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3)
* * *
글램핑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
우린 당연하다는 듯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여기로 할까?”
“으음… 너무 크지 않아요?”
“그런가?”
찾아보는 것은 당연히 결혼식을 올릴 예식장이다.
하기로 정했으면 단숨에 끝낸다.
귀찮아져서 도중에 그만두지 못하도록.
우린 전생에 그랬던 것처럼 떠오른 즉시 준비를 시작했다.
에덴은 원래 부부였던 사람과 재혼하는 비율이 1할도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다시 만나서 결혼하는 비율은 그것보단 높다고 했는데 여전히 결혼 비율이 높지는 않다.
그러니 결혼식장도 그렇게 활성화가 되어있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웨딩에 대해 조사해보니 나와 선생님이 결혼했을 당시처럼 엄청 많은 사이트가 나타났다.
그것도 스몰 웨딩보단 규모가 있는 웨딩으로.
에덴에서의 결혼 비율을 보면 도저히 유지할 수 없을 규모였다.
아무래도 이 세상이 VR 세계이니 이런 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 거겠지.
실질적으로 고정원가가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식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다 AI가 아닐까 싶다.
“역시 완벽히 현실적인 것보단 이게 더 낫네.”
선생님은 너무 리얼해서 스몰 웨딩만 존재하는 것보단 이게 더 낫지 않냐며 웃었다.
묘한 부분에서 섬세하고 묘한 부분에서 대충대충인 사람이야….
우린 결국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전생과 달리 스몰 웨딩이라는 개념이 없어 전부 직접 준비해야 하는 것 같았으니까.
애초에 큰 예식장을 빌려도 스몰 웨딩이랑 큰 차이가 없는 걸 떠나 더 쌌다.
에덴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새 삶을 출발하라고 은근히 밀어주는 기색이 강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선생님은 좋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선생님의 표정이 굉장히 흐뭇해졌다.
저 표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웨딩드레스를 기대하는 느낌이다.
약간 음흉한 시선이 내 가슴께로 향했다가 스르륵 사라졌다.
내 가슴이 결혼했을 당시보다 커졌으니 기대가 되는 걸까?
어쩜 이리도 한결같은 사람인 걸까?
그래도 뭐, 무슨 기분인지는 알 것 같다.
지금의 선생님이 턱시도를 입은 모습은 묘하게 귀여울 거 같으니까.
나이에 안 맞게 발돋움을 한 듯한 느낌이라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겠지?
내가 귀엽다니 어쩌니 하면서 놀리면 얼굴을 살짝 붉히며 인상을 찌푸릴 거야.
그걸 생각하니 나도 선생님의 저 음흉한 시선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우린 점심을 먹은 다음 예약을 한 스튜디오로 향하기로 했다.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사진을 찍으며 일정을 정할 예정이다.
“부인.”
“네~ 서방님~”
“부인이 만들어준 파스타는 언제 먹어도 맛있네요.”
“그래용?”
“그래용.”
우린 어딘가 들뜬 기색으로 식사를 했다.
이미 결혼식을 해봐서 결혼식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기대된다.
정말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아직도 소녀 시절의 감성이 남아있는 걸까?
혹시 선생님이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가 스웜프맨이라서?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작게 웃었다.
“왜요?”
“기분이 썩 좋아 보여서.”
“제가요?”
“어. 저번에 결혼 이야기 나왔을 땐 살짝 인상을 찌푸려서 걱정했거든.”
내가 그랬었나?
“뭐, 내가 이걸로 결혼만 세 번째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는데.”
“흐응?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결혼식만 ‘세 번째’ 네요? 좋아요?”
“….”
선생님은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들었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들떠서 본인 무덤을 판 꼬락서니였다.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이걸로 결혼식만 세 번이네? 화나네? 화내도 되는 거지?
이미 살 만큼 살았는데도 선생님이 딴 사람이랑 결혼했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신경을 긁는다.
그걸 드러내진 않는다.
선생님이 그런 태도에 짜증과 피로를 느끼면 나만 손해니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쓰이는 거다.
그 인간이 없었다면 선생님은 나와 만날 일도 없었다.
선생님이 그 학원에서 일하고 있던 이유는 그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니까.
선생님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우리 약혼식의 주례를 서주셨던 그분의 학원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을 테니까.
복잡한 기분이다.
이게 필요악? 불쾌해….
“그, 미안.”
선생님은 내 얼굴이 실시간으로 구겨지는 모습을 보고 짧게 사과했다.
“아니에요.”
딱히 선생님이 잘못한 건 아니니까.
그냥 그 여자라는 과거를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잘못이니까.
신기하다.
몸이 젊어지면 생각도 젊어지는 것인지 그 여자에 대한 분노가 실시간으로 차오른다.
이게 그라데이션 분노라는 걸까?
분명 언젠가부터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었는데….
“크흠. 그, 음….”
선생님은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꺼내든 좋게 흘러가지 않는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좋은 판단이에요, 선생님.
저도 지금은 무슨 말을 들어도 꼬투리를 잡을 것 같으니까.
우린 그저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파스타 면만 후르릅거렸다.
방금까진 들뜬 기색이었는데… 뭔가 미안했다.
***
식사를 마친 우린 예약했던 스튜디오로 향했다.
원래라면 일정 조율을 하며 만나야 하건만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없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듯했다.
차를 몰고 다니다가 아무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수준으로 손님이 없다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전생에서도 결혼식을 그렇게 올린다고 그랬었는데.”
“그렇게요?”
“VR로 결혼식을 올린다던데?”
“정말요?”
“준호 녀석이 제 손주들이 그렇게 결혼식을 올렸다고 혀를 끌끌 차더라고. 그게 돈도 싸고 친구들 부르기도 좋다고 그렇게 했대.”
준호라는 분은 분명 우리가 이 세계에 왔을 때 찾아오셨던 그분이겠지.
선생님이 쓴 서로소의 표지를 그려주신 분이다.
“근데 그게 편하긴 할 거 같아요.”
“그렇기야 하겠지.”
VR 세계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몸매랑 얼굴도 손보기 쉽고 시간적 제약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VR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 같은데….
“덕분에 웬만한 예식사업은 다 망했었지.”
“그렇긴 하죠.”
그래도 머리가 딱딱한 사람들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예식장이 있기는 했다.
비용은 더욱 비싸지고 화려해지긴 했지만.
“다 왔네.”
우리가 예약한 스튜디오는 차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접근성도 좋고 비용도 싸다.
정말 이상적인 장소였다.
“어서 오세요.”
우리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남성은 가슴에 AI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전부 AI를 나타내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역시 그렇구나….
우린 스튜디오로 향해 웨딩 촬영과 예식장 예약, 청첩장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아무런 막힘없이 이야기가 술술 진행됐다.
어차피 일정을 확인하고 어떤 패키지를 고르느냐로 끝나는 문제였으니까.
하나 신기한 점이 있다면 패키지에 딸린 옵션이었다.
청첩장이 기본으로 포함된 게 아닌 완전 옵션이었다.
“옵션이네?”
“그러게요.”
옵션일 수밖에 없겠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옵션을 체크했다.
“선생님?”
“어차피 얼마 안 하는데 걍 하자.”
“네?”
“3만 원이라잖아.”
“아니, 그래도….”
올 사람도 없는데 왜 낭비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선생님은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웃어넘겼다.
주식이 사람을 망쳤어.
매번 주식으로 큰돈을 만지다 보니 금전 감각이 어떻게 됐나 봐.
왜 쓸데없는 낭비를 하는 걸까?
선생님은 괜찮다며 웃어 보일 뿐이었다.
“오셨으니 바로 웨딩 촬영부터 진행해보시겠습니까?”
“그러죠.”
보통 웨딩 촬영은 다이어트도 하고 일정 조절도 해야 한다.
여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럼 신부분은 이쪽으로 오시죠. 신랑분은 저쪽입니다.”
“좀 이따 봐요.”
“그래.”
생각해보니 이 스튜디오에 벌써 웨딩드레스가 준비되어 있나 싶었는데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VR 세계니까 현실적인 문제는 알아서 해결했겠지.
웨딩드레스는 고르는 작업도 피곤하고 입는 과정도 피곤하다.
기본 폼은 있지만 입는 여성에 따라 사이즈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몸매 관리가 굉장히 중요했다.
F컵을 위한 웨딩드레스는 거의 없기에 보통은 사이즈 조절을 위해 텀을 둬야겠지만 여긴 그런 것도 없는 듯했다.
AI 직원들은 날 자리에 앉히고 착착 내 몸에 맞는 드레스를 가져와 몸을 꾸며주기 시작했다.
몸에 딱 맞는다.
내 몸에 치수를 재지 않았는데도 가슴도 허리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역시 현실과는 조금 다르구나.
그래도 이런 편의는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얼굴에 가벼운 화장까지 마치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선생님과 데이트하기 위해 집에서 혼자 준비하는 시간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쪽으로.”
AI 직원을 따라가자 커튼이 열렸고 그곳엔 턱시도를 입고 있는 선생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살짝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이 바보 같아서 귀여웠다.
내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바라보자 선생님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얼굴을 살짝 돌리곤 볼을 긁적였다.
그리곤 다시 태연한 모습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예뻐.”
“얼마나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그러면 글로는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인가?”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아, 소설에 쓸 생각이구나?
귀여워.
뭔가 좀 안절부절못하는 선생님이 귀여웠다.
난 그제야 선생님의 모습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었다.
검은색 턱시도에 머리에 왁스를 발랐는지 이마를 까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에 적당히 화장도 했는지 평소보다 얼굴의 선이 더 살아있다.
그래도 얼굴에 앳된 느낌이 남아있어 어딘가 발돋움을 하는 아이 같아 귀여운 느낌이 더 강했다.
신체나이가 고2 정도니까 실제로 귀엽지는 않을 테지만 내 눈엔 귀여워 보였다.
보통 웨딩은 드레스를 몇 개 골라보고 입어본 다음 패키지에 따라 몇 종류의 드레스로 웨딩 촬영을 진행한다.
그다음 결혼식장에서 입을 드레스를 고르는 방식이었는데 이곳은 그 제한이 거의 없었다.
10종류는 되는 드레스를 사용해 웨딩 촬영이 가능한데도 전생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쌌다.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나와 선생님은 잘 어울리니 이대로 웨딩 촬영도 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80년 만에 선생님과 웨딩 촬영을 하게 된다니… 인생,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녀석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