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13)
아무리 수진이가 허락했다곤 해도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부부의 집에 부모님을 묵게 하는 것은 상당히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나중에 수진이에게 뭔가 해줄 일을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그런 불편한 마음은 곧 사라졌다.
...부모님이 진수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가 애를 돌볼 시간이 많이 줄었으니까.
아버지는 불편한 경상도 남자에서 쏘 스윗한 할아버지가 되셨다.
"진수야~ 진수야. 아이고 귀엽네."
아까부터 진수를 부르시며 시종일관 웃고만 계시는 아버지.
저렇게 웃는 표정만 짓고 있으면 얼굴에 경련이 일겠다 싶을 정도로 아버지는 시종일관 방긋방긋 웃으셨다.
진수가 자신의 이름을 불릴 때마다 그걸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아버지를 바라보니까 아버지는 그게 재미나고 신기하신지 계속해서 진수의 이름을 부르셨다.
볼을 만지다가 얼굴에 흉터라도 날까 봐 손만 아주 살짝.
그것도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손가락을 내밀어서 진수가 잡게 하여 그 감촉을 즐기고 계신다.
내가 진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와 같은 모습이다.
나는 조금 복잡한 생각을 하며 아버지의 손주 사랑을 지켜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도 저런 모습을 조금은 보여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아쉬움과 섭섭함.
뭐, 아버지도 그때는 형제분들과의 상처 때문에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으셨으니 어쩔 수 없으셨겠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진수를 돌봐주고 있으니 우리는 뒷정리를 끝내고 좀 쉬기로 했다.
"괜찮을까요?"
수진이는 진수를 부모님이 돌봐주시는데 본인은 쉰다는 상황이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부모님과 1분 동안 같은 공기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고 말하는 여자들이 있는데 우리 부모님이 묵고 가겠다는 의견을 내비쳤을 때 선뜻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100점짜리 며느리다.
육아에 지쳤으니 조금 쉰다고 뭐라고 하실 분들도 아니고.
그리고 저 모습을 봐라.
"아이고! 우리 진수. 장하구나! 장해!"
갑자기 박수를 치시며 좋아하는 아버지.
뭐지?
"진수가 뒤집기를 했어! 아하하!"
아무래도 진수가 뒤집기를 한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움찔거리며 뭔가 시도를 하고 있어서 곧 하겠거니 했는데 드디어 했구나.
아, 놓쳐버렸네.
아버지는 진수가 얼굴도 미남에 덩치도 좋아서 장군감에 뒤집기도 빨리했으니 영재니 뭐니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그 옆에서 진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잘했다며 칭찬을 하고 계셨다.
수진이가 부모님 앞에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땐 조금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기대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 정도로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진수 사랑, 손주 사랑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랑꾼인 아버지가 진수의 이름을 부르며 박수를 치고 즐거워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응애!!!"
진수가 울기 시작했으니까.
맘마를 먹고 기저귀를 갈고 나니 이제 낮잠을 좀 자야 하는 시간인데 자꾸 옆에서 본인의 이름을 부르며 박수를 치고 시끄럽게 하니 짜증을 내기 시작한 거지.
오래 참았다고 생각한다.
"응응, 우리 진수, 많이 졸리구나? 미안해~"
수진이는 진수가 서럽고 짜증 난다는 듯이 울기 시작하자 곧장 품에 안아 진수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제야 진수는 조금씩 울음을 그치고 그대로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며 뺨을 긁적이셨다.
아무래도 인제야 이성이 돌아오신 모양이지.
수진이는 잠이 든 진수를 품에 안아 든 상태로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약 1분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진수는?"
"잘 자요. 앞으로 1시간은 잘 거 같아요."
"그래? 고생했어. 좀 쉬자."
"네."
수진이는 작게 웃으며 소파에 앉아있는 내 옆에 와 앉았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으셨는데도 계속 침실 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렇게 즐기셨으면서 아직도 손주를 보고 싶으신 걸까.
오늘은 아버지의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는구나.
아니, 요즘은 의외의 모습만 보고 있다는 게 정답이지.
서먹서먹했던 부자 관계가 손주라는 연결고리로 가까워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게 그런 느낌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진수의 우렁찬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응애!!!
"..."
나는 수진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진이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1시간은 잘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10분밖에 안 지났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 우리 진수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뒤에서 슬그머니 따라오신다.
나는 아버지의 부담스러운 시선 속에서 진수의 기저귀를 살펴보았다.
역시 자면서 지려버렸구나.
나는 진수를 품에 안아 들고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왔다.
"기저귀에요?"
"어."
수진이는 물티슈와 기저귀를 준비했다.
나는 진수를 조심스럽게 소파에 내려놓고 수진이가 내민 기저귀를 잡으려고 했다.
그때, 옆에서 기저귀를 가져가는 손이 있었다.
"내가 하지."
아버지...
아버지는 수진이에게서 물티슈까지 빼앗아 들곤 진수의 기저귀를 벗겼다.
생각보다 능숙했다.
...아니. 나보다 더 능숙하신 거 같다.
아버지도 내가 어렸을 땐 이렇게 기저귀를 갈아주신 건가.
생각보다 엄청 능숙했다.
내가 아버지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다가 어머니를 바라보니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나 보다.
아버지는 능숙하게 진수의 기저귀를 갈아주시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저귀의 뒷정리까지 끝내셨다.
수진이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고는 진수를 다시 품에 안았다.
"진수야, 코 자자. 낮잠 잘 시간이에용~"
수진이가 진수에게 아주 느릿한 자장가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진수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휴~"
수진이는 진수가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하곤 다시 침실로 들어가서 아기용 침대에 진수를 눕혔다.
이젠 정말 괜찮겠지.
아버지를 바라보니 조금 전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만족하신 표정이다.
손주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게 그리 특별한 기분인 걸까.
나도 진수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면 아버지의 지금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진수의 결혼이라...
아직 까마득하게 느껴지는구나.
***
부모님이 부천으로 돌아가신 다음 날.
진수는 이제 심심하면 뒤집기를 했다.
그리 뒤집은 다음 우리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는데 꼭 내가 뒤집기에 성공했으니 박수를 치라고 명령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진수가 뒤집기를 할 때마다 잘했다! 잘했어~ 하면서 박수를 쳤다.
진수는 꼭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연속으로 뒤집기를 하기도 했다.
"바바바바, 아우!"
꼭 아빠 봐봐! 이런 식으로 들리는 건 착각일까?
...아마도 착각이겠지.
부모의 입장이라서 그리 생각되는 것이다.
그래도 아빠라고 부르는 거 같은데 기분이 좋을 수밖에.
"진수야. 엄마야, 마마라고 해봐."
"마마마바! 우!"
"들었어요? 엄마래요."
"그래. 우리 진수가 참 똑똑하네."
우리는 진수의 옹알이를 들으며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수진이는 이 모습을 머릿속에만 남겨두는 것은 아쉽다고 생각했는지 곧장 육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진수가 연속으로 뒤집기를 하며 엄마와 아빠를 불렀단다. 생후 3개월부터 엄마나 아빠를 부르는 옹앙이를 시작하고 뒤집기를 하고 그런다는데 진수는 딱 평균적으로 해서 엄마, 아빠의 속을 썩이지 않는 착한 아이였어."
수진이는 본인이 쓰고 있는 육아 일기를 소리를 내 읽었다.
나는 수진이가 쓴 일기를 힐끔 바라본 다음 수진이를 바라봤다.
"왜요?"
"한 줄 추가해야지."
"뭘요?"
"진수는 엄마 속을 썩이진 않지만, 아빠 속은 썩인다고. 아빠가 기저귀를 갈아주면 4번 중에 1번은 꼭 또 실례를 저지른다고 말이야."
"그건 그냥 선생님이 운이 나쁜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근데 그러면 다 네 잘못인데."
"제가 뭘요?"
수진이는 정말 모르겠다는 눈치로 왜 날 탓하느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수진이의 살짝 부풀어 오른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찔렀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아주 살짝 볼에 바람을 넣는 그 습관이 귀엽다.
"내 평생 써야 할 운을 널 만나는데 전부 써버렸으니까."
"치, 그럼 앞으로 나쁜 일 일어나면 전부 선생님 탓으로 할거에요?"
"아니, 그걸 그렇게 해석한다고?"
수진이는 내가 했던 말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수진이를 살짝 끌어안았다.
아, 이대로 수진이를 품에 안고 싶다.
수진이랑 안 한 지가 너무 오래됐어.
이제 수진이도 충분히 회복됐을 테니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진수가 있으니 함부로 할 수도 없고.
그리 생각하며 진수를 바라보자 진수는 뒤집기를 하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했는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진수가 졸린가 봐."
"그러게요. 마침 낮잠 시간이기도 하네요. 진수 좀 재우고 올게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곤 진수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침실로 향했다.
사용자 김진수.
이 녀석... 역시 아빠를 위해 분위기를 파악할 줄도 아는구나?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와 좋은 분위기를 잡아보려고 하니 푹~ 자고 쑥쑥 크자.
나는 침실에 들어간 수진이가 진수를 재우고 나오길 기다렸다.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주무르며 거실로 나오는 수진이.
나는 수진이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 다음 수진이의 뭉친 어깨를 주물러주겠다고 했다.
수진이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소파에 앉아서 나에게 어깨를 내밀었다.
나는 수진이의 어깨를 주무르다가 슬그머니 수진이의 가슴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거긴 어깨가 아닌데요?"
"가슴이 무거워서 어깨가 아픈걸 테니 내가 잠깐 들고 있어 줄게."
"으이구. 언제 이런 소리 안 나오나 했네."
수진이는 살짝 고개를 돌린 상태로 눈을 감았다.
나는 수진이의 입에 작게 입을 맞추고 그대로 수진이의 상의를 벗겼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부부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