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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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하겠다고 청첩장을 보냈지만 우린 굉장히 느긋했다.
“1주일 후에 한다고 할 걸 그랬나?”
“못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걸요?”
“역시 그렇지?”
선생님과 결혼을 준비할 때만 해도 1달이란 시간은 짧았다.
웨딩 촬영을 위해 몸을 가꾸고 결혼식장 예약을 하고, 체형에 맞춰 웨딩드레스를 손봤다.
청첩장을 줄 사람들을 만나 결혼식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축의금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결혼식은 그런 과정이 전부 필요 없다.
굳이 몸을 가꾸지 않아도 몸매가 변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체형이 변해도 웨딩드레스는 그 자리에서 내 체형에 맞게 자동으로 수선된다.
여긴 VR 세계라 직접 청첩장을 주는 게 불가능해서 모바일이나 이메일로 보낼 수밖에 없고, 축의금은 애초에 받을 생각이 없다.
그렇다 보니 결혼식까지 시간이 붕 떠버렸다.
선생님이 1주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여기도 나름 좋은 건 있단 말이지.”
선생님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곳의 결혼식이 마음에 든다며 작게 웃었다.
“편하긴 해요.”
“그땐 진짜 힘들었는데. 너도 신경이 막 곤두서서 힘들어했잖아.”
“…몸무게가 늘어나면 드레스 못 입는다고 그랬으니까요.”
웨딩드레스가 그렇게 성가신 물건인지 몰랐다.
몸무게가 늘어나 체형이 바뀌면 내 체형에 딱 맞게 다시 재봉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무게가 늘지 않도록 먹는 것에 주의하고, 매일같이 운동하는 바람에 신경이 곤두서서 상당히 피곤했다.
선생님은 그런 날 보며 조금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던 기억이 난다.
“이제 정해야 할 건 신혼여행이네요.”
“아, 그러네?”
선생님은 어차피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이번엔 국내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보자고 했다.
아무래도 나와 갔던 신혼여행 처가 제주도였던 것이 신경 쓰이는 것 같다.
“이번엔 어디로 갈까?”
“글쎄요?”
해외여행을 갈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로 해외여행은 아니다.
이곳 에덴은 한국에 있는 서버니까.
해외여행이라고 해봤자 나와 선생님에게 할당된 개인 서버처럼 비행기를 타고 내리면 다른 서버로 이동해있는 거겠지.
그래도 현실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도록 준비되어 있을 테니 기대가 되긴 한다.
“역시 로마로 갈까?”
선생님은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도 좋죠.”
선생님이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마 나와 했던 약속이겠지.
선생님이 내게 고백하기 위해 큰맘을 먹었던 그 날.
아직도 기억나는 날이다.
8월 1일.
선생님은 나와 영화관에서 데이트했다.
영화는 ‘로마의 휴일’이라는 작품이었다.
당시엔 전염병이 만연해 그런 고전 작품을 종종 틀어주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실 뭘 봐도 즐거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시만 해도 선생님과 눈만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으니까.
아무튼 선생님은 영화를 본 다음 내게 고백을 해왔다.
난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공주가 아니라 의무도 책무도 없다고 했지.
그 이야기가 오가고 선생님은 언젠가 날 로마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반쪽짜리로 끝나고 말았다.
전염병으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했으니까.
전염병 사태가 끝나고는 진수가 태어났다.
진수를 돌보다 보니 어느새 대학 졸업을 앞둔 상태였고 대학을 졸업한 후엔 희진이를 낳았다.
진수와 희진이는 아직 아이라서 해외여행은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진수랑 희진이가 좀 자랐을 때 가족여행으로 다녀왔었지.
나름 즐거웠는데 선생님은 아직 신경 쓰고 있구나.
그렇구나….
“전염병 녀석이 참 문제야.”
선생님은 나와 가지 못했던 로마가 아쉽다며 투덜거렸다.
그 모습이 썩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선생님과 온화한 오후를 보내고 있으려니 선생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준범이네.”
선생님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다?”
선생님은 내게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지 스피커 폰으로 변경하곤 책상에 내려놓았다.
ㅡ 무슨 결혼식을 또 하냐?
“결혼식은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고 맹세하는 거잖아? 죽었으니까 새 출발 해야지.”
ㅡ 그게 그렇게 되나?
“그게 그렇게 되지. 올 거냐?
ㅡ 뭐… 할 게 없어서 가긴 하겠는데 말이야.
“오~ 오냐?”
ㅡ 그렇게 와달라고 도발을 하는 데 가야지. 이번에도 사회는 내가 봐야겠네. 넌 뒤졌다.
선생님의 도발로 가득한 그 청첩장은 의외로 먹혔는지 준범 씨는 우리 결혼식에 찾아올 것 같다.
“나 여기선 18살이라 뒤지진 않을 것 같은데.”
ㅡ 아, 그러네? 이 새끼….
선생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준범 씨는 내 이름을 불렀다.
ㅡ 그런데 제수씨는 어떻게 지내? 뭔가 좀 울리는 거 같은데 이거 스피커 폰이지?
“안녕하세요.”
ㅡ 오, 있었네. 잘 살았어요?
“음… 죽었어요?”
ㅡ 그 놈의 부인 아니랄까 봐 하는 행동이 똑같네.
준범 씨는 한참을 웃더니 잘 사는 거 같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고마워요, 참석해줘서.”
ㅡ 이제 둘밖에 안 남았는데 찾아가야지.
“그래, 고맙다.”
ㅡ 새끼. 나 같은 녀석 또 없을 거다.
“그래, 너 같은 놈이 또 있겠냐? 아무튼, 고맙다고.”
ㅡ 알면 됐고.
마지막으로 만났던 준범 씨는 나이에 맞게 좀 점잖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피커 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아마 선생님이 젊었을 적의 느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니 그에 맞춰주는 거겠지.
선생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ㅡ 준호도 참석한다냐?
“아직 문자나 전화는 안 왔는데 오지 않을까?”
ㅡ 와야지. 그놈도 이제 쓸쓸한 황혼이니까.
“걔 결국 혼자 사냐?”
ㅡ 그렇단다. 딸내미 집에 얹혀살아서 부담 주고 싶지는 않대.
“대단한 놈이야. 솔직히 걔가 딸한테 해준 거 생각하면 얹혀살아도 욕할 사람 없을 텐데.”
ㅡ 어차피 먹고살 돈은 있으니까 괜찮겠지. 은퇴하기 전까지 악랄하게 벌었잖아.
“그랬었지. 손이 빨라서 한 달에 그림 8장씩은 그렸던 놈이 거의 100만 원씩은 받았으니까.”
ㅡ 아, 그러고 보니 네 소설 표지도 그놈이 그렸었지? 캬, 그립네.
선생님은 경상도 출신인 아버님의 영향으로 전화는 용건만 간단히 하는 스타일이다.
나와 연애하던 시절에 했던 통화가 가장 길게 하는 통화라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선생님도 가끔 통화가 길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가끔 이렇게 고향 친구분들이 전화해오는 순간은 말이다.
“아, 나 요즘 그거 외전도 쓰고 있다.”
ㅡ 뭐? 또 쓴다고?
“어.”
ㅡ 미쳤네…. 뭔 소설은 근 80년 동안 쓰고 앉았어?
“그렇게 됐네.”
ㅡ 너 설마 독자들한테도 결혼식 오라고 한 건 아니지?
“잘 아네?”
ㅡ 이야, 이 새끼는 죽어도 변하지 않는구먼.
준범 씨는 한참을 웃다가 나중에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변하질 않네, 이 녀석도.”
아마 변하긴 했을걸요?
선생님과 저한테 맞춰서 그런 거겠죠.
“오, 이번엔 준호네?”
선생님은 이놈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 시간에 전화해온다고 신나면서 전화를 받았다.
난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준호 씨도 준범 씨랑 그리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잘 살았냐고 물어왔다.
선생님은 아까와 같이 잘 죽었다는 답변을 했다.
준호 씨는 선생님에게 여전한 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선생님도 그 웃음을 듣곤 덩달아 웃었다.
준호 씨도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말해왔다.
선생님은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그간 잘 지냈냐는 말로 물꼬를 틀더니 준범 씨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으레 하듯이 추억 이야기를 말이다.
이미 같은 이야기로 20분은 떠들었으면서 질리지도 않는 걸까?
선생님은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전화를 끊었다.
“후우.”
선생님은 목이 칼칼한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곤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걸로 올 놈들은 다 오겠네.”
그리 말하며 웃는 선생님은 정말 외견처럼 18살로 보였다.
***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났다.
우린 평소처럼 아무것도 없는 일상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식사하고 밤에 한자리에 누워 같이 잠을 자는 아무것도 없는 일상.
하지만 그렇기에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그런 시간이었다.
그 온화한 일상에 작은 헤프닝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우리 결혼식을 찍고 싶다는 말입니까?”
그건 방송국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에덴이란 이름의 이 VR 세계를 광고하는 그 방송국.
그들은 선생님이 쓴 소설의 청첩장을 보고 화젯거리가 된다고 판단했는지 우리에게 의사를 물어왔다.
선생님은 당장은 결정하지 못하겠으니 아내와 상담하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은 굉장히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쩌지?”
“글쎄요…?”
나도 선생님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기에 서로 팔짱을 끼고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빤히 바라봤다.
결혼식이 남에게 자랑할 부류의 행사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출발을 하고 그걸 지인들에게 축복받는 행사니까.
그런데 방송국을 들인다니….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와 선생님은 서로를 바라봤다가 휴대폰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그만두자.”
“의외네요.”
“뭐가?”
“선생님이니까 우리 사랑을 다른 사람들한테도 자랑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할 줄 알았거든요.”
“그거야 소설로도 하고 있고. 그리고… 결혼식은 신부가 가장 돋보여야 하는 자린데 방송국이 오면 시선이 거기로 가지 않겠어?”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웃었다.
“선생님의 그런 부분이 참 좋아요.”
“난 네 모든 게 다 좋은데?”
“저도 다 좋아요. 됐죠?”
나와 선생님은 웃으면서 방송국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끝낸 선생님은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요? 사실은 부르고 싶었어요?”
“아니, 나도 좀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이를 먹었으니 변하기야 하겠죠.”
“알면서 그러네.”
“후훗.”
선생님이 하고자 하는 말은 아마 그거겠지.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땐 주변인들의 시선을 의식해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우리의 결혼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듯이 좀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그런 노출을 피하려고 한다.
아마 그런 변화가 신경 쓰인다는 거겠지.
“나도 참 바보 같았지. 주변이 뭐라고 하든 좋아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있으면 되는 건데.”
우린 변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먹는 음식도 취향도 변했다.
이 세계로 와선 외형에 맞게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변한 부분은 있었다.
변하지 않는 건 없겠지.
80년이란 세월은 절대 짧지 않으니까.
다만 한가지 변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사랑해, 수진아.”
“저도 사랑해요.”
나와 선생님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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