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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9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18) (269/301)

〈 269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18)

* * *

휘익 퍽.

선생님과 진수의 캐치볼은 보고 있는 쪽이 기분 좋을 정도로 깔끔했다.

서로 공을 놓치는 일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던지고 있어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해가 질 때까지 저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수가 밖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냐.”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받고 다시 진수에게 공을 던졌다.

선생님과 진수의 캐치볼은 이런 느낌이었다.

즐기기 위해서 하기도 했지만, 가끔 진수에게 고민이 있다 싶으면 선생님은 글러브를 끼고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을 따라나선 진수는 선생님에게 공을 던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었다.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양반들이 이런 쪽으론 변하지 않아서 신기했다.

“초등학생 몸인데 잘하네.”

“진수는 예전부터 운동신경이 좋았으니까.”

“아빠 닮아서?”

“그럼.”

“엄만 맨날 아빠지?”

희진이의 그 말에 갑자기 웃음이 나와 웃고 있으려니 선생님과 진수가 캐치볼을 그만뒀다.

이제 지친 건가?

그리 생각하고 있으려니 선생님과 진수의 시선이 글램핑장의 입구로 향해있었다.

뭘까?

글램핑장의 입구로 시선을 향하니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설마 글램핑장에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이 올 줄이야.

선생님과 진수는 우리가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얼굴에 희미한 땀이 떠올라있는 상태였다.

“여기요.”

선생님과 진수는 내가 건넨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물티슈로 대강 손을 닦아내고 수박을 손에 들었다.

“여기에 사람이 찾아올 줄 몰랐네.”

“그러게요.”

어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라디오로 들었던 이야기론 이런 아웃도어는 인기가 없다고 했었는데.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도 실례라는 생각에 우린 수박을 마저 먹고 뒷정리를 끝냈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수박을 먹기도 하니 잠이 솔솔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희진이는 졸린다며 해먹에 드러누웠고 진수도 꾸벅꾸벅 졸더니 텐트에서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우린 숙소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애들이 있어도 하는 짓은 똑같네요.”

“원래 글램핑이 이런 거지.”

듣고 보니 아이들과 함께 왔던 글램핑도 항상 이랬던 느낌이다.

점심을 먹고 졸리면 잠깐 자고 일어나면 같이 뛰어놀고….

“잘 자요.”

“그래, 잘자.”

똑같다.

글램핑장에 찾아와서 바비큐를 먹고 낮잠을 자는 것.

똑같은데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온화해졌다.

***

잠에서 깬 우린 몸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배드민턴으로 하자.”

선생님은 멍하니 앉아 수박만 먹던 우리가 신경 쓰였는지 배드민턴 채를 가져왔다.

배드민턴이라….

이것도 상당히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과 희진이, 나와 진수로 나누어 2대 2로 팀을 짰다.

“내기는?”

“저녁 준비?”

“좋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혼자서 다 준비할 테니까.

선생님이 쳐올린 공을 반대편으로 쳐서 넘겼다.

희진이가 그 공을 받아넘겼고 진수가 그 공을 쳐올렸다.

“아.”

희진이가 쳐올린 공이 네트에 맞고 떨어졌다.

“괜찮아.”

선생님이 셔틀콕을 주워 다시 자세를 잡았다.

우린 한동안 계속 랠리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진수와 달리 희진이는 몇 번이고 공을 네트에 맞췄다.

아이들에겐 조금 높은 네트라 아무래도 자꾸 걸리는 느낌이었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진수는 그것도 생각해서 움직이는 듯하지만 그건 진수가 유별난 거겠지.

결국 승부는 나와 진수의 승리였다.

솔직히 선생님이 있어서 질 줄 알았는데….

희진이가 조금 민망하다는 느낌으로 선생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괜찮아. 어차피 우리가 이겨도 내가 하려고 했거든.”

“그게 무슨 내기야?!”

희진이가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을 시작으로 우린 한참을 웃었다.

왜 웃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상하게 따뜻한 기분이 되어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희진이가 저렇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옛날의 모습과 겹쳐져서 그런 걸까?

생각해보면 진수랑 다르게 희진이는 고집이 센 아이였다.

진수가 양보를 참 많이 했었지.

그런데도 내버려 두면 둘이 자꾸 투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5년 차이임에도 그랬는데 연년생이었으면 얼마나 피곤했을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아까 글램핑장에 찾아온 가족이 보였다.

음… 굉장히 어색해 보인다.

마치 누군가 가자는 말을 꺼내서 얼떨결에 따라온 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대뜸 그 일가족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날씨가 참 좋죠?”

선생님은 그 나이대 특유의 오지랖을 발동했는지 아예 자리까지 잡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희가 그제 여기에 왔었는데….”

선생님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선지 우리가 이곳에 찾아왔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부부는 공감한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글램핑장은 가족들이 놀러 오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추억이란 이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꿈에서 깨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혹시 선생님도 그걸 보셨습니까?”

“그거요?”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라는 소설이 있는데….”

여기서 선생님 소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분은 이곳에 처음 찾아왔을 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분은 우리와 다르게 에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같은 날에 죽자고 약속을 하고 함께 이곳으로 찾아오셨다고 한다.

건강한 몸이 생겼으니 생전에 못다 한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여기저기 돌아다니셨다고.

그러다가 캠핑을 떠났는데 거기서 대판 싸웠다고 한다.

“아무래도 예전과 마냥 같지는 않더군요.”

“아, 이해합니다.”

나도 선생님도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렇게 조금 어색한 부부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TV에서 선생님이 쓴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보셨단다.

“신기하더군요. 이곳에서 저희가 느낀 감정과 너무 닮아서요.”

캠핑은 두 분에게 있어 특별한 것이었다고 한다.

“제가 아내와 만난 건 캠핑 덕분이었거든요.”

친구들과 캠프장에 놀러 왔다가 텐트를 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아내분을 남편분이 도와준 게 계기였다고 한다.

그런 소중한 추억이 예전과는 달라 고민하던 중에 선생님의 소설을 발견하고 공감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드님을 이쪽 세계에 초대해서 글램핑을 오셨다고.

“분명 어제 올라온 부분에 가족과 함께 오면 다른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적혀있어서 말이죠.”

여기에 아이들을 동반하고 찾아왔으니 혹시 그 소설을 본 게 아닌가 싶은 눈치였다.

“뭐, 그렇죠.”

“역시… 뭐랄까 참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남편분과 아내분의 친구들도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부부가 된 친구는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살았는데 어떻게 다시 결혼할 생각을 하느냐는 이야기가 태반이었다고.

그러던 차에 영원을 약속하고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좀 특별하게 느껴졌다고.

“그럼.”

“예, 살펴 가세요.”

선생님은 남편분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왜?”

“좋아요?”

“내가 뭘?”

입꼬리가 씰룩이는 게 좋아 죽겠다는 표정인데….

저번에 방송에서 나올 땐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으면서 이건 또 다른 걸까?

“아빠,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히죽거려?”

“내가?”

“응. 좀 기분 나쁠 정돈데?”

“크흠.”

선생님은 멋쩍은 느낌으로 얼굴을 긁적이곤 짐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갑자기 노트북은 왜?”

“소설 쓰려고.”

“여기까지 와서?”

“종종 그랬었잖아?

“그렇긴 했는데… 엄마. 아빠가 좀 이상해.”

“놔둬.”

저 양반이 하는 짓은 뻔하지.

저 히죽거리는 표정은 아버님께 장난을 칠 때의 그 표정이다.

아마 실시간으로 소설을 써서 저 남편분을 깜짝 놀래줄 생각이겠지.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선생님의 분위기가 차분하게 변했다.

노트북과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보네.”

희진이는 선생님처럼 눈에 힘을 주고 미간을 찌푸리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힘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여워서 볼을 꼬집었다.

“아, 왜~”

“귀여워서.”

“엄마 딸이니까 귀엽지~”

“으이구, 죽으면 입만 둥둥 떠다닐 년.”

“엄만 죽어서 뇌가 둥둥인데? 아! 왜 때려!”

“못 하는 말이 없어요.”

우리가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선생님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글을 쓰는 중이다.

아, 역시 이런 진지한 선생님도 좋구나….

“엄마.”

“왜?”

“눈에서 꿀 떨어지겠어.”

“….”

정말 입만 둥둥 떠다닐 년.

***

1시간 30분 정도로 소설을 써낸 선생님은 곧장 바비큐 준비를 시작했다.

평소보다 한층 들뜬 표정으로 보아 생각보다 잘 써진 모양이다.

“엄마.”

“왜?”

“우리 아빠가 쓴 소설 볼까?”

“그래.”

진수도 말없이 휴대폰을 꺼내 선생님이 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청춘을 포기한 수진이를 위해 멋진 신혼생활을 해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창 신혼일 때 갔던 캠핑을 떠올리며 글램핑장을 갔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수진이와 한 공간에 있는 게 묘하게 어색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의 외견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이들은 그저 우리의 외견에 맞춰준 것일 테지만 참 많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미 수십 년도 지났는데도 아이들과 보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이런 일도 있었고 그런 일도 있었지….

행복했다.

이런 행복을 내게 전해준 수진이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역시 수진이와 만난 일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린 다시 글램핑장으로 향했다.

이번엔 4인 가족으로 향하니 그제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글램핑장은 여전히 아무도 없었고 우린 짐을 내려놓고 바비큐를 먹었다.

제 엄마를 닮아 장난꾸러기인 희진이와 그런 희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날 닮은 진수.

그 곁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수진이를 보니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되찾은 기분이 됐다.

바비큐를 먹고 오랜만에 아들과 캐치볼을 했다.

“그래서 윤서가….”

진수도 나이를 먹었는지 이야기의 대부분이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내인 윤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자식이랑 손주는 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외견은 초등학교 5~6학년 정도로 보이는데 손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썩 어울려서 묘했다.

그리 캐치볼을 하고 있으려니 글램핑장에 누군가 찾아왔다.

분명 TV에선 캠핑이나 글램핑은 거의 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누군가 오기는 오는구나.

……

글램핑장에 찾아온 일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니 내가 쓴 소설을 보고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보는 사람만 보는 그 소설이 이렇게 자주 언급될 줄이야.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사람 앞에서 내가 그 작가라고 말하는 망상을 했다.

뭔가 묘하게 입이 근질거렸다.

아주 옛날에 유행하던 힘숨찐인지 뭔지 하는 장르가 유행할 때 이걸 왜 보는가 싶었는데 말이야.

이젠 왜 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아빤 가만 보면 진짜 귀여운 사람이라니까?”

“그러니까 결혼했지.”

“엄마도 귀여운데 아빠는 더 귀여워.”

“시끄러워, 이 화상아.”

선생님이 귀여운 건 나도 알고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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