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8)
"흥~ 흐응, 흥흥~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 같아~♪ 히힛."
수진이는 굉장히 즐겁다는 표정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란 거 굉장히 귀찮았었는데 이건 재밌네요."
그리 말하며 본인이 쓰던 일기장을 보여주는 수진이.
그 일기장은 초등학생들이 쓰는 그림일기처럼 윗부분에 네모 칸이 비어있는 일기장이었다.
산모들이 아이를 뱄을 때 본인의 임신 경과와 그때 느낀 심정 등을 적는 육아 일기장.
내가 사온 육아 일기장을 봤을 때는 굉장히 망설이는 표정을 보였었지.
평소에 일기를 쓰지 않았으니 생각보다 부담스럽게 생각되는 듯했다.
소설을 쓸 때는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멎지 않는 글쓰는 기계 같은 아이였지만 육아 일기는 또 다른 모양이었다.
나는 수진이에게 한 줄이라도 좋으니 그냥 느낀 감정을 써보라고 했다.
수진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한 줄 또 한 줄 그날에 있었던 감정을 써내려갔고 지금은 습관이 되어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이건 읽어봐도 뭐라고 안 하네?"
"이건 나중에 장군이한테도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선생님도 볼 수 있겠다 싶어서 가려서 썼어요."
그리 말하며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는 수진이.
저 노래가 그리도 마음에 들었던 걸까.
수진이가 초음파 사진을 일기장에 붙이며 오늘 하루 치 분량의 일기가 완성되었다.
"자요."
뿌듯한 표정으로 일과를 마쳤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는 수진이.
나는 수진이에게서 육아 일기를 건네받았다.
육아 일기에 적혀있는 내용은 수진이가 말한 대로 그리 대단한 것들이 적혀있진 않았다.
아쉽다.
수진이가 가끔 소설이 아닌 무언가를 끄적이는 메모장을 보는 건 개꿀잼인데.
가끔 나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적는 부분을 보면 카푸치노에 시럽을 5번 정도 짜서 넣은 것 같은 지독한 단맛에 혀가 마비될 것 같다.
나랑 있으면 뭔가 기분이 몽실몽실해서 자꾸 웃음이 나온다는 글을 봤을 때는 몸이 배배 꼬였다.
...물론 나중에 수진이한테 걸려서 또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었었지.
아무튼, 수진이의 육아 일기는 굉장히 평범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마저 가볍고 평범하지는 않았다.
임신 4주차.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내 배 속에 아기가 있다니. 솔직히 불안했었는 데 정말 다행이야.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셨는데 혹시 나나 선생님 몸에 무슨 이상이 있어서 아이를 못 가지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어.
이 녀석! 왜 이렇게 늦게 와서 엄마를 당황하게 하는 거야?
임신 8주차.
오늘 귀요미가 귤을 먹고 싶다고 해서 아빠가 사오셨는데 또 먹기 싫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엄마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아니?
이 녀석... 엄마를 닮아서 여우구나?
임신 12주차.
오늘부턴 귀요미가 아니라 장군이라고 불러야겠어.
누구를 닮아서 입이 그리 짧은 거니?
아빠는 뭐든 잘 먹고 엄마도 가리는 음식이 없는데.
수진이의 육아 일기는 배 속에 있는 우리 아이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의 일기였다.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내용의 일기.
수진이는 로판을 써도 잘 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재밌어요?"
수진이는 일기를 읽는 내 볼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왔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이의 일기는 장군이에 관한 이야기만 적혀있던 것은 아니었다.
가령 내가 머리를 감겨준 이야기가 적혀있는 부분도 있었다.
오늘은 엄마가 머리를 자르겠단 이야기를 꺼내니 아빠가 굉장히 씁쓸한 표정을 짓지 뭐니.
몸이 무거워져서 머리를 감기 힘들다고 자르겠다고 하니 그럼 본인이 감겨준다고 말을 꺼내서 얼마나 우습던지.
아마 1주일도 못 가서 못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
...
봐봐 정말로 1주일도 못 가서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잖아.
아빠는 의지의 한국인을 보여주겠다고 했으면서 나에게 보여준 건 N포세대의 한국인이었어.
나는 선생님에게 내기의 보상으로 소원권을 하나 얻었단다.
이걸로 내가 가진 소원권은 3개야.
소원권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뭐냐고?
그건 비밀~
아니, 진짜 뭔데?
소원권이 없어도 웬만한 소원이라면 이뤄주고 싶은데 수진이는 끝끝내 속이듯이 웃음만을 보일 뿐이다.
그 소원권으로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요즘 아빠와 함께 침대에 누우면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 된단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론 자다가 살짝 뒤척이는 정도는 그리 위험하지 않다고 했는데 혹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래.
아빠는 본인의 잠버릇으로 우리 장군이가 아야 할까 봐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어.
지금은 침대라도 하나 새로 사서 따로 자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야.
하지만 엄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단다.
아빠는 잘 때 숨소리도 안 날 정도로 조용히 자거든.
정말 피곤할 때 코를 고는 것 외엔 뒤척이는 걸 보는 것도 드물어.
신기하지?
원래 아빠만 한 나잇대의 남자들은 다들 코를 골고 이를 간다고 이웃의 아주머니들이 치를 떠는데 말이야.
자던 모습 그대로 눈을 뜨는 경우가 많아서 잠버릇이 없다고는 생각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조용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혹시 뒤척이다가 수진이의 배를 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늘 걱정이었으니까.
"독자들이 알면 슬퍼하겠다."
"뭐가요?"
"육아 일기는 쓰는데 소설은 휴재중이라고 하면 말이야."
"치, 육아 일기랑 소설이랑 같아요? 육아 일기는 몇 줄 끄적이면 끝나는데 소설은 5천자는 써야 한다구요?"
하긴 그렇긴 하지.
그래도 특별한 일이라도 없는 이상 휴재를 않던 나는월억킥이 휴재를 하니 독자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거다.
하지만 그 이유가 만삭이라 곧 출산이 임박해서라는 매우 생생한 이유이기에 뭐라 불평할 수도 없는 독자들이 안타깝게 생각된다.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수진이의 출산은 정말 코앞이니까.
언제든지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할 정도로 코앞이다.
수진이가 쓴 육아 일기를 한창 읽고 있으려니 옆에서 수진이가 볼을 콕콕 찔러온다.
"왜?"
"이제 곧 아빠가 되는데 어떤 기분이에요?"
"행복한 기분."
"구체적으로는?"
"상한가 10번 맞은 기분?"
"이 주식쟁이 같으니라고..."
상한가 10번 무시하냐?
상한가 10번이면 원금에 거의 14배에 가까운 금액이라고...
"선생님 소설이 그리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난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요?"
"어."
내가 쓰던 소설 혈마님 주식하신다! 는 여러 커뮤니티에 언급이 되며 인기를 끌었고 현재 매 편당 5천회의 구매수가 나오는 인기 소설이 되었다.
한 달에 거의 1천만을 벌어서 나는월천킥으로 작명을 바꿀까도 고민할 정도가 되었지.
역시 요즘은 자기중심적이고 먼치킨이면서도 선은 지키는 개성 있는 주인공이 대세지.
물론 히로인도 중요한 점이다.
처음 소설을 쓸 땐 주식과 무협이라는 딱 내 나잇대의 남자들이 보는 소설이라는 생각에 히로인을 뺄까도 고민했지만, 요즘은 20대도 30대도 주식을 많이들 하니 그 독자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론 20~30대의 독자들도 잡게 되었으니 성공적인 도박이었지.
천마의 성격은 약간 수진이와 비슷하게 잡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는 겪어본 경험을 녹여내는 거니까.
결과는 구매수가 말해주고 있지.
대부분이 히로인을 좋아한다.
...아버지만 제외하면 말이다.
아버지는 히로인의 성격을 두고 남자를 이기려고 드는 여자는 피곤하다며 히로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댓글을 달아두신 상태였다.
아버지... 계속 보시는 거였습니까.
이런 건 무협지가 아니라면서 그걸 또 읽으시네.
아버지는 천마의 모델이 수진이인 걸 전혀 모르시겠지.
수진이가 부모님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귀염뽕짝한 여우 같은 모습뿐이니까.
내기나 승부를 좋아하고 집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며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고 가끔 카푸치노를 마시는 여자.
돈은 있으면 좋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딱히 낭비는 하지 않는 여자.
그야말로 수진이 그 자첸데 말이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천마의 모티브를 알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
"갑자기 왜 그리 히죽거려요?"
"아니, 조금 재밌는 게 떠올라서."
"뭔데요?"
"비밀."
나는 수진이에게 육아 일기를 돌려주고 노트북을 꺼내와서 자리에 앉았다.
"소설 쓰시게요?"
"어."
나는 혈마 주식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글이 조금 잘 써지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으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평소보다 더 집중이 잘되는 기분이다.
실제로 평소에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번에 걸린 시간은 고작 1시간 10분이었다.
"와... 신기록이네요. 진짜 무슨 일이에요?"
"별건 아니고. 나중엔 알게 될 거야."
수진이는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지 굉장히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런 건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가 재밌는 법이지.
나는 수진이에게 소설을 보여주지 않고 참았다.
그렇게 평소 연재하던 시간인 6시에 소설이 올라가고 3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수진이가 얼굴이 붉어져선 내 옆구리를 꼬집어왔다.
"으아악!"
"진짜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
"서른 마흔 다섯살..."
"이익!"
"아아악!"
별로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닌데.
그냥 천마의 모티브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내 아내라고 했을 뿐이다.
어차피 본인도 좋으면서 앙탈은...
그리고 내 원래 목적은 그게 아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을 준비하며 6시 30분이 되길 기다렸다.
아버지가 항상 소설을 읽고 댓글을 다시는 시간.
하지만 오늘은 6시 30분이 되어도 7시가 되어도 댓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왜 자꾸 그리 웃어요?"
"아니, 별건 아니고."
7시 30분이 되자 수진이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어? 아버님이다."
수진이는 나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전화를 받았다.
꼭 아버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굉장히 공손한 태도로 전화를 받던 수진이는 통화하고 약 1분 정도가 지나자 굉장히 송구스러운 태도로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며 아버지가 하는 말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2분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나고서야 끊어지는 전화.
"뭐라셔?"
"..."
"왜?"
수진이는 나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른 마흔 다섯 살이 아니고 다섯 살짜리 꼬맹이야 아주."
"응?"
"꼭 그렇게 해야만 속이 후련했어요?"
"뭐야, 아버지가 눈치챘나?"
"아버님이 바보예요? 당연히 눈치채지. 으이구!"
난 이 나이가 되도록 아버지와 장난을 쳐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 정도 장난은 아저씨의 못된 장난 정도로 봐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