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63-1 엘프는 고기를 먹는다.
“알렌 형님 오셨습니까.”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알렌 형님.”
저택의 대문이 열리자 대기하고 있던 마로스와 다이스가 정중히 내게 인사한다.
“새끼들. 오늘은 세트로 있어서 좋네.”
알렌은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마로스.”
“네, 알렌 형님.”
“밥이나 한 끼 하자.”
“금방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리아나... 는 누님들 시중이고, 이봐 거기. 서둘러 요리를 준비해달라고 주방장에게 일러둬.”
“네, 마로스 주인님.”
“아, 그리고 귀중한 손님이니까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앳된 얼굴의 메이드는 마로스의 명령을 듣자 단숨에 주방으로 향했다.
“알렌 형님.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차라도 한잔하시죠.”
“알았다. 다이스도 올라와.”
“네, 알렌 형님.”
하늘 높이 뜬 태양을 뒤로하며 마로스의 안내에 따라 식당으로 도착한 그들은 각자 자리에 앉으며 메이드가 가져온 홍차를 음미한다.
“그런데, 알렌 형님... 그 예의 건은 어떻게 되셨는지...?”
홍차를 머금고 삼킨 마로스가 긴장된 목소리로 어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묻는다.
“새끼. 잘 처리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사업이나 진행시켜.”
“...거짓말이시죠? 저를 안심하려는 그런 위선적인...”
“새끼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니, 애초에 너, 나 안 믿었구나? 이 새끼가...”
“아, 아뇨...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맞습니다. 알렌 형님을 못 믿었습니다.”
“나도 솔직히 말하자면 설득 못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누구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남자야. 그러니 안심하고 제대로 사업 진행하도록해. 뒤탈도 없이 잘 해결했으니까.”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흐음...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라 말하기가 좀 곤란하네.”
“...주, 죽인 건 아니시죠? 파멜라 쉴버나스를...?”
마로스가 내게 저리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게임에서는 파멜라의 스토리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고위 권력자들도 그녀의 재력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할 정도로. 가히, 악마적인재능을 지닌 미친년이었으니까.
또한 뒷세계, 자칭 뒷골목이라 불리는 세계에서도 파멜라의 악명을 날고 긴다 하는 거두들도 되도록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제 말했는데, 오늘 해결됐다고 당사자에게 말하면 믿기가 어려울 거다.
그 악랄한 파멜라 쉴버나스를 불과 하루도 안 돼서 해결했다고 하면 믿기는커녕 오히려 안심하라는 거짓된위선에 불과하겠지.
“무슨 메리트가 있다고 내가 파멜라 선배를 죽여. 그리고 앞으로 파멜라 선배 욕하지 마.”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이신지...?”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이 일은 여기서 끝. 더는 말하지 마.”
“아, 알겠습니다.”
“축하합니다, 마로스 형님.”
“이 새끼가 지금 누구 놀리나? 네가 안 맞은 지 오래돼서 감을 잊었구나?”
“아, 아닙니다. 놀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눈치 빠른 녀석이 일부러 저러는 걸 보면 나를 놀리는 건가 싶겠지.’
“둘 다 그만. 그리고 마로스. 내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있냐? 이번 건은 내가 은밀히 해결해서 말해주기가 조금 그래.”
“아, 아뇨 저는 무조건 알렌 형님과 웰턴 형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설마 제가 의심... 하겠습니까!?”
‘저 새끼 저거... 딱 봐도 마지못해 믿어주는 거 같은데.’
마로스에게 새긴 술식을 살펴보니 격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파멜라 선배 건은 내가 알아서 해결했으니까 더는 귀찮게 안 굴 거야. 오히려 도움을 주면 모를까.”
“네? 그 악... 아니...”
악독, 악마, 악랄, 악인, 악으로 시작하는 무수한 단어 중에서 무언가 말하려는 마로스는 내가 했던 말을 떠올렸는지 버퍼링이 걸린 기기처럼 말을 격하게 더듬고 있었다.
“앞으로 파멜라를 부를 때는 그냥, 파멜라. 그렇게만 불러.”
“...아, 알겠습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깨는 노크 소리.
곧이어 문이 열리며 요리가 담긴 카트가 들어오며 테이블에 앉은 나, 마로스, 다이스의 앞에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 요리가 침샘을 자극했다.
“자, 그럼 먹자.”
****
“잘 먹었다, 마로스.”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오늘도 제게 일용할 양식, 감사합니다 형님들.”
수북한 접시 위에 마지막 접시를올리는 알렌은 물을 마시며 살짝 손을 들었다.
“잔치례는 됐고. 그리고 다이스. 일주일 동안 고생했다.”
“아닙니다. 저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걸요.”
“원래 시키는 일을 잘해야 칭찬받는 법이야. 마로스.”
물컵을 내려놓고 마로스를 부르는 알렌.
“네, 알렌 형님.”
“지금 사업은 네 독단으로 하기는 힘드니까, 다이스 녀석도 지금 하는 사업에 중요 역할을 위임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역할을 맡겨야 좋을까요?”
“음... 아니다. 차라리 저 녀석한테 돈이랑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줘.”
“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돈과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달라고 하자 마로스는 알렌을 의아하게쳐다보았다.
“다이스.”
“네, 알렌 형님.”
“아카데미 일을 아주 잘 해줬어.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해도 모자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렌 형님.”
“앞서 말한 것처럼. 상당한 돈과 일주일의 시간을 줄 거야. 그러니 이번 사업에서 네 위치를, 네가 꼭 필요한 인재라는 걸 증명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렌 형님.”
증명하라는 말을 들은 다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는 나가보라는 알렌의 손짓에 다시금 다이스는 인사하며 식당을 나온다.
“저, 알렌 형님. 굳이 다이스를...? 그러다 도망이라도 친다면.”
“저 녀석 머리 좋잖아? 도망치지 않을 거야. 목숨줄을 누가 쥐고 있는데 도망을 칠까.”
알렌은 기분 좋은 웃음을 마로스에게 보이며 목을 툭툭 쳤다.
“저, 저는 배신하지 않습니다, 알렌 형님.”
“누가 뭐래? 흐음... 뭐, 사업을 알아서 잘 진행하고. 그럼 나는 먼저 간다.”
“벌써 돌아가시려고요?”
“아니, 오랜만에 에블린들 만나려고.”
“아, 그러시군요. 저번에 묵으셨던방에 계십니다. 안내해 드릴까요?”
“됐어. 일 봐라. 그럼 편히 쉬어.”
편히 쉬라는 말을 남기며 알렌은 식당을 나섰고.
알렌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마로스는 이번 사업을 접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
“이번 스테이크는 정말 맛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걸 진작 먹었어야 했는데... 삶의 반을 손해 봤구나.”
“맞아요. 그런데 레어로 먹었다면 좀 더 맛있었을 텐데...”
“흠흠...! 나는 미디움이 더 좋은 것 같다만...?”
“그러신가요?”
두 엘프는 자신들의 취향이 확고했는지 스테이크를 먹다 말고 미디움과 레어의 장단점을 대답하고 반론하며 흡사 2인 토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스테이크에 노예가 됐네.’
그리고 엘프들의 토론을.
문을 살짝 그 틈으로 지켜보던 알렌은 저런 열띤 토론은 생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것도 엘프들이... 채식주의자, 비건이라 불리는 엘프들이 고기를 먹으며 장단점을 말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잘 지내는 모양이네. 내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면.’
열린 문을 열자 일제히 고개를 문쪽으로 돌리는 두 엘프.
“어?”
“오, 오셨어요?”
“잘들 먹네. 고기 맛이 좋긴 좋지?”
반쯤 사라진 스테이크 접시를 본 알렌.
그리고 이를 들킨 에블린과 로자리아는 얼굴이 벌게진다.
“그래. 많이 먹어둬. 단백질을 섭취해야몸이 튼튼해지니까.”
“어, 어쩔 수 없이 먹는 거야...! 매번 샐러드만 먹는다면 주방장을 요, 욕보이는 거니까...!”
“마, 맞아요, 주인님! 인간 주방장의 노력과 결실을...! 저희의 식습관 때문에 버릴 수는 없잖아요...!”
허둥지둥 변명하는 꼴이 딱 뭐 깨트리고 어영부영 말을 내뱉는 꼬마와도 같았다.
“누가 뭐랬어? 많이 먹어. 맛있으면 먹는 거지, 뭘 변명하고 있어.”
“이, 이깟 미디움 스테이크 안 먹어도그만이야!”
“저, 저도...!”
같잖은 자존심을 부리는 에블린과 마지못해 따르는 로자리아를 보니 뭔가 골려주고 싶었다.
“그럼 내가 먹어도 되지?”
“...그, 그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 주방장이 우릴 위해 힘내서 만들어준 요리를 타인에게 주는 건 조금... 그렇잖아?”
“...장로님 말씀대로...! 또 저희가 어, 어쩔 수 없이 먹다 남긴 스테이크를 주인님께 드릴 수는 없어요...”
“괜찮아. 나야 그런 거 신경 안 쓰거든. 그러니 포크나 줘 봐. 먹게.”
곤란하다는 표정을 드러내며 알렌에게 포크를 건네는 로자리아의 손이 아쉽다는 듯이 떨리고 있었다.
“설마 내가 뺏어 먹겠어? 자, 먹어.”
썰린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 로자리아에게 손수 먹여주는 알렌.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래도 로자리아는 착해서 다행이네. 누구와 다르게.”
“...날 겨냥하는 말투 같네?”
“왜? 찔리는 거라도 있어?”
“...아니. 찔리는 거 하나도 없는데?”
“그럼 됐네. 많이 먹어, 로자리아.”
“제, 제가 먹을 수 있어요, 주인님.”
다시 스테이크를 포크를 찍고는 로자리아에게 먹여주려는 알렌.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며 스테이크를 씹는 에블린은 뭔가 마땅치 못한 표정이었다.
“먹어둬. 이런 호의 쉽게 오지 않으니까.”
“...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길게 내린 머리카락을 기다란 귀 쪽으로 넘기며 로자리아는 조신한 아가씨처럼 스테이크를 받아먹는다.
쿡쿡.
“왜?”
새하얀 손가락이 알렌의 팔을 찔렀다.
“...흐흠!”
“왜 그러는데? 배불러?”
“...됐어.”
내 팔을 찌른 의미는 잘 알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들어줄 텐데.”
나지막하게 말하는 알렌은 다시 로자리아에게 스테이크를 손수 먹여줬고.
그 말을 들은 에블린은 애꿎은 접시를 포크로 툭툭 치며 말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달그락 부딪치는 접시 소리가 멈추자, 에블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스테이크를 대충 씹으며 삼킨다.
“...자, 아 해.”
“...됐어.”
“자, 아.”
스테이크 한 조각을 찍어 에블린의 입 가까이 갖다 대주니 마지못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그맣게 입을 벌리는 에블린.
“아...”
“잘 먹네. 또 먹여줘?”
“...하고 싶으면 해.”
솔직하지 못한 엘프다.
이런 모습을 보면 또 골려주고 싶기는 한데, 귀여워서 그냥 봐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