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5)
나는월억킥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자주 언급이 되었는지 결국 한동안 그 소재로 이야기를 꺼내는 게 금지가 되는 사태까지 진행되었다.
얼굴도 몸매도 성격도 착하고 돈도 많은 여대생 작가라는 타이틀은 생각보다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지.
하지만 수진이가 입장문을 써서 선을 넘지 말라고 한 점도 있고 나는월억킥 작가에 대한 떡밥을 계속 굴리지 못하도록 갤러리 관리자가 통제를 한 점도 있어서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결국 K-헤밍웨이까지 도달하고야 말았다.
수진이가 소설을 보며 매번 재밌다고 댓글을 달고 후원을 하는 작가의 소설은 내 소설이 유일했으니까.
가장 첫 번째로 후원을 했던 소설이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였다는 점도 한몫하고야 말았다.
히로인이 여고생이며 작가라는 점과 주인공이 아저씨라는 점이 그들의 눈에 띄고 말았다.
그로부턴 무슨 사이버수사대라도 동원했는지 내가 처음으로 장문의 댓글을 남긴 다음부터 수진이가 그에 답변하는 댓글을 쓴 날짜를 계산하고 내가 처음으로 소설을 올린 날부터 리메이크에 들어간 것까지 분석하는 글이 올라왔다.
거기에 추가로 달린 내용은 내가 쓴 소설에서 나왔던 장문의 댓글을 본 히로인이 응답을 해서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사건까지 하나의 근거로 제시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뇌절이라고 그만하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건 K-헤밍웨이의 이야기지 나는월억킥의 이야기가 아니라며 활활 타오르는 독자들.
거기에 내가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의 소설을 완결한 다음에 외전으로 쓴 분량도 문제가 되었다.
매일 3~4편의 소설을 쓰다가 2편으로 줄여서 완결까지 썼던 사람이 갑자기 비정기 연재로 외전을 계속 쓰고 있는데 그 날짜가 미묘하다는 거다.
예를 들면 소설 속의 주인공과 히로인이 신혼여행을 가는 에피소드가 5월의 말이라고 했는데 소설이 연재된 시기가 6월의 중순쯤이었던 거지.
작가가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상황을 연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필이면 수진이가 썼던 입장문에 5월에 결혼을 올렸다는 이야기마저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우연이라고 웃어넘기기엔 상황이 너무나 딱 들어맞았다.
결국, 내가 K-헤밍웨이가 확실하다는 결론이 나버렸다.
수진이와의 관계를 숨기고 죄를 지은 것처럼 행동했던 일들에 대한 울분으로 가슴에 쌓인 몽글몽글한 감정을 소설에 녹여냈더니 그게 들켜버린 일이지.
수진이가 독자들에게 폭탄을 던진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행동이었다.
다만 수진이는 공지사항으로 직설적으로 던진 것이고 나는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던졌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닮았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성격이 만들어낸 환장의 콜라보였다고 할 수 있지.
결국, 내 소설은 뜻하지 않은 어그로가 끌려서 갤에서 온종일 언급되는 소설이 되어버렸다.
하꼬 분충이지만 다른 의미의 분출이었다느니 바보 온달이니 하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나와 수진이의 이야기는 거의 1주일 내내 갤러리를 시끄럽게 만드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 소설은 댓글창이 굉장히 조용한 편이었는데 이 소란이 있은 다음부턴 여고생을 유혹한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라는 댓글이 약속이라도 했는지 꼭 달려있었다.
수진이는 그게 재밌었는지 본인이 먼저 여고생을 유혹한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라는 댓글을 달아놓았다.
인터넷상에서는 친목행위 자체가 꺼려지는 편인데 수진이의 등장은 또 달랐다.
마누라의 등판이라며 축제 같은 분위기가 되어 나를 매도하는 독자들.
어딘가엔 정말로 악감정을 품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댓글들을 보며 그저 흐뭇한 아저씨의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소설이라고 믿었던 이야기의 전말을 알아버린 사람들의 절규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그다음부턴 나도 미소녀 작가를 꼬시기 위해 하꼬 작가를 한다거나 대뜸 장문의 댓글을 달 거라는 글을 쓰는 사람도 나타났다.
나는 그 댓글들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의 댓글을 눈팅을 하며 분위기를 즐기다가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 이 순간에 홍보하면 어그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튀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내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소설은 무협지에 현대판 드립을 섞고 주식을 섞은 이야기다.
요즘 나의 생활은 소설을 쓰거나 주식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수진이와 함께 보내는 게 전부다.
수진이와 함께 한 시간은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에 연재가 되는데 주식은 어떻게 써먹을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했다.
그래서 찾아보니 이미 주식에 관련된 소설은 많이 올라온 상태였다.
그렇다면 읽어보고 참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소설들을 읽어봤더니 대부분의 소설이 회귀를 통해 돈을 잔뜩 벌고 그 돈으로 갑질을 하는 게 주요 스토리였다.
읽으면서 시원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가 쓰고 싶은 스토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주식으로 소설을 쓴다면 어떨까 하는 심정으로 소설을 써봤더니 너무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나와서 독자들이 별로 흥미를 못 느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걸 다 빼버리고 고민에 잠기니 어느 날 갤에 올라왔던 무림에 주식을 섞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던 거다.
그 글을 보고 일하면 진다는 생각을 하는 화경에 다다른 20대의 혈마라는 주인공을 만들었다.
일하는 게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주식이었다는 거지.
하지만 하필이면 혈마가 산 주식이 상폐의 위기에 빠진 거다.
이대로면 본인의 대에서 혈마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혈마는 상폐 직전의 가문을 부양하기 위해 똥꼬쑈를 한다는 것이 주된 스토리다.
그래. 한마디로 주가조작을 참신한 방법으로 한다는 이야기다.
히로인은 주식을 잘하는 천마로 잡고 주인공은 히로인을 보자마자 "하혈교가 주식을 잘한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나보군." 이라는 개소리를 하는 미친놈으로 잡았다.
수진이는 내가 쓴 소설을 본 순간 입을 벌리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입을 벌린 상태로 멍하니 있던 수진이는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슬픈 표정을 보였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었죠?"
아무래도 내가 독자들에게 시달려서 스트레스를 발산하기 위해 개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진지한데 말이다.
"아니, 진짜 이걸로 쓸 거야."
"미쳤어요?"
"갈(喝)!!!"
어딜 감히 하혈교 신자가 혈마인 본좌에게 그런 말을 하는가!
아니, 본좌는 혈마가 아니다.
예로부터 하늘은 남자요 땅은 여자라고 했거늘 어찌 내가 천마가 아닌 혈마란 말인가!
내가 쓴 소설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지금 쓰는 이야기보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덕분에 15화까지 썼던 소설을 계속해서 연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행인 점은 쓰던 소설이 완결이 나서 어떻게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고 문제가 되는 점은 반응을 살피려고 대략적인 플롯만 짜버린 소설이라 엔딩을 생각하지 않고 써내려가는 바람에 어떻게 전개가 흘러갈지 정하지 못했던 점이다.
수진이는 내 소설의 조회수를 보고는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본인의 배에 손을 올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장군아... 네가 태어날 세상은 이미 정상이 아닌 거 같아."
내 소설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다고 하던 수진이도 내가 쓴 신작은 취향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여자를 보고 하혈교라 부르고 일하기 싫다는 말이 입에 붙어있고 겉으로는 멀쩡한 척을 하는데 속으로는 뒤틀린 황천보다 더 뒤틀린 정신 나간 생각을 하는 주인공이니 수진이가 좋아하는 주인공이 아니긴 하겠지.
하지만 내 소설은 생각보다 굉장히 순항이었다.
수진이는 나를 영원히 본인만의 작은 작가라고 불렀지만 내가 어느새 이렇게 컸단 말이다.
이제 남은 건 유료화뿐이야!
오랜만에 찾아온 우월감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으려니 장문의 댓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거 봐요. 아버님도 이런 건 무협이 아니라고 하시잖아요!"
아버지...!
수진이가 보여준 휴대폰엔 내 소설을 한 글자씩 분석해서 읽으신 듯한 장문의 댓글이 있었는데 무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훈계를 하는 듯한 내용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다른 독자들이 이런 건 무협이 아니야! 를 흉내 내셔선 이런 건 무협이 아닙니다 라고 적어두셨는데 가슴을 완전히 후벼 파는 댓글이었다.
아버지... 난 아버지가 무협을 즐기시길래 한 번 써본 거였는데 말이죠.
수진이는 내 시무룩한 얼굴을 살펴보다가 아버지의 장문의 댓글을 살펴보곤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 아버님이랑 선생님이랑 완전 붕어빵이네요."
"뭐가?"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만 되면 달변가가 되는 점이랑 양보가 없는 점."
그래. 그리 들으니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내가 한 짓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은 것과 똑같다.
아버지가 학창시절부터 무협지를 읽으셨다면 반백 년 동안 무협지를 읽어오셨다는 이야긴데 무협지도 10개 정도 읽고 분석도 다 하지 않은 내가 쓴 소설이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아버지의 감상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상이다.
그래도 아버지. 정정하십시오.
주식 혈마는 전통 무협입니다.
***
수진이의 임신이 6개월 차에 접어들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산부인과를 찾았다.
기형아검사를 하고 그 이후엔 정밀초음파 사진을 찍는 일을 해야 한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 아이는 눈, 코, 입, 귀도 다 정상이고 손가락 발가락이 각각 10개씩 있는 건강한 아이였다.
정밀초음파 사진을 찍으면서 바라봤는데 하품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거나 뭔가 다짐이라도 하듯이 주먹을 꽈악 쥐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당당해 보였다.
그야말로 장군이란 태명에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이도 초음파를 찍으며 우리 장군이가 양손으로 잼잼을 하는 모습을 보곤 마냥 행복하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다.
벌써 이렇게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을 갖추고 있다니.
진찰이 끝나고 아이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올 때와 그리 다른 점은 없었지만, 수진이가 정밀초음파 사진이 담긴 봉투를 소중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꼬옥 끌어안은 상태로 배시시 웃는 모습은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운전대를 잡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