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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5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6) (245/301)



〈 245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6)

오늘 선생님과 세 번째 데이트를 나왔다.


선생님이 뭔가 우물쭈물 자꾸 눈치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깨달았다.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주위가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되어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내 손에 손을 얹었다.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살짝 튀어 올랐다.


팝콘을 쏟을 뻔했다. 선생님을 슬쩍 바라보자 선생님도 부끄러운 듯한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역시 이거 그거지? 고백이다. 고백이야!

드디어, 드디어 고백하시려나 봐.

많이 기다렸다. 정말 많이 기다렸어.


선생님한텐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언젠가 고백을 하시겠지 하고 기다렸어. 솔직히 무서웠으니까.

내가 고백했다가 가정이 있어서 싫다고 고백하면 어떡해? 차이면 어떻게 계속 만나?

이제 선생님이 없으면 힘들 것 같다.

선생님과 만나서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렇듯이 소설을 쓰고 선생님도 소설을 쓰거나 플롯을 짜며 나와 잡담을 나누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 별것 없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만약 내가 고백해서 그 별것 없는 시간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그래도 선생님이 고백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겁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선생님이 고백해준다면 나는 반드시 고개를 끄덕일 테니까.


내가 고백을 하면... 정말 만약의 일이지만 선생님이 거절할 수도 있으니까.

그저 기다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이날이 오고야 말았다.


설레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며 데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불러들여 선생님이 해줬던 요리를 똑같이 대접해줬다.


처음 하는 요리라 선생님이 좋아하는 굽기로 굽는 건 실패했지만  번이고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그 여자가 선생님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지워질 때쯤 선생님도 양식을 먹을 땐 나를 떠올리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선생님에게 얼른  말이 있으면 하라고 보채었다.


선생님은 뭔가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여셨다.

"아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 이혼하기 싫다고 안  거라고 하면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져서 순간 주변의 소리가 사라졌다.

듣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협박하더라고. 학원에서 깽판을 친다더라. 너한테 피해 주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남편으로서 행동하라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선생님이 뭔가 이야기를 꺼냈지만, 선생님이 학원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만 귀에 들어왔다.


그래. 끝났구나. 우리의 관계는 끝났어.

왜 그 여자가 선생님한테 집착해서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갔을까?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선생님은 왜 지금까지  여자를 내치지 못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저변에는 사랑이나 미련 같은 감정이 있기 때문이겠지.


이런 상태로 나와 사귄다고? 그게 잘 될  같아?


착각했다. 선생님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이다.


나와의 관계는 그저 변덕이지. 생각해보면 나와 선생님의 나이 차는 19살이다.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야 뻔하지.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

요즘의 선생님은 강의하며 너무나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이신다.

생기가 넘치는 모습. 수강생들도 점점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그래. 포기하자. 이제 눈치챘잖아.

내 위치는... 나에게서 아빠를 빼앗아간 그 상간녀의 위치야.

내가 그 여자한테서 남편을 빼앗는 위치라고.

이제 정신을 차려야지.


그래서 선생님에게 내 본심을 털어놨다.


우린 이어질 수 없다고 고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생각보다  완고하셨고... 멋있었다.

날 위해서면 어떤 희생이라도 치르겠다고 말하며 나를 끌어안는 그 팔에서 느껴지는 듬직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선생님과 함께라면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쳐도 버텨낼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다.

***


첫 경험이 아프다곤 했는데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마냥 신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완전 개변태였던 선생님이 이곳저곳 몸을 만지작거릴 땐 진짜 깜짝 놀랐지.

그래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엔 신사 같더니 점점 짐승처럼 변해서 날 잡아먹을 것처럼 덮쳐 누를 때는 진짜 아파서 혼났다.

아프다고 해도 놓아주지 않고 찍어누르다가 마지막이 되어서야 이성이 돌아오는 모습을 봤을 땐 솔직히  무서웠다.

그래도 난 인터넷에서 본대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남자들은 이렇게 할  다리로 허리를 감싸서 못 움직이게 홀딩을 하면 좋아한다고 했나?

아무튼, 선생님도 뭔가 기쁜듯한 눈빛이었는데... 설마 그대로 2번이나 더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완전 짐승이야.


다음 날이 되어 선생님은 이혼 문제를 해결하러 떠나셨고 나는 선생님에게 큰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소설도 쓰고 공부도 해야 했는데 집중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나중에 선생님이 화상통화를 걸어오고 입가가 찢어진  봤을 땐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다친다는 일은 생각보다 뼈에 사무치는 일이었다.

선생님도 그래서 그 여자를 내치지 못했던 거겠지?

학원에서 우리의 관계가 소문이 나고 내가  소문에 다칠 걸 염려해서 그러셨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지고 뭔가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정말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 같았다.


그 메모장을 발견하기 전까진.


***


선생님이  메모장을 처음 봤을 땐  안타깝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월에 마모된 마음이 선생님의 몸에서 열정을 앗아가 버렸다는 것을 글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가정의 불화를 딛고 어떻게든 새 출발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지만 그다음에 찾아온 것은 보증으로 인한 새로운 시련.

선생님은 결국 마음을 닫고 기계처럼 살아오셨다고 적혀있다.

마음이 아팠다.


왠지 나도 모르게 내 과거의 기억과 선생님의 학창시절이 겹쳐지며 동질감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추하지.

선생님이 조금만 더 정상적인 삶을 살아오셨다면 나와 만날 일 따위 없었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선생님의 상처를 좋아하다니 난 진짜 쓰레긴가 봐.

그렇게 생각하며 선생님이 쓴 메모장을 쭈욱 읽다가 찾아버렸다.


헤에, 호오, 흐응.


그랬구나? 그랬어.

나랑 데이트 한 날에 그 개 같은 걸레년이 선생님 좆을 빨고 있었구나?


와... 대단하네.

생각외로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쩜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지?

아니, 속이진 않았나?


아내가 언제 돌아왔다고도 말 안 했고 섹스를 했니  했니 하는 이야기도 안 했으니까.

하, 씨발.

이거 내가 화내도 되는 거지?

그러니까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내가 금태양이랑 그렇고 그런 일을 하면서 선생님이랑 통화했다 뭐 이런 상황 아닌가?

꼴 받는데. 미치겠는데. 용서 못 하겠는데.


그 개썅년도 선생님도 좀 벌이 필요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고 선생님의 짐을 정리하는 날이 찾아왔다.

선생님의 메모장엔 오피스 와이픈가 뭔가가 부럽다고 쓰여 있었지.

그와 가장 비슷한 옷을 입고 가자.

그리고 선생님이 가장 방심한 틈에 복수해야지.

그런 마음을 품고 선생님을 만나 집으로 향했지만, 선생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뭔가 복수라든지 증오라든지 그런 감정이 사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그땐 유부남이었으니까 어쩔  없지.

용서해주자.


아, 이참에 선생님이 나한테 선물해주려고 했던 장미나 찾아가자.


드라이플라워로 만들었다고 했고 선생님이랑 그렇게 싸웠는데 그걸 챙겨가진 않았겠지.


혹시 망가트렸으면... 용서할 수 없겠는데.


선생님이 날 보고 있지 않은 틈에 개 같은 년의 방으로 들어갔다.

으, 냄새부터 비처녀 걸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역겨운 년.

주위를 찾아봤지만, 눈에 띄는 곳에 드라이플라워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이상하게도 쓰레기통에 눈이 갔다.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쓰레기통에 그 드라이플라워가 담긴 유리통이 들어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리에 열이  뻗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멍하니 그 드라이플라워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찾아왔다.

내가 쓰레기통으로 손을 뻗어 그 안에 담긴 유리통을 들어 올리려고 하자 선생님이 더럽게 뭐하는 짓이냐고  말렸다.

더럽게 뭐하는 거야? 더러워? 내 장미가?  개 같은 년이?

"제 물건 받으러 온 거에요. 오늘."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뭔..."

아무것도 모르고 자꾸 내 성질을 긁는 선생님이 미웠다.


얄미웠다. 짜증이 났다. 면전에 쌍욕을 박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참아야 해.

선생님에겐 되도록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정쩡하게 서서 어버버버 하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참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알았다.

그 개 같은 년은 이 집에서 최소한의 짐을 챙기고 친가로 돌아갔으리란 것을.


그렇다면 언젠가는 다시  방으로 돌아오겠지.

내 소중한 물건`들`에 장난을 쳤으니 나도 참지 않겠다.

이건 내꺼야.

드라이플라워도 김준수도 다 내꺼다.


내꺼야. 이제 내꺼라고. 니가 먼저 버렸잖아. 그지?


어버버버 하며 아직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선생님을 침대에 밀쳤다.


그 당황한 표정을 보니 가학심이 솟아올랐다.

이렇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참을 수가 없다.


선생님을 괴롭혔다. 찢어진 입술을 손으로 만져 상처를 벌렸다.

선생님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피를 혀로 핥았다.


씁쓸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달콤하게 느껴졌다.

아픈지 인상을 찌푸리는 그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더 흥분됐다.

이제 선생님과 나는 같은 피가 흐르는 거야. 내 몸의 일부에 선생님이 녹아있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뭔가 더 짜릿한 기분이었다.


 개걸레년이랑 선생님은 남남이지만 나와 선생님은 같은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그곳이 쑤셔왔다.


달아오른 몸으로 선생님을 안았다.

이게 두 번째 경험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짜릿한 기분이었다.


황홀한 기분 속에 젖어 서로 끌어안고 있다가 너무 늦기 전에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솔직히 거기서 선생님한테 모든 분노를 다 털어냈다고 생각해서 나름 개운했다.

근데 거기서 그년이랑 마주쳤다.

나와 선생님을 보자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며  수 없는 쾌감이 전신을 달렸다.


그 충동에 따라 선생님의 입에서 마스크를 벗기고 키스를 했다.


선생님은 놀라긴 했어도  키스에 맞춰 눈을 감았지만 나는 오히려 눈을 떴다.


나와 선생님의 키스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년의 표정이 궁금했으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표정으로 나와 선생님을 노려보는 그 표정은 정말 짜릿했다.


이상할 정도로 거기가 쑤셨다.


뭔가...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에 중독될 것 같다.

아, 개걸레년. 이런 기분이었구나? 내 물건을 빼앗아 갔을 때 이런 기분이었어?


몬가 몬가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빨리 가자며 길을 서둘렀다.

이제 저 집에 들어가서 내가 저지른 참상을 보겠지?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 해도 거기가 쑤셔와서 미칠  같았다.

물론 선생님은 이런 내 마음을 모르겠지. 알리고 싶지도 않다.

선생님한텐 착하고 예쁜 수진이로만 남아있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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