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이런건 무협이 아니야!!!(1) (71/301)



〈 71화 〉이런건 무협이 아니야!!!(1)

피곤하기는 했다.


그런데도 10년이 넘게 일어나던 시간이 있어선지 멋대로 머리가 각성해간다.

잠은 깼어도 몸이 찌뿌듯하고 머리가 지끈거려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잠만 자고 싶었다.

그래서 눈을 뜨지 않고 그저 누워만 있으려니 팔 안에 있는 수진이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스윽 스윽


수진이는 잠시간 그렇게 꿈틀거리더니 파르르 눈을 떨며 눈을 떴다.

나는 아주 천천히 호흡하며 실눈을 뜨고  모습을 지켜봤다.

수진이는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멍한 상태로 잠시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5초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눈치챈 모양이다.


내가 잠에서 깨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수진이


나는 아주 고른 숨을 천천히 내쉰다.


수진이는 내가 곤히 자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슴에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흐으으... 소리를 내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한동안 냄새를 맡고 있다가 자신의 몸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아주 천천히  몸에서 빠져나왔다.


수진이는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화장실로 향했고 곧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제법 비싼 월세를 지불하는데 그 돈값을 하기는 하는지 거의 들려오지 않는 소리


수진이는 그렇게 지난밤의 흔적들을 지우고 있었다.

지난밤...


수진이와 미친 듯이 섹스를 했다.


이렇게까지 누군가와 미친 듯이 섹스를 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혜정이 이외의 여자를 안아본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술에 취해 혜정이를 덮쳤을 때도 상당히 흥분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젯밤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역시 대용은 되지 못하는 법이지


수진이가 돌아오면 수진이가 어떤 행동을 할지가 궁금해서 몸을 돌아누웠다.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잠이 들려던 정신이 수진이가 문을 열고 걸어나오는 소리에 다시금 정신이 또렷해진다.


수진이는 내가 돌아누운 것을 보고 내가 잠에서  것인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미동도 없는 나의 모습을 보고는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행거로 가서  셔츠를 하나 손에 들었다.

킁킁

고개를 묻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다.


"흐우우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길게 한숨을 내쉰 수진이는 그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알몸 와이셔츠 이것은 정말 귀하다.


수진이는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다가 영 찝찝했는지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려고 하다가 역시 내가 자는  마음에 걸렸는지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혹시 몰라서 사뒀던 스킨로션을 얼굴에 바르기 시작한다.

...화장대라도 하나 사야 할까?


수진이는 그렇게 한동안 몸을 치장하더니 천천히 방에서 나갔다.

뭘하려는 생각일까?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려니 무언가 냄새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수진이는 아침밥을 준비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수진이가 나를 깨우러  때까지 눈을 감고 있으려고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흔들흔들

잠시 잠에 빠져있으려니 나를 흔드는 느낌이 난다.

"선생님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나를 부드럽게 깨워주는 수진이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뜬다.

수진이는 나를 보더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입에 키스해준다.

나는 입을 가리고는 길게 하품을 했다.


"후후후. 얼른 씻고 오세요. 아침준비 다 됐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방에서 나가는 수진이


나는 수진이의 말에 따라 방에서 나와서 샤워를 했다.


화장실에는 은은하게 수진이 전용으로 샀던 바디워시와 샴푸향이 감돈다.

수진이가 방금까지 씻었던 곳이다.


이런게 결혼생활일까? 나보다 먼저 일어난 배우자가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부드럽게 깨워주면서 키스를 하는 아침

모닝커피가 없어도 잠이 달아날 것 같다.

시발 인생이 뭐가 있겠는가?

이런게 섹스고 행복이지


내가 샤워를 시작하고 나서야 수진이가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역시 수건으로 대충 말리려고 해봐도 잘  말랐나 보다.

몸을 씻고 나서 방을 나서니 수진이는 이미 식탁에 반찬을 꺼내놓거나 밥솥의 밥을 그릇으로 옮겨 담고 있었다.

이미 나와  번이고 함께했기에 내가 얼마나 먹는지도 아는 느낌이다.


나는 수진이가 조금 전까지 사용하던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자리에 앉았다.

"집밥이네? 그냥 편하게 시리얼에 우유 말아줘도  먹는데"

나는 자리에 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막 엄청나게 공이 들어가진 않았다.

밥은 어제저녁에 먹었던 밥이 남은 것이고 반찬들은 내가 미리 만들어둔 밑반찬이다.

국은 된장국을 새로 끓인 모양이다.

된장국을 끓여줬다는 것만으로 훌륭하지 암


"왠지 그냥 이렇게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꽃받침을 하고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수진이가 지금 당장 된장국을 먹어보라고 시위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잘 먹을게"

"네 저도 잘 먹겠습니다."


잘먹겠다면서 수저나 젓가락을 들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된장국을 수저로 떠서 먹어본다.

맛있다.

정확하게는 내가 자주 끓이던 된장 쌈장이 1대 1로 들어간 고깃집 된장찌개다.

"이거..."

"바로 눈치채시네요?"


씨익 웃으면서 어때요? 라며 눈으로 물어온다.


"맛있어"


그렇게 말해주자 한번 싱긋 웃더니 본인도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한다.


수진이에게 직접 된장찌개를 끓여준 적은 없다.


그냥 잡담 중에 된장찌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집집이 다른데 나는 이렇게 해먹는다~ 이렇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똑같이 끓여준 모양이다.

나는 평소와 같은 느낌으로 식사를 한다.


수진이는  모습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식사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 후에는 수진이가 모닝커피를 타줘서 천천히 향을 음미하며 커피를 마신다.


나는 수진이를 힐끗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과 소파에 앉아서 서로 팔이 닿도록 딱 달라붙어 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중이라도 덥기는 할 텐데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수진이는 본인용으로 사온 커누를 마시다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올려다본다.
'
싱긋하고 미소 지은 수진이가 커피를 테이블에 올려놓더니 내 얼굴에 손을 뻗고는 천천히 내 머리를 당긴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수진이의 입에 입을 맞췄다.



가볍게 쪽 소리가 나며 입이 떨어진다.

"후훗"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커피를 마신다.

싱거운 녀석

나도 커피를  모금 마신다.

수진이의 모닝키스는 조금 씁쓸한 맛이 났다.


***

"언제 돌아가려고?"

나는 오늘은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내 가슴에 몸을 기대더니 가만히 꼬옥 끌어안아 오는 수진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제가 얼른 집에 갔으면 좋겠어요? 아, 이게 현자타임이에요?"


그렇게 물으면서 좀  팔에 힘을 주더니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게 아니라 이마로 꾸욱 누르는 압박감을 주기 시작한다.


"누가 돌아가래? 그냥 여기 살던지."


"진짜로 산다고 하면 어쩔려구?"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느껴지던 압박감이 사라진다.

수진이는 내 몸에서 슬쩍 떨어지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우음... 어차피 내일도 대체휴무로 쉬는 날인데 오늘 정도는 좀 더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일요일엔 공부한다며?"

"윽! 이럴 때만 강사네요. 어젯밤은 완전히 짐승이었는데"

"내가?"

내가 짐승이었다고? 네가 암캐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간드러진 교성으로 울부짖는데 어떤 남자가 허리를 안 흔들겠나


내가 의외라는 소리를 내는  더 의외였는지 나의 허벅지를 손으로 쓸어온다.

그러지마라

어젯밤에 너무 고생해서 지금 세우면 조금 아플 것 같다.


"그렇게 싫다고 했는데 강제로 했잖아요..."


"싫다는 소리를 했었나?"


내 기억엔 없다.

그냥 수진이가 더 강하게 쑤셔달라고 해서 쑤셔줬고 그러다 보니 그냥 흐아아앙이니 응아아앗이니 이런 소리를 내뱉는 너를 안았을 뿐이다.


"..."


본인 기억에도 없긴 없나 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툭밀어서 소파에 눕게 하고는  위에 몸을 포갠다.


반바지와 반팔밖에 입지 않은 실내복 너머로 수진이의 와이셔츠 한 장 차림의 몸이 닿으니 포근함이 느껴진다.


코로는 수진이의 달콤한 체향이 맡아진다.


그렇게 쌌는데도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것인지 조금씩 혈액이 돌기 시작하는 자지


수진이는 그걸 느꼈는지 움찔 몸을 떤다.


"짐승남"


"변태"

"개변태"

"금태양"


그렇게 말하고는 그냥 내 몸을 강하게 끌어안기만 한다.

아무래도 그런 분위기로 넘어가지는 않을  같다.

"수진이는 완전 루시퍼!"


그렇게 귀에 헛소리를 내뱉으니 푸흐흐 소리를 내면서 가볍게 웃는다.

아침부터 바쁘게 아등바등할 필요없이 가끔은 이렇게 느긋하게 보내는 아침도 매우 행복하다.

하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지

"공부는 해야지"


그렇게 말하자 내 몸에서 몸을 살짝 일으킨 수진이가 도끼눈을 뜨곤 노려보기 시작한다.

"자꾸 그러실래요?"


"어. 그래도 나 때문에 성적 떨어졌다고 그러면 안 되잖아."


나에게 속도위반 결혼이라는 결론은 처음부터 없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안된다.


수진이는 뭔가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수진이의 빵빵해진 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찌르고 인상을 찌푸리는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 마요"

머리가 헝클어지는 게 싫었는지 하지 말라면서 손을 피한다.

그러면서도 머리에 손이 닿으면 뭔가 안심된 듯한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니 알  없는 녀석이다.

"집에서 공부할  가지고 와. 나도 잠깐 나갔다가  테니까"

"네?"


"무협지. 빌려봐야지. 뭔지를 알아야 쓰든 말든 할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서 내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수진이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갈아입고 나온 나를 올려다본다.


뭔가 잘못 들었습니다?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다가 내 옷을 보고는 내가 진심인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고개를 살짝 수그리고 손을 교차해서 뭔가 꼼지락거린다.


"네,네..."


그렇게 조용히 내가 들어갔던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는 수진이

수진이가 방에서 나왔을 때에는 매우 건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차피 우리 집 비밀번호 알고 있지?"


수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삐리릭 위잉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혹시 우리가 같은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을 누군가가 볼까 봐 서로 다른 시간에 나서기로 했다.


수진이가 먼저 집을 나서고 나는 수진이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아파트에서 나섰다.

나는 차를 몰고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자주 찾는 편이지만 요즈음에는 수진이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한동안 가지 않았다.

도서관에 들어가자 평소의 사서와 눈이 맞는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니 상대방도  인사를 받아준다.


나는 그렇게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을 찾아본다.


무협지... 무협지...


무협지를 찾아본다.


솔직히 무협지에 무자도 몰라서 뭐를 봐야 할지는 잘 모른다.


그러니 예전에 학교에서 여자애들이랑 남자애들이 다 같이 읽었던 무협지를 찾아본다.


나도 책 읽는 거 참 좋아하는데 하필이면 무협지여서 대화에 섞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쉽게 결심이 서는 것이었다면 그때부터라도 해보는 거였는데...

아니. 수진이가 있었기에 이렇게 도전이라도 하는 것이지


나는 천천히 그 책들을 들고 사서가 기다리는 카운터로 향했다.


내가 자주 오는 덕인지 사서는 내가 빌려 가는 책들은 대충 알고 있다.

무협지만 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잡식으로 읽는 남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무협지를 골라왔다.

비뇌도


오래전에 유행하던 무협지

친구놈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보던 무협지

사서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늘 그렇듯이 언제까지 대출 가능일이고 연체하면 어떤 불이익이 생기는지 형식적인 말들을 해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을 들고 나왔다.


수진이가 먼저 도착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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