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24)
"찐수야 토끼예요~ 토끼. 깡총 깡총."
수진이가 유모차에 탄 진수의 옆에 쪼그려 앉아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곤 검지와 중지를 굽혔다 폈다 하며 토끼 귀를 표현하고 있다.
"토끼 정말 귀엽지?"
"아! 아바! 바바바바!"
진수는 토끼를 처음 봤으면서도 공포를 느끼진 않고 오히려 흥미를 느끼는지 좋다고 양손을 붕붕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유모차에서 꺼내달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진수를 유모차에서 꺼내 품에 안았다.
그러자 수진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진수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우리 찐수는 토끼가 좋아요?"
"아우!"
진수의 눈은 수진이에게 1초 정도 머물렀고 이후엔 쭉 토끼를 향해있다.
그리고 나의 눈은 토끼에게 1초 진수에게 1초 그리고 수진 토끼에게 쭈욱 향해있다.
토끼가 귀엽긴 한데 머리 위로 손가락을 세운 수진이보다 귀엽지는 않았다.
수진이를 바라보다가 주변을 힐끔 바라보니 수진이를 멍하니 바라보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꼬맹이와 눈이 마주쳤다.
수진이한테 반했구나, 꼬마야.
하긴, 수진이가 미인이긴 하지.
수진이와 외출할 땐 대부분 마스크를 쓴 상황이었으므로 수진이의 외모가 얼마나 눈에 띄는지 잘 몰랐었는데 이젠 마스크를 쓰지 않으니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다.
하이주. 이곳은 실내 동물원이고 대부분이 가족 동반으로 나들이를 온 상태다.
그런데도 수진이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건 분명 착각이 아니겠지.
특히 가슴과 엉덩이를 향하는 시선은 제법 노골적이라서 옆에서 보면 어느 정도 판별이 가능했다.
수진이가 남자들의 시선이 징그럽다고 했는데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나는 남자들의 시선을 가리기 위해 슬쩍 수진이의 옆을 가리듯이 섰다.
그러자 헛기침을 하며 다시 동물을 구경하기 시작한 남자들이 몇몇 보인다.
옆에 있는 아내한테나 잘할 것이지 왜 남의 아내를 넘보는지 모르겠다.
하긴, 이렇게 예쁘니 시선이 안 모일 수가 없지.
"아우! 아! 으바바바!"
진수는 내가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토끼에게서 멀어졌다고 항의를 해왔다.
그러자 수진이가 왜 거기로 갔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당근 좀 사 올게."
"아, 그거라면 제가 갔다 올게요. 어차피 코앞이니까요. 잠깐만요~"
수진이가 바로 옆에 있는 매장으로 향했다.
나는 진수를 품에 안은 상태로 수진이를 쳐다봤다.
수진이가 걸을 때마다 남자들의 고개가 수진이를 따라 돌아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옆에 아이와 아내가 있는 데도 그런 모험을 하다니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면에서 어리다는 건 좋을지도 모르지.
초등학생들은 수진이를 쳐다봐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까.
남편들은 뭐... 아내한테 뭔 소리를 듣던 내 알 바가 아니고.
수진이는 양손에 토끼용 당근을 들고 돌아왔다.
"자, 찐수야. 토끼 맘마 주자~"
진수의 손에 토끼용 당근을 쥐여주는 수진이.
진수는 당근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본인의 입에 넣어 씹기 시작했다.
"찐수야... 언제 토끼가 됐어요?"
수진이는 진수의 행동을 보곤 작게 웃으면서 볼을 꼬집는다.
진수는 당근을 입에 넣은 상태로 질겅질겅 씹다가 이내 입에서 당근을 빼내곤 당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아아악! 당근. 내 입에서 나갓!"
"뭐 하세요?"
"아직 말을 못하는 진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지."
"그래요? 그럼 진수가 지금 하는 생각이 뭐에요?"
글쎄... 진수는 뭔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진수를 빤히 쳐다보자 진수가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던 당근을 바닥에 툭 하고 던졌다.
"훗, 어리석은 당근. 이게 나와 너의 눈높이 차이다..."
"아하하!"
수진이는 내 뻘소리가 웃겼는지 조금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아우! 아! 꺄르륵!"
수진이가 웃기 시작하자 진수도 따라 웃기 시작한다.
이야... 신기하네.
아름다운 말이나 칭찬하는 말, 웃는 소리를 식물에 들려주면 잘 큰다는 이상한 기사를 봤을 때는 뭔 개소린가 싶었는데 왠지 신빙성이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몸에 쌓인 독소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수진이와 진수를 기점으로 반경 5미터 정도로 치유의 오오라가 나오고 있는 기분이다.
"자, 찐수야~ 이번엔 진짜로 토끼한테 주자~"
수진이는 진수를 품에 안고 진수의 손에 새로운 당근을 쥐여주었다.
진수는 당근이 별로 맛이 없다는 사실을 학습했는지 입가에 가져가진 않고 다시 바닥으로 던지려고 했다.
수진이는 웃으면서 진수의 손을 붙잡아 바닥에 버리지 못하게 한 다음 토끼들이 먹을 수 있게 먹이 구멍으로 당근을 밀어 넣었다.
진수는 토끼가 옴뇸뇸 하면서 당근을 먹는 게 신기했는지 옹알이를 시작했다.
수진이는 진수가 귀여워 죽겠는지 진수의 옹알이에 답변을 해주기 시작했다.
"후우, 우리 찐수~ 너무 무거워져서 이제 엄마가 들기 너무너무 힘들다~"
"진수가 무겁긴 하지."
진수는 또래보다 키가 커서 몸무게가 벌써 10kg이 넘었다.
수진이가 들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무게가 되어버렸다.
"찐수야~ 아빠한테 가자~"
나는 수진이에게서 진수를 받아 품에 안았다.
"아우! 우아바바바, 마바마바바바!"
진수는 토끼가 보이지 않는 게 불만이었는지 얼른 본인을 토끼에게 데려다 달라는 듯이 내 팔뚝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알았어, 이 녀석아."
나는 쪼그려 앉아 진수가 토끼를 바라보기 편하게 해주었다.
"바아, 바바바, 아바바바!"
투명한 강화유리로 된 차단막이 있어 토끼를 직접 만질 수는 없었는데 진수는 어떻게든 토끼를 만지고 말겠다는 듯이 손을 휘둘렀다.
나는 진수를 토끼에게서 살짝 떨어뜨렸다.
"아우, 아! 아부부부!"
만질 수 없어 불만이라도 생겼는지 진수가 입을 일자로 다물고 침을 뱉기 시작했다.
"찐수야~ 지지에요, 지지."
수진이는 진수의 입가를 물티슈로 닦아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안쪽에 사람들 몰려있던 곳. 지금은 사람이 좀 비었을 것 같은데 거기로 가볼까?"
"토끼 있던 곳이요?"
"어. 진수가 이렇게 좋아하는 거 보니까 토끼 한 번 만지게 해줘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병이라도 옮는 거 아니에요?"
동물원이니 위생에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을까.
나는 진수를 품에 안은 상태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예상대로 사람이 줄어들어 있었다.
"자, 진수야. 토끼다 토끼."
진수는 토끼가 눈앞에 보이자 손을 뻗으며 옹알이를 시작했다.
토끼가 스쳐 지나가자 손을 휙 뻗어 토끼 귀를 움켜지려고 했지만, 토끼는 잽싸게 진수의 손을 피해 달아났다.
진수는 토끼 때문에 약이 올랐는지 다시 입을 일자로 다물고 침을 뱉기 시작했다.
"찐수야... 지지!"
수진이는 몇 번이고 진수의 입가를 닦아주었으나 진수는 그럴 때마다 볼을 빵빵하게 만들며 침을 뱉었다.
이거 재미 들린 거 아닌지 모르겠네.
수진이는 진수의 행동에 한숨을 쉬며 당근을 꺼내 진수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러자 진수가 당근을 위아래로 흔들다가 툭 하고 던져버렸다.
그리곤 재밌다는 듯이 꺄르륵 웃기 시작했다.
"우리 찐수는 아빠 닮아서 폭력적이야."
아니, 여기서 그런 말 꺼내지 말라고...
수진이 얼굴을 힐끔거리던 몇몇 남자들이 나를 이런 천하의 개새끼가? 같은 느낌으로 쳐다본단 말이다.
나만큼 아내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 어딨어?
"아우! 꺄르륵!"
진수는 본인이 던진 당근에 토끼가 모여오는 것을 보곤 재미를 느꼈는지 수진이가 손에 쥐여준 당근을 또 토끼들을 향해 던졌다.
"아우! 아!"
신이 나선 연신 옹알이는 진수.
수진이는 진수가 해맑게 웃는 모습이 귀여운지 진수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웃고 있다.
진수의 발버둥이 심해져서 수진이가 살짝 떨어지자 반대편에 앉아있는 가족이 보였다.
진수보단 조금 덩치가 있는 아이.
돌 정도는 지난 듯한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남자랑 눈이 마주쳤다.
그는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내인가?
음... 임신 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 보다.
아내분은 동물원에 왔는데도 스마트폰을 잡고 깔깔거리고 있다.
저럴 거면 뭐하러 동물원에 온 지 모르겠다.
"진수야. 다른 것도 보러 가자."
"아우! 아아, 바바바! 바아!"
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진수는 왜 일어서느냐면서 항의를 하듯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근처에 있는 기니피그에게 데려가자 언제 울었느냐는 듯이 해맑게 꺄르륵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우리 진수는 탈룰라도 잘할 것 같다...
"우리 진수요."
"응?"
"동물을 참 좋아하네요. 나중에 개나 고양이 주워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애들은 종종 유기견이나 도둑고양이를 주워온다고 그러긴 하더라.
"만약에 진수가 강아지나 고양이 주워오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글쎄? 우리 아파트가 애완동물 금지는 아니니까 별로 상관없지 않나?"
그리 말하자 수진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진수가 기침만 하면 호들갑을 떠셔서 동물한테서 병이라도 옮을지도 모르는데 애완동물 따위 절대 안 키우지~ 이럴 줄 알았어요."
별로 비슷하지 않은 성대모사를 하는 수진이.
이 녀석. 나를 그리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아니, 잠깐만. 내가 언제 호들갑을 떨었다는 거냐?
호들갑을 떤 건 아버지지 난 상식적인 선에서 행동해왔는데.
"크흠. 아무튼 애완동물을 기르는 건 아기 정서에도 좋다잖아."
"차가운 도시 남자 김준수... 동물은 아기 정서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자."
"자꾸 헛소리하면 혼난다."
내가 그리 말하자 수진이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나도 수진이를 따라 웃었다.
"아우! 아! 꺄르륵!"
그리고 진수도 우리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나는 웃으면서 수진이와 첫 데이트를 했던 때를 떠올렸다.
카페에서 씁쓸한 표정으로 가정사를 털어놓던 수진이.
그때만 해도 나를 거부했다고 생각해서 씁쓸한 기분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와 수진이가 단둘이 놀러 왔다고 해서 이렇게 즐거운 기분이 되진 않았을 것 같으니까.
동물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즐겁고 알차다고 생각하는 건 분명 내 품에서 웃고 있는 진수 덕분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