느새 형님이 아니라 도련님이라 부르는 다이스의 몸가짐이 마음에 든 알렌은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다이스의 어깨를 툭툭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