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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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선생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바라봤다.
여기서 왜 선생님이(내가) 나와?
서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ㅡ 21세기 초에서 중반까지 웹소설을 쓰시던 작가님입니다.
ㅡ 웹소설이라…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야기네요.
패널의 말대로 웹소설은 이제 제법 생소한 취미가 되었다.
우리가 한창 작가로서 활동할 때만 하더라도 웹툰과 웹소설의 시장이 커지는 추세였다.
하지만 VR이 발달하기 시작하며 영화보다 더 실감 나는 체험이 가능해지니 읽는 사람도 시장도 작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웹소설 작가를 그만둔 건 그런 배경도 있었다.
ㅡ 그 작가님이 요즘도 소설을 쓰고 계신다면 믿으시겠어요?
ㅡ 지금도요?
이야기를 받는 패널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돈도 되지 않는 일을 왜 굳이 하는 건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ㅡ 네. K헤밍웨이라는 작가님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꺼낸 패널은 K헤밍웨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선생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2021년부터 정액제 웹소설 사이트에 글을 올린 것으로 등장.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라는 작품으로 시작하여 그 후로 30~50대를 타겟으로 한 작품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이 성공한 작가래요.”
“나름 성공하긴 했잖아?”
“뭐, 그렇죠?”
선생님의 소설은 저 패널이 설명한 것처럼 30~50을 타겟으로 한 소설이 주류였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코어 독자층이 생겨서 제법 성공하셨지.
“사실 너랑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성공이야.”
그리 말할 줄 알았다.
하여튼 부끄러운 사람이라니까….
ㅡ K헤밍웨이 작가님이 4번째 작품을 완결 내시고 인터뷰를 했었는데….
선생님은 편결로 4번째 작품을 내고 인터뷰를 했었다.
당시에 웹소설이 큰 인기를 끌어서 작가 특집인가 뭔가를 했었지.
나도 써볼까 싶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했던 특집이었다.
ㅡ 그런데 왜 하필이면 K헤밍웨이죠?
ㅡ 그 질문이 인터뷰의 첫 번째 질문이었답니다.
ㅡ 아하하하!
방청객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은 그게 좀 불편한지 몸을 꼼지락거리면서 채널을 돌리고 싶어 했다.
난 선생님 손에 들린 리모컨을 빼앗았다.
선생님이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외견이 18살인 것도 있어서 그런지 묘하게 괴롭혀주고 싶어지는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나와 드라마를 보면 항상 리모컨으로 손을 뻗는 사람이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거나 그러면 채널을 돌려버렸지.
아마 공감성 수치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선생님이 딱 그거였다.
지금 선생님은 그 병이 도진 것 같았다.
남 일도 아니고 자신의 이야기니 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난 선생님을 배려해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얼굴이 붉어져서 눈이 핑핑 돌아가는 선생님이 너무 귀여워서 더 괴롭히고 싶어졌다.
ㅡ K헤밍웨이는 아시다시피 20세기 미국의 대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서 따온 필명이거든요.
선생님이 당시에 나눴던 인터뷰를 토대로 패널이 설명을 시작했다.
선생님이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랑 큰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드디어 서로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ㅡ 이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는 사실 수필적 소설이거든요.
ㅡ 수필적 소설이요?
ㅡ 네. K헤밍웨이 작가님의 인터뷰에 따르면….
선생님은 어느 순간부터 나와의 관계를 굳이 감추지 않으셨다.
사랑해서 결혼했으니 떳떳해지고 싶다나 뭐라나.
내가 대학교에서 필명을 들킨 것도 하나의 이유이긴 했겠지.
ㅡ 와~ 19살의 나이 차 커플인 건가요?
ㅡ 네. 처음엔 반대도 심하고 비난하는 시선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ㅡ 지금은 몰라도 당시에는 그랬겠네요.
지금은 수술만 받으면 누구나 150살까지 살 수 있는 시대다.
19살의 나이 차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지만 당시에는 아니었지.
ㅡ 작가님이 서로소에서 써놓은 한 문장인데 이게 참 가슴을 울리거든요.
화면엔 선생님이 서로소에 적어놓은 우리 엄마에게 향한 독백적 고백이 적혀 있었다.
120살까지 살면 19살 정도의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은 소심한 어른이고 나는 성숙한 아이다.
우린 서로에게 필요성을 느껴 운명처럼 맺어졌다.
그러니 우리의 사랑을 허락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도 한동안 몇 번이고 읽었던 그 부분이었다.
ㅡ 아….
질문을 하며 계속 이야기를 받아주던 패널이 멍하니 그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뭔가 생각하는 바라도 있는 것 같다.
ㅡ 이 작가님이 지금도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를 계속 쓰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ㅡ 정말요?
ㅡ 네. 무료연재로 전환하시곤 지금도 계속 소설을 쓰고 계시더군요. 이 에덴을 2회차 인생 혹은 환생한 세계라고 생각하시고 살고 있다면서요.
아, 2회차니 환생이니 하는 이야기가 이 이야기를 위해서였구나.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화면에 선생님이 최근에 쓴 서로소의 일부분이 올라왔다.
수진이와 만난 순간은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나는 영원히 안아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아이를 품에 안았다.
삭막했던 집엔 영원히 끝나지 않는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봄도 어느새 끝이 찾아왔다.
아쉽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니까.
수진이의 숨이 멎었다.
그 순간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가슴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말로 할 수 없는 허무감이 찾아왔다.
이미 메마른 줄 알았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끝을 맞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되었고 다시 수진이를 만났다.
이 세상이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차디찬 겨울보다 차갑게 얼어붙은 가슴이 녹아내렸다.
끝나지 않는 봄이 찾아왔다.
내겐 그것으로 충분하다.
ㅡ 너무 로맨틱하네요.
ㅡ 그렇죠? 특히 이 부분이 좋거든요.
수십 년간 글을 썼고 10여 년이 넘는 동안 국어 강사로서 교단에 섰다.
그런데도 수진이가 마지막에 물어온 사랑이 뭔가에 대한 답을 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젠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이란 단어는 퍽 짧은데도 많은 것을 담고 있으니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내 어설픈 말솜씨로 정의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단어니까.
글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내 조잡한 글솜씨로는 내 감정을 전부 담을 수 없으니까.
그러니 이번엔 내 삶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수진이는 내게 너무나 많은 행복을 전해주었다.
내가 포기했던 수많은 것들을 되찾아주었다.
나는 수진이에게 받은 것을 절반도 돌려줄 수 없었다.
그러니 이번엔 내 차례다.
내 일생을 걸어 수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이 사랑을 전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그런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을 담은 이야기다.
선생님이 쓰기 시작한 소설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다.
선생님이 보지 말라고 한 것도 있고 아직 편수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내용일 줄 몰랐는데….
선생님을 힐끔 쳐다봤다.
선생님은 당장에라도 벌떡 일어나 도망치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아,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 걸까.
선생님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내면은 120살 늙은 할아버진데 나도 100살 먹은 할머닌데.
이렇게도 가슴이 설레고 행복한 기분이 된다.
ㅡ 정말 낭만적이네요.
ㅡ 그렇죠? 영원한 사랑이란 이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패널들이 이 방송을 준비한 이유를 알겠다.
아직도 바깥세상에선 이곳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
그중엔 우리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한 노부부도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거겠지.
우리처럼 끝나지 않는 영원을 맹세한 부부도 있다는 사실을.
끝을 준비하고 있는 노부부는 아마 두렵겠지.
이곳에 찾아온 노부부가 다시 맺어지는 건 1할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까.
평생을 사랑한 사람이 이 세계에 오자마자 헤어지자고 하는 것에서 올 두려움.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아마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겠지.
내가 만약 이 영상을 밖에서 봤다면… 아마 나도 이곳으로 오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선생님이 써놓은 이야기는 마음을 동하는 무언가가 있다.
패널들은 사랑이 뭐니 뭐니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우린 멍하니 그 TV 화면을 바라봤다.
그렇게 방송이 끝나고 광고가 흘러나오자 시선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내면은 120살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인데 왜 이렇게 귀엽지?
괴롭혀주고 싶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 마.”
“글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아, 하지 말라고!”
“내 일생을 걸어 수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아악!”
선생님은 왼손으로 눈을 덮어 가리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봤다.
본인이 적어놓고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귀여워.
“으응~ 우리 쭌수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말과 글로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내겐 전해졌다.
이미 충분할 정도로.
“하아….”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노려봤다.
그래봤자 무섭기는커녕 귀엽기만 한데.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어어?”
선생님은 나를 안은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나를 품에 꼬옥 끌어안았다.
“쭈, 쭌수야?”
“시끄러.”
선생님은 투덜거리면서도 나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오른손으론 내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왼손으로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감싼 자세다.
포개진 몸에서 선생님의 터질 것 같은 고동이 전해져왔다.
“그러니까 보지 말랬잖아….”
한참 동안 입을 오물거리던 선생님이 간신히 내뱉은 말은 투정에 가까운 투덜거림이었다.
“쭌수야~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잖니?”
“쯧.”
선생님은 본인의 붉어진 얼굴을 보이기 싫었는지 내 몸을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아무튼 그런 거야.”
“뭐가 그런 거니?”
“그만해, 이 자식아.”
이 이상 놀리면 선생님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그만두긴 해야 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사랑은 뭐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거야.”
“그래요?”
“그래. 그러니까,”
선생님이 뭔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응?”
누군가 싶어 화면을 확인했더니 희진이였다.
그것도 영상통화로 전화를 걸어왔다.
난 선생님의 다리에서 내려와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연결되자 희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우릴 바라봤다.
“왜 그러니?”
ㅡ 내 일생을 걸어 수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뚝.
선생님이 통화를 끊어버렸다.
“제 엄마한테 못된 거만 배워가지고."
선생님은 휴대폰을 침대로 던지고 화장실로 도망갔다.
아무래도 달아오른 얼굴이 식을 때까진 돌아오지 않을 모양이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희진이가 문자를 보낸 것 같다.
‘아빠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ㅎㅎㅎㅎ’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어쩜 저렇게 귀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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