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22)
4월의 마지막 주가 시작되었다.
나에겐 그저 벚꽃이 지고 5월이 시작되겠구나 싶은 시기지만 수진이에겐 다른 의미가 있는 시기.
그래. 대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시험이 시작되었다.
수진이는 2주일 전부터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끙끙거릴 것 없이 그냥 평균만 하라고 해도 이왕 다니는 거 대충할 생각은 없다던 수진이.
이상한 녀석이다.
얼마 전까진 퇴학을 입에 담기도 하고 어차피 취직할 필요도 없다고 했던 녀석인데.
친구가 생겼기 때문일까.
수진이가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한 다음부턴 집안일은 나의 차지가 되었다.
저번에 수진냥과 섹스를 했던 날을 떠올려본다.
굉장히 흥분되는 날이었지. 후반부만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특이한 섹스를 위해선 특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수진이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것. 바로 그게 가장 중요한 준비다.
때마침 4월의 마지막이고 곧 있으면 그날이 다가온다.
5월 5일. 수진이의 생일이 말이다.
지금 이렇게 점수를 따서 수진이의 마음에 꽃을 피워야지.
날 사랑해서 자발적으로 이벤트를 열어주게끔 할 필요가 있다.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면 폐사할 뿐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먹이를 줘야 하는 법이다.
수진이가 끙끙거리는 옆에서 빨래를 개고 식사준비를 한다.
수진이는 정말 미안하다고 같이 하겠다는 말을 꺼냈으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이왕 하기로 한 거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조금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표정으로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뺨에 뽀뽀를 해왔다.
좋았으.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이렇게 포인트를 쌓다보면 수진이가 뭔가 이벤트를 열어주겠지.
카페도 자주가서 포인트를 쌓으면 서비스로 커피 한 잔은 나오는 법이니까.
이벤트를 열어주지 않아도 내가 하는 급발진에 스톱을 외치진 않으리란 기대감을 가지고 집안일을 한다.
그래도 역시 혼자서 하려니 양이 좀 많긴 하다.
혼자 살던 때와는 달리 집의 평수가 늘어났으니 이런 점에선 불편하긴 하다.
"아우! 아으 아! 뱌바바바! 바아!”
내가 청소를 끝마친 다음 바닥에 다시 매트를 깔아놓으니 진수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꺄르르 웃으면서 매트를 손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마다 엉금엉금 기어오기 시작하는데 앙증맞고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나는 진수를 살그머니 품에 안고 잠시 놀아주었다.
어려서부터 아빠를 어려워하는 아기들도 많다는데 우리 진수는 엄마랑 있는 시간보다 아빠랑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날 더 좋아하는 것 같단 말이지.
아버지와 친구 같은 아들을 좀 동경하고 있었는데 이대로만 자라주면 그리 어려운 미래는 아니지 싶다.
“흐읏! 잠깐 쉬어야겠다. 아으~”
수진이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주무르고 어깨를 살살 돌리기 시작했다.
역시 젖소냥 수진이는 가슴이 커서 어깨가 자주 결리나 봐.
수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내 품에 안겨있는 진수를 빼앗아 안았다.
“찐수양~ 엄마랑 놀이방에서 놀까요?”
“아우? 아! 마마, 마마마마!”
이 집은 방이 네 개다.
나와 수진이의 침실. 아이들이 쓸 방으로 두 개. 내가 트레이닝 룸으로 쓰고 있는 작은 창고 같은 방.
우리는 진수가 자라서 혼자 쓰게 될 방에 동화책이나 장난감을 들여놓았고 그곳을 놀이방이라고 부르고 있다.
놀이방이라고 부를만하지.
부모님이 심심하면 진수가 가지고 놀 장난감을 보내오시고 장모님도 가끔 장난감을 보내오셔서 정말 장난감이 가득하니까.
진수는 놀이방이라는 단어를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신이 나서 꺄르르 웃기 시작했다.
“헤헤, 우리 서방님보다 저를 더 좋아하는 거 같은데요?”
“아닌데? 진수는 아빠를 더 좋아하는데?”
“아기는 엄마 좋아하거든요? 그지 찐수양?”
“아우?”
진수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진수는 그냥 아가니까 본인이 좋아하는 장난감에 더 관심이 갈 뿐이다.
한 손에는 어린이 두뇌발달에 좋다는 나무 조각 퍼즐을 다른 한 손에는 어린이집에서 자주 보는 공 풀에 들어가는 공을 들고 있다.
“그래? 어디 해볼까?”
“뭐 어떻게 하려구요?”
“간단하지.”
나는 수진이와 살짝 떨어져 앉은 다음 진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진수야. 아빠다. 아빠한테 오세요.”
“풉!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세요. 찐수야~ 엄마야. 엄마랑 재밌는 거 하쟝~”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손뼉을 치고 유아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아쟝~ 아쟝~ 기어오세요. 엄마한테 오세용~”
뭐냐. 귀엽네. 내가 아이라면 수진이한테 갈 것 같다.
근데 아장아장은 걷는 아이한테 쓰는 표현인데.
비겁한 녀석. 나와 나와 진수, 부자의 정을 시험하려 들다니.
나는 차분히 진수를 불렀다.
진수는 유아어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진수야. 아빠야. 일로와. 맘마 먹자 맘마. 맘마야 맘마.”
...그래도 승부에서 지고 싶지는 않아서 진수가 가장 좋아하는 맘마라는 단어를 꺼내봤다.
진수는 입에 나무 조각 퍼즐을 넣은 상태로 쪽쪽 빨며 우리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다가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두곤 우리를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찐수야~”
“진수야.”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진수는 이윽고 내 품에 안겼다.
“아악! 으아아아앙!”
분하다는 듯이 땡깡을 부리기 시작한 수진이. 꼬시다.
남편이랑 아이를 버려두고 학교에 가니까 이런 사태가 생기는 법이지.
“아우!”
“오! 우리 진수는 역시 의리가 있네. 의리~ 의리!”
“아! 바바바!”
꺄르르 웃으면서 내 뺨을 찰싹찰싹 두드려오는 진수.
나는 진수에게 얼굴을 비비곤 말랑말랑한 뺨에 몇 번이고 뽀뽀를 해줬다.
“으윽, 이게 NTR인가?”
“내가 금태양이야?”
수진이는 분하다는 듯이 연신 거짓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 울어봐야 진수가 너에게 가진 않아.
“아우?”진수는 수진이가 거짓 울음을 하는 걸 바라보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응애!”
그러자 수진이가 당황해서 진수에게 우르르르 까꿍~!을 연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초간 까꿍이 나오고 나서야 진수가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낚였네.”
“네?”
“진수 이 녀석. 요즘에 거짓 울음도 하고 그러더라고.”
“그게 뭔... 진수야?”
“아!”
나도 처음엔 많이 속았다.
진수 이 녀석은 어느 순간부터 기저귀가 축축해지지도 않았고 배가 고프지도 않은 데 막 울기 시작하는 순간이 생겼다.
내가 평소처럼 진수를 눈에 닿는 위치에 둔 상태로 소설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울기 시작했었지.
당황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진수를 이리저리 살펴봤는데 배가 고픈 것도 기저귀가 더럽혀진 것도 아니었다.
나는 혹시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싶어서 당황했다.
아기는 말을 못하니까 사실은 간헐적으로 아픔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병원에 데려가려다가 혹시 몰라서 어머니께 전화하니 어머니는 웃으면서 진수가 영악하다는 소리를 하셨다.
아기가 관심을 끌어보려고 거짓 울음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소리를 하시더라고.
정말 놀랐다.
아직 제대로 된 의사소통도 못 하는 아기가 벌써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거니까.
수진이는 눈을 껌뻑이며 해맑게 꺄르륵 거리며 웃고 있는 진수를 쳐다봤다.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하, 하하...”
수진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기들은 다 이런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
수진이는 복잡한 표정으로 수진이를 품에 안았다.
“찐수야. 나중에 커서 엄마, 아빠 몰래 나쁜 짓 하고 거짓말하면 혼나용?”
“아?”
진수는 아가라서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그러네.
진수는 수진이의 품에 안겨서 장난을 치다가 더 놀고 싶었는지 내려달라고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수진이가 바닥에 살포시 내려주자 열심히 기어가선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기어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역시 우리 진수는 피지컬이 대단하네.
수진이는 진수의 곁에서 뮤직박스를 눌러주거나 딸랑이를 흔들어주며 같이 놀아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옹알이는 소리를 내며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수진이에게 건네준다.
놀아줘서 고맙다고 답례로 물건이라도 주는 걸까.
진수를 잠깐 바라보다가 수진이의 안색을 살폈다.
아까까진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에 표정이 딱딱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좋아 보인다.
수진이는 진수와 놀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듯하다.
신기하다.
아기와 놀아주는 건 엄청나게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라 피곤한 게 정상인데 말이야.
“우리 찐수~ 넘나 귀여워~ 선생님, 선생님~”
“왜?”
“우리 진수요. 피부도 좋고 이렇게 귀여우니까 치마도 어울릴 거 같지 않아요?”
나는 수진이의 말에 진수를 빤히 쳐다봤다.
“아우?”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입에 물고 있던 장난감을 살짝 내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진수.
똘망똘망 초롱초롱 눈동자가 굉장히 귀엽고 예쁘다.
여장해도 어울릴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아직도 첫째는 딸이라는 그 미련은 못 버렸냐 수진아?
나는 진수가 귀엽다는 듯이 품에 안고 볼에 몇 번이고 쪽쪽 뽀뽀하는 수진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머지않은 미래에 진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 수진이의 욕망이 폭발할지도 모르겠다.
수진이의 영유아 앨범은 전부 여장한 사진으로 도배될지도 모르겠어.
“우리 찐수, 어쩜 이렇게 귀엽찌~?”
...수진이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냥 내버려두자.
미안하다 진수야.
아빠는 엄마보다 약해. 아빤 야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