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23)
수진이의 길고 긴 중간고사가 끝이 났다.
수진이는 중간고사가 끝이 나자마자 소파에 몸을 추욱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끝났당..."
"고생했어."
수진이에게 아메리카노를 타서 건네주니 수진이가 작게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왔다.
"후우, 역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돼서 좋다니까~"
나는 네가 커피를 마신 다음부터 모유 맛이 변해서 별론데.
모유도 이제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제 곧 안 나오게 되겠지.
젖소냥 수진이의 모유를 맛보지 못하게 되다니... 이건 정말 슬프군요.
나와 수진이가 무슨 대화를 그리 나누나 궁금했는지 진수가 옹알이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보행기에 탄 상태로 제법 빠른 속도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진수.
"아우. 아, 아!"
수진이가 손에 들고 있는 커피가 뭔지 궁금한가 보다.
수진이를 향해 손을 뻗는 진수.
"안 돼요. 이거 엄마 꺼에용~"
"우, 으으, 응애!!!"
진수는 눈을 질끈 감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박진감 넘치는 연기다.
"이제 안 속아용~ 우리 찐수, 깐질깐질~"
수진이는 소파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고 진수를 안아 든 다음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진수는 꼭 내일 세상이 망할 것처럼 울부짖다가 수진이의 간지럼에 언제 울었느냐는 듯이 꺄르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진이를 닮았네."
"응?"
변탠데 변태가 아니라고 하는 점이나 거짓 울음을 하는 점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왔지? 같은 느낌으로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진수의 뺨에 얼굴을 비비는 수진이.
진수는 재밌다는 듯이 양손으로 수진이의 뺨을 툭툭 두드리고 있다.
"아얏. 아니, 우리 찐수 왜 이렇게 힘이 장사야?"
나도 가끔 놀란다.
우리가 아이를 안 키워봐서 그런 건지 진수가 특별한진 잘 모르겠지만, 진수는 저 고사리 같은 손에서 나왔다기엔 믿을 수 없는 힘을 선보일 때가 있다.
아기란 참 신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
"응?"
"히히."
수진이는 나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어 보인다.
"주세요~"
꼭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바라는 아이 같은 표정이네.
내가 생일을 기대하라고 해서 그걸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별로 대단한 걸 준비하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 곤란하다.
"수진아."
"네~"
"내일. 데이트하러 가자."
"좋아요~"
수진이는 내 말에 작게 웃으면서 진수의 양손을 잡았다.
"찐수야~ 외출이에용. 오랜만이라서 기쁘지?"
"아우, 아!"
생각해보니 이제 데이트도 진수를 넣어서 가족 나들이 같은 느낌이 되는구나.
여러 가지로 고려해봐야 할 사항이 늘었다.
가족 단위로 찾아오면 입점을 거부하는 가게도 있을 테니까.
아니, 이참에 도시락이라도 싸서 갈까.
내가 앞치마를 차고 부엌에 서자 수진이가 진수를 안아 든 채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현재 시각은 오후 9시.
저녁을 먹고 설거지도 끝냈는데 갑자기 앞치마를 차니 이상해 보였나 보다.
"우리 내일은 도시락으로 하자."
"도시락이요?"
"그래. 첫 나들이니까 소풍 느낌으로."
"좀 힘들 걸요?"
"응?"
"우리 진수 분유도 먹여야 해서 가게에서 직접 하는 편이 편할걸요?"
"보온병으로 물을 가져가면 되지 않나?"
"그런가?"
가게에서 밥을 먹으면 분유나 이유식을 먹이는 일이 편하고 도시락을 싸서 가면 다른 사람들 눈치가 안 보여서 편한데.
한참을 고민하던 우린 결국 가게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근데 어디로 갈 거예요?"
"부천."
"부천이요?"
"계속해야지. 그때 그 데이트."
나와 수진이의 첫 데이트는 성공이라고 하기엔 미묘한 결말로 끝이 났었다.
이왕이면 그 데이트를 이어서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날에 가족동반으로 휴일을 즐기던 가족들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수진이를 떠올려본다.
이젠 우리도 그 풍경에 녹아들 수 있겠지.
"여보야."
"응?"
"사랑해요."
"나도."
배시시 웃으면서 내 뺨에 입을 맞춰오는 수진이.
진수는 수진이가 웃는 모습을 보곤 따라 웃기 시작했다.
나도 그 웃음에 이끌려 웃기 시작했다.
너와 처음 데이트를 했을 땐 이런 미래가 기다릴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역시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
5월 5일.
오늘은 가족 나들이가 있는 날이다.
평소처럼 일어나 몸을 꾸미고 나들이를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왜?"
"생각해보니까요."
"응."
"여기서 점심 먹고 가면 되잖아요."
"그럼 좀 늦잖아?"
"데이트의 연속이면 하이주에서 마무리되는 플랜 아닌가?"
"그렇긴 한데... 음~"
그게 맞는 건가?
점심을 조금 일찍 먹고 출발하면 되나.
"그럼 그러자."
"그리고 부천에 가는 김에 아버님이랑 어머님 좀 뵈고 가요. 아니, 이참에 하루 묵고 가죠. 저 어차피 금요일에 공강인데."
"그래 그럼."
"예스맨이에요?"
"수진이가 하는 말이 대부분 옳더라고."
"선생님은 개변태에요."
아내한테 애널플래그를 끼우는 시점에서 변태가 맞으니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튼, 고마워."
"뭐가요?"
"시댁에 가고 싶어하는 아내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어?"
"치. 찾아보면 많을지도 모르죠? 아버님이 진수를 그리 찾으시는데 한 번쯤은 찾아가야죠."
"그래."
요즘 아버지는 1주일에 2~3번은 꼭 영상통화를 걸어오신다.
1년에 3~4통 정도의 통화를 그것도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끊으시던 아버지와는 다른 존재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진수가 기어 다니는 걸 보셨을 때는 우리 진수가 진짜 영재라서 기어 다니기도 빠르니 뭐니 하며 야단법석을 떠셨다.
아마 수진이의 눈치를 봐서 오라 가라는 못하는데 한 번쯤은 와줬으면 하고 계시겠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준수니?"
"네. 저에요."
`무슨 일이니? 진수한테 또 무슨 일이 생겼어?`
"아니요. 오늘 저녁에 거기서 하룻밤 자고 가려고요. 되죠?"
`당연히 되지. 새아기랑 같이 오는 거니?`
"네."
`그래. 기다리고 있을 게. 안전운전하고.`
"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수진이가 쪼르르 달려와 내 옆에 앉는다.
"여보~ 나 어때요?"
그리 말하며 귀여운 척을 하는데 원래 귀여우니 귀여운 척도 그냥 귀여운 모습이 되는 미라클을 보여주신다.
진수가 싫어할까 봐 화장은 기초적인 것만 했을 뿐인데도 역시 젊음이 최대의 무기지.
수진이는 화장을 안 해도 완벽했다.
"1시간 정도 있다가 점심 준비하면 되겠다."
"네~"
우린 소파에 앉아서 서로 조용히 어깨를 기대어 진수가 보행기를 타고 빨빨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렇게 건강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걷는 것도 빠를 것 같다.
수진이와 데이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진수와 놀아주다 보니 어느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간단히 점심을 먹은 이후 진수와 함께 집을 나섰다.
"찐수야~ 오랜만에 외출이에용~ 좋아용?"
"바아, 마마바! 바바바!"
진수는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수진이의 품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휙휙 돌리며 밖을 쳐다보려고 용을 썼다.
하긴,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으니 이 활발한 녀석 눈엔 모든 게 신기해 보이겠지.
그래도 자주 데리고 나오기도 곤란하다.
밖은 공기도 별로고 자외선도 있어서 몸에 해로우니까.
진수를 베이비 카시트에 앉히고 수진이가 옆에 앉아서 진수를 돌본다.
"그럼 출발할게."
"네~ 찐수야. 부릉부릉하자~"
수진이의 귀여운 유아어를 들으며 액셀을 밟았다.
수진이는 뒷자리에서 아기상언지 뭔지 하는 노래를 계속 틀어주고 있었다.
뚜루루뚜뚜 하는 노래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데 처음 몇 번은 흥얼거리게 하는 리듬감이 있었으나 계속해서 듣고 있으려니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수는 저 노래를 왜 저리 좋아하는 걸까.
"아우, 아, 꺄르륵!"
한참을 꺄르륵 거리던 진수가 이내 조용해지자 수진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수, 자요."
"그래. 고생했어."
"뭘요."
아기상어라는 불청객이 떠나고 나자 갑자기 조용해진 차내.
다른 노래라도 틀어볼까 하다가 진수가 깨어날 것 같아 그만두려 하니 수진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썸.
수진이와 첫 데이트를 했을 때 수진이가 틀었던 노래다.
"오랜만이네."
"어때요? 비슷해요?"
"똑같아. 완전 가수네 가수야."
"반응이 완전 아재야."
그럼 어떻게 리액션해줄까?
오우 쉣! 우리 부인, 콧노래 소리가 끝내줘요!!! 라고 해주리?
"이상하다. 그죠?"
"뭐가?"
"이렇게 부천으로 데이트를 간다고 하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뭔가 이상해요."
"그래?"
나도 뭔가 가슴이 근질거리는 느낌이었는데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나 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이주에 도착했다.
"찐수야 잘 잤어? 기저귀 갈고 가자~"
진수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나서 진수를 유모차에 태운 다음 하이주로 향했다.
표를 구매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실내 동물원임에도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와, 사람 진짜 많다."
"그러게. 다 가족 동반이고."
첫 데이트 때 수진이를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가족들이 나들이 나온 모습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었는데 이곳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전부 나들이를 나온 가족밖에 없었으니까.
"이제 괜찮지?"
내가 수진이의 어깨에 손을 두르자 수진이는 나를 올려다보곤 씨익 웃었다.
"그럼요. 이렇게 멋진 남편이 있는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아우! 아! 바바바! 바!"
"웅? 찐수야. 토끼가 보고 싶어요?"
"아!"
"그랭~ 가장~"
수진이는 진수가 탄 유모차를 끌고 토끼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여보~ 빨리 와요!"
"갈게."
우리가 그날 못다 한 데이트의 연장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