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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3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 (253/301)

〈 253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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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해돋이를 만끽하고 들어간 식당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새해가 아니니 사람이 없는 것이겠지.

“생각해보면 우린 해돋이만 보면 돌아갔었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선생님은 물컵에 물을 따르며 그간 다녔던 해돋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예약도 없이 해돋이 보러 가자고 했던 게 시작이었지.”

“…그땐 몰랐어요.”

선생님과 어딜 나간다는 생각에 몸이 들떠서 생각도 못 해봤다.

생각해보면 그리 멀리 외출해본 것은 수학여행을 제외하면 없었으니까.

수학여행은 돈만 내면 일정이 정해진다.

내가 나서서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난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어.”

“왜요?”

“풋풋한 느낌이 들어서.”

내 그 약간 허당 같은 면이 나이대에 어울리는 순수함으로 느껴져서 좋았다는 이야기였다.

“로리콘.”

“아니, 거기서 그리 말하면….”

선생님은 가불기를 당했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선생님은 3세기를 살았던 사람이면서 아직도 이런 유행어를 쓴다.

안 어울리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이상한 사람이야.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가게에 있던 TV에선 묘한 내용의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세계가 우리가 살던 세계보다 묘하게 아날로그적인 게 마음에 들긴 하는데 이런 건 좀 그러네.”

선생님의 말대로 이 세계는 필요한 것을 제외하면 묘하게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강하다.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부류의 탈것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자동화가 되어있다.

탑승자가 직접 운전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지.

이런 부류를 제외하면 전부 21세기 초기에나 볼 수 있던 구시대적인 감성으로 가득 차 있다.

가령 이 가게에 있는 TV도 홀로그램이 아닌 액정 디스플레이니까.

그런 묘하게 향수가 느껴지는 아날로그 TV에서 나오는 방송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내용이었다.

ㅡ 사후 관리 시스템, 통칭 ‘에덴’이 운영된 지 10년이 넘었군요.

ㅡ 예. 처음엔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결국 상당한 사람들이 만족하고 있습니다.

ㅡ 그렇죠. 누구나 죽음은 두려워하니까요.

ㅡ 그것도 있습니다만, 헤어진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ㅡ 그런가요? 조금 의외네요.

ㅡ 의외요?

ㅡ 네. 에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재혼율은 1할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으니까요.

ㅡ 아….

우린 종업원이 메뉴를 옮겨줬음에도 멍하니 TV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린 1할이네.”

선생님은 태연한 척 그리 말하면서 TV의 채널을 돌려버렸다.

선생님의 말대로다.

우린 다른 부부들과는 다르니까.

…그리 생각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마 이 불쾌함은 그 인간이 떠올라서 그런 거겠지.

“왜 헤어지는 걸까요? 마지막까지 함께한 사이면서….”

그럴 거면 미리 헤어지면 되는데.

평생을 사랑하겠다고 약속하고 결혼한 사이면서 상대를 배신한다.

그 이유를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나도 몰라.”

선생님은 어차피 우리 이야기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말라며 말을 돌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신 모양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던 세계를 전생쯤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럴까요?”

“어. 그러니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걸지도 몰라.”

환생이라….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환생해서도 나를 사랑하겠다고 종종 그러셨었지.

회귀보단 환생이 낫다.

그러면 나랑 만날 확률이라도 생기니까.

선생님은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하셨지.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한번 입에 담았던 이야기는 대부분 지키는 사람이었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생님의 말대로 어쩌면 우린 새로운 몸으로 환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이미 봐서 익숙한 선생님의 얼굴이 조금 젊어졌다고 이리 가슴이 뛰는 건 이상하니까.

마치 선생님과 부부가 되어 한창 신혼을 보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이상하게 얼굴에 열이 올랐다.

“괜찮아?”

“이거 소스가 조금 맵네요.”

“그래?”

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야기를 돌렸다.

“잠깐 화장실 좀.”

“그래.”

이쪽 세계는 굳이 화장실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

신진대사가 멈춘 세계니까.

그런데도 습관적으로 화장실을 가는 나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선생님도 아직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겠지.

난 세면대에 손을 얹고 물을 틀었다.

쏴아아.

세면대에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했다.

22살.

한창 진수를 낳고 기를 때의 내 얼굴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물이 올랐다고 생각했을 당시의 외모.

진수가 태어나서 그런 건지 선생님이 주물러서 그런 건지 가슴도 두 컵이나 커졌던 그 당시의 나다.

외견은 내가 생각해도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예쁜 성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마치 선생님의 한마디에 부끄러워하던 그때 그 모습으로 보였다.

선생님도 눈치는 챘을 거야….

왜 얼굴을 붉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열기가 잘 식지 않았다.

난 조금만 더 화장실에서 열기를 식히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우리의 화상이었다.

“여보세요, 희진이니?”

ㅡ 응, 엄마!

“이 화상은 또 무슨 사고를 쳐서 전화를 거셨지?”

ㅡ 엄마는 맨날 화상이래!

희진이는 전화 너머로 투덜거리다가 “아!” 소리를 내더니 말을 돌렸다.

ㅡ 그게 아니고, 이거 봐봐.

희진이는 그리 말하며 내 휴대폰으로 어떤 영상을 하나 보냈다.

“이게 뭐니?”

ㅡ 엄마는 꼭 봐야 하는 영상이야.

희진이의 목소리가 뭔가 이상하다.

잠겼다고 해야 하나?

“너 울었니?”

ㅡ 으응… 보면 알아. 아빠한테 잘해!

희진이는 그리 말하곤 전화를 뚝 하고 끊어버렸다.

도대체 뭘까?

난 희진이가 보내온 영상을 틀어보기로 했다.

그 영상은 나와 선생님의 마지막이 담겨있는 영상이었다.

아마 우리의 목덜미에 심어진 칩만으로는 불안했던 진수가 설치한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겠지.

영상 속의 두 노부부는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아버지 쪽은 아직 쌩쌩했지만, 할머니 쪽은 언제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ㅡ 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너를 향한 내 마음. 너를 사랑했다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어. 수진아… 나랑 결혼해줘서… 가족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ㅡ 수진아?

ㅡ 바보야… 100살에 죽겠다면서 왜… 벌써 눈을 감아… 아직 1년 남았는데… 난… 너와 한 약속… 다 지켰는데… 왜… 아직… 새해도 못 봤잖아….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저리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버님과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래다.

선생님은 길을 잃은 아이처럼 펑펑 우셨다.

울면서 어머님과 아버님의 영정 앞에서 머리를 박고 끝나지 않는 참회를 반복했다.

있을 때 잘했어야 했다며 다 자기 잘못이라며 울던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이 진수에게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표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지.

선생님은 그때 그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슬퍼 보였다.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 감정이 스며들어왔다.

한참을 울었던 선생님은 끅끅거리는 소리를 내시며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ㅡ 천천히 쫓아오라고… 했더니… 먼저 가면… 어떡해… 하여튼… 승부욕은 알아준다니까….

선생님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ㅡ 만약… 내세가 존재하면은… 그때도 너를 만나서… 함께하고 싶어… 그 정도로 사랑해 수진아….”

선생님은 곧 다가올 제 죽음을 반기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곧 내가 있는 세계에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이었다.

“아….”

눈물이 흘렀다.

내가… 내가 진짜 나쁜 년이구나.

“으윽….”

ㅡ 아버지!!!

모든 것을 체념한 선생님께 다가온 것은 진수였다.

진수는 선생님을 부르며 가지 말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껐다.

더는 볼 수 없었다.

자그마한 호기심이었다.

선생님은 항상 나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실제로 사랑해주셨다.

여행을 가도 항상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우선해주셨다.

먹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 것도 타고 싶은 것도.

모든 것의 중심엔 항상 나를 두셨다.

난 행복했다.

이렇게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도 불안감이 생겨났다.

나이를 먹어가며 생겨나는 주름, 처지기 시작한 가슴, 생기를 잃어가는 얼굴.

그것을 볼 때마다 선생님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언제까지고 선생님께 사랑받고 싶다는 이기심과 호기심이 이성을 억눌렀다.

그래서 희진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언제든 털어놓아야만 했다.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아파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정이 많은 사람이란 것도 알고 있었는데.

난 참 잔인한 인간이다.

선생님은 죽는 그 순간까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셨겠지.

나와 선생님은 너무 휙휙 바뀌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린 그런 물건들을 집안에서 배제했다.

서로만 바라보기에도 바쁘니 더는 세간의 일을 신경 쓰지 말자고 했다.

그러니 선생님은 사후세계라는 존재를 전혀 모르셨을 거다.

선생님을 속였다.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해주는 사람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선생님은 태연하게 웃으면서 날 나쁜 년이라고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를 다시 한번 만난 그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미안해요….”

나였다면 선생님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아마… 힘들었겠지.

한동안 말도 섞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났겠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아.”

화장실에 잠깐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벌써 20분가량 시간이 흘러버렸다.

얼른 돌아가야 하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너무 처참해서 밖으로 나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ㅡ 수진아?

선생님의 목소리다.

화장실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듯하다.

나가야 하는데….

“괘, 괜찮아요!”

ㅡ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 에요.”

목소리가 잠긴다.

지금은 선생님과 마주 서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선생님….

ㅡ 뭔진 잘 모르겠는데… 천천히 와.

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신 모양이다.

언제나 날 배려해주는 그 자상함을 떠올리니 또다시 눈물이 흘러넘쳤다.

내가 화장실을 빠져나온 것은 그로부터 20분이 더 흐른 다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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