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캠핑장에서 생긴 일(1)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부모님께 인사를 한 다음엔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수진이의 친가에 인사를 하러 왔다.
장모님은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수진이는 금세 장모님에게 다가붙어선 신혼여행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흥미롭다는 듯이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장모님은 아기나 임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굉장히 듣기 거북하다는 듯한 느낌으로 헛기침을 하셨다.
아기라는 화제가 나오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으니 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 부모님은 아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내심 기쁘면서도 그렇다고 내색을 할 수 없어 어떻게든 숨기려고 했다는 점이고 장모님은 순수하게 불편한 것이라는 거지.
이제 20살이 된 딸내미가 아기를 가진다고 생각하니 뭔가 굉장히 어색하실 거다.
어머니는 내년이면 40이 되는 나를 아직도 아이 취급하시는데 이제 20살이 된 수진이가 애를 낳는다고 생각하니 아이가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로 복잡하시겠지.
수진이가 장모님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가에 장난이 가득한 미소를 띠곤 음담패설을 일발장전했을 때 방에 있던 처남이 나왔다.
"오, 바퀴벌레 부부 오셨네."
"오라비는 심심해서 죽겠네? 요즘 거리두기니 뭐니 해서 친구들도 못 보고 살아서?"
"형님 제외하면 놀아줄 사람도 없는 찐따가 하는 개소리는 안 들리는데?"
밉상스러운 표정으로 수진이를 놀리기 시작하는 처남.
수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검지를 들어 흔들어 보였다.
"한 명이면 충분해."
"올~"
이젠 친구가 없다는 농담에도 무덤덤한 걸까?
그런 거치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에 친 장난에 발끈한 게 조금 이상한데.
"여친도 없는 게 까불어."
그 말을 들은 처남은 입가를 살짝 비틀고는 작게 웃기 시작했다.
"뭐야?"
"내가 언제까지 없을 거라 생각했냐?
처남은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처남이 보여준 휴대폰 화면에는 어떤 여자와 함께 사이좋게 팔짱을 낀 상태로 찍은 사진이 있었다.
"...언제?"
"지난주."
아무래도 우리가 신혼여행을 떠난 사이에 처남에게도 늦은 봄이 찾아온 모양이다.
수진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처남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디서 만났는데?"
"친구 소개팅."
"..."
처남은 굉장히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수진이를 바라보고 있다.
"확실히 `한 명`이면 충분하긴 한데 이왕이면 많은 게 좋지? 아하하하하!"
수진이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일그러지고 처남은 그에 반비례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용, 윽."
수진이는 필살기인 용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 입을 닫아버렸다.
수진이가 결혼을 하는 마당에 오빠에게 계속 용돈을 주는 상황이 이상하다며 장모님이 더는 그러지 말라고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한 달에 약 20만원 정도 수진이에게 용돈을 받던 처남은 굉장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금방 훌훌 털어버렸다.
용돈.
처음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오빠가 여동생에게 용돈을 받는 그림이 조금 이상하긴 하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남은 대학교가 집과 조금 거리가 있어서 자취하는 상황이라 비용이 더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부족한 부분은 알바를 하면서 살았는데 그 부분이 신경 쓰였던 수진이가 소설로 버는 이유 중엔 처남의 지분도 있으니 용돈 명목으로 주고 있던 모양이다.
장모님이 고집이 있어 수진이가 소설로 벌어들이는 돈을 쓰지 않으셨기에 처남에게 송금되는 돈으론 인싸다운 삶을 살기엔 턱없이 부족했겠지.
하지만 군대 월급이 오르면서 군대에서 저축한 처남은 어느 정도 자금에 여유가 생겨서 더는 수진이의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뭐, 그런 이야기였다.
"뭐만 하면 협박하는 꼬라지 보소. 그러니까 친구도 없쥬? 나는 애비가 집 나갔다고 소문나도 친구 많쥬? 본인 성격이 지랄나서 친구 없는 걸 애비탓하쥬?"
"아이 씨!"
"에휴, 이것들은 나이를 먹어도 변하는 게 없어."
투다기는 처남과 수진이를 보며 한숨을 쉬는 장모님.
장모님은 수진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나를 바라보곤 어색하게 웃으셨다.
저렇게 아이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수진이가 이제 애 엄마가 될 거라 생각하니 뭔가 굉장히 어색하신 모양이다.
나도 저렇게 처남이랑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긴 한다.
나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니까.
아마 장모님은 나와 단둘이 있을 때의 수진이를 보지 못했으니 그리 생각하시는 거겠지.
아주 요물이 따로 없는 데 말이다.
***
신혼여행이 끝나고 양가 부모님들께 신혼여행을 무사히 다녀왔다고 인사도 드렸다.
이제부터 우리의 부부로서의 삶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지.
뭐, 신혼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우리들의 삶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혼하기 전부터 함께 동거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달라지기는 하는 모양이다.
수진이가 이젠 법적으로 내 아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어깨가 으쓱이고 코가 자꾸 움찔거린다.
이전엔 우리의 관계를 숨기려고 했는데 이젠 오히려 누군가에게 우리들의 관계를 과시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랜만에 완결을 냈던 소설에 외전을 쓰기 시작했다.
수진이와 신혼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
몇몇 사람들은 갑자기 완결이 났던 이야기에 외전이 올라오니 재밌게 잘 봤다는 반응을 보여준다.
그 댓글들을 읽고 있으려니 뭔가 어깨가 으쓱거린다.
"뭐해요?"
수진이는 나를 보며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온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갑자기 외전은 왜 썼어요? 이럴 시간에 연재 중인 소설이나 쓰시지."
"숨돌리기야."
"흐응~?"
수진이는 내 의중을 살피려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고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흐으, 최근에 샀던 속옷이 전부 이런 거 뿐이네."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의 검지와 엄지를 사용해서 팬티를 내밀어 왔다.
탈모빔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 손가락에 걸린 물건이 섹스어필을 위한 팬티지 뭔가 분위기가 묘하다.
생각해보니 만난 지 1년밖에 되지 않고 결혼한 지 1달도 되지 않은 부부인데 무슨 몇 년이고 만나 권태기가 온 커플 같은 섹스를 했구나.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저번에 쓴다던 무협지는 어떻게 됐어요?"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좀 생각 중이긴 한데 생각보다 어렵네."
캐빨물을 쓸 생각을 했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캐릭터는 잡은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스토리 전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캐릭터의 개성을 무기로 하는 소설을 쓰려고 하니 어떻게 전개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천마라는 타이틀을 원하는 20대 중반 모쏠 아다 혈마.
엄친아 소리가 나오는 차기 천마인 히로인.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묘사하려고 하니 몇 화를 써볼 수는 있는데 그 이후로 스토리 전개를 못 하겠다.
아무래도 이게 아재의 한계인 모양이지.
계속 겉돌기만 하는구나...
"왜 그리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아니, 그냥 작가로 먹고살기 참 힘들구나 싶어서."
"그게 쉬웠으면 사람들이 전부 회사 안 다니고 글 쓰죠."
수진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접었던 빨래를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수진이를 빤히 쳐다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수진이.
"뭐가 그리 즐거워?"
"아, 뭐, 별건 아닌데 다음 학기부터는 정상적으로 등교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게 그렇게 좋아?"
"대학생인데 한 번씩은 캠퍼스 라이프도 생각해보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말하곤 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대학생활을 많이 기대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재미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도 온라인으로 듣는 강의가 그렇게 지겹다고 하면서 1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매일 왔다 갔다 하면서 들어야 한다니 얼마나 귀찮을까.
동아리나 학회 같은 모임이 있을 텐데 그런 곳에 들어가야 좀 사람들을 사귀고 그럴 거다.
요즘 애들은 예전이랑 다르게 관계에 소극적이니 그런 모임이라도 없는 한 친해지기 힘들겠지.
그런 모임을 하면 필연적으로 술도 많이 마시고 늦고 그럴 테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양아치 놈들이 수진이에게 찝쩍거릴지도 모르고.
"흠."
생각해보니 인강이 최곤데.
수진이를 믿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대학교에서 여자 꼬시려고 혈안이 된 고추 새끼들을 믿지 못하겠다.
어떻게든 술 한잔 먹여서 호텔에 끌고 가려고 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
수진이는 미인이니 그런 벌레 새끼들이 꼬일 것 같단 말이지.
왼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어도 그냥 커플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거나 골키퍼가 있어도 골은 들어간다는 개소리를 하는 새끼들도 나타날 것 같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게 남자들이 여친을 속박하는 이유인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나도 참 대단한 놈이네.
이번 주말이 끝나면 6월 3주차가 시작되고 곧 기말고사와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그리고 긴 여름방학이 끝이 나면 수진이의 진정한 대학 생활이 시작된다.
수진이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찝쩍이는 남자들은 없을까?
"흐응~ 흥흥~ 흥~ 흥흥~"
내 마음도 몰라주고 혼자서 신이 난 상태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수진이.
...그만두자.
수진이는 어떤 남자가 다가오든 웃으면서 왼손 약지를 들이밀고 나 유부녀야! 하고 큰소리칠 여자지 남자한테 이리저리 끌려다닐 여자도 아니다.
아이를 갖겠다는 이야기도 했으니 술도 삼가겠지.
오히려 수진이의 화려한 겉모습에 위축되어 친구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수진아."
"왜요?"
"여름방학 땐 뭐 할까?"
"으음~ 아, 캠핑!"
"캠핑?"
"저 졸업하면 어디든지 데려다준다면서요. SUV인데 캠핑이라도 한번 가야죠."
"그래, 그러자."
"아싸!"
수진이는 캠핑이 그리도 기대되는지 아까보다 더 신나는 콧노래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춤이라도 출 기세다.
"그 전에 시험공부도 해야지."
"...진짜 이 사람은 들었다가 바닥에 꽂아버리는데 선수라니까. 노렸죠?"
수진이는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내 가슴에 박치기를 해왔다.
나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그대로 수진이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간지럼을 태웠다.
"아, 아하하하!"
그렇게 서로 장난을 치며 저녁을 먹고 관계를 가진다.
그런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고... 수진이가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