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재능충 강인한(1)
"혹시 어떤 소설인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인한 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선추코 부탁드립니다! 아하하하!"
그렇게 웃으면서 본인이 쓰는 소설의 제목이 뭔지 알려준다.
"이세계를 여행하는 지구인들을 위한 안내서요?"
굉장히 특이한 이름이다.
아무래도 유명한 그 작품의 패러디인 모양이다.
내용은 많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이 뭡니까?"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인한 강사가 어허 소리를 낸다.
"그냥 읽어주시죠? 아 다 읽고 선추코는 꼭 부탁드립니다."
인한 강사의 소설은 월정액으로 야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사이트에서 빨간 딱지를 붙이고 연재되는 소설인 모양이다.
솔직히 웬만큼 구독자가 생기지 않는 이상은 돈 벌기 어려운 플랫폼인데 말이다.
뭐 솔직히 빨간 딱지를 붙이고 나왔다는 것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가기도 어렵다.
나는 슬쩍 몇 화까지 업로드가 되었는지 확인만 했다.
굉장했다.
15편까지 쓰고 홍보를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썼는지 25화까지 스토리를 써놨다.
1주일만에 25화를 쓴 건가?
정신나간 연재속도다.
1일에 3편씩 5일을 연재하고 주말 2일간 5편씩 올린 모양이다.
이 사이트가 2연참을 기본으로 한다고 해도 평균 이상의 속도다.
나는 잠깐 이 소설을 읽으려다가 막 강의준비실로 들어온 다정 강사를 발견해서 어플을 종료했다.
장르 불문으로 읽는다고 하더라도 여자가 있는 앞에서 야설을 읽는 취미는 없다.
다정 강사는 인한 강사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 하고 계셨어요?"
"아뇨. 뭐 별건 없고요. 웹소설 이야기죠 뭐"
그래 웹소설 이야기다.
그렇게 말하자 다정 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풀었다.
그녀는 유명한 작품만 골라서 보는 독자라서 웹소설 이야기를 하면 금방 이야기가 끊기는 경우가 생긴다.
그녀도 그런 경험을 몇 차례 한 이후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느낌으로 넘기고 있다.
인한 강사를 바라보니 약간 애매한 얼굴을 하고 있다.
설마 읽어달라고 하려고?
하지만 인한 강사는 말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한숨을 내쉬고 포기하는 자세를 취했다.
잘했다 인한 강사.
동료 직장인에게 야설을 권유하다니 요즘은 성희롱으로 잡혀갈 수도 있어.
하지만 인한 강사가 왜 저렇게 고민했는지도 알 것 같다.
처음 소설을 쓰면 누군가가 꼭 읽어줬으면 하는 심정이 들기 마련이다.
이건 아무래도 내가 읽고 열심히 소감을 말해줘야 하는 느낌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강의에 들어갔다.
***
식당으로 왔다.
인한 강사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 아내분의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이곳에 찾아오지 않는다.
35살도 오지 않는다.
사실상 나와 다정 강사만이 오는 곳이 되었다는 느낌이다.
다른 강사들도 오긴 오지만 서로 아는 체만 하지 같이 먹지는 않는다.
"준수 강사님"
"네?"
"제가 어제 밥을 해봤는데..."
다정 강사는 그렇게 본인이 시도한 요리에 대해서 들려줬다.
처음에는 밥을 하는 부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밥을 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뭐 밥을 어디까지 넣고 손을 물에 담가서 물이 요기까지 오게 하라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뭐가 문제였는지 말하는 다정 강사
아무래도 전국의 어머님들이 가장 많이들 쓰시는 손으로 쌀과 물의 비율을 맞추는 법을 알려주신 모양이다.
그렇게 시도를 해봤는데 뭔가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을 찾아봤다고 한다.
"쌀을 물에 불리면 1대 1, 안 불리면 1대 1.5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계측할 물건을 찾다가 그냥 밥그릇을 계량용으로 쓰면 된다는 이야기를 찾아서 밥그릇으로 가득 쌀을 넣고 취사를 누른 모양이다.
아 이야기의 행방을 알 것 같다.
"밥이 많이 남았나요?"
"네, 네..."
저번에 그녀가 우리 집에 찾아왔던 날을 떠올려본다.
그녀는 내가 평소에 먹는 밥에 1/3 수준의 밥을 요구했다.
아무래도 밥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예전과 다르게 레시피가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니 만화처럼 드라마틱한 요리를 선보이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다.
기껏해야 겉은 타고 안은 안 익은 요리나 물 조절이 실패한 요리 정도지.
그녀가 밥그릇 가득 쌀을 넣고 밥을 지었다면 꾹꾹 눌러담은 고봉밥 2그릇 분량의 밥이 나올 것이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난감하겠지.
"제가 처리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집에는 밥이 없다.
새로 해야 하는데 그녀가 밥이 남았다면 좀 도와줘도 되겠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굉장히 기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기쁜 일인가? 뭐 확실히 처분하기 곤란할 때 도와준다 하면 고맙다고 느낄만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식사를 마저 했다.
그리고 오후 강의가 끝나고 같이 아파트로 돌아왔다.
"들어오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불러들이는 그녀
아무래도 오늘은 청소를 깨끗이 한 모양이다.
내가 들어가서 소파에 앉자 그녀는 부산스럽게 주방을 오가고 있었다.
응?
"밥 덜어서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은 반찬 통이랑 밥을 주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나에게 음식을 대접할 모양이다.
"그게, 요번에 도와드린 것도 있고 해서 저도 음식 대접을 좀 하려고요."
"괜찮은데..."
"혹시... 제가 한 요리가..."
"아뇨. 잘 먹겠습니다."
우울한 목소리를 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뜻하지 않게 그녀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다.
그녀는 뭔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결과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스팸, 계란후라이에 맛김 정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내가 줬던 밑반찬들이 그대로 식탁 위에 올라왔다.
국도 없네
나는 조금 인상을 썼다.
국이 없으면 밥을 먹기 조금 힘든데... 그렇다고 국 내놓으라고 뭐라고 하기도 진상 같아서 그냥 참기로 했다.
"잘 먹겠습니다."
"네,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단 먹기 시작했다.
스팸과 계란에서 이미 초보의 솜씨가 확 드러났다.
스팸은 분명히 도마에 꺼내서 잘랐는데도 크기가 다 달랐고 계란은 테두리 부분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익었다.
최선을 다 했겠지.
그러니 군말 없이 먹어주는 게 예의다.
밥도 조금 음 그렇다.
수분이 증발해서 조금 딱딱했다.
보온으로 넘어간 지 시간이 조금 지난 모양이다.
그녀는 어때요? 라고 묻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다.
본인도 밥이 딱딱하고 스팸은 어떤 건 조금 탔고 어떤 건 속이 조금 덜 익은 느낌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겠지.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처음엔 다 그런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니까 작은 립서비스를 해주고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식사를 했다.
그녀도 그런 나를 잠깐 바라보더니 힘차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끝내니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가 즐겨 마시는 커피를 타줬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에게 몇 가지 충고를 해주기로 했다.
"밥을 한 번에 많이 하면 밥을 식혀서 1인분으로 먹을 만큼의 양을 비닐봉지에 넣고 냉동고에 얼리세요. 그리고 먹을 때마다 전자레인지에 해동해서 돌려먹으시고"
그렇게 해먹으면 적어도 저렇게 수분기가 증발해서 딱딱한 밥을 먹는 것보다는 훨씬 이롭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반찬 통을 돌려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인한 강사의 소설을 읽어볼 차례다.
***
인한 강사의 소설을 찾아봤다.
내용을 읽기 전에 선작부터 해줬다.
내용이 아무리 이상해도 읽고서 판단해야 하고 선작은 예의니까.
이 사이트는 잘 사용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인한 강사의 소설은 선작이 500명 정도 찍혀있었다.
많은 건가 적은 건가?
프롤로그를 읽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세계에 전생하게 된 주인공
이 세계는 마법과 검이 존재하는 판타지의 세계였다.
자신은 귀족으로 태어나서 입지도 좋았기에 누구나 좋아하는 이세계 라이프를 보내려고 했으나 몸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세계에 주민은 불 물 흙 나무 쇠의 5속성으로 나뉘는데 태어나면서 한 가지의 속성을 타고난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전생을 해서 인지 몸에 나무와 쇠의 상반되는 속성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 속성이 서로 몸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병에 걸린 상태라고 한다.
요정의 장난
그런 식으로 불린다고 한다.
요정이 자신들의 5가지 속성을 인간에게 맞게 맞춰줬는데 가끔 마음에 드는 인간에겐 시너지가 있는 2가지 속성을 맘에 들지 않는 인간에겐 상반된 2가지 속성을 준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란다.
주인공의 시한부 삶이 시작된다.
씨바 거 인생 좆같네라며 신세 한탄을 하던 주인공의 머리에 자신을 지식의 신이라고 자칭하는 존재가 나타난다.
갑자기 머릿속을 헤집는 듯한 엄청난 충격과 함께 그에게 힘의 편린을 보여주는 신
주인공에게 고하기 시작한다.
나는 잊혀진 지식의 신
삼라만상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고자 하는 존재
그대가 바란다면 세상의 그 어떤 진리라도 알려주도록 하지
돈이 벌고 싶나?
여자가 가지고 싶나?
힘을 가지고 싶나?
권력을 가지고 싶나?
그대가 나의 대전사가 된다면 무엇이든 그대가 알고 싶은 진리를 알려주도록 하지.
그렇게 물어보자 주인공은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하늘을 바라봤다.
신이라고 나타나는 새끼들은 대부분 사이비다.
지식의 신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확인을 해 봐야 한다.
드래곤은 파충류니까 총배설강입니까?
응?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주인공에게 당황하는 신
신은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하다
그러자 다시 주인공이 입을 열었다.
이 세계의 드래곤은 폴리모프로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다시 신은 그러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질문인데 드래곤이 폴리모프를 해서 인간인 상태로 임신하면 그건 아날섹스를 한 것입니까? 아니면 정상적인 섹스를 한 것입니까?
정상적인 섹스를 했으면 보지에서 임신이 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폴리모프를 풀고 드래곤 폼으로 돌아가면 보지에 들어간 정액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인간인 상태로 임신하게 되면 애를 낳을 때 포유류처럼 낳는 것입니까? 아니면 알을 낳는 것입니까?
알을 낳게 되면 보지에서 알이 나오는 겁니까?
그게 아니면 인간 상태에서도 아날섹스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보지와 아날이 연결된 총배설강입니까?
질문의 폭탄
신은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짐을 느꼈다.
자신의 삶에 깊은 고뇌를 한 존재를 느꼈다.
그에게서 신비한 느낌과 함께 이질적인 영혼의 기색이 느껴져서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또라이인 모양이다.
...1화만 보고 어플을 꺼버렸다.
처음엔 굉장히 평범한 프롤로그라고 생각했다.
전생했고 귀족으로 태어난 주인공
마법도 있고 검도 있고 이종족도 있는 너무나 뻔한 판타지
그런데 후반에서 완전히 반전이 일어났다.
또라이 새끼가 아닌가 싶은 질문을 쏟아내는 주인공과 넋이 나가는 신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감동조차 느꼈다.
1화만에 이런 흡입력이라니...
나는 이 이상 이 소설을 읽는 것이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