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9)
* * *
해바라기밭이었던 곳을 떠난 우린 당연하다는 듯이 해안가를 찾았다.
해바라기밭은 우리가 기대했던 곳은 아니었다.
이미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해안가만큼은 다르다.
해안가는 몇 년이 지나도 웬만해선 바뀌는 일이 없으니까.
새로운 시작을 하더라도 거기만큼은 확인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불꽃놀이도 사자.”
“네.”
해안가 하면 선생님과 불꽃놀이를 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뭔가 참 로맨틱했지….
선생님 집에서 외박하고 집에 돌아갔을 땐 온종일 잔소리를 들었다.
이제 수능이 코앞인데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는가.
지금 시국이 어느 땐데 그러다가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혹시 남자친구라도 생긴 건가.
대학 가서도 충분하니 지금은 자제하라.
그런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반복했었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선생님과 보낸 시간이 즐거웠으니까.
오늘은 선생님과 조금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도 괜찮겠지?
“해안가는 그래도 그런 쪽에선 참 좋아.”
“뭐가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까.”
역시 선생님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러네요.”
나와 선생님을 태운 차는 아무런 막힘도 없이 순조롭게 해안가에 도착했다.
“조금 일찍 도착했네.”
현재 시각은 12시 정오.
불꽃놀이를 보려면 최소한 7시간 정도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제 가을이지만 아직도 낮이 길어서 좀 본격적으로 즐기려면 8시간은 기다려야 하고.
이곳에서 8시간이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일단 밥부터 먹을까?”
“네.”
우린 근처에 있는 가게를 찾아 식사하기로 했다.
“뭐 먹을래?”
“음~ 선생님이 먹고 싶은 거!”
“그럼 그냥 초밥이나 먹을까?”
“초밥이요?”
“한동안 더워서 안 먹었었잖아.”
“좋죠.”
나와 선생님은 근처의 초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선생님과 데이트를 할 때면 초밥집을 자주 갔었지.
초밥을 좋아하냐고 물었었는데 그때 나온 대답이 굉장히 귀여웠던 기억이 있다.
데이트 추천 코스에 초밥이 무난하다고 적혀있었다고 했었지.
먹을 때 옷에 뭔가 묻을 일도 적고 사이즈도 한입 크기라 추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데 선생님의 연애 경력이 짧다는 것이 느껴져 조금 즐거운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항상 이런 쪽으로만 메뉴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이런 쪽?”
“네. 옷에 묻지 않는 쪽으로.”
“인터넷에서 그렇게 하라더라.”
초밥이랑 같은 논리였다.
선생님이랑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주문한 초밥이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
초밥을 먹고 시원한 커피를 후식으로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아직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재 시각은 오후 1시.
해가 지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이걸 어쩌나 고민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선생님?”
“이쪽 세계니까 말이야… 한 번쯤은 욕심부려도 되겠지?”
“네?”
“수영복 사러 가자.”
“…변태.”
“오랜만이네.”
선생님은 바닷가라고 해도 내 수영복 차림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처음 입은 수영복도 계곡이었다.
그래도 여긴 괜찮겠지.
난 선생님과 함께 수영복을 사고 해수욕을 즐기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나이를 먹은 후로는 물놀이를 즐기지도 않았으니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수영복 코너를 향했지만 조금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내 가슴 사이즈의 수영복이 하나같이 선정적인 수영복밖에 없던 것이다.
“으음.”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좀, 음, 섹시해도 조금 귀여운 매력이 있는 수영복은 없나?
하나같이 좀 그래….
그래도 어쩔 수 없겠지?
그나마 조금은 노출이 적은 검은색 비키니를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수영복을 입고 선생님을 불렀다.
“오.”
선생님의 시선이 한여름의 태양보다 뜨겁다.
여러 각도로 내 전신을 훑어보더니 뜨거운 콧김을 내뿜는다.
당장에라도 모텔에 가자고 이야기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지 말자.”
“…네.”
저렇게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는데 어떻게 그냥 가자고해….
“얼른 갈아입어.”
선생님은 빨리 가자며 날 보챘다.
스멀스멀 밤의 야수 같은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수영복을 사고 다시 해안가로 나왔다.
해안가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명이 다해 죽은 사람들이니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젊어 보여도 최소 80살은 넘은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러니 해수욕을 즐기는 편이 더 드물겠지.
이 세계는 하나의 납골당이다.
그러니 가족들이 드문드문 조문을 오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해수욕을 찾지는 않는다.
22세기의 대한민국은 집안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세계니까.
“오, 반전세네?”
우린 모래사장 위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가게에서 사 온 튜브에 바람을 넣은 다음 바다로 향했다.
아, 시원해.
몸을 녹여버릴 것처럼 뜨거운 태양도 사랑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바다는 시원했다.
VR 세계임에도 바닷물은 짜고 숨은 쉬어지지 않아서 현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하! 후우, 좋네.”
바닷물로 흠뻑 젖은 머리를 손으로 대충 쓸어올려 이마를 드러낸 선생님이 조금 섹시해 보였다.
나와 선생님은 튜브에 몸을 싣고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뭐가요?”
“이 바다에서 익사도 가능한 걸까?”
“…그건 왜 궁금해요?”
“그냥?”
선생님은 그리 말하더니 바다로 머리를 담갔다.
설마 익사하는지 시험이라도 해볼 생각인 걸까?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는 거람?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고개를 들고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래요?”
“숨을 쉴 수가 있네.”
“네?”
방금까지 분명 숨을 쉴 수 없었는데?
“바다에 일정 이상 머리를 담그고 있으면 숨을 쉴 수 있는 느낌이야.”
이미 죽은 세상에서 또 죽진 못하게 할 생각인 걸까?
어쩌면 이 해수욕장에 사람이 적은 것은 이런 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조금 실망스러운 기분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
“뭔가 갑자기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아서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작게 웃더니 나에게 튜브 밖으로 나오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뭘까 싶어서 튜브를 벗으니 선생님이 내 손을 잡아 왔다.
“그래도 덕분에 이런 것도 가능해.”
선생님은 나를 이끌고 바다로 잠수했다.
물속에서 눈을 뜨는 건 따갑고 괴롭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있으려니 입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 눈을 살짝 떴더니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아, 조금 더 선명히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보이는구나.
난 선생님의 목에 손을 얹고 선생님과 조금 더 격렬하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입을 맞춘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푸우!”
“하아!”
우린 서로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바닷속에서 숨이 쉬어진다고 이야기를 했으면서, 곧장 물 위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묘하게 웃겼다.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거든.”
선생님은 영화에서 나오던 장면을 이렇게 해보니 좀 신기한 기분이라고 했다.
도대체 언제적 영화인 걸까?
그래도 선생님의 돌발행동으로 좋은 추억이 생겼다.
바닷속에서 연인과 키스를 하는 건 생각보다 로맨틱했다.
물론 서로 불이 붙어 혀를 섞는 바람에 입속으로 물이 들어와 조금 괴로웠지만….
“그런데 이렇게 숨도 쉬어지면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잠수?”
“네.”
선생님과 제주도에서 신혼여행을 보냈을 때가 떠올랐다.
장비가 무거워서 약간 패닉이 오기도 하고 그랬지.
그래도 바닷속으로 흘러들어오는 햇빛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바닷속에서 숨이 쉬어지니 그때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자.”
“네.”
나와 선생님은 다시 바닷속으로 잠수했다.
바닷속에서 잠시 숨을 참고 있다가 코로 숨을 들이켜자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흐릿했던 주변의 경치도 수경을 끼고 있는 것처럼 맑아졌다.
나와 선생님은 그대로 바다로 잠수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린 제주도에서 신혼여행을 즐겼던 그때처럼 서로 웃고 떠들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
치익 펑.
“여전히 초라하네요.”
“그러게.”
해가 저물고 해수욕을 마친 우린 사 들고 온 폭죽으로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처음은 무난한 폭죽부터 시작했다.
불이 붙으면 가볍게 폭죽이 나가 펑 소리가 나며 터지는 단발성 폭죽.
여전히 초라하고 볼품없었다.
그런데도 그걸 보고 있으니 묘하게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19살 그때의 여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으니까.
“새로운 시작을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여전하네요.”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 웬만한 건 다 해봤으니까.”
“듣고 보니 그러네요.”
우린 폭죽을 물에 담긴 양동이에 담고 새로운 폭죽을 꺼내 들었다.
“역시 우린 이거죠?”
“그렇지.”
스파클러를 선생님 손에 하나 쥐여주고 불을 붙였다.
우린 자리에 쪼그려 앉아 스파클러가 타들어 가는 모습을 멍하니 구경했다.
“선생님이 서로소에 썼던 내용 중에 이 폭죽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근사했어요.”
“내가 뭐라고 썼더라?”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화려한 연애만이 답은 아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 거야?”
“다 기억하는 건 아니에요.”
인상적인 부분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땐 그랬는데 어느새 소설로 써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관심종자가 되었지.”
“그렇게 저를 자랑하고 싶었어요?”
선생님의 볼을 쿡쿡 찌르며 물어보자 선생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내 손가락을 물었다.
정말 여전한 사람이다.
입에서 손가락을 빼내자 선생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미인에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내 아낸데 당연히 자랑하고 싶지.”
진지한 눈으로 그리 말하니 뭔가 부끄러워졌다.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선생님은 좀 많이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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