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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헤밍웨이와 월억킥의 창작활동(3) (11/301)



〈 11화 〉헤밍웨이와 월억킥의 창작활동(3)

주말이란 게 이렇게 지루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뻐근한 몸은 주말을 반기지만 나의 마음은 벌써 월요일을 애타게 기다린다.

나만큼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  놈은 있겠다. 준범이 놈은 주말은 항상 심심하다고 주식시장은 매일매일 열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녀석이다.

띠링.

이놈은 진짜 양반은  될 놈이네.

`뭐하냐? 배그 ㄱㄱ`

그래, 어차피 그녀를 만나지도 못하는데 이야기에 다음은 떠오르지 않는다.

오랜만에게임이라도하자.

'개 오랜만이네 거 씨바거 연습장에 한 3탄창만 쏘고 와봐도 되냐?'

"그러든가."

'오키도키'

그렇게 말하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게임이 시작된다.

"웬일로 게임하자고 다 불렀냐. 오랜만이네?"

'흠. 여기'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낙하지점에 포인트를 찍는다.

"오키"

꿀꺽꿀꺽

무언가를 마시는 소리

'뭐 별건 없고. 그래서 돈  모았냐?'

"뭐?"

몇 번이고 말하지만, 돈을 빌려주지도 않고 보증을 서지도 않는다.

'역사적 저점이다. 주식해라 주식.'

"또 그 소리냐? 내가  주식을ㅡ"

'병신새끼, 그 지랄을 떨어서 아직도전세 산다는 새끼가 쯧쯧.'

"..."

그는 그렇게 말하며  지금 주식을 사야 하는지 천천히 설명했다.

주식계좌는 있다. 처음 주식을 했을때 1주일도 못가서 500만 원을 날려먹은 다음 이건 아니다 싶어서 주식을 그만뒀고  후로 휴면계좌가 된 것뿐이다.

'훈다이 자동차나 F젠 사라. 자동차는 어차피 전기차니 수소차니 이야기도 많고 매출도 튼튼해서 성장력이 있고 F젠은 요즘 전염병 진단키트 만드는 회사라서 실적이 확실하거든. 사면 무조건 오른다. 사돈에 팔촌에 집문서도 훔쳐서 팔아다사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어디서 자금을 어떻게 끌어올 것인지 내 월급으로 이자는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어디서 매매할 것인지에 대한 매매를 파밍하면서 설명한다.

"그래 고맙다. 한 번 알아볼게."

'내 덕에 너 집  채는 살걸? 나중에함 봐라.'

그리 말하면서 웃기 시작하는 준범이.

"그거 때문에 하자 했냐?"

"뭐 그것도 있고, 적 265! 옆으로 누운 바위 뒤! 2명!"

그렇게 한동안 게임에 집중했다.

"아, 시발."

내 캐릭터가 누웠다.

'야 자기장이 아파서  살린다. 힐템 버려.'

"오키"

준범이는 비정하게도 나를 버리고 뛰어간다.

전우애란 게 없는 새끼.

한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게임에 집중하는 준범이.

마지막 2대 1에서 한명을 눕히고 1대 1을 만든 상황에서 연막을 친다.

다 이겼다 생각했는데 적이 먼저 총을 쏴서 아쉽게 2등을 하고 말았다.

'아 씨바 이게 보였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리플레이를 돌려본다고 잠깐 팀을 해체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는 돌아온 준범이.

'와 씨바 다 보이네. 노안은 노안인가 보다, 이걸 못 봤네.'

"노안은 씨발, 아직 30대야!"

'이젠 40이지, 강범수씨 ㅋㅋㅋㅋㅋ'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리는 준범이. 너도 보는 거냐

'이야 이젠 진짜 헤밍웨이라고 놀리면  되겠더라? 놀랐다 생각보다 개 재밌어서.'

"그러냐?"

칭찬을듣다니 처음인 거 같습니다. 엄준식씨

나는 나름 득의양양해졌다.

그녀 혼자만이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남에게서 인정받으면서 오는  충실감은 정말 중독적이다.

좋은 결과물에 따라오는 요즘 말로는 나데나데? 나는 그런 것이 참 좋다.

'음 근데, 어  그래'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뭔가 뜸을 들였다.

'뭐 그건 둘째치고 낼 일요일인데 오랜만에 만나서 술이나 한잔 하자.'

뭐 오랜만이긴 하다. 연말에 한 번 이쪽에 일이 있다고 해서 만난 이후론 만나지 않았으니.

가까운데 살아도 막상 보려면 이렇게 만날 이유를 만들어야 만나는 우리

우리는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

나는 준범이랑 만나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술이 들어가서 혓바닥에 기름칠이 된 그는 술술 보이스톡으로 했던 이야기를 녹음기로 녹음한  마냥 다시 한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도 혹시 몰라 포스트잇에 적어놓았다고 하니  나중에 진짜 벌면 한턱은 쏘라면서 웃는 녀석

녀석은 그렇게 한참을 낄낄 되더니 가게를 한번 쓰윽 둘러보곤 다시 한 번 나와 눈을 맞췄다.

"너 연애하냐?"

풉!

순간적으로 마시려던 맥주를 내려놓는다.

아주 살짝만 입에 머금어서 그렇게 많이 튀진 않았다.

"에잉 쯧쯧."

그는 더러운 오물을 본 것처럼 혀를 차며 테이블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다.

"뭔 연애야 임마."

"아니 수필 소설 쓰라고 했더니 연애소설을 쓰고 자빠졌잖냐, 그럼 연애하는  아닌가 싶은 거지."

예리한 녀석. 아니 내가 둔감한 건가?

눈치 빠른 녀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녀만 빼면.

준범이는 실실 웃으면서 맥주를 들이키고 고기를 한 점 집어먹더니 다시금 이쪽으로 시선을 준다.

"뭐 난 별말  할게."

"뭐가?"

"어차피 꼰대 새낀데 이 지경이 된 거면 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나 아니더라도 지랄하는 새끼들 많을 텐데  좋은 말만 해줄련다. 잘해봐."

준범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는 이 이야기에 대해서 꺼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내가 준범이의 가정사를 알고 있듯이 준범이도 나의 가정사를 알고 있다.

내가 이미 와이프랑 이혼 직전의 상황에 부닥쳐있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내가 쓴 소설에서 무언가를 느끼곤 내가어떤상탠지 확인하러 온 것이다.

아무도 칭찬하지 않을 가시밭길. 그는 어쩌면 내가 만나는 사람이 학생이라는 것까지는 모를 수도 있다.

이제 곧 40이 다 된 꼰대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도덕성이 결여된 이야기.

그저 내가 늦바람이 들어서 연애를 하고는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곧 이혼할 내가 다른 여자를 환승하듯이 만나는 것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 녀석.

  다 알고 할 말은 다 하는데 선은 지키는 녀석.

오늘도 준범이는 준범이었다.

***

오늘도 우린 카페에 앉아있다.

그녀는 본인의 소설을 나는 나의 소설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자들에게 로맨스 소설이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가?

드라마랑 영화가 사랑이 주체면 여자들은 재밌게 봐도 남자들에겐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왤까?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부분에 불과한 연애에 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단 말인가?

그러니 심심하면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것이다.

커플이 사귀기 시작하면이미 목표를 달성해버려서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이야기도 막다른 길에 놓여있다.

나는 벌써 아무런 자극이 없는 작금에 상황에 약간의 실증을 느끼고 있다.

급하게 타오른 것은 그만큼 급하게 꺼지는 것일까?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후의 전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그녀에게작별을 고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그렇기에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현관에는 내가 신어본 적 없는 모르는 신발이 있었다.

나는 그 순간상상을 초월하는 불쾌감과 패배감이 전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한편으론 기대도 되었다.

그래 이젠 나이를 속이지 못하는 네년이 만나는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너의 마지막 남은 청춘이란 이름의 초를  태워 먹고 잔불조차 되지 못한 너의 청춘의 찌꺼기를 맛보고 있는 남자는 어떤 남자인가?

나는 서둘러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에는아무도 없었다.

나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TV를켜고 기다렸다.

아무리 내가 비위가 좋아도 하루의 마지막을 썩어가고 있는 인간들의 현대아트를 눈에 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눈에는 좀 아름답고 찬란한 것들만을 담고 싶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니 땀에 젖어 앞머리와 이마가 붙어있는 그녀가 당황해서 나온다.

"어,  왔어? 오늘은  빨리 왔네?"

그러고는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

"무슨 일인데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어? 운동이라도 했어?"

흠칫.

몸을 떠는 그녀.

나도 그녀도 서로의 상황을 이해했다.

그녀는 내가 던진 구명 선을 잡았다.

"아 응, 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몸이 너무 뻐근해서..."

"그래?  그러고 보니 차에 내일 쓸 자료들을 두고 왔네. 잠깐 나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고는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게 나는 집 밖으로 나선다.

나는 집 밖에서 5분간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도 계단도 이곳에 있다.

너는 반드시 이곳으로 와야만 하지.

5분이 흐르고 엘리베이터가한번은 왕복했을 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남자가 방 밖으로 나온다.

나는 평범하게 지나치는 척을 하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저 얼굴은 본 적이 있다.

그런가. 오피스 와이프, 오피스 와이프다.

이야 그거 꼴릿하겠는데? 나도 못해봤는데.

그런데 댁네 사모님은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와이프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너의 바람을그저 평소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착각하는  같다.

나는 그렇게 어른스러운 사람이 아니야.

내 터전에 흙발로 들어선 너의 삶에 아주 작은 자극을 선물해  것이다.

우리 집엔 아내 몰래 설치된 캠코더가 있다는 것을 알게  그 회사의 동료들은 어떤 상황에 빠질까?

아내는 직장을 잃을 것이요 불륜을 저질렀으니재산분할도 힘들겠지.

그 남자에 대해서도 잘 알아봐서 그 남자의 집으로도 보내주도록 하자.

그의 아내가 절규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기억으론 결혼식에까지 왔던 남자.

옆에 있던 아내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아내는 있던 걸로 기억한다.

짜릿하다. 나의 행동으로 최소한 3명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는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듯한 전능감에 젖었다.

서둘러서 허겁지겁 정사의 흔적을 지우는 집에 있을 그년도 이러한 전능감에 가까운 배덕감을 느끼고 있었을까?

지랄 맞은 남편과 망가져 버린 결혼생활.

늙으면서 잃어버린 여자의 자존심이 그와의 불륜을 통해 살아나는 기분이었겠지.

사랑받는 여성과 사랑받지 않는 여성. 그 만족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네가 버린 여자는 이렇게 인기 있어서 다른 남자랑도 잔다고 시위를하는 것 같은 감각.

그녀는 내가 머무는 집에 타인을불러들여 성행위를 반복하며 자신의 잿빛 결혼생활에 하얀 색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아직 잘나가는 여성이다.

누구한테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소리치는 듯한 느낌.

불쾌하다. 그러면서도 가련하다.

얼핏 본 늙다리 틀딱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최소한 나보다 5~6살은 더 많아 보인다.

대단하다. 그런데도 서긴 서나 보다.

불륜이라는 그 짜릿한 상황에 멋대로 자지가 열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내일하는 자신의 젊음의 마지막 불꽃을 태워 자손을 번식하려는 그의 원초적 욕구가 그를 그렇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낯선 남자의 향기가 잠시 머물고 떠난 내 집 같지 않은 집으로 향한다.

애초에 전셋집이니 내 집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일단 씻는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더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서두르고 서둘러라.

당황하는 너의 모습을  때면 난 너무나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지막 순간에 직장도 집도 재산도 잃고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받지만 기댈 곳을 찾지 못한 너의 마지막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딜까?

불륜을 저지르던 저 남자? 아니면 저 남자 말고도 다른 남자랑도 자서 그 남자한테 시선이 머물려나?

아니면 마지막의 마지막엔 나에게 매달리는 듯한 불운한 히로인같은 얼굴을 보여줄까?

너의 그 마지막을 보고 싶다.

그렇다면 나의  지루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또 다른 색채로 물들 것 같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조심해야겠지.

저런 뒤룩뒤룩 살진 돼지 새끼들의 이야기는 날것으로 먹으면 몸에 해롭다.

웰던으로 익혀 적당한 향신료를 뿌리고 나서야 식탁 위로 올라갈 자격을 얻는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많은 퇴고를 해야 할  같다.

과하지 않게, 하지만 질리지 않게 소설로 녹여낼 것이다.

그녀가 내 이야기에 재미와 감동,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저런 돼지 새끼들의 추악한 애정 행위를 목격한 다음에 너를 떠올리면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우월감을 얻는다.

그러니 부디 나에게 질리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뭔가 불편한 감각에 하반신을 내려다본다.

빳빳하게 자기주장을 하는자지.

나는 어이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다른사람의 가정이 망가지는 것을 상상하며 흥분하다니... 나는 그림으로 그린듯한 무해한 중년 아재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사실은 어지간히 미친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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