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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둥지 짓는 김준수(2) (59/301)



〈 59화 〉둥지 짓는 김준수(2)

"아! 그러고 보면 이번 주부터 여름방학 아닌가요?"

"그렇죠"

그러고보면 이번달에 학원 휴강이 몇일 잡힌걸로 알고있다.

계획대로라면 8월 첫째주 목,금,토,일이 방학이라 부르기 미묘한 휴식시간인데 학원이 여러모로 일정이 꼬여서 둘째주로 밀려났다.

이번주 목,금,토,일 이렇게 4일을 쉬게 된다는 말이다.


"인한 강사님은 뭔가 계획이라도 있나요?"

"계획이요?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잤으면 좋겠습니다."

"아내 분이 뭐라고 안해요?"

"뭐라고 하겠죠. 하, 집에 있으면 애를  돌보라고 하는데 하루 정도는 푹 쉬게해줬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애 좋아하는거 아니었어요?"


그렇게 물어보자 씁쓸한 미소를 보이는 인한 강사

"제가 회를 좋아한다고 사시사철 초밥만 먹으면 질리는 거라 같은 이치죠."

인한 강사가 회를 좋아한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우린 정말로 친한건지 아닌건지 미묘한 사이였구나

"준수 강사님은 뭐 계획한거 있나요?"

"글쎄요..."

내  짧은 휴식기간은 수진이의 사정에 따라 바뀔거라 뭐라 답을 못하겠다.


"저도 이사하고 뭐 바쁠거 같네요"

"아 오늘 이사하신다고 하셨나?"


"네"


"집들이라도?"


"에이. 됐어요."

"그런가요?"

"예"

"아, 자취라. 그때가 좋았는데~"

멍한 눈동자가 되어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는 인한 강사

결혼하기 전에 혼자 살던 때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어차피 추억보정이 걸려있을 뿐이다.


결혼하기 전의 당신은 턱수염도 머리도 셔츠도 대충하고 다니던 사람이니까

남자놈들 중에서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하는 놈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지갑속에 들어있는 2달러

이 2달러를 준 준석이는 중소기업 사장자리를 물려받을테니 가장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데도 아내가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수진이도 결혼을 하면 그런 여자들이랑 같아지는 걸까?

그건 별로 보고싶지는 않네

***

"선생님 이건 어때요?"

나와 수진이는 수업이 끝나고 근처 가구점으로 왔다.


식탁부터 의자, 책장에 침대, 데스크탑용 책상도 하나 사야하니 생각보다 살펴볼게 많았다.

수진이가 앉아있는 침대를 살펴본다.

"그거 더블이라서 좀 작아보이는데"


"예?"

"어차피 오래 쓸지도 모르니까 퀸이나 킹사이즈가 낫지"

자취지만 나는 이 자취의 연장선에 결혼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이왕 침대도 사는거 같이 살걸 고려해서 사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수진이는  말을 듣더니 침대를 슬쩍 쓰다듬고 일어선다.


내 귀에 입을 가져다대는 수진이

마스크를 끼고있다는 사실이 매우 아쉽다.

"그렇게 저랑 결혼하고 싶으세요?"


그렇게 물어오는 수진이

손이 스르륵 어깨를 쓰다듬는 느낌이 난다.

그날 이후로 수진이의 태도가 좀 과감하게 바뀐듯한 느낌이 든다.

뭐 나로서는 좋은게 좋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 그러니까 혼수본다고 생각해서 골라"


"혼,수"


"그래"


"흐응?"


수진이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알아보려는 모양이다.

"진심이에요?"


"어"


"제 맘대로 골라도 돼요?"

"핑크만 아니면 돼"


"그럴리가 없잖아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몸에서 떨어져서 어떤걸로 해볼까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원래 집을 해오는 것은 남자고 혼수를 장만하는건 여자 아니 이제 이건 의미가 없나


수진이가 나보다 돈이 많을테니 모르겠다.


아니 내가 주식으로 벌었으니 비슷할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나는 이건 어때요? 이건 어때요? 라고 물어보는 수진이를 따라간다.

수진이가 골라주는 것들은 대부분 모던한 분위기의 가구들이었다.

"그래도 되겠어?"


"뭐가요?"


나를 돌아보는 수진이


"나한테 맞춰주고 있는거 아니야?"

"저도 이런게 취향이에요."

그런가? 저번에 수진이 방에 들어갔을때는 뭔가 좀더 따뜻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의 방이었는데

"그건 엄마 취향이고요."

"아"

우리는 그렇게 가구들을 골랐다.

아무래도 한 방에 모아두면 좋은 분위기를 낼듯한 가구들이 세트로 모여있어서 그냥 이걸로 하자는 느낌으로 고른감이 강하다.

"이렇게 프레임이 바닥에서 뜨는 침대는 불안하지 않아요?"

내가 고른 침대는 프레임이 바닥에서 조금 떠 있어서 청소하기 쉬운 침대였다.

"부서지면 사면되지"

"선생님... 은근히 낭비벽 있는거 아니에요?"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조금 경계심이 서린다.

"그런가? 확실히 1개월 마다 바꾸면 돈 낭비기는 하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수진이가 고른 좀 안정성이 느껴지는 침대로 골랐다.

수진이는 잠시 내 말뜻이 뭔지 생각하더니 한숨을 내쉰다.

"남자들은 왜 이렇게 허풍이 심할까?"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내 등을 살짝 꼬집는다.

원래 남자란 그런 법이다.


점원을 불러 확인해본 결과 2~3일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나는 3일  목요일부터 휴가이니 그때 설치를 부탁한다고 하고 계산을 하고 나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불을 깔고 자야할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가구점을 나와 근처의 마트로 향했다.


"이불깔고 자기 불편하시지 않아요?"


"그렇기야 하지"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끌며 생필품들을 담아간다.


"그럼 친구분 집에서 더 신세지는게 낫지 않아요?"

확실히 준범이 집에서 좀 더 있는게 낫겠지.

하지만 더는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친한 친구던 가족이던 집에 있으면 부담스러울 것이다.


자리를 피해주는게 낫지.

"응?"

아무말이 없자 나를 돌아보는 수진이

"그냥. 내가 더 불편한게 낫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카트를 밀며 집에 없는 물건들을 하나, 둘씩 담아간다.

수진이는  뒤를 졸졸졸 따라오더니 내 팔에 팔짱을 낀다.


"그런 모습이 좋아요."

"응?"


"친한 사이에도 예의를 차리는 모습"


"내가? 예의?"


개새끼니 미친새끼니 지랄이니 그러는 사인데 예의를 차리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 샴푸랑 바디워시 가져와"


"네? 이미 있는데요?"


그렇게 말하며 내가 끌고있는 카트를 바라보는 수진이


있기야 하지


"준범이가 그랬잖아. 냄새로 안다고"

수진이는 아~ 소리를 내더니 나를 올려다본다.

"진짜 머릿속에 그거밖에 없어요? 완전 개변태였어"

"이제 알았어?"

"아뇨. 잘 알아요. 나는 수컷이다. 나는 너와 섹ㅡ"


"아 진짜 미치겠네 아오"

수진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계속 옆에서 나는 수컷이다, 나는 수컷이다를 연발했다.


미치겠다. 약점을 한번 잡았더니 죽을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수진아"

"네?"


"나 콘돔박스로 샀어. 진짜 뒤지는 수가 있다."


"풉"


비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할 수 있으면 해봐요~"


수진이는 내가 잡을려고 하자 와아아~ 하면서 멀리 도망쳐버린다.


점점 요망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운 소리 들었다고 귀가 빨개져서 화장실로 도망치던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니까 여기서 만났을 땐 진짜 식겁했는데"


"네?"

"그때. 그년이랑 마트왔을때 있잖아"

"아... 그때요?"

"진짜 살면서 그렇게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저 그때 엄청 기분 나빴던 건 알아요?"


"그랬겠...지?"


"선생님이 생각해봐요. 제가 딴 남자랑 마트에서 웃으면서  보고 있으면 어떨  같아요?"

아마 미칠 것 같다.

"미안해"


"됐어요. 이미 갚아줬고. 아 진짜 확인했을  표정도 보고 싶었는데"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카트를 당겼다.

수진이는 생각보다 담아두는 타입일지도 모른다.


조심해야지

"그, 선생님"

"왜?"

"저 이번에 금요일부터 학교 방학이거든요."

"어, 알고있어"


"혹시 주말에 어디 나가거나 그런 예정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는 수진이는 아주 약간 불안해보였다.


그래. 요망하게 변했어도 그런 점은 아직 그대로구나

"아니, 딱히 없어"

"그럼 오랜만에 데이트나 하실래요?"

"어, 근데 수험생이 그렇게 놀아도 되겠어?"

"일요일에 하면 돼요."


수진이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뭘할지 이야기하며 장을 봤다.


***

시간이 늦어서 수진이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방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역시 돈지랄을 하니 세상 만사가 편해지는 법이다.


오늘부터는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다.

제법 넓은 방에 가구도 없고 몸만 있으려니 뭔가 허전한 마음이다.

역시 잠깐이라도 수진이를 방에 들였어야 했나?


나는 방을 둘러봤다. 상당히 넓은 방


나는 이 방에서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수진이의 수험이 끝날때까지 4개월이 조금 안남았다.

수진이가 수험이 끝나면 의미가 없어지는 방이다.


4개월

수진이가 수험생으로서의 의무를 끝내고 성인으로 취급받기까지 1개월이 남는 시간

나는 그때까지 어떻게든 수진이의 어머님을 설득시켜야만 한다.


쉬운 방법은 곧바로 떠올랐다.

...임신이다.

천박하게 말해서 임신교배프레스로 아가방에 씨앗을 뿌려주면 솔직히 한방 컷이다.

어떤 막장 드라마라도 임신했다고 하면 결혼은 시켜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수다.

나는 수진이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싶다.


저 감수성이 풍부하고 특별한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가  더 많은 경험을 쌓아서 지금보다 재밌는 소설을 쓰면 그걸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싶다.

그런데 여기서 임신이라는 쉬운 방법으로 도망친다?


결혼은 쉽겠지.

하지만 나와 수진이 그리고 부모님들의 관계는 최악이 될 것이다.

어머니에게 수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왜 수진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설명드렸다.

그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수진이를 임신시키는  순간 그 말의 진정성이 훼손된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런 나를 용서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수진이의 어머님은 기겁하시겠지.


앞날이 창창한 딸이 어디서 꼰대 하나를 물어왔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그럴 것이다.


나는 태어나는 내 아이를 나와는 다르게 키우고 싶다.

나와 다르게 누구에게나 축복받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러니 수진이의 어머님을 당당하게 설득해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시발 생각해보니까 나 곧 백수가 되는데 말이다.

백수새끼가 갑자기 찾아와서 딸 주쇼! 우리 결혼하겠습니다 하면 어떤 부모가 좋아라 할려나 모르겠네

이거 설득보다 먼저 일자리를 찾아보는게 먼저가 아닌가?

집을 구하면 뭐든지 잘 풀릴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굴러가지는 않을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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