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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화 〉새아기는 여고생(5) (114/301)



〈 114화 〉새아기는 여고생(5)

저녁 식사를 마치고 TV를 보다 보니 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진아."


"왜요?"

"오늘 연재 쉰다고 안 했지? 연재는 괜찮아?"

수진이는 TV를 보다가 나를 바라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비축분으로 10일 치 정도는 쌓아두니까."

"응?"

나는 수진이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으로 카페에서 이야기했을 때는 왜 휴재를 한 거지?


"그럼 그때는 왜 휴재했어?"


"그때요?"


"그 우리가 카페에서 처음으로 같이 커피를 마셨을 때."

"아~"

수진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전개를 바꿀 필요가 있었거든요."

"글쿠만."


아무래도 전개를 손보느라 그런 모양이다.


나는 수진이의  말에 이전 같은 감동을 느끼지는 않았다.

내가 독자들에게 민폐를 끼쳤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럼  연참  그런 거 해도 되는  아니냐?"


그렇게 물어보자 수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왜?"

"전개를 다채롭게 하려면 고구마를 좀 먹여야 하는데 1일 1연재로는 그게 안 되니까요. 비축분은 그 고구마 부분을 시원하게 넘겨버리려고 쌓는 거에요."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선생님도  영화 보고 유행어 따라 하고 그러시네요? 아재면서..."

"선넘네..."

"아하하하!"


우리가 그렇게 작게 웃고 있으려니 어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은 어떻게  거니?"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같이 잘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아직 사귀는 사인데 같은 방에서 잔다니 이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같이 잔다는  이미 갈 때까지 갔다가 광고하는 격이다.


나는 입을 열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그래. 그냥 거실 바닥에서 이불이나 깔고 자면 되지.

"제가 거실에서 이불 깔고 잘게요. 수진아, 너는 방에 침대 있으니까 거기서 자."

"..."


수진이도 내가 했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다물었다.


내가 거실에서 잔다는 게 신경은 쓰이지만 그래도 침대에서 혼자 자려니 미안한 모양이다.


수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불 깔고 주무실 거면 그냥 선생님 방에서 같이 자요."


"수진아?"

부모님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조금 당황한 눈으로 수진이를 바라봤다.


"어차피 바닥에서 이불 깔고 자는데 거실이나 방이나 똑같잖아요. 그리고 선생님이 거실에서 잔다고 하니 왠지 신경 쓰여서 잠도 안   같고..."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는 나와 수진이를 잠깐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이불은 안방에 있으니 가져가렴."

어머니의 눈이 믿어도 되지? 그런 눈빛이다.

나는 조금 죄송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야 안 하겠지만 사실 갈 때까진 갔습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안방에 가서 이불을 들고 나왔다.


조금 이르지만, 오늘은 이렇게 방으로 들어가야지.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 자렴."

부모님이 방으로 들어가셨고 나와 수진이도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수진이는  뒤로 문을 닫고는 침대에 허물어졌다.

"하으으으으~"

"왜 노친네 같은 소리를 내고 그래?"

"긴장이 풀려서요."


"긴장하긴 했어?"

수진이가 몸을 일으키며 나를 바라본다.

"긴장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니, 너무 자연스러워서 긴장 안 하는  알았지."

수진이는 침대에 다시 눕더니 으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이불을 펴고는 수진이의 옆에 누웠다.

"그래서 시간도 남았는데 공부라든가 연재라든가 안 하십니까?"

수진이가 나를 향해 돌아눕더니 내 얼굴을 붙잡고는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떨어뜨리고  입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른다.


"명절 동안 공부라든가 연재라든가 금지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에 고개를 묻는다.

"후으~"

김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추욱 늘어진다.

아무래도 긴장을 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럼 그런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다는 건데... 기특한 녀석.


나는 수진이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줬다.

샤워도 끝났고 이대로 자면 내일이 시작될 텐데...

그러고 보니 항상 이런 시간이면 수진이랑 자취방에서 그러고 놀았는데 말이다.


아쉽다.


수진이의 몸을 생각하니 하반신에 피가 몰리는 게 느껴졌다.

수진이랑 안 한  열흘 가까이 됐으니 그럴법하지.


수진이도 본인의 허벅지에  자지가 닿고 있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선생님은 언제나 건강하시네요..."

피식 웃으면서 손으로 내 자지를 옷 위에서 살살 만져온다.


치녀가 다 됐구나. 수진아.


"그래도 안 돼요. 참아요."

"그럼 만지지 마."

"좀만 참아요."


"응?"

"사실 엄마가 일요일에 올라온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토요일 하루는... 아시죠?"


그렇게 말하면서 수진이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웃는다.

나는 지금 당장 수진이를 덮쳐서 바지를 벗겨버리고 수진이를 덮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든 참기로 했다.

수진이의 손에 깍지를 끼고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수진이도 나를 따라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가 선생님 방이네요."


"그렇지."

내 손을 잡는 수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수진이를 살짝 돌아봤다.


"왜?"

"아니요. 그냥 학창시절의 선생님은 어땠을까 싶어서요.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같은 급식을 먹고 같이 하교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그러면 어떨까 싶어서요."

뭐, 재밌기는 하겠지.


"내가 너랑 동갑이면 만날 일은 없었겠지."


"아, 역시 그렇죠? 그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수진이가 오늘따라 감성적이네.


나는 수진이를 살짝 바라봤다가 휴대폰을 쳐다봤다.

"누구예요?"

"인한 강사님이네. 명절 잘 쉬다가 오라네."


"정말 친하신가 보네요..."

"왜? 의외야?"

"솔직히 말해도 돼요?"


아무래도 의외긴 한가보다.


나는 수진이를 향해서 돌아눕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덕이야."


"네?"

"너랑  만났으면 이렇게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을 거야."

인한 강사가 명절을  보내라고 카톡을 한  올해가 처음이다.

돈을 빌렸다는 이유도 한몫을 차지하겠지만 애초에 친해지지도 않았다면 돈을 빌려주지도 않았다.


수진이는 나를 바라보더니 싱긋 웃고는 나를 살짝 안아왔다.

"이게 역키잡이구나..."


"뭐래."


웃음이 나온다.


그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자기 전에 인한 강사 소설이나 봐야겠다.

"오랜만에 선생님 친구분들 이야기나 들려주세요."


"들어서 뭐하게? 별건 없는데."

"별건 없어도 선생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요."

"그래?"

"네."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천천히 내 친구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뭐, 특별한 건 아니다.

어디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 흘러나온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그 시절은 부유한 가정과 가난한 가정에 차이가  난다는 것이지.

우리 집은 학년 전체로 보면 좀 여유로운 편이었다.

아버지는 키가 작은 편인데 나는 내 또래의 사람들에 비해서 키가 큰 이유도 잘 먹었기 때문이지.

카레든 돈가스든 갈비든 불고기든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잘 먹지 못할 음식들이니까.


도시락을 싸와서 나눠 먹으며 친해진 친구의 이야기나 집이 어려워서 공장을  수밖에 없던 준범이 같은 친구의 이야기나 집이 여유로워서 미술을 하던 준호나 내 라이벌이었던 준석이 등등.

수진이는 웃으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수진이는 딱히 그동안 본인의 학창시절에 대해서 들려주지는 않았다.

수진이에게는 모두 잊고 싶은 기억인 모양이다.


초등학교의 추억도 중학교의 추억도 그리고 고등학교의 추억조차 수진이에겐 상처인 모양이다.


씁쓸했다.


내 그런 표정에서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수진이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

"100년 중에 19년은 별거 아니잖아요. 그죠?"

그렇게 말하면서 다부지게 웃고 있다.

"어, 그렇지."

나는 천천히 수진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수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턴 좋은 경험만으로 그녀의 삶을 채워주고 싶다.

나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봤다.


10시가 조금 넘었다.

"아침엔 분주할지도 모르니 일찍 자자."

"...선생님. 그냥 저랑 같이 자면 안 돼요?"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을 양손으로 붙잡고 올려다본다.


그러자고 하고 싶네.

그래도 부모님은 아침이 빠르시니 혹시 모른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칫."

수진이가 혀를 차며 나에게서 조금 떨어진다.


연기였나? 영악한 녀석.

"잘 자요!"

온몸으로 삐쳤다는 티를 내는구나.


나는 그게 귀여워서 그냥 져주기로 했다.

어차피 결혼한다는 거  아는데 들키면 그냥 들키는 거지 뭐.

에이 시팔.


나는 수진이의 옆으로 누웠다.

"선생님?"


"생각해보니까 추워서. 이젠 진짜 가을이네."

그렇게 말하면서 수진이와 등을 맞대고 눕는다.


"그러면 끌어안는 게 더 따뜻한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향해 돌아눕더니 나를 살포시 끌어안는다.

등에서 수진이의 부드러운 가슴이 느껴진다.

"뭐 볼게 있어서."

"너무한  아니에요? 여친이 옆에 있는데 폰이나 만지고."

"잠이나 자자."

"이 씨!"

수진이가 내 어깨를 살짝 깨물어온다.

나는 수진이의 앙탈을 받아주며 인한 강사의 소설을 보기로 했다.


어차피 수진이도 피곤했을 테니 금방 잠들겠지.


인한 강사의 소설은 머지않아 새로운 히로인이 등장했다.


헤츨링 드래곤과 만난 주인공 일행.


붉은 머리에 머리 위로는 뿔이 솟아나 있고 등에는 날개와 꼬리가 보인다.

생각보다 드래곤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폴리모프라는 생각을 하며 드래곤을 꼬시기 위해 접근하는 주인공.


이러저러한 사건을 겪으며 결국 섹스를 하게 되는데 주인공이 냅다 아날섹스를 실시한다.

드래곤이 기겁하며 뭘 하냐고 항의하지만, 총배설강인 드래곤은 아날섹스가 국룰이라며 드래곤의 말을 무시하는 주인공.

...시작부터 세구먼.

어차피 드래곤의 항문은 배설기관이 아니라는 설정으로 잡혀있어서 더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렇다면야... 하면서 넘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하긴, 드래곤의 덩치에 어울리는 신진대사가 일어난다면 깊은 잠에 빠져들지도 않겠지.


식사는 유희며 마나로 몸을 유지해서 배변을 하지 않는다는 설정이었다.


헤츨링이라 매우 유약한 드래곤은 주인공에게 항문이 범해지면서 점점 주인공에게 빠져드는 알  없는 떡타지 같은 전개가 되었다.

그래, 흔한 암컷타락인가 뭔가하는 그거였다.


하지만 드래곤은 주인공에게 끝까지 마음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주인공이 책임을 질 테니 따라오라고 하지만 쉽게 따라가려고는 하지않는 드래곤.

주인공이 어떻게든 설득을 하려 하니 드래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주인공을 바라본다.

석양에 물든 배경으로 그녀의 붉은 머리가 흔들린다.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보다 더 붉고 아름다운 머리를 보고 있으려니 그녀에게서 천천히 말이 내뱉어진다.

너와의 관계를 유희로 끝내는 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된다고 하는 드래곤.


수명이 짧은 인간과 수명이 긴 장수종의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느냐며 말을 꺼내기 시작하는 드래곤.


드래곤은 평생에 반려를 1명만 둔다고 한다.

주인공은 신의 챔피언이라도 결국은 200년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그럼 주인공이 떠난 다음 혼자서 살 날이 두렵다는 말을 한다.

너와 지내는 시간이 행복할수록 네가 떠난 이후의 그 시간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떠나려고 한다.


주인공은 드래곤을 붙잡으며 청혼을 한다.

신의 힘을 빌려 환생해서라도 너에게 찾아가겠다고.

다음에는 드래곤으로 태어나서 네 앞에 나타나 너와 함께하겠노라고.

네가 내가 떠나 슬퍼한 세월만큼 나도 너를 먼저 보내고 그만큼 아파하겠노라고.

드래곤이니까 레어에서 조금 긴 꿈을 꾸며 기다리라는 말을 하며 드래곤과 영혼의 계약을 맺는다.

드래곤과 주인공의 찐한 키스와 함께 이야기가 끝났다.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놨다.

어느새 새근거리며 자는 수진이가 보였다.

나를 살짝 끌어안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행복한 표정으로 자고 있다.

나는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수진이가 100살까지 살 테니 120살까지 살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수진이는 내가 먼저 죽고 난 이후도 각오하고 나의 고백을 받아들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남성 평균 수명은 80 근처고 여성은 남성보다 6년 정도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80까지 산다면... 수진이는 60이다.


그 말은 수진이는 본인이 살아온 삶에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내가 수진이를 사랑한다고 할 때마다 수진이는 본인이  사랑할 거라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수진이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수진이의 몸을 살짝 마주 안아주었다.


작지만 용감한  아이를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오래 살아야지.


운동이든 식이요법이든 무슨 수를 써서든 수진이보다 오래 살고 싶다.


수진이를 더는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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