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계곡에서 생긴 일(6)
"수영하면 살이 빠진다는 거 다 헛소리라니까요?"
"그러게."
나와 수진이는 수박을 먹고 다시 수영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복숭아까지 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과일이라고 해도 평소보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찌지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살찌면 어떡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본인의 옆구리 살을 쿡쿡 찔러본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말라 보이는데 말이다.
웨딩드레스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 다음에도 수진이는 가벼운 운동을 하고 식사량을 조절하며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남편이 본인을 위해서 몸을 가꾸고 있는데 본인은 과자나 쩝쩝거리는 이상한 그림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던가 뭐라던가.
뭐, 남자로서는 내 여자가 날 위해서 예쁘게 꾸며준다는데 고맙기만 할 뿐이다.
"먹은 만큼 움직이니까 찌지는 않겠지."
"그럴까요?"
"밤에도 운동하면 되고."
"..."
수진이는 나를 도끼눈을 뜬 채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꼭 여기까지 놀러 와서 그래야겠어요?"
"우리 여보가 그렇게 섹시한 수영복을 입은 게 잘못이지."
보통 사귄 지 1년도 안 된 커플이 동거하면 거의 매일 섹스를 하니 이 정도면 평균이지 싶은데.
나이가 많든 적든 예쁜 여자가 있으면 세울 수 있는 것이 남자라는 생물이니까.
"선생님은 야동을 너무 많이 봤어요. 왜 이렇게 밖에서 하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복숭아를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진이를 바라봤다.
저번에 캠프장에서 섹스했을 때 수진이는 평소보다 더 흥분한 듯한 느낌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볼지도 모른다는 상황에 흥분한 것으로 생각한다.
남에게 보일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그 상황에 묘하게 흥분한 녀석이 저렇게 말하고 있으니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아마 본인도 자각이 없겠지.
그냥 평소보다 내가 더 열심히 허리를 놀려서 흥분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동이 걸리면 본인이 더 적극적으로 바뀌는 아이다.
밖에서 한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을 뿐이니 적당히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오히려 본인이 리드를 하려 하겠지.
"우리 서방님은 깊은 산 속 옹달샘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구나?"
"잘 아네."
수진이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이마를 부여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 아름다운 광경에서도 그런 마음이 들어요?"
"지금이라도 많이 해둬야지. 너도 등교하기 시작하면 바쁘고 피곤해서 주말에만 하자고 할 거 같으니."
"그럴까요?"
적어도 지금보단 인간관계가 넓어질 테니 많이 바빠지긴 하겠지.
친구를 사귀기 위해 동아리 활동도 하게 되고 예나 지금이나 거지 같은 조별활동도 하게 되겠지.
성적도 관리하고 과제도 하고 모임도 나가야 하는데 일일 연재까지 해야 하니 많이 바쁠 거다.
그러다 보면 피곤해서 오늘은 그냥 자자는 이야기가 나오겠지.
"그것보다 임신이 더 빠를지도 모르잖아요?"
"..."
그럴 수도 있구나.
나는 수진이의 손을 바라봤다.
물놀이를 위해서 집에 빼고 온 결혼반지.
수진이에게 나쁜 벌레가 접근하지 않도록 대학을 다닐 때도 끼고 다니라고 하려고 했는데 결혼반지를 낀 여성과 친구가 되고 싶은 여성이 있을까?
굉장히 회의적이다.
수진이는 내 여자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도장을 찍어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 안 되겠지.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백화점에 한 번 더 들리자."
"왜요?"
수진이는 입가와 손에 뭍은 과즙을 물티슈로 닦으며 나의 반응을 살폈다.
쇼핑을 간다고 하면 가기도 전에 파김치가 되는 남자가 갑자기 가자고 하니 이상하게 느껴지나 보다.
나는 수진이의 손가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대학교는 결혼반지 끼고 다니지 말고 그냥 커플링으로 끼고 다녀."
"커플링이요?"
"대학교에서 결혼한 유부녀라고 소문나면 친구 만들기 힘들지도 모르잖아."
그리 말하자 눈을 껌뻑이던 수진이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내 코를 손으로 찔러왔다.
"절~대 안 뺄 거에요~"
"...괜찮겠어?"
"그냥 커플링을 왼손에 끼는 커플도 있잖아요? 우리도 그냥 그런 느낌이다. 하면 되지."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왼손 약지를 바라보고 있다.
말은 고마운데 많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싶다.
수진이는 내가 즐기지 못했던 대학생활을 나보다 더 알차게 지내줬으면 좋겠다.
여러 사람을 만나 여러 경험을 하고 그 경험들이 녹아든 이야기를 써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차를 타고 다니는 건 좀 생각해봐야겠어요. 저 같아도 이 나이에 차가 있는 사람이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여자는 좀 드물 것 같아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고는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곧 맞이하게 될 2학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준범이의 주식강의도 이번 여름방학과 끝이 난다.
이다음부터는 내가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으로 배워나가는 차례가 되겠지.
그렇게 되면 나와 수진이의 관계는 역전이 되어버린다.
집을 나가서 학교로 가는 수진이를 배웅하고 집에 남게 된다.
그 작은 변화가 조금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 넓은 집에서 혼자 있으려고 하니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수진이가 친구를 못 사귀어서 혼밥을 하게 되면 찾아간다고 했는데 수진이가 친구를 잔뜩 사귀어서 혼밥을 안 하게 되면 찾아갈 수 없게 되는 건가?
음...
"저녁은 뭐로 할 거예요?"
"고기가 상하면 위험하니까 고기부터 다 먹어야지. 아이스박스가 만능은 아니니까."
"...어쩔 수 없긴 하네요."
"캠프장이 편하긴 하지?"
"네."
바비큐가 맛있긴 해도 연속으로 먹기엔 배에 부담되긴 한다.
하지만 수영을 하고 배가 고프다며 과일을 먹는 모습을 보면 좀 더 수영을 하다 보면 고기를 먹을 공간은 충분히 나오지 않을까 싶다.
"여긴 화장실도 문제에요. 화장실에 가려면 차를 끌고 이동해야 하니까."
"그것도 불편하긴 하지."
우린 캠프장처럼 화장실도 있고 전기도 쓸 수 있는데 사람도 오지 않는 곳에서 여름 피서를 즐기고 싶다는 조금 양심에 털이 난 이야기를 나누며 짧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물속에서 수영을 즐겼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는 많이 움직여야 했으니까.
우리는 물에서 놀다가 지치거나 추워지면 뭍으로 올라와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냈다.
즐거웠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저녁은 역시 상하기 쉬운 고기로 바비큐를 준비했다.
수진이는 연속으로 고기를 먹는 일이 힘겨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 먹어서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나야 평소에도 근육을 키운다고 고기를 자주 먹었으니 이 정도는 별문제가 되진 않았고.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 데요."
"신기하네. 나도 그런데."
점심으로 바비큐를 먹고 뒷정리를 하던 때와 무엇 하나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나란히 앉아 있으려니 시간만 흘러간 느낌이다.
그렇게 뒷정리를 하고 차를 몰아 근처의 가게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빌리고 다시 계곡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시간은 그저 잠을 잘 뿐인 밤.
풀벌레 소리와 매미가 우는 소리 그리고 흐르는 물소리.
나와 수진이는 텐트에 누운 상태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캠프장에 있을 때도 그랬는데 시끄러운 소린데도 이상하게 잠은 잘 오죠?"
"그러게."
대학교 때 자취를 하던 집은 방음이 잘 되지 않아 신경질만 났었는데 그때 듣던 소음보다 좀 시끄러운 것 같은 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게 자연의 소리라는 걸지도 모르지.
눈을 끔뻑이며 소리를 듣고 있다가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이제 9시가 된 시각.
평소에 자던 시간보다 많이 이르다.
몸을 움직였다고 해도 낮잠도 틈틈이 자는 바람에 그리 졸리지도 않은 상황.
수진이를 바라본다.
수진이도 잠이 오지 않는지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나는 수진이를 향해 돌아 누운 상태로 수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결국,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을 감는다.
언제쯤이면 수진이에게서 이 내숭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
수진이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춘다.
수진이가 자연스럽게 입술을 벌리고 혀를 넣으려고 하는 순간에 입술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수진이가 입을 살짝 벌린 상태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나는 그 약간 허당 같아 보이는 모습의 수진이를 보며 작게 웃다가 수진이를 품에 안았다.
"선생님?"
"수진아."
"네."
"수영복 입고 하자."
"...내 이럴 줄 알았지."
수진이는 내 옆구리를 살짝 꼬집은 다음 나를 텐트에서 쫓아냈다.
수영복을 입어주긴 할 모양인데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진 않다니 그 감정은 잘 모르겠다.
"들어와요."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수영복을 입은 수진이가 있었다.
입수하기 전에 벗었던 셔츠와 파레오까지 착용한 모습의 수진이는 왠지 쳐츠와 치마를 입은 느낌이라 지금부터 이걸 하나씩 벗겨간다고 생각하니 더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또 텐트에서 하려니 뭔가 좀 아쉽기도 하고.
"수진아."
"왜요?"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왠지 뭔지 알 거 같아."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짐을 뒤져서 스프레이를 한 통 꺼냈다.
벌레 기피제.
"맞죠?"
"잘 아네."
"부인이니까요."
수진이는 한숨을 쉬면서도 내 몸에 스프레이를 뿌려준 다음 나에게 스프레이를 건네왔다.
모처럼 사람이 없는 곳에 왔으니 좀 특별한 추억을 쌓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
수진이의 몸에 빈틈없이 스프레이를 뿌려준 다음 텐트 밖으로 나왔다.
주위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차를 타고 화장실을 갈 때도 이 근처에는 텐트가 없었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단둘뿐이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 대담해지기로 했다.
번쩍.
사람이 없으면 굳이 깜깜한 상태로 지낼 필요는 없다.
캠핑용품으로 사둔 랜턴을 꺼내서 빛을 밝힌 상태로 수진이를 품에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